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죠.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k pop이나 jpop 혹은 특정 장르에 한정하지 않는, 적어도 1950-2025년의 광범위한 대중음악)
만약 칸예의 음악을 듣고 (1-10집) 그것이 좋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저는 그 사람이 대중음악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이 없다고 봐요.
과격하죠?
최근에 음악을 그래도 많이 좋아하시는, 나름의 깊이도 있고, 악기도 배우시는 , 그러니까 리스너로 치면
나름 구력이 있는 분이신데, 칸예의 '음악'에 대한 의견을 물으니, 몇곡 빼고는 한번도 좋다고 느낀 적이 없다 고 하시더군요.
저는 속으로 '아 이 분은 그냥 여기까지구나' 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예전에 류이치 사카모토를 사카모토 류이치라고 안 부른다고 따지던 분이라서 이미 포기한 분)
제가 칸예의 과격한 팬이라서 '우리 xx를 지지하지 않다니 넌 무지하다' 라는 흑백논리 식의 입장을 주장하는 게 아니예요.
그렇다고 간편한 상대주의로 '다 취향인데 그럴 수 있지' 로 귀결시키는 유아적인 논리로 도피하고 싶은 마음도 없구요.
칸예의 음악은 최소한 블랙 뮤직(블루스, 소울, 훵크, 알앤비를 기원으로 하는 60년 이상의 역사)의 장르적 문법을
힙합이란 도구를 통해 확장함과 동시에 그것을 가장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안내한 히스토릭한 인물이라고 봐요.
비틀즈보다 롤링 스톤즈를 더 좋아할 수 있죠. 그건 취향의 문제이지요.
하지만 비틀즈의 대중음악의 영향력과 음악성은 그냥 롤링 스톤즈가 견줄 수 없을만큼 넓고 깊습니다.
마찬가지로 칸예의 음악은 취향과 호오의 영역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그의 음악이 21세기 대중음악 판에 보여준 영향력과 확장성과 대중성은 그냥
취향의 영역을 떠났다고 보고, 작금의 대중음악을 듣는다는 사람이 칸예의 음악이 얼마나 대단한건지
공감하지 못한다면 저는 그냥 대중음악에 대한 이해가 없는 거라고 생각하는거죠.
여전히 과격하죠?
바흐와 드뷔시 중에,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중에 더 선호하는 장르가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바흐가 드뷔시보다 몇백배는 위대하고 낭만주의보다 고전주의가 더 중요한 전환이라는 걸
모른다는 건 , 단지 아이가 짜장과 짬뽕을 좋아하냐의 구분이 아니잖아요.
그만큼 칸예의 음악은 힙합이란 장르에서 특정한 계층의 매니악한 음악을
대중음악의 메이저한 장소로 옮겨와 그것을 안착시키고, 특정 '개인'의 세계관과 입장이
'대중음악'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대단한 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이 길어질 것 같으니 줄이겠지만, 몇몇 싱어송라이팅 음악을 제외하고
항상 대중음악은 작금의 케이팝 음악처럼 '회사가 내놓는 상품' 같은 거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칸예 같은 뮤지션 덕분에 대중적인 힙합 음악에서 어떤 한 사람의 고통과 세계와 슬픔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이 힙합이라는 매니악한 장르 밖을 훌쩍 넘어섰다는 건
칸예가 나치를 지지하고 총질을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이건 취향의 영역이 아닌 그냥 역사의 영역 아닐까요?
저는 칸예의 팬이 아닙니다. 그냥 이게 사실이라고 생각할 뿐이죠.
