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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 Questlove가 기억하는 최고의 프로듀서, J Dilla

title: [회원구입불가]soulitude2013.02.09 01:10추천수 17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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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love가 기억하는 최고의 프로듀서, J Dilla

많은 팬들과 뮤지션들의 존경의 대상이자 지금도 최고의 프로듀서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제이 딜라(J Dilla)는 1974년 2월 7일에 태어나, 7년 전 오늘(2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매해 이 시기가 되면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더 룻츠(The Roots)의 퀘스트러브(Questlove)도 지난해 오늘, XXL에서 자신이 기억하는 ‘최고의 프로듀서' 제이 딜라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2012년 2월 10일에 게재되었던 글이기에 시점도 당시 기준이다.



6년 전 오늘 (2월 10일), 제이 딜라(약칭 딜라)는 루푸스와 TTP라는 병과 싸우다가 세상을 떠났다. 디트로이트 출신이었던 그는 이미 음악계에 영원히 남을 인물이었으나, 그가 가진 능력에 비해 그가 남기고 간 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딜라는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이하 ATCQ), 버스타 라임즈(Busta Rhymes), 커몬(Common), 모스 뎁(Mos Def), 슬럼 빌리지(Slum Village), 더 파사이드(The Pharcyde), 그리고 더 룻츠를 포함한 여러 아티스트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빌려주었다. 필라델피아 출신의 드러머 퀘스트러브는 생전 딜라와 절친한 친구였다. 그리고 현재 힙합씬에서 가장 박식하고 재능이 있는 뮤지션으로, 힙합 아이콘 제이지(Jay-Z)부터 메인스트림의 존 메이어(John Mayer)와 크리스티나 아귈레라(Christina Aguilera)와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 역시도 자신의 친구가 역사상 최고의 랩 프로듀서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딜라의 놀라웠던 사운드, 스타일, 그리고 작업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딜라의 흔적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 애덤 플레이셔(Adam Fleischer)(@adamXXL)

우리가 정의하는 힙합 프로덕션에 관해서는 딜라에 필적할 만한 사람은 없다. 그의 뒤에 올 만한 사람도 있고 더 미친 기교로 그를 능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그를 알고 지낸 9년이라는 짧은 세월 동안 내 두 눈으로 본 것들을 생각해봤을 때, 그것은 정말 난제에 가까운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벌써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도 그의 비트들을 내 팩맨학(Pacmanology) 연구에 필요한 에너지 알약으로 쓰고 있다. (역주: 게임 팩맨(Pacman)에서 팩맨이 알약을 따라다니며 먹는 것을 말함)

(왜냐고? 왜냐하면) 그의 킥 패치가 세상에서 제일 좋기 때문이다. 그의 스네어 패치가 세상에서 제일 좋기 때문이다. 그의 샘플 찹이 세상에서 제일 좋기 때문이다. 그의 샘플을 뒤바꾸는 능력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그의 엔지니어링이 제일 맘에 들기 때문이다. 그의 코드 구성이 제일 좋기 때문이다. 그의 베이스 톤이 세상에서 제일 좋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거기서 시작된다. 그의 모든 작업물을 들어보고 전부를 100번도 넘게 분석해 본 사람으로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의 작품에는 극도로 신선한 점이 있다. 자신이 미온하고 평범한 리스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이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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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스펙트럼도 무시할 수 없다. 그의 스펙트럼은 정말 넓었다. 그는 총 4개의 프로덕션 시기를 거쳤다. 하나의 방식에 매여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게 그가 여타 힙합 프로듀서들과 확연히 다른 점이다. 그의 첫 시기는 시끄러운 드럼과 바운시한 베이스 라인을 쓰던 포스트 트라이브 (post-Tribe) 시기였다. 그 당시 곡들은 더 파사이드와 ATCQ 앨범들의 성공에 큰 공헌을 했다. 그리고는 우리와 함께 소울퀘리언(Soulquarians)에서 작업을 하기 시작하고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라이브 연주를 시작했던 것이다. 가장 재미있었던 점은 사실 그가 뮤지션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테이프에 담는 능력이 뛰어났고 그 방식 또한 굉장히 독창적이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음악을 만드는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다 줬다. 

