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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Dilla - Welcome 2 Detroit

예리14시간 전조회 수 524추천수 8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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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 Dee - Welcome 2 Detro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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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did you decide to do beats?"

"The first thing that made me want to do beats was when I heard "Big Mooth" by Whoctiol fused to be a DJ and I suppose I was used to being behind the scenes."


- Fatboss Magazine, 1999






J Dilla가 살아생전에 남긴 작품은 많지 않지만, MPC와 레코드판에 남긴 별그림자들은 오늘날에도 꾸준히 우리 손과 귀로 들어온다. 익히 알려진 <The Shining>, <Ruff Draft>. 그리고 <Motor City>, <Dillatronic>, <Dillatroit>를 포함한 무언가들. 이게 진짜 제목일까 알쏭달쏭한 해적판 내지 짜깁기 컴필레이션들이 가득하다. 전설을 대하는 예우인지 무례인지 몰라도, J Dilla의 유산을 전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는 오늘도 그가 살아숨쉬는 듯 생전에 발매하지 못한 작품들을 우수수 쏟아냈다.


하지만 모두들 2006년의 J Dilla를 만나기에 급급해있다. <Donuts>를 그의 A to Z로 여기는 태도다. <Donuts>는 분명 그에게 가장 의미깊은 작품이다. J Dilla만의 샘플링 기계학과 방법론을 꽃피운 정점과도 같고 이는 뒷날을 잇는 신성들의 숭상과 외침으로 증명됐다. 하지만 무작정 치켜세우려 휘갈긴 표현들은 꽤 가식적이다. 모두들 밤하늘에서 뚝 떨어진 유성이 디트로이트의 MPC 3000에 내리꽂힌 듯 이야기하고, <Donuts>라는 신화 역시 불사른 영혼으로 펑하고 피워낸 음악적 발상의 완성이자 다시는 없을 역작- 따위로 얼버무리는 그런 볼품없는 묘사 말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리 얼버무린 신비주의엔 인과관계가 없다. Slum Village도, Jaylib도, The Soulquarians도 없다. 누군가에겐 J Dilla가 랩을 했다는 사실조차 거짓말처럼 여겨지고, 어쩌면 J Dilla라는 이름 전 'Jay Dee'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없어질지도 모른다. 순진한 평가들은 도리어 매정하다 못해 무신경에 가깝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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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Dilla가 래퍼들에게 선사한 곡과 <Donuts>의 트랙들을 비교해보면, 그는 자신의 예술에 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놓치지 않았다. 배경의 위치를 고수하며 래퍼들에게 진정 어울리는 비트를 선물하고, 동시에 말끔히 가려지지 않고 기억될 제 이름을 새겨넣는 탁월한 능력. 그 농도를 조절하며 J Dilla는 자유자재로 아티스트와 비트메이커를 오갔다. 이 모든 신화의 전초전과도 같던 <Welcome 2 Detroit>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Jay Dee는 어떠한 순간에도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객원 래퍼와는 역량을 주고받고, 머릿속에 그리는 퍼포먼스와 그 이후였다.


<Welcome 2 Detroit>를 처음 들었을 때. Jay Dee의 존재와 청사진이 찾아온 뒤로 그는 단순한 거장 따위가 아니었다. 그의 본질은 급진적인 실험가였다. 어쩌면 <Donuts>에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몇 트랙은 어색할 정도로 상이한 얼굴을 한 채 힙합의 울타리를 떠나고 싶은 듯 날개를 펼쳤다.


"B.B.E. (Big Booty Express)"는 제목처럼 Kraftwerk를 오마주하는 트랙이다. TR-909로 묘사한 오묘하게 씹히는 베이스와 신디사이저 활용이 돋보인다. 미래지향의 대명사 벨빌 3인방 (Derrick May, Juan Atkins, Kevin Saunderson) 등이 보여온 디트로이트 테크노의 SF 풍조를 빌려온다. 과한 다채로움을 지양하는 최소주의적 사조다.


"Brazilian Groove (Ewf)"는 다정하고 끈적한 비트로 에워싸며 요점인 훵크 기타 사운드로 애틋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Rico Suave Bossa Nova"는 리듬악기처럼 쓰인 키보드 위로 남미 특유의 정겹고 원숙한 합창을 넣으며 해살한 미소를 안겨준다. "African Rhythms"는 제목처럼 더 본질적인 접근이다. 배경엔 주문과 환호성같은 구절들이 오가는 가운데 단조로운 젬베 기반의 리듬만으로 의식을 강화하며 초자연적인 주술의 현장을 가져온다.


요상한 장치들은 말 그대로의 'Beat'를 보여준 "Think Twice"의 연장선처럼 작동한다. 말 없는 비트 루프를 얌전히 반복하며, 힙합에서 랩만으로는 보여줄 수 없는 긴장과 이완으로 탄력 있는 짜릿함을 전한다. 건조하고 둔탁한 분위기를 이끄는 날카로운 드럼 소스. 그 위로 포인트를 주듯 찰나의 매무새를 끊어 루프를 이어그리는 샘플링 기법. 익히 알려진 J Dilla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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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전면에 ‘디트로이트 초대장’을 내밀었으니 해석해보자면, 원문 그대로의 환대와 동시에 스테레오타입을 겨냥한 반항심처럼 보이기도 한다. 디트로이트. 몰락한 공업 도시처럼 군데군데 드러난 공허함은 대외적 이미지에서 비롯된 냉소적인 태도가 조금 배어있다.