좋다고 느끼는거랑 대단하다고 느끼는건 전혀 다르지 않나요
힙합으로 한정하면 없긴함
힙합도 아니고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특정하면 칸예에 흥미 못느끼는 사람 많아요. 일단 칸예 음악이 대중성이 넘치는 것도 아니고 힙합이란 장르 자체 역시 전세계가 열광하는 컬쳐도 아님. 지극히 편협한 시선 같은데; 너바나 라디오헤드도 이렇겐 안빨릴듯
타장르팬들은 그 계열에서 선구자적인 업적을 쌓은 뮤지션이어도 본인 기호에 따라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독 힙합만 칸예 관심 없으면 음알못 <- 이런 프레임 짜는 게 당황스러움
좋다고 느끼는거랑 대단하다고 느끼는건 전혀 다르지 않나요
무슨 말씀이실까요? 저도 마찬가지로, 기호(호오-좋다 나쁘다)와 우위 (더 가치 있다 판단하는 것)은 다르다는 점이고, 칸예의 음악은 기호를 떠나 대중음악에서 더 우위있다(가치있다)는 점을 강조한 글이네요. 근데 요즘은 (물론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자신의 기호(좋다 나쁘다)를 마치 우위와 동일하게 두거나 (ex- 칸예의 음악은 별로야 = 칸예의 음악은 대단하지 않아) 아니면 모든 것은 기호일 뿐(모든 게 다 취향인데, 그 우위가 어디있어?) 으로 기우는 경우가 많아서 그걸 짚은 글이네요.
근데 처음 말씀하신 "그것이 좋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저는 그 사람이 대중음악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이 없다고 봐요. " 는 순전히 기호의 영역 아닌가요
말씀처럼 그 부분에서 오해의 여지가 있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저 문장에서 '가치있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이해와 감수성이 없다고 봅니다. '좋다고 느낀다'는 부분이 오독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빠는글엔 까는글이 생기는법 그냥 이런글엔 답글안다는게 쿨함 본문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할 말이 없어지네
감상 -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느낀 바를 공유함 / 비평 - 감상적 근거를 통해 작품의 가치를 주장함 -> 이 두가지가 구분 되어야 하는데, 요즘 대화를 나누다보면, 이 두가지가 혼돈되는 것 같아요. 경험적 감상에 있어 별로일 수 있으나, 비평적 가치가 있다는 것은 사실 사고와 배움과 논의의 영역이라, 칸예가 요즘 정신적으로 위태로워지면서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평가절하 되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에 적어보는 글입니다.
대중음악에 대한 감수성도, 결국 청자가 자라온 문화권에 기인하는 거 같은데
칸예가 하는 흑인음악이랑 정반대의 영토에서 태어난 사람이
칸예 음악 좀 이해 못한다고 감수성이 없을거까지야.
그냥 별로면 별로인거지. 음악이라는 주관적 영역에서, 피곤하게 정의까지 해야하나 싶음.
음악 듣는 게 고고하고 위대한 취미도 아니구요..
싸우려는 의도보다는 음악 자체를 지적 허영심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보입니다.
세상엔 음악보다 중요한 일이 너무나 많음 ㅋㅋ;
말씀하신 다른 문화권이란 말이 너무나 무색한 상황이 지난 5년 아닐까요? 켄드릭의 슈퍼볼 공연만큼 '다분히 미국적인 음악과 공연'이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논의되고 그것에 대한 콘텐츠가 몇십만회의 조회수를 찍는 시대에 '다른 문화권이니까' 로 한정짓는 건 조금 과거의 사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대중음악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 말은 달라지겠지만요) 제가 댓글에도 적었지만, '다 주관적인거니까' 로 상대적으로 던지면 모든 대화가 사실 무의미하죠. 뭐가 좋다 나쁘다고 글을 쓸 이유도 없구요. 음악을 음악으로 소비하지 않고 문화적인 '무언가'로 이해한다면 음악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 될 수 도 있죠.
뭐 본인은 칸예 졸라 위대한 음악가라고 생각하고, 여전히 제 마음속의 GOAT입니다.
근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시공간의 제약이 줄어들었다고 그 사람이 속한 문화의 뿌리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냐는 거에요.
켄드릭의 공연이 넷상에서 화제가 되고, 엄청난 호응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될 수 있는 케이스일까요?
