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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짧은) JPEGMAFIA의 LP! 를 들으며 했던 생각들

HeonE2021.12.11 19:51조회 수 813추천수 13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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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악에 있어서 DIY와 로우파이라는 단어.

 

나에게 좋은 제작의 기준은 명확하다. 본인의 제작 환경을 가장 잘 활용한 것이 좋은 제작이다. 음악을 하고자 하는 우리는 누구나 좋은 마이크를 바라고, 좋은 신디사이저를 원하며 훌륭한 비트메이커와 인내심과 실력 모두를 가진 마이크 딘을 옆에 두고 싶어한다. 하지만 꿈은 높고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유명한 표현이 있듯,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우리는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최선의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나에게 좋은 제작의 기준이며, JPEGMAFIA의 LP! 는 그런 좋은 제작의 가장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로우파이'와 'DIY'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 이러한 단어들은 대개 촌스럽고 키치하며 유치한 것으로 뭉뚱그려지곤 했다. 하지만 JPEGMAFIA의 LP!는 로우파이와 DIY라는 모든 단어가 해당되면서도 결코 촌스럽지 않고 키치하지 않으며, 오히려 훌륭하다. 대체 왜? 그리고 그것이 제이펙마피아의 LP!가 좋은 앨범인 이유이며, 제이펙마피아가 좋은 창작자인 이유다.

 

 

2. 예술의 본질

 

재미있는 점은 제이펙마피아는 앞서 언급한 우리가 바라는 요소들을 모두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이펙마피아는 여전히 믹싱과 마스터링, 비트메이킹과 작곡을 모두 하길 원했다. 이것은 위험한 도박이다. 우리는 프로듀싱과 랩을 동시에 하려다가 조금은 실망스러워진 제이콜을 보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이펙마피아는 여전히 그러려고 했고 또 여전히 그러고 있다. 여전히 난데없고 왜곡된 샘플과 음성이 울려퍼지며 그 앞에서 제이펙은 거친 음색으로 랩을 갈겨댄다. 

 

그 이유는 제이펙마피아는 그렇게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기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가장 근접한 방향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본질 중 하나는 자기 표현이다. 그리고 제이펙마피아는 그 본질 앞에서 그 누구보다 솔직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내가 지금 표현하고 싶은 것을 음악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어떤 청각적 효과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담을 수 있는가? 그것은 어려운 지점이지만, 제이펙마피아는 그 지점에 끝내 도달하기 위한 고행을 기꺼히 감수했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제이펙마피아다. 난데없고 과격하며 왜곡되었지만 우리는 그에 빠져든다. 아니, 빠져들 수밖에 없다. 거기에 제이펙마피아의 진심, 최소한 진심을 담고자 하는 시도가 온전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박적인 집착이 서려있는 작품을 우리는 '광기'가 서려있다고 부른다. 이러한 광기는 예술가에게 부정적으로 기능할 이유가 전혀 없다.

 

 

3. 파란노을과 JPEGMAFIA, 그리고 당신

 

마지막으로 나는 이 앨범이 끼칠 영향에 대해 즐거운 상상을 해보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지으려고 한다. 나는 밴드캠프에 배포된 이 앨범을 구매하면서, 내가 올해 밴드캠프에서 구매한 또다른 앨범을 떠올렸다. 그 앨범을 만든 이의 이름은 파란노을이다. 파란노을은 전혀 유명하지 않은 한국의 인디 음악가며, 방에서 혼자 음악을 만들었다. 음악은 모두 가상악기로 만들어졌으며 녹음은 갤럭시 휴대폰으로 진행하였다. 따라서 거칠고 왜곡된 음향이 앨범 내내 울려퍼지고, 그렇게 거칠고 왜곡된 음색 위에 고스란히 내놓은 것은 찌질한 본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파란노을이 방에서 혼자 만든 음악은 세계로 끝내 퍼져나갔다. 그리고 파란노을의 그 앨범은 누군가에게 용기와 위로로 전해졌다.

 

나는 파란노을과 제이펙마피아를 동시에 바라본다. 그리고 당신을 바라본다. 어디선가 말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으나, 마땅치 않은 제작 여건에 부딪힌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이 파란노을과 제이펙마피아를 보길 권유한다. 당신은 그 누구도 닮을 필요가 없다. 당신은 그 누구도 따라할 필요가 없다. 당신에게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그것을 고스란히 표현해라. 당신에게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라. 당신이 비루하다고 생각하는 당신의 모습과, 당신이 가진 것들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해라. 그렇다면 그것은 끝내 아름다운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파란노을과, 또 제이펙마피아의 이번 앨범이 끼칠 영향력이다. 지금 어디선가 분명 JPEGMAFIA의 본 앨범을 듣고 용기를 얻어 가사를 써내려갈, 비트를 찍어볼 꿈이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 꿈은 하나의 빛이 아닌 여러 개의 빛일 것이고, 그 빛이 모이면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그 그림은 제이펙마피아에게서 온 것이고, 제이펙마피아는 이를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것이 아름다운 결과를 빚어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올해 참 좋은 앨범들이 많이 나왔죠. 

그 중에서 가장 감탄스러웠던 앨범이었습니다.

앨범 자체로 흠뻑 빠져든 유일한 앨범이 아닌가 싶어요.

모쪼록 즐겁게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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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 1 12.11 20:18

    잘 읽었습니다!!

  • 1 12.11 21:33

    좋은 글 감사합니다

  • 1 12.11 22:06

    잘 읽었습니다!

  • 1 12.12 00:16

    잘 읽었습니다

    페기는 진짜 대단한것 같네요

  • HeonE글쓴이
    12.12 21:22
    @YungKimchi

    정말 너무너무 기대되고 훌륭하고 ,, 아무튼 세상 모든 주접 다 받을 자격 있는 래퍼라고 생각해요 ㅋㅋㅋㅋㅋㅋ

     

  • 1 12.12 04:48

    잘 읽었습니다

  • 1 12.12 05:17

    요새는 인터넷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흐름, 혁신의 줄기를 생산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ㄹㅇ 제이펙도 그렇고 bandcamp 아티스트들 다 잘됐으면 하네요

  • HeonE글쓴이
    12.12 21:24
    @신세이카맛떼쨩

    기성 뮤지션들도 밴드캠프에서 많은 영감을 얻지 않을까 싶어요 ! 개인적으로 무척 즐거운 흐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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