그가 [Welcome 2 Detroit]에 들어갈 “Think Twice” 녹음을 끝낸 다음 날 그를 찾아가서 그가 곡을 녹음할 때 사용했던 드럼 셋을 보게 됐다. 그걸 보자마자 내가 내뱉었던 말은 "이걸로 그걸 녹음했다고?"였다. 그건 중고라고 하기도 어려운 음침하고 더러운 드럼 셋이었다. 나사도 몇 개 빠져 있었고 부러진 부분도 있었다. 사실 “Think Twice”는 드럼 스틱도 없이 녹음을 했었다. 그는 비브라폰 채,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에서 얻은 망가진 드럼 스틱과 고무줄을 사용했다고 했다. 내가 "드럼 스틱을 새로 사느니 이런 맥가이버 짓을 했다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그렇게 밤 늦게 구할 곳이 없었어. 마감이 있었다고."라고 대답했다. 내가 "왜 드럼을 비브라폰 채로 친 거야?"라고 했더니 "다이나믹이 너무 세지 않았으면 해서 말이야. 좀 뮤트된 사운드를 내고 싶었어. 그래서 솜으로 된 채로 치기로 했어."라고 했다. 마치 이쑤시개 끝에 마시멜로를 붙여 놓은 것만 같았다. (웃음) 그러고 나서 나는 다시 필라델피아로 향했다. 그리고 아마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더 룻츠의 [Phrenology] 녹음을 하게 되었는데 “Quills”와 “Pussy Galore”를 같은 방식으로 녹음해버렸다. 그 사운드가 얼마나 좋은지 알았기에 굳이 오케스트라용 채를 구해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런 라이브 시절을 지나서 일렉트로 시기로 넘어갔는데, 그건 왠지 좀 꺼려졌다. 커몬의 [Electric Circus] 작업을 시작할 때쯤에 그는 나에게 "아냐. 이제 드럼 셋은 치우려고. 이제 아프리카 사운드는 그만두고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역자: 독일의 일렉트로닉 밴드) 스타일로 가려고. 나와 같이 하겠어?"라고 물었다. 나는 당시 좀 당황을 했는데 이미 딜라는 프로그레시브 락 장비와 신디사이저 레코드, 토마스 돌비(Thomas Dolby)와 게리 누만(Gary Numan) 판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딜라는 "아냐. 우리 일렉트로닉 쪽으로 가자고. 그냥 하는 거야. 2002년이잖아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가버리자고." 마치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한 장면 같았다: 나랑 이 길을 함께 할 사람? 정말 이상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할 것들이 있었는데 - 나는 당시 나의 사운드를 확립해 놓은 상태였다. 타이트한 스네어, 정말 타이트하고 피치가 높은 피콜로 스네어 말이다. 디안젤로(D’Anglelo) 앨범을 통해 내 리듬을 찾은 상태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들으면 "오 젠장, 저거 퀘스트러브의 드럼이야!"라는 반응을 보이게끔 하는 데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사실 나는 그게 좀 자랑스러워서 그 순간을 좀 더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아냐. 반대 방향으로 가자고. 지금 네가 하는 것의 완전히 반대쪽 말야." 내가 "왜?"라고 물으니 그는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되기 때문이지. 다른 사람들이 이제 네가 하는 걸 따라 잡았잖아. 우리가 무리에서 앞장 서고 싶다면 그게 불편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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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의 마지막 시기는 정말로 나를 놀라게 했다. 왜냐하면 그때가 진정한 딜라의 맥가이버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침대 머리맡에 45RPM 판들 한 박스, 싸구려 턴테이블, 컴퓨터에 프로툴즈를 두고 비트를 지지고 볶았다. 이 시기의 마지막쯤에 그는 대화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그때의 작업물들이 제일 놀라웠다. 그래서인지 [Donuts]를 들으면 소름이 끼친다. 그때 사용했던 샘플 하나하나가 전부 그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절대 마구잡이로 아무 샘플이나 선택하는 것이 아니었다. [Donuts]에 나오는 말들을 모두 분석해 보면 – "Workinonit" (샘플에 "난 여전히 일하고(작업하고) 있지(I'm still working)"라는 부분이 있다. 당시 그의 몸무게는 평소 때의 절반이었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하루 종일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그 당시 그의 모습을 본다면 무섭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마자 "잠깐!"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 그렇구나. 겉모습은 달라졌지만 그 두뇌와 창의력만은 그대로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Don't Cry"는 자신의 엄마를 위한 곡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당연히 "Waves"다. 그 곡에서 딜라는 조니 씨(Johnny C)의 "Don't Do It"에서 10cc짜리 샘플을 손봐서 "존 그거 해, 존 그거 해(John Do it, John Do it)"로 바꿨는데 여기서 존(John)은 그의 동생 일라 제이(Illa J)였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모든 곡에 메시지를 담았는지 - 그의 허무주의적 감성을 보여주는 "Airworks"에 나오는 "난 정말 신경 안 써(I Don’t Really Care)" 부분부터 시작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에 의미가 들어 있다. 그리고 그게 그의 천재성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샘플을 통해 교감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 말이다.


출처 | XXL
번역 | 라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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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5
  • 2.10 00:39
    존경
  • 2.10 00:50
    제이디횽 ㅠㅠㅠ
  • 2.10 02:06
    정말 최고의 프로듀서......
  • 2.10 02:21
    제이디 ㅠㅠㅠㅠㅠㅠㅠㅠ
  • 2.10 08:46
    제이딜라도 명졸 잘 보내길...Rip
  • 2.10 10:49
    rip
  • 2.10 13:56
    잘쉬고계시죠? 천국에 좋은음악 많이틀어주세요...존경합니다
  • 2.10 18:20
    아 진짜 지금까지 살아계셨으면 디트로이트 shit 일텐데...ㅠㅠ
    R.I.P.
  • 2.10 20:06
    rip...
  • TIP
    2.10 21:27
    제이 딜라 최고죠...
  • title: Kanye Westido
    2.10 22:36
    좋은곳에서 편히 쉬시고 계시길 우리의 만능프로듀서여...
  • 2.10 23:39
    진짜 돈 많이 벌면 딜라 앨범은 다 수집해야지...
  • 2.10 23:57
    제이디 ㅜㅠ
  • 2.11 14:55
    rip
  • title: Boombap2GB
    9.28 09:14
    지금까지 제이디 비트를 허투루 듣고 있었구나...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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