저는 시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다른 문화권의 영향을 받는 상황 아래에서 그것에 자연스레 공감할 수 있는 시대의 우연한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문화적 감수성이라는 것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특정 장르의 특정 포인트에서 희열을 느끼게 만드는 유전적 기제가 명확하지 않은 한, 음악이라는 영역에서 절대적인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칸예를 위대하게 평가하는 것도 결국, 시대의 우연한 산물일 뿐이에요.
특정한 문화를 이룬 인류가, 갖가지의 소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칸예를 위대하게 인정하는 것 뿐이지.
우리의 문화권과 동떨어진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일 수 있습니다.
문화의 맥락 없이는 모든 음악가는 소음쟁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사의 인과가 명확하지 않은 현세에서, 특정 음악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행위는
그저 자신의 믿음이 우월하다고 믿고 싶은, 본능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 눈엔, 글의 몇가지 포인트에서 작성자님이 칸예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소양을 뽐내려는, 혹은 타자와의 비교에서 우월함을 느끼려는 수단처럼 느껴져서 적어봤습니다.
제 마음속에서 칸예가 GOAT지만, 누군가가 칸예가 별로라고 해서 저는 그 사람이 문화적 공감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막말로 저도 웨싸건, 마크호미 딱히 안좋아합니다. 그저 해당 음악에 희열을 느끼는 기제가 혹은 해당 문화를 이해할 백그라운드가, 우연하게 부족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를 복제한 인간도, 확률론적 결과에 의해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 생각도, 우연한 저라는 존재가 내뱉은 생각이라고 믿고요. 저는 다른 사람과는 절대적으로 일치할 수 없는 간극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롤하면서 적어서 맥락이 좀 중구난방일 수 있습니다.. 이해점;
이해가 잘 안되네요. 제가 말하는 것은 ye의 음악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절대적이다 라는 믿음을 선언하는 글이 아니라, 근거(대중음악 장르의 확장, 마이너한 장르의 메이저한 이행)을 들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글의 논거를 보지 않고 '주장'만 가져와서 거창한 말씀을 하시면 할말이 없습니다. 롤 열심히 하십쇼.
님의 의견에 오목조목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님이 대표적으로 하신 주장에 반대되는 저의 생각을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다만, 저는 님의 주장을 피상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결국 님이 말씀하신 칸예의 음악이 위대한 이유를 설명한다해도, 명제에 대한 판단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라고 설명한 게 원댓의 내용입니다.
저는 생각이 다른 사람을 납득시키는 걸 좋아하지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적으며, 그에 대한 반응 혹은 의견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칸예에 대한 다소 과격한 주장을 납득시키고 싶으신 거라면, 반대 주장이 마땅하지 않은 이유를 풀어쓰시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저는 님의 의견 다수를 존중하고 싶지만, 상대주의적 관점이 어째서 유아적인 것으로 치부되는지는 이해할 수 없네요.
생각의 차이는 정당화될 수 없나요?
제가 다른 댓글에 '감상'과 '비평'을 구분하며, 느끼는 것을 공유하는 감상과 작품의 가치를 근거를 들어 주장하는 비평의 차이를 적었습니다. 제가 대학 4년 동안 지겹도록 배운 것이 있습니다. 작품에 대해 '각자의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알아서 생각하세요' 라고 한다면 굳이 한 강의실에 모여 4년 동안 같은 걸 배울 이유가 없다고. 저의 주장은 매우 간단합니다. 칸예의 음악적 성과는 '개인의 취향과 호오'를 넘어 대중음악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문화적 맥락이 다 다르니 다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라고 하면, 그냥 위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다 의미없는 이야기가 되버리는 겁니다. (예술분야의 무수한 비평적 논쟁은 몇백권으로 책으로 남아있죠..) 이걸 굳이 더는 자세히 설명하기엔 글이 길어지겠네요. 생각의 차이라고 하시죠.~
칸예보다 디스코그래피 좋은사람 누구있음 (진짜 궁금) 추천좀
Unwound
보위
너무 많아서
힙합으로 한정하면 없긴함
힙합 한정으로 하면 별로 떠오르진 않는데 mf doom?
