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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내려가자 재밌게 들었습니다

unofficiality8시간 전조회 수 572추천수 6댓글 4

1~5번 트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6)7~11번 트랙이 중심 서사로써 기능하는데 개인적으로 한두 트랙 정도만 더 서사에 할애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피쳐링으로 나온 버벌진트는 별 느낌이 없었어서 앨범의 어두운 분위기를 더 몰아붙여줄 래퍼가 들어왔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단점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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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트랙의 가사가 곱씹는 맛이 있고 내용이 처절합니다. 앨범의 중심 소재 중 하나가 종교다 보니 아이러니한 느낌과 비참한 느낌이 더욱 리얼하게 다가옵니다. 키츠요지의 가사가 그런 부분을 후벼파고 때로는 사정없이 뒤틀어버리니까 와...... 하면서 여러 번 읽게 되는 가사가 많았어요.


이런 괴로운 이야기가 으레 가져다 쓰는 소재인 '엄마'가 아니라 '외할머니'가 슬픔의 원인인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외할머니>)엄마의 사랑 대신 그 사랑의 부재를 메워준 외할머니의 사랑, 그리고 시한부 선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을 통보받은 손자.


바로 앞 트랙인 <진료비 세부내역서>도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어느 정도 제 얘기처럼 다가오더라고요. 곡의 내용만큼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저도 병으로 앓는 사람을 바라보는 입장과 앓는 사람의 입장, 병든 사람이 지불해야 하는 현실적인 대가의 압박감으로부터 오는 불안과 짜증과 자기혐오 등등을 잘 아는데 키츠요지가 이 느낌을 가사로 잘 옮겼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좀 더 노골적으로!


<상담>도 제가 정신과를 다니면서 느꼈던 감정(물론 그림만 보고 나쁜 생각을 하는 지경까지는 아니었습니다)과 비슷한 구석이 많아서 6~7번 트랙에서 멈추지 않고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정신과 약을 먹으면 나쁜 기분이 가라앉든 좋은 기분으로 전환되든 본인이 딱 '인위적으로 감정이 전환되는' 걸 느낄 수 있는데, 그 느낌은 기분과 상관없이 언제나 슬프고 비참합니다. 내 상황은 그대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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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자>의 앨범 커버가 나선형인 것도 결국 '내 상황은 그대로'라서입니다. 앨범을 들으면서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하나씩 밟으며 내려가는 기분이 들고 <동호대교>를 듣고 나서 이 계단이 둥근 나선형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무서워서 자살도 못하고 한바탕 질질 짠 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손길 한 번 내밀어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매일 비는 엄마의 기도 소리가 들릴 뿐입니다. 닿지도 않는 기도를 왜 하는 걸까요? 괴로운 내 인생이 나아지는 게 없으니까.


제가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앨범의 초중반보다는 중후반부가 훨씬 와닿았습니다(전반부가 나쁘다는 거 절대 아님!). 키츠요지가 가사를 잘 쓰는 래퍼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오늘부로 그 평가에 한 가지 주석을 달아야 할 것 같네요. 키츠요지는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가사를 쓰는 래퍼입니다. 


P.S 앨범에서 <상실의 시대>가 잠깐 언급되는데, <상실의 시대>는 남주인공이 전 여자친구의 전화를 받고 '너 지금 어디 있는 거냐'는 물음에 답하지 못하는 장면에서 끝납니다. 빙글빙글 도는 계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가늠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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