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의 기다림 끝에 저스디스의 정규 2집, <LIT>이 발매되었다.
발매 전부터 저스디스는 전례 없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고,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앨범을 '큐레이팅' 했다. 그 과정에서 <LIT>은 세간의 관심을 끄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걱정 섞인 우려 역시 따라다녔다. 필자는 그중 일부만을 따라갔음을 미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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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을 관통하는 핵심 메타포는 커버 아트의 미로다. 저스디스는 자신과 자신 주변에 대해 자신이 가진 생각을 쏟아내지만, 쏟아낼수록 마치 미로에 갇힌 것처럼 더 길을 잃는다. 길을 잃은 순간,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저스디스는 헤매는 와중 자신이 본 것들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그러므로 <LIT>은 정돈되어 있지 않다. 그렇게 청자도 길을 잃는다.
미로에 갇힌 이가 자신의 모습과 벽 너머 희미한 바깥을 번갈아 보듯, 저스디스는 사회 문제와 주변인의 치부, 그리고 개인적인 문제를 뒤섞어서 늘어놓는다. 이는 서로 연관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완전히 무관해 보이기도 한다. 혼란을 마주한 저스디스의 언어에는 증오가 서려있고, 이는 <Don't Cross>와 <Curse>에서 폭발한다. 그러나 <Lost>에서 미리 고백했듯 증오는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음울하다. 청자 역시 음울해지지긴 매한가지지만 그를 이해할 수는 없다. 여전히 홀로 갇혀있는 저스디스는 - 다소 뻔한 전개일지는 모르겠으나 - 자신의 유년을 떠올린다.
<유년>에서 저스디스는 어린 시절 겪었던 혼란을 풀어놓는다. 지금 마주한 혼란과는 다르게 제법 유치하지만, '하나님의 권능', '사기꾼과 싸구려'와 같은 말은 유치하지 않다. 그때는 그것을 깨닫기는 너무 어렸겠지만, <VIVID>에서 사춘기가 된 허승에게는 이 말들이 점점 선명해져서 아직까지도 짙게 남아있다.
작년 <VIVID>가 선공개 되었을 때에는 두서없는 가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특히 사회의 틀을 깨부수고 자유롭기를 원했던 과거를 담은 전반부 (분노한 그 아버지의 분노가 스릴로 다가와/긴장감 속, 손에 나는 땀, 터질 것 같은 심장)와, 그 틀을 긍정하는 중후반부 (근데 그게 이 안전망도 만든 거잖아/이제 우리나라도 이민자를 더 받아/근데 되면 안 되잖아, 제3의 어디가 말야)를 접합하는 것이 '근데 보여 갱 problems'라는 피상적인 관찰에 머문 점은 꽤나 치명적이다. 두 가지 생각이 충돌하는 만큼 저스디스의 메시지는 설득력을 잃는다.
하지만 앨범 속에서 <VIVID>는 의외로 자연스럽다. 오히려 그 충돌이 저스디스의 혼란을 극대화한다. 싱글에서는 단정적인 것 같았던 말들이 이제는 처절하고 확신이 없어 보인다. 그렇기에 곡 중후반부의 저스디스의 고민 또한 제대로 힘을 얻는다.
그 폭발의 끝은 '매 순간 나는 삶을 질투하는 것들과 싸워/이 숨쉬기의 끝이 어딘지는 only God knows', '내 삶의 중심에서/이젠 너에게로' 라는 가사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이 미로는 양방향이었다. 저스디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미로 하나, 그리고 저스디스 밖에서 안으로 가는 미로 하나.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청자가 느끼던 거리감은 희미하게나마 좁혀질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미로를 풀진 못하더라도, 같은 미로에 갇힌 우리는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가 앨범의 전반부이고, 8분짜리 인터루드가 이어진다.
'I just speak my truth/당신들과 가까워지려고/비록 뱉을 때마다 멀어졌더라도/이번엔 다를 거란 마음으로'
이번엔 다를 거란 마음으로 후반부에 들어서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나,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 자신이 만난 사람에 대한 한풀이는 계속 이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Wrap It Up>부터 가사가 점점 심상치 않아진다. 전반부에서 다룬 사회 문제가 자신의 경험담과 연결되면서 청자는 새로운 불편함 - 혹은 스산함을 느낀다. 이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위 높은 욕설은 이어지지만 - <내 얘기>의 '얘기'가 '애기'와 겹쳐들릴 때쯤, 그동안 안에서 밖을 향해 쏘아댄 말들은 거꾸로 저스디스에게 돌아오기 시작한다.