MF DOOM 도 결국 언더임
본문 상관 없이 댓글에 대한 답이라면 디스코그래피 좋은 사람은 둠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칸예와 비슷한 레벨로 대중음악에서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한 뮤지션이라면 , 밥딜런(포트-락-대중음악의 가사), 비틀즈, 데이빗 보위, 프린스, MJ, 류이치 사카모토, 마일즈 데이비스 등이 있겠네요. 최소 10년 이상 음악을 하고, 최소 10장 이상의 음악을 내놓고 고르게 역사적인 비평적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를 한정한다면 말이죠. (물론 류이치와 MJ 는 제 개인 적 가치 판단이 들어가 있긴 합니다)
라디오헤드
프랭크 자파
제이딜라
블랙 미디
블컨뉴로
GYBE
수프얀 스티븐스
라디오헤드
토킹 헤즈
브라이언 이노
포티셰드
에이펙스 트윈
엘리엇 스미스
아서 러셀
다프트 펑크
더 큐어
비요크
소닉 유스
핑크 플로이드
킹 크림슨
데이빗 보위
제가 생각하는 칸예의 쩌는 업적은 기존의 90년대 힙합 비트와 00년 칸예 이후의 비트 에서 , 기존의 골든 에라 힙합 비트가 그냥 '힙합의 비트'였다면, 칸예 이후에 샘플링 작법이 대중화되면서 기존에 흑인 음악의 유산들(소울 알앤비)이 다시 재해석되고 재발굴되며 확장될 수 있다는 ' 그 현대화'가 가장 쩌는 업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법 자체의 혁신적인 측면에선 영향력이 대단한 아티스트인데
동시대 아티스트건 예전 아티스트건 유명하지 않은 아티스트들 이건 좋은 아티스트가 넘 많아서 칸예 음악 자체의 전체적인 사운드나 음악적 진행이 앨범마다 그 안에서 곡끼리도 좀 들쭉날쭉 한다고 생각해서 솔직히 막 압도적인 천재 음악가라는 생각은 말씀해주신 류이치 사카모토 같은 음악인들이 더 가까운 단어라고 생각해요
칸예는 시대에 맞는 굉장한 센스를 가진 음악가 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요즘 평가야 요즘 앨범이 별로였으니 그러려니 하는데 오히려 저는 이때까지의 평가가 무슨 칸예가 음악의신 처럼 묘사 되왔던게 더 이해가 안가긴 했어요 2000년대 이전부터도 칸예보다 좋은 사운드는 꽤나 많았다고 생각해요
류이치 사카모토의 경우는 '대중음악'보다 '현대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대중음악의 어프로치를 가져가는 경우보다는 클래식이나 진보적인 전자음악의 어법이 더 강했지요) 칸예와는 결이 많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요. 다만 매니악한 힙합 음악에서 '이 정도의 확장'과 기존의 전통을 이정도로 해체하고 확장하고 조립할 줄 아는 음악의 '재해석'의 부분에 있어서는 21세기에 칸예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많은 대중들에게 납득시킨 게 무시무시하다고 보는 입장이라 (대부분 그런 천재 뮤지션들의 음악은 '대중적'이지 못하죠)
대중적이지 못하기엔 류이치 사카모토의 많은 음악들이 너무 유명해서 .. 히사이시 조나 퀸시존스 같은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고 꼭 어려운 음악을 한다고 해서 대중들에게 어필되지 않는건 아닙니다 당장 켄드릭라마의 tpab 의 전체적인 프로듀싱을 했던 테라스마틴 같은 재즈 성향이 강한 아티스트도 대중적인 음악을 얼마든지 만들면서도 본인 앨범에선 매니악한 부분을 가진 음악들을 만들어내기도 하고요
류이치의 대중적인 음악들(영화음악과 그 음악에 기반한 클래식 편곡들, 뉴에이지곡)은 그의 커리어의 2할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50대 대중적인 행보(커먼스 레이블 설립)을 염두에 두고 만든 앨범 (1996 bttb 외에 대중들에게 알려진 작업들이 많지 않다고 보구요.) 당장 그의 말년의 대표작 (async) 나 알보노토와 함께한 엠비언트 앨범들은 전혀 대중적이라고 할 수 없죠. 