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스트랙 힙합(Abstract Hip Hop)은 언제나 장르의 가장자리를 걷는다. 그것은 이름부터가 아이러니하다. '추상'이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어떤 감각적 경험을 제거한 후 남는 개념을 뜻하지만, 이 장르의 음악은 오히려 감각적으로 과잉되어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명확한 의미 전달이나 구조적 기승전결을 일부러 비껴가며 청각과 정서의 미세한 울림에 집중하는 힙합이다. 서사라기보단 질감이고, 메세지라기보단 잔향이다.
이 장르의 매력은 일차적으로는 그 '해석되지 않음'에 있다. 너무 빠르게 의미를 요구하지도 않고, 트랙의 구조 안에서 완결된 논리를 전개하려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파편화된 언어와 느슨하게 얽힌 리듬, 다층적인 샘플링을 통해 청자가 조립해 나가야 할 감각의 조각들을 던져놓는다. 하나의 트랙은 보통 래퍼의 자전적 서사나 사회적 메세제를 똑부러지게 전달하기보다는, 모호한 이미지들과 언어의 단편들, 때로는 비논리적인 흐름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 정확히 붙잡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특히 앱스트랙 힙합에서 랩은 명확한 소통의 수단이 아니다. 낭독처럼 들릴 때도 있고, 반쯤 졸린 혼잣말 같기도 하며, 때로는 리듬을 무시하고 사운드 위로 미끄러져간다. 랩이 박자를 타는 게 아니라. 박자가 랩의 호흡을 따라감. MIKE, Earl Sweatshirt, billy woods, Moor Mother 같은 이들은 랩을 통해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어떤 공기를 만들어냈는가'를 중시한다. 이 랩들은 누군가에게는 두서없이 흘러가는 문장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흐릿함 속에서 오히려 정서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다. 말이 선명하지 않기에, 감정은 더욱 정직하게 전달된다.
사운드 측면에서도 앱스트랙 힙합은 전통적인 힙합의 체계적 문법에서 거리를 둔다. 샘플은 복고적 향수에 기대기보다, 낡고 삐걱거리며 어딘가 결핍된 질감으로 재구성된다. 때로는 기계음처럼, 때로는 필름 위 먼지처럼 존재하는 소리들. 재즈와 소울 샘플을 쓰더라도 감미롭거나 향기로운 방식이 아니라,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침잠한 소리로 호출된다. 드럼은 고의적으로 어긋나거나, 아예 빠져 있기도 하며, 공간감은 때때로 비좁고 답답하게 조정된다. 이런 음향적 선택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망가진 것처럼 들리지만,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현실의 복잡한 감정선과 훨씬 더 가까이 맞닿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추상이라는 이름처럼, 이 장르는 어떤 구체적 현실을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솔직한 감정의 풍경을 그려낸다. 삶의 불안정한 리듬, 말로 하기엔 복잡한 내면의 파편, 어느 날 문득 느껴지는 세상의 낯섦 같은 것들이 이 장르에서 조용히 피어난다. 그건 누군가에게는 외면당한 비주류 음악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설명 없이도 이해된다고 느껴지는 거의 유일한 음악일 수 있다.
앱스트랙 힙합의 가장 큰 매력은 그래서 청자가 능동적으로 경험해야 한다는 데 있다. 완성된 메세지를 소비하는 대신, 그 안에 들어가 헤매고, 멈춰 서고, 반복하며 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정확히 어디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음악의 흐릿한 윤곽이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음악은 하나의 구체적 장소가 된다. 누군가는 그것을 몽환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트라우마의 잔향이라 말하고, 또 누군가는 그냥 조용히 감정이 풀려나가는 공간이라 말할 것이다.
그 모두가 맞는 말이다. 앱스트랙 힙합은 본래 정답을 만들지 않는다. 정답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훨씬 더 많은 진실이 이 안에 머물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 썼던 글 재탕입니다.
인문학을 운율로 해방한 느낌
아 너무 좋네요 앱스트랙은 아직 어렵지만 어떤 점이 매력인지 확실히 와닿았습니다 감사해용
와 가입하자마자 외게 정상화 시키시네 ㄷㄷ
낯설지만 익숙한 홀아비 냄새 같은 장르..
다른 과시적인 가사가 아니라 진솔하고 철학적이여서 가사를 뜯어보는 맛이 참 좋음
앱스트랙 별로 안좋아하지만 이런글들 볼때마다 그 이유는 이상하게 납득이 잘 되네요..ㅋㅋㅋ
가끔씩 실제 앱스트랙 앨범들보다도 흥미로운 글들이 보이는듯
저도 언젠가 그런 분들처럼 앱스트랙을 바라볼 수 있기를..~
인문학을 운율로 해방한 느낌
그렇네요..
잘 읽었습니다.
장르의 정수를 정말 잘 설명하셨네요 개추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