물론 어디까지가 그의 경험이고 어디까지가 타인의 것인지,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어디까지가 비유이고 어디까지가 직설인지 청자는 알 수 없다 (아니면 아직 해독하지 못했다). 다만 확실한 건 이제 저스디스의 칼춤은 청자에게 또 다른 형식의 불쾌감을 선사한다. 저스디스의 말처럼, 그가 뱉을 때마다 우리는 멀어졌다. 이 미로는 빠져나갈 수 없다. 빠져나갈 수 없으니 돌아갈 집도 없다.
마지막 트랙 <HOME HOME>이 재생되면,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이가 한 명 더 나타난다.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저스디스는 청자에게서 멀리 떠나버릴 수밖에 없다. 멍하니 서 있는 청자를 비웃듯 둘은 캔슬 컬처와 편협한 사회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다. 때로는 좌파의 시선에서, 때로는 우파의 시선으로. <HOME HOME>에서 청자는 몇 번쯤 그 비판 대상인 '너'에 해당되기도 하고, 그 말에 공감하기도 한다. 5분 가까이 되는 곡에서 그들은 단 한 시도 편안할 수 없는 우리네 집을 그려내며, 청자에게 자신만의 혼란, 자신만의 미로를 던져준 채 홀연히 떠나버린다.
<LIT>을 다 듣고 나면 뒤통수가 얼얼하다. 후반부에서 해소될 줄 알았던 혼란이 오히려 폭발한 채로 덩그러니 놓여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좀 흐르면 여운이 식고 공허해진다. 71분 동안 우리가 경험한 이 혼돈의 전시는 정말 의미가 있었을까?
<LIT>의 전반부를 지탱하는 것은 저스디스의 어지러운 내면 그 자체였다. 마약이나 대중문화에 대한 피상적이고 편협한 사회 비판을 감내하고 들을 수 있었던 건, 첫째는 저스디스가 그만큼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었다는 공감의 정서가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 모든 혼란이 후반부를 거치면서 의미 있는 결론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반부 들어서도 저스디스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 단순한 반복이 물릴 때쯤 저스디스는 하고 싶은 말을 정돈하려는 노력을 하는 대신, 청자에게 충격을 주어 혼란을 전가시키는 길을 택했다. 이는 앨범 후반부의 강렬함을 상기시켰지만, 앨범을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얕은 사회비판은 여전히 얕았고, 저속한 표현은 그저 저속한 채로 남았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이 말을 모두 하려니 71분도 부족했다. 그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려 한 욕심 때문에 깊은 통찰에도, 명확한 성찰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딱히 새롭지는 않음에도 압도적인 정보량이 뒤죽박죽 들어오니 공감하기도 어렵다. 공감할 수 없다면 솔직함이 무슨 소용인가. 게다가 저스디스는 자신 안의 모든 것을 하나씩 전시할 것처럼 하다가 관람객의 머리를 몇 대 세게 내려친 후 그것이 예술이라고 주장한다. 여전히 청자는 저스디스의 내면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해독하면 새로운 요소를 통해서 그를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로 흥미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것 자체가 'Lost In Translation'이라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다.
<LIT>이 좋은 앨범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꽤나 괜찮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LIT>의 거대한 혼돈 자체는 경험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 혼돈을 의미로 전환, 아니 번역하기엔 내 예술 수준이 너무 낮다.




릿당신은대체 어디까지 가는겁니까
리스너 뒷통수까지 때리다니..
아야야
제가생각할때 젓딧은 상업적인걸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힙합의 3요소 부터 다시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마x,섹x 거짓말 처럼 모든걸 담았어요 하지만 바른생활 승이는 그런 경험이 많이 없기 때문에
뒤죽박죽이라 아쉬움이 남는거죠 씩씩하게 갔는데 아쉽습니다
넵 욕심이 과했던거 같아요
안그래도 뒤죽박죽인데 너무 꼬아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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