보통 말씀하신 뮤지션들의 경우 대중적인 유명세를 얻는 트랙과 그렇지 않은 자기만의 실험적인 트랙 을 나누어서 가져가는 경우가 많은데 (말씀하신 테라스 마틴처럼) -커리어에서 분기점으로 나누어지거나- 자신이 속해있는 장르의 범주 안에서 '해체의 어법'을 가져가면서 동시에 대중적인 인정을 동시에 받은 뮤지션이 누가 있는지 살펴보면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라디오헤드 정도가 되겠지요. 마일즈 데이비스의 퓨전 재즈, 프리재즈나 역사적으로 드문 케이스죠. 대중음악의 후기로 갈수록 그게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칸예의 특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칸예가 하는 음악이 그정도로 실험적인 면모를 가진 음악이 일단 아니라고 생각하고 류이치의 초창기 ymo 커리어와 다양한 시티팝 음악들에 참여한 이력을 생각하면 절대적인 시간으로 보면 비중이 적지는 않죠 류이치가 너무 오래 음악을 했을 뿐
칸예가 거의 처음으로 시도한 앞서나간 음악을 한 것에는 의심이 없지만 그 음악의 완성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의 음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칸예 이전에도 어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제이딜라 mf doom 매들립 organized konfusion 등등 힙합 음악에서 규격외의 실험적인 느낌과 퀄리티를 가져온 아티스트들은 많았으니까여
칸예는 걔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된 뮤지션일 뿐이라고 생각 합니다 모두의 공감을 가장 많이
이끌어 낸 뮤지션인거죠 물론 실력은 당연히 뛰어난 아티스트고여 다만 희대의 천재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음악이란 카테고리(POP) 에서 대중을 떼고 장르 내부로 들어가면 말씀하시는 부분들을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제가 계속 짚고 있는 점은 그런 실험과 혁신과 장르적 확장이 대중적으로 소급될 수 있는가? 라고 물었을 때 열거하신 음악들은 장르 내부 에서의 혁신과 실험일 뿐 그것이 대중적인 인정과 확장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저는 프랭크 자파나 탐웨이츠 같은 뮤지션이 존레논 폴매카트니보다 훨씬 천재적인 뮤지션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무엇이 천재인가'가 논지가 아닌만큼, '장르적 혁신으로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영향력에 있어서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참고로 류이치의 초창기 커리어의 대중적인 소급성은 기존의 팝음악에 대한 이해가 높은 나머지 멤버(호소노 등)의 어프로치가 크다고 봅니다. 류이치가 ymo 에 염증을 느껴 만든 b-unit 만 들어도, 그의 초기 자사전을 보아도, 그는 대중적인 음악보다는 클래식 음악 , 현대 음악에 대한 기호와 이해가 높은 사람이었고 대중적인 명성이 해외에서의 인정과 명성에 소급적용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비중에 대한 이해는 사람마다 다른거겠지만요.
류이치의 시티팝 편곡들을 보면 대중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편은 아니긴 했지만 ymo 자체의 성향은 분명 말씀주신대로 호소노의 센스가 많이 들어갔을 수는 있겄네여
칸예의 설득력은 진짜 대단하다 생각해요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훌륭한 아티스트인건 사실이죠
칸예 디스코 억까는 예가 젤 많이 함
5집 억까 미침 예련
말로도 억까하지만 후에 똥을 많이 싸서 평균을 낮춤ㄷㄷ
저는 그정도 긴 시간 동안 계속 혁신과 변화를 추구한 사람이 미치지 않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어느정도 성공과 인정을 얻으면 거기에 눌러 앉아 동어반복을 하거나, 요절하거나, 병드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예는 그냥 병들었을 뿐이지요....
