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i B의 싱글 'WAP'은 Wet-Ass Pussy의 약자라는 화끈한 제목과 두 래퍼의 엄청나게 노골적인 가사로 화제를 모았던 곡입니다. 곡이 매우 선정적임에도 불구하고, 틱톡에서는 수많은 챌린지 영상들을 양산해내고 빌보드 Hot100에서는 비연속 4주 1위라는 굉장한 기록을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상업적인 성과만 낸 것이 아니라, 조금 전 공개된 피치포크의 연말 결산에도 1위에 이름을 올렸고, 롤링스톤에서는 1위, 타임과 가디언에서는 2위로 선정 되었습니다.
'WAP'의 가사는 두 여성이 자신의 촉촉한 질을 어필하며 각종 포르노를 글로 쓴 듯이 직설적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힙합 음악에서 남성 래퍼가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가사는 꽤나 흔히 찾아 볼 수 있었고, 여성 래퍼가 이를 시도한 사례도 그리 어렵지는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로 생각난 두 노래가 Run the Jewels의 'Love Again (Akinyele Back) ft. Gangsta Boo'와 Ariana Grande의 'God Is a Woman'입니다.
'Love Again'은 Run the Jewels의 두 멤버 Killer Mike와 El-P, 그리고 피처링 아티스트인 Gangsta Boo가 랩을 한 트랙입니다. 첫 두 벌스는 훌륭한 랩 퍼포머들이자, 동시에 "남성"들인 Run the Jewels의 멤버들이 랩을 선보입니다. 두 벌스 모두 'WAP'의 남자판이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성적 욕망에 대해 노골적으로 묘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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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 fucked you in your kitchenette, fucked you like we tusslin' Do you fuck your husb-al-and? Like, do y'all be tusslin'? Do you wear the muzzlin'? Do you ask him "Pretty please?"
She got that (dick in her mouth all day) She take that (dick in her mouth all day)
She smiled a bit, gripped the outline of my shit Oh, my god, I love this chick, I must put my tongue in this |
이런 가사들은 잘 썼고 못 썼고를 떠나서 이미 선례가 많은 종류의 가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찌보면 진부할 수도 있고,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인식이 많이 퍼진 현재에는 여성 혐오로 보여질지도 모르는 가사입니다. 하지만 이런 의문들을 Gangsta Boo의 벌스가 완전히 뒤집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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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d a young player from the hood, lick my pussy real good Kept me stuck with lots of wood Kept my bank account on swoll Sniffed my pussy like a rose, smokin' on dro Made a porn tape, that nigga is a pro, you ain't know? |
Gangsta Boo의 가사는 'WAP'과 크게 다를 것 없이 선정적이고 노골적입니다. 하지만 앞선 두 래퍼들의 벌스와 함께 한 곡에 묶여있던 덕분에 이 벌스는 훨씬 멋진 역할을 하게 됩니다. 상술했듯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두 남성 래퍼의 벌스 다음에 오게 되면서 곡의 가사는 한 순간에 표현의 자유와 성적 욕망을 양성 평등하게 나누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그다지 멋져보이지 않던 곡을 피처링 아티스트를 영리하게 활용하여 가사적인 짜릿함을 안겨주는 곡으로 바꿔버리는 것이 이 곡의 가장 핵심적인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WAP'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진 또 다른 곡은 Ariana Grande의 'God Is a Woman'입니다. 이 곡의 가사는 훨씬 비유적입니다. 하지만 'God Is a Woman'이라는 제목과 함께 흐릿한 가사에 초점을 맞춰본다면 이 가사 또한 섹스에 대한 묘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두 곡과는 내용이 조금 다른데, 위의 두 곡이 여성의 성적 욕망을 나열하며 남성을 갖고 노는 내용이라면, 이 곡에서는 성관계를 리드하는 여성 화자가 상대에게 "넌 신이 여성이라고 믿게 될 거야"라고 말합니다. 이 때 일맥상통하는 부분은 주체적인 여성상입니다.
제가 'WAP'의 비평적 성과를 보며 이 두 곡이 생각난 이유는, 이 두 곡이 'WAP'의 상위 호환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Love Again'에서는 Gangsta Boo가 곡의 서사를 뒤집어 엎으며 훌륭한 가사적 성취를 제공했고, 'God Is a Woman'에서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You'll believe God is a woman"이라는 비유로 표현하며 가사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WAP'의 노골적인 표현들은 'Love Again'처럼 영리하게 기능하지도 못했고, 능동적인 여성상을 'God Is a Woman'만큼 아름답게 묘사하지도 못했습니다.
청각적인 면에서도 그다지 특출난 부분을 찾기 힘듭니다. 'Love Agian'에서는 쫄깃한 베이스와 브라스를 활용하여 재밌는 비트를 만들어 냈고, 세 랩퍼들의 랩 디자인이나 퍼포먼스 모두 듣는 재미가 있습니다. 'WAP' 또한 랩 트랙이지만 프로덕션과 랩 퍼포먼스 모두 내세울만 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페미니즘이나 PC적 해석을 굳이 나쁘게 보고 싶진 않습니다. 예술은 세상에 나서는 순간 감상하는 이들에게 해석과 평가의 권한이 주어집니다. 제가 소개한 두 곡은 청자가 페미니즘이나 PC를 해석의 도구로 사용했을 때 예술적 쾌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다만, 곡이 명백히 여성상에 대해 표현하고 있고, 페미니즘적인 해석을 요구한다는 사실만으로 음악적 완성도가 뒷받침 되지 않은채 비평적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 괜찮은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파격적인 가사를 담은 채 상업적 성과를 이끌어 낸 상징성을 높이 사는 것이 비평가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WAP의 성공은 카디비의 이미지메이킹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캐릭터가 너무 잘 잡혀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wap류 가사는 과거에도 많았지만 당장 동시대에 cupcakke이 많이 생각났었네요ㅋㅋㅋ
메인스트림에 성공적(?) 안착이라는 점에서 고평가하나봅니다...쩝 난 모르겠다
덕덕구스도 비슷한 사례이겠네요! 개인적으로 덕덕구스가 노래 자체가 더 괜찮은 것 같아요
덕덕구스 노래는 좋죠 ㅋㅋㅋ 덕덕구스도 그렇고 님이 올린 노래들도 그렇고 다 wap 상위호환 버전이라 생각합니다!
갱스타 부가 밸런스 맞추면서 훌륭한 곡이 됐죠 ㅎㅎ
엘피와 킬러마이크의 퍼포먼스만으로도 물론 좋은 곡이었겠지만 갱스타 부의 피처링이 신의 한 수가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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