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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그.알: Dionne Warwick - Make Way For Dionne Warwick (1964)

title: [회원구입불가]greenplaty2017.04.26 01:32추천수 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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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그.알: Dionne Warwick - Make Way For Dionne Warwick (1964)

* <그.알(그해의 알앤비)>은 류희성 에디터가 연재하는 장기 시리즈입니다. 1960년부터 2015년까지, 해당연도에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알앤비 아티스트의 앨범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알앤비/소울의 역사를 모두 꿰뚫을 수는 없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소년 버트 배커락(Burt Bacharach)은 재즈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맨해튼의 52번가를 얼씬거렸다. 52번가는 재즈클럽들이 밀집된 곳으로, 40년대 모던 재즈의 중심축이었다. 당시 그는 미성년자 신분으로도 재즈클럽을 마음껏 들락거리며 재즈를 감상했다. 어떻게 했냐고? 간단했다. 가짜 신분증을 제시하면 됐다. 그곳에서 그는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찰리 파커(Charlie Parker) 등의 전설들을 목격했다. 그는 전업 음악가를 꿈꿨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음악을 전공했다. 재즈뿐 아니라 클래식, 현대음악 등을 공부하며 다양한 음악을 습득했다. 졸업 후, 버트 배커락은 팝 작곡가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던 1957년, 작사가 할 데이빗(Hal David)을 만나게 되는 사건은 그의 운명을 바꿔 놓는다. 그리고 이들은 몇몇 히트곡을 합작하며 6,70년대를 대표하는 송라이팅 듀오로 성장한다. 어느 날, 드리프터스(The Drifters)의 "Mexican Divorce"를 녹음하던 버트 배커락은 작업을 중지시켰다. 코러스 가수의 목소리에 매료됐던 것. 그는 코러스 가수이자 가스펠 가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버트 배커락은 그녀의 매끈하고 포근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가수의 이름은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이었다.

버트 배커락은 할 데이빗과의 상의 끝에 그녀를 솔로 가수로 데뷔시키기로 했다. 시작이 좋았다. 첫 싱글 “Don't Make Me Over"가 팝 차트 21위, 알앤비 차트 5위에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앨범이라는 작품으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배커락-데이빗 듀오는 포기하지 않고 더 공격적으로 몰아쳤다. 1964년에만 두 장의 앨범 [Anyone Who Had A Heart]와 [Make Way For Dionne Warwick]를 발표하는 강수를 뒀다. 그중 [Make Way For Dionne Warwick]이 알앤비 앨범 차트 10위에 오른다. 이때까지 앨범 차트에서의 성적이 미미했던 디온 워익에게는 처음 맛보는 성공이었다. 그 원동력은 싱글로 선공개한 "Walk On By"의 히트였다. 리듬 기타, 피아노, 현악기, 트럼펫 소리가 등장하지만 소리의 크기를 키우는 게 아니라 조금씩 등장하며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디온 워윅도 차분하고 신비롭게 노래했다. 60년대 초,중반까지 블루스의 영향으로 거칠게 노래하는 가수가 대다수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디온 워윅의 스타일은 대단히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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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hin' And Hopin'" 같은 전통적인 리듬앤블루스/가스펠 곡도 있지만, 앨범 수록곡들은 다채로운 스타일을 머금고 있다. 스트링 오케스트라의 극적인 전재가 돋보이는 "A House Is Not A Home"와 "People"은 뮤지컬, "You'll Never Get to Heaven (If You Break My Heart)"은 당시 유행한 보사노바을 차용했다. 그의 창법에는 리듬앤블루스/소울뿐 아니라 뮤지컬과 재즈 스타일까지 혼재한다. 차분하고 예쁜 음성으로 노래하다가도 고음으로 힘 있게 치고 올라가는 창법은 청자들을 매료시켰다. 그중에서 본 앨범에서 가장 친숙한 곡은 단연 매끈한 팝송 "They Long To Be Close To You"이 아닐까. 사실, 당시에 그리 눈에 띄는 곡은 아니었다. 길이도 짧았고, 다른 수록곡에 비하면 특색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They Long To Be Close To You"는 1970년에 뒤늦게 재조명을 받는다. 디온 워윅의  버전은 아니고, 팝 밴드 카펜터스(The Carpenters)가 커버한 버전이다. 싱글로 발매해서 팝 차트 넘버원을 기록했으며, 수록한 앨범 제목도 [Close To You]로 지었다. 많은 이가 이 곡의 원곡자를 카펜터스로 알고 있지만, [Make Way For Dionne Warwick]에 수록된 곡이 오리지널이다.

이런 오해를 받는 곡이 하나 더 있다. 많은 사람이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의 곡으로 알고 있는 "A House Is Not A Home"이다. 루더 밴드로스의 커버 버전이 1981년에 나왔으니 무려 17년의 시차가 있는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히트곡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성적(팝 차트 71위, 알앤비 차트 미등록)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 루더 밴드로스는 이 곡을 80년대 컨템포러리 알앤비 스타일로 해석했다. 짙은 그루브감과 표현력이 돋보이지만, 꾸밈이 너무 많다. 상대적으로 깔끔한 디온 워윅의 오리지널 버전이 더 순수하고 솔직하게 다가온다. "A House Is Not A Home"에서 디온 워윅의 순수한 감정 표현이 유효한 이유는 가사에 있다. 할 데이빗의 탁월한 재능이 빛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1절의 가사는 이렇다. "의자는 그대로 의자예요 / 그곳에 앉은 사람이 없더라도요 / 하지만 의자는 집(Home)이 아니에요 / 그곳에 당신을 안아줄 사람이 없다면 / 당신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줄 사람이 없다면 / 집(House)은 집(Home)이 아니에요.” 집(Home)이라는 공간은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집(House)에 감정, 심리적인 대상이 더해져야 한다고 표현한 가사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섬세하고 솔직한 가사는 디온 워윅의 꾸밈없는 음성을 통해 더 강렬하게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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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앨범을 기점으로 디온 워윅은 스타덤에 오른다. 배커락-데이빗 듀오와 거의 20년을 함께하며 전성기를 달렸다. 60년대의 그는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과 함께 소울계를 양분하는 여성 가수로 화려한 시기를 보낸다. 아레사 프랭클린과 디온 워윅은 종종 비교 대상이 되곤 했지만, 이들이 선택한 길은 달랐다. 아레사 프랭클린이 블루스와 가스펠에 기반을 둔 소울을 했다면, 디온 워윅은 팝적이고 매끈한 소울을 했다.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섰던 아레사 프랭클린과는 달리 디온 워윅은 사회/정치적 행보에 소극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소울 시대를 양분했음에도 아레사 프랭클린에 비해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디온 워윅의 유산은 분명하게 있다. 그는 블루스에 기반을 두지 않고서도 소울풀할 수 있단 점을 증명했다. 디온 워윅의 성공을 기점으로 매끈한 소울이 대거 등장한 것을 보면, 그가 끼친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글 |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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