카프카 라는 소설가가 있는데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모든 작품을 태워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 건 그대로 발표되어 천재의 작품으로 남았죠. 자기 작품에 대해 시간이 지나 평가가 달라지는 건 흔한 케이스 같아요. 저는 예가 차라리 이렇게 대중적이고 유명하지 않은 노선 가령 딱 jpeg 마피아 정도의 노선을 타는 사람이면 어땠을까 란 생각을 해봅니다...
자기 취향-생각에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무섭다
라는 제목의 글을 몇달 전에 쓰셨군요.
ㅋㅋ
읽어보셨나요 ? "나중에 새로운 경험이나 그 신념과 입장에 반하는 걸 접하면 어느정도 자기 생각을 수정하거나 입장을 돌아보는 것이 보통 성장의 방향인데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이렇게 적었죠. 저에게 칸예의 음악이 새로운 경험이고 그걸 받아들인 케이스 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투팍 음악을 올해의 신보로 듣던 세대입니다....
약간은 과격한거같지만 동감합니다
Who they waitin' on? That's Pablo
힙합도 아니고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특정하면 칸예에 흥미 못느끼는 사람 많아요. 일단 칸예 음악이 대중성이 넘치는 것도 아니고 힙합이란 장르 자체 역시 전세계가 열광하는 컬쳐도 아님. 지극히 편협한 시선 같은데; 너바나 라디오헤드도 이렇겐 안빨릴듯
타장르팬들은 그 계열에서 선구자적인 업적을 쌓은 뮤지션이어도 본인 기호에 따라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독 힙합만 칸예 관심 없으면 음알못 <- 이런 프레임 짜는 게 당황스러움
말씀처럼 힙합이란 장르가 전세계가 열광하는 컬쳐가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21세기 들어 백인 음악이 주류였던 그래미 시상식의 주요 시상을 흑인음악, 힙합음악이 차지하기 시작한 시점이 칸예 1집 발매 이후 아니었나요? (로린힐이 올해의 앨범을 받는 것이 90년대 후반이었죠) 지금은 가장 관심도 가 높은 주요 공연(슈퍼볼쇼)를 제이지가 주관하고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한 곡도 힙합이 차지한 시기가 그렇게 길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말씀처럼 예가 지나치게 '고평가'되며 음악의 천재, 말씀처럼 음알못이라는 프레임으로 밈처럼 이용되다 시피 하다보니 저의 주장도 그렇게 이해되는 것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흑음의 그래미 주요시상이 칸예 1집 이후라는 건 지극히 칸의식과잉입니다. 오히려 그 전 시대에 흑음이 앨범상도 받고 선전했죠 칸예 1집 이후로 앨범상 받은 래퍼가 없는데.. 칸예조차도 메인카테고리 수상 이력 X
말씀하신 부분을 보고 혹시 몰라 1980년대부터 올해의 앨범상에 노미된 앨범 목록을 다시 한번 보고 왔습니다. 그 이전에 퀸시 존스를 비롯해 흑인 음악이 올해의 앨범상에 노미되거나 수상한 경우야 당연히 있었죠. 하지만 제가 말하는 '매니악한 장르 음악'에서 대중적인 인정과 배급에 있어 칸예의 역할이 크다고 말하는 겁니다. 99년 로린 힐의 수상이 그래서 의미있고 애플뮤직 탑 순위에 '논란의(?) 1위'를 하며 그 의미가 크게 여겨지는 것이구요. 그 로린힐 1집을 듣고 자란 칸예가 그 앨범을 반복해서 들으며 자신의 1집을 만든 과정을 보면, 힙합음악 갱스터와 서부와 동부 등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기에 너무나 무리였던 그 장르 음악(그래서 칸예도 1집을 내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던 거겠죠 그는 갱이 아닌 중산층 출신의 프로듀서였으니까요) 의 대중음악의 범주를 넓혀 이정도까지 대중적인 인정과 음악적인 혁신을 동시에 해낸 케이스가 드물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의 수상 및 노미네이트가 의미있다고 보는 입장이지요. 칸의식 과잉 이라는 표현은 웃기긴 하네요.