그런 전체적인 아우라를 깔아둔 채, Jay Dee는 진정 잘하고 즐기는 샘플링 퍼포먼스로 앨범을 지배한다. Ohio Players를 필두로 한 70-80년대 Funk 아티스트를 적재적소에 투입하며 특유의 따스하고 몽글몽글한 분위기를 이끈다. 공간감이 깃드는 신디사이저 선택과 최소한의 건반 및 베이스 활용 역시 곳곳에서 등장하며, 트랙 간 퀀타이징 등의 잔기술로 여백을 촘촘히 덧붙이면 최소한의 구성으로 튼튼한 골격을 갖춰낸다. 감상이 결여되지 않는 선에서 의도적으로 단촐하게 구성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이건 디스토피아 SF 판타지가 아닌, 고향으로 이끄는 초대장이니 말이다.


물론 Jay Dee는 그런 이야기로 앨범을 꾹 채울 마음이 없다. 동경하고 사랑하는 브라질과 아프리카 이야기도 물론이고, Kraftwerk도 당연하고, 시덥잖은 이성과의 이야기나 동료들과의 끈끈함을 다지며 랩과 함께하는 모든 시간으로 여유를 부린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는 정해진 적 없고, Elzhi와 Frank-N-Dank 그리고 Phat Kat을 비롯한 래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앨범엔 어느 힙합에서나 볼 법한 자기과시 형태의 가사들이 잔뜩인데, 다소 무의미한 가사를 감상할 때면 내용을 해석하는 대신 녹음을 진행하는 현장의 장면을 상상한다. Jay Dee의 비트 시연과 잔뜩 들뜬 래퍼들 그들이 어우러진 녹음 부스의 즐거운 분위기. 그들의 랩에 주제가 없는 편이 어울렸다. 나도 내 초대장에 적을 문구를 정해본 적 없으니까.


프로듀싱 기술도 제쳐두고, 샘플링 출처도 제쳐두고, 그저 단순히 들여다본다. 세계 곳곳의 레코드샵에서 재료를 긁어와 머릿속 동력 기관에 굴려넣는 그 창작 회로. 원리를 파악해 설명하기보다 결과물을 받아들이는 편이 더 수월해보인다. 감상엔 프로듀싱 강의나 화성학이 쓰이지 않는다. Jay Dee가 남긴 마무리 인사처럼 그저 계속, 그리고 또 계속 느끼고 함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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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라는 이름으로 아메리카 땅에 착륙한 아프리칸 소울들의 집합체 <Donuts>. <Welcome 2 Detroit>의 감상이 그 이후라면 공허하고 날카로운 분위기에 어딘가 설익고 어정쩡한 면을 느낄지 모른다. 대신 그 어색함에 비판적이기보다 이유 모를 간지러움에 이끌리는 모습이 더 가까우리라 믿는다. 두 작품은 전혀 다른 언어를 구사하지만 어렴풋이 그리는 이미지는 서로 충돌한다. 빗대어 표현하자면 <Donuts>가 영혼이고, <Welcome 2 Detroit>는 정신과도 같다. 결론은 마지막 트랙 "One"으로 설명하고 싶다.


줄글의 마침표가 곧 용의 눈알을 찍는 순서라면, 예술작품의 수미상관이 그렇듯 모든 첫머리와 끝머리가 서로 얼마나 닮았는지는 중요한 요소다. <Donuts>의 정체성이 그렇듯 <Welcome 2 Detroit>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Welcome 2 Detroit"와 "Y'all Ain't Ready"의 Jay Dee는 비장한 선전포고 따위에 관심이 없다. 꾹꾹 삼키는 랩은 즐거운 무언가의 시작을 견디지 못하는 태도와 더 닮아있다. 기조는 점진적으로 해소되다가, 끝마무리에서 "One"이라는 인삿말로 만개한다.


"One"은 제일 마지막에 배치되었고, 단순한 랩 트랙과 한참 멀리 있지만, 어찌 보면 앨범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담은 트랙으로 간주할만하다. 내용은 단순하게도, 사랑하고 아끼는 아티스트들을 나열하고 이름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기며 마무리한다.


어쩌면 "One"이야말로 진정 선전포고와 같은, 후일담으로 남긴 삶의 모든 이야기들에 제일 앞서는 Jay Dee의 정신이다. 그의 감사인사엔 수많은 존경과 귀감이 실려있고, 그들의 기대와 유산에 부합하여 힙합에 역사를 새로 쓸 아티스트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까지도 담겨 있다. 말 없이 그저 목소리와 악기만으로 감정과 마음을 전하는 "Welcome To The Show"의 엔딩과 제법 닮았다. 그저 느끼는 시간들이 남았다. Jay Dee가 남긴 마무리 인사처럼 그저 계속, 그리고 또 계속 느끼고 함께할 뿐이다.



'Come around, ****'

'Uh, we keep it on and, on and on and'


Jay Dee -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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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13시간 전

    디트로이트에 온걸 환영한다네 젊은이여

  • 13시간 전

    donuts에 관한 내용 너무 공감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 예리글쓴이
    13시간 전
    @HipHaHa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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