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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 짧리뷰 : 난도질로 적은 글자가 깊어 보여도 읽고 싶진 않을 때

잡동사니2시간 전조회 수 724추천수 4댓글 0

좋은 앨범의 기준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앨범은 하나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핍진성과 흥미 유발, 그리고 깊이다. 이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녹아들어야 저자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에게 전할 수 있고, 독자 또한 저자를 이해하며 간접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LIT>을 본다면, 분명 <LIT>은 좋은 앨범이 아니라는 발매 직후 초기의 반응이 일견 이해가 간다.

 

트랙 각각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해석이 분명 존재한다. 각각에 대한 분석과, 내가 느낀 서사적 연결성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추후에 이 앨범을 나름대로 완전히 이해했다고 단정할 때 작성하기로 하고, 우선 지금은 단편적 감상과 <LIT>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생각을 나열하고자 한다.

 

저스디스의 <LIT>은 일종의 콜라주 예술 같다. 비유하자면 저급한 용어로 쓰인 삼류 인터넷 소설과 다큐멘터리 대본, 사람 허승의 자서전. 이렇게 세 권의 책을 놓고 갈기갈기 파쇄한 뒤, 문장들이 쓰인 종이쪼가리를 덕지덕지 붙여서 만든 앨범이라고 느꼈다.

 

우선, 음악으로서 앨범의 '때깔'은 좋다. 다양한 비트가 존재하며 각 비트들의 퀄리티도 아주 높다고 느꼈다. 특히 프로듀서 세우의 <THISISJUSTHISIII>와, 일루이드 홀러가 참여한 그로테스크한 피아노 소리가 첨가된 재즈풍의 비트들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놓고 보아도 음산하고 짜임새 있는 붐뱁들을 구성하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것이 개인적인 감상이다. 앨범이 책이라면, 좋은 질의 종이와 미적 가치가 높은 표지와 일러스트 등이 구성을 잘 메우고 있다.

 

그러나 가사적 측면에서 앞서 언급한 '콜라주'가 발목을 잡는다. 인간 허승의 삶과 어지러이 섞인 서울의 풍경을 표현하려다 보니 독자들은 자연히 곡 각각을 컨셔스 랩처럼 느끼며 날카롭고 통렬한 비유와 깊이 있는 고찰이 담긴 가사를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감을 품고 가사를 펼쳐 보았을 때 보이는 것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얕은 '사회비판'과, 유치하거나 소위 '짜친다'고 느낄 수 있는 과장된 표현들이다. 저스디스가 앞선 앨범들에서 보여준 참신하고 치밀한 가사의 밀도를 고려할 때 실망감을 느끼기 충분하다.

 

랩도 아쉽다. 빌리 우즈 등의 뉴욕 언더그라운드 드럼리스 붐뱁의 영향을 받았다고 자평하나 저스디스의 랩은 <Aethiopes>의 해체성과 단단함을 재현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실제로도 뻔하고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특히 개인적으로는 <I can't quit this shit>은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다. 뽕끼 섞인 비트에 뻔하게 랩을 뱉으니 랩의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음에도 다소 유치하고 가볍게 들린다.

 

더욱이 해당 곡에서 다루는 주제가 사회비판적임에도, 비트와 내용이 좀체 어우러지지 않는 점에서 아쉬웠다. 일리닛이 뛰어난 랩으로 귀를 사로잡으나 그가 이야기하는 이스라엘의 전쟁과 생명 경시 문화의 무게에 비해 곡의 무게감이 지나치게 가볍게 느껴진다. 다른 곡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아도, 랩을 뱉는 방식이나 플로우를 곡마다 다채롭고 다양성 있게 전개한 것도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느꼈다.

 

이러한 부분에서, 릿의 랩 메이킹과 가사가 저스디스의 퇴보의 증거라고 느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시선에 '몇 번씩만 더 들어 보라'는 권유로 답하고 싶다. 사실 저스디스가 이런 콜라주를 통해 만들어낸 결과물은 사회비판적 컨셔스 랩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혐오와 자해, 그로테스크할 정도의 자학적 난도질이기 때문이다.

 

사실 글의 절정 부분에 해당하는 이 즈음에서 의도적으로 글을 끊고자 한다. 첫째는 릿에 대해 내가 이해한 바가 아직 완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며, 둘째는 많은 이들이 앨범을 다회 들으며 앨범에 숨겨진 장치들의 중첩성을 눈치챌 때의 쾌감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유저분들이 이미 밝혔듯, 릿의 곡 제목이나 내용을 통해 각 가사의 화자와 청자가 누구인지가 어렴풋이 밝혀져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릿은 저스디스와 허승의 합작 앨범이며, 죽일 듯이 미워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해 나가고, 결국 절망과 허무 속에서 실낱 같은 합일의 단서를 찾는 결말이 릿을 완성시킨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과잉 해석이며 자위행위라고 주장할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분들께까지 내 해석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또한 내가 릿에서 저스디스에게 분명한, 꽤나 큰 실망감을 느꼈다는 사실도 엄연히 참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밝히는 힌트가 릿의 본질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단서가 되리라고 믿는다.

 

두서 없는 글을 마치며, 다시 릿을 들으러 가야겠다. 오늘 밤이 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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