너바나 라디오헤드도 이렇겐 안빨릴듯 <- 40년 전에 끝난 밴드와, 활동한지 30년 된 노장 밴드와 현재진행형의 사고뭉치 뮤지션의 화제성이 다른 건 어쩔 수가 없겠죠.
칸예 훌륭한 아티스트 맞습니다
근데 드뷔시는 갑자기 왜 내려치시는지... 말씀하시는 위대함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드뷔시 아라베스크나 달빛만 듣고 오셔서 예시로 드시는건 아닌거죠?
바흐와 드뷔시 중에 바흐가 몇백배는 위대하다는 게 '내려치는' 것으로 들리신다면 오해이십니다. 류이치 사카모토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드뷔시를 안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데무스의 연주를 좋아하구요. 굳이 '테스트기'를 꺼내실 필요가 있는지...
참고로 솔직히 클래식 작곡가 중에 바흐 라는 이름 앞에 '내려치지' 않아지는 사람이 있는지요. 클래식만큼 음악가의 서열이 명확한 케이스가 드문 분야가 있는지요.
제가 오해한 것 같네요 데무스 좋죠. 근데 대화가 성립될 것 같진 않습니다.. 음악가의 서열을 왜 매기는지 모르겠는게 우선이고, 클래식만큼 굳이 서열을 매기기 까다로운 분야도 없다고 일단 말씀드릴게요. 말씀하시는 '위대함'이 뭔지를 모르겠는게 큽니다. 그리고 제 기준에는 드뷔시가 더 위대한 작곡가라서요. 아무튼 쓰신 글에서 예시로 들기에 적절하다는 느낌은 여전히 없긴 합니다
콩쿠르로 서열을 두며, 1,2,3등을 나누고 상을 부여하며 무엇이 더 나은 연주인가. 나은 음악인가를 논하는 것이 클래식 분야에 뿌리깊은 문화라 든 예시일 뿐, 올려치거나 내려칠 의도는 없습니다.
아 그리고 바흐 드뷔시를 저울질 하고자 말씀드린게 아니고 적절한 예시인지가 참 아리까리해서 굳이 찝어서 말씀드린거라.. 아무튼 주장하시는 바에 힘을 싣기는 커녕 더 고꾸라지는 느낌입니다
처음엔 지인이 칸예를 좋다고 느끼지 못했다고 뭐라 하더니 갑자기 중간부터는 호불호의 영역을 넘어~~~ 칸예의 위대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게 뭔소리세요; 님 지인은 그냥 칸예가 몇곡 빼곤 취향이 아니라고 말했을 뿐이고 그걸 그렇게 받을 필요는 없으신 거임. 위대함을 인정 못하고 칸예의 영향력을 부정하고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취향이 아닌거
제가 그 지인에게 직접 들은 사람인데, 왜 그 분을 대변하시는지. '취향이 아니라'고 했다면 굳이 이 글에 언급하지 않았겠죠. 워딩 그대로 '대단한지 모르겠다' 는 입장이었습니다. 댓글로도 계속 '취향이 아닌 것'과 '그 가치가 있다 없다'는 다른 것이라고 말씀드린 것 같은데...
첫줄보고쭉내렷다
현명하십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좋아하고 안좋아하고는 그 사람의 자유로운 가치판단의 영역이지 음악사적 영향력 들먹이면서 강제화할수있는게 아니죠.
애초에 정말 모두가 좋아할 음악을 만들수있을까요?
그런 절대적인 음악이 존재할까요?
저는 그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건 그 음악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일이죠.
그리고 모두가 좋아해야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두가 절대적인 가치판단으로 음악의 호불호를 따졌으면 취향이라는 단어가 탄생했겠습니까?
만약에 님 말대로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칸예의 음악을 칭송하고 물고빨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 아닐까요?
그리고 음악에서 취향이라는 영역이 가장 거대하지 않나요? 이걸 왜 단순히 유아적인 논리로 치부하는지 모르겠네요. 님도 경로당가면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트로트나 임영웅같은거 칸예보다는 안좋아할거잖아요? 근데 님이 아무리 열변을 토하고 전도하고 해봐야 나이많으신분들은 임영웅을 더 좋아할겁니다.
이건 별개의 글을 따로 써야 하는 주제이겠지만, '무언가에 대한 기호는 어떤 한 사람의 자유로운 가치판단'이라는 말은 과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제가 문화사회학을 전공한 사람이기 때문이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문화는 어떤 세대, 어떤 국가, 소속 집단의 공유하는 심미성의 집합이고 우리는 그 문화와 집단에 속해서 교육받고 성장한다는 점에서 '모두가 다 다른 가치판단을 한다'는 개인적 입장은 과격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모두가 다 다른 가치판단을 하는 '개인의 사회'라면, 빌보드 탑백이나 그래미 수상이나 의미없는 거겠지요. 왜냐하면 그 둘 모두 '집단과 문화의 합의'에서 나오는 지향이니까요. 말씀처럼 모두가 좋아할만한 음악은 만들 수 야 없겠죠. 하지만 왜 '팝'음악의 pop 이란 단어가 '대중'에서 나왔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절대적인 가치판단으로 음악의 호불호를 따질 수 없겠지만, 우리는 사회 문화에 속한 대중의 한 사람으로 '집단의 가치판단'에 영향을 받지요. 음종과 여기서 언급되는 대부분의 많은 음악도 '개인의 선호'의 집합으로 유명해진 뮤지션도 있겠지만, 대부분 영미권 차트와 비평의 '인정'을 받은 사람의 '사회적인 명성'이 우리에게도 전해져 그것을 접하고 듣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즉 개인의 고유한 가치판단과 기호를 통해서 어떤 음악을 접하고 좋아하게 된다기 보다, 사회적인 인정과 명성이 끼치는 영향을 오직'개인의 가치판단'의 독립변수라고 여길수만은 없기 때문에 이런 음악적 인정에 대한 합의의 논의가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나중에 다시 정성을 들여 글을 쓰겠지만. 저는 칸예보다 '취향'이라는 말이 엄청 과대평가, 과하게 사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들이 각자 취향을 가지고 자기 세계와 기호를 갖게 된 역사는 인류의 역사에서 100년도 되지 않다고 봅니다.
" 만약 칸예의 음악을 듣고 (1-10집) 그것이 좋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저는 그 사람이 대중음악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이 없다고 봐요. "
" '다 취향인데 그럴 수 있지' 로 귀결시키는 유아적인 논리로 도피하고 싶은 마음도 없구요 "
??윗 분 댓처럼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게 취향인데 이걸 왜 도피라고 생각하는건지 모르겠네요
다음에는 좀 더 정성들여 짚어주신 '취향'에 대해 다시 한번 글을 써보겠습니다. 일단 짧은 의견은 위의 댓글을 참고해주세요.
이 글은 취향은 무시되어야 하는게 아니라 취향은 어느정도 인정하지만서도 그보다 음악 자체의 영향력, 예술성에 대한 더 많은 인정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글이라고 느껴졌는데,,
저도 음악에 대한 논쟁에 있어서 취향이라는 표현을 논박에 대한 방패로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에 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정확하십니다.
칸예 별로 못 느끼는게 내가 부족해서였군
클래식 애호가라면 당연하게도 언급하신 바흐의 위대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없을겁니다. 다만, 바흐의 음악을 클래식 애호가라고 모두 선호하지는 않겠죠. 저 또한 낭만주의 인상주의 작곡가들을 바흐보다 선호하고요. 말씀하고자 하는 내용은 어느 정도 파악했다만은 좋다고 느끼는거랑 대단하다는 것을 아는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과격하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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