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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펜토 (Pento)

Melo2015.03.22 20:37추천수 12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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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펜토 (Pento)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주 단순하게,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나누면 '나'라는 존재와 그 나머지로 나눌 수 있다. 우리는 각자의 관점에서 세상 속에 존재하는 사람, 사물, 체계 등을 바라본다. 그런데 가끔은 이 세상에 산재해있는 온갖 요소들이 각자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못 알아보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영향을 흡수해 더 발전된 나로 거듭되는 경우도 있는 반면, 남의 삶 속 남의 것을 보고 모방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끝끝내 자신의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고자 하는 자각조차 없이 끝내 이 세계에서 소멸하여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사라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게 무엇인지, 즉 내면에 대해 탐구를 하며 삶의 중심을 나로 삼는다면 적어도 나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지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살롱(Salon), 오버클래스(Overclass), 소울 컴퍼니(Soul Company), 오스카 엔터테인먼트(Oscar Entertainment), 쥬스 엔터테인먼트(Juice Entertainment)까지, 10년 간 적을 옮겨 다니면서도 펜토(Pento)가 여전히 살아남아 있을 수 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백기도 길었고, 선풍적인 인기를 몰았던 것도 아니지만, 여전히 펜토의 세상은 펜토 그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한다. 이번 힙합엘이(HiphopLE) 인터뷰에서는 삶과 음악에 대한 굳건한 의지로 단단히 무장한 '건 랩(Gun Rap)' 펜토의 이야기가 담아보았다.



LE: 우선 힙합엘이 회원분들께 인사 부탁 드려요. 워낙 오랜만에 복귀하셔서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간단하게 소개도 해주세요.

P: 안녕하세요. 저는 펜토라고 하고요. 잘 아실 만한 건 소울 컴퍼니가 되겠고, 그전에는 살롱에서 활동했었어요. 오스카 엔터테인먼트를 거쳐 지금은 쥬스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5년 만에 세 번째 정규 앨범을 가지고 왔습니다. 반갑습니다.





LE: 작년에 “겨울인데…”, “Pasta Hater”라는 두 개의 싱글을 공개하셨었는데요. 그런데 싱글 두 장 이후에 갑자기 또 정규 앨범이 나왔어요. 5년 만에 정규라서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요. 일단은 그간 어떻게 지내오셨는지 궁금해요.

어디부터를 근황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웃음) 최근에는 정신이 없어요. 개인적으로 의욕적으로 하려는 부분도 있고… 사실 기간이 기간인지라 가감 없이 이야기하자면, 테두리 밖에서 다시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강하거든요. 표현이 좀 웃긴 데, 어색한 것도 느껴져요. 스스로 분주해지려고 하고 있어서 안 분주해도 정신은 분주하고 그렇습니다.





LE: 앞서 언급한 그 전에 나왔던 싱글들을 들어보면, 사실 소속이나 방향성 같은 부분에 있어 감이 잘 안 잡히는 스타일의 곡들이었어요. 그전까지 정규 앨범 위주로 발표했던 걸 생각하면 싱글이라는 발표 형태도 그랬고요. 일단 그 두 곡을 어떤 연유로 발표하셨는지, 소속사 영향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먼저 소속사 영향을 말씀드리면 전혀 개입된 게 없고요. 개입이 완전 없지는 않은데, 어느 정도였느냐면 “Pasta Hater”의 경우 브릿지에 기타 루프가 나오는 게 있었는데, 거기에 원래 랩이 있었거든요. 그걸 빼자고 제안해주는 정도? “이거 해라, 저거 만들어라.”와 같은 건 아예 없고요. 이따 또 얘기하겠지만 짧게 말씀드리면 지금 회사는 음악만 터치하지 않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전혀 없었어요. “겨울인데…” 같은 경우는 사실 완전 다른 버전의 원곡이 있어요. 그 곡이 자이언티(Zion.T)랑 제가 같이 쓴 곡인데, 기회가 되면 (원곡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그게 엄청 쓸쓸한 노래였어요. 원래 10월에 작업이 되었는데…





LE: 겨울이 끝나갈 때쯤 나왔었죠.

네. 2월 중순에 발매가 되었는데, 영상 16도일 때 발매가 되었어요. 온도도 기억이 나요. (전원 웃음) 따뜻해지는 동안 브라더수(BrotherSu)가 온기를 불어넣어 줬어요. 처음과 결과가 다르게 나오기는 했는데, 결과적으로 저는 만족스러워요. 변해가는 과정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처음부터 여러분께서 들으시는 분위기를 생각하고 만든 건 아니었는데… 근데 과정에 대해 설명하기 애매하네요. 오리지널 곡 같은 경우에는 의도가 담겨 있고 그런데…





LE: 원곡을 직접 들어봐야 알 수 있겠네요.

그렇죠. 쉽게 말씀드리면, 그냥 심플하게 건반에 랩이랑 노래한 거거든요. 아무튼, 그 곡 같은 경우에는… 이렇게 말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아요. “Look”이 되게 스테디셀러더라고요. 조현아 씨랑 같이 한 곡. 그 곡의 쓸쓸한 자이언티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LE: 인터뷰 준비하면서 펜토 씨 디스코그라피를 쭉 훑었는데, 유독 그 노래가 인기가 많더라고요.

네. 쏠쏠하지는 않은데… (웃음) 한 번씩 작은 위안이 되죠. “Pasta Hater” 같은 경우에는 2집을 들어보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힙합이 아닌 다른 장르로 간 경우죠. 굳이 예를 들자면, 디스클로저(Disclosure)나 하우스, 심플한 전자음악 그런 류를 이해하기 쉽게, 재미있게 풀어낸 곡이에요. 사실 이태원의 딥 하우스나 전자음악 계열은 청담에서 호루라기 불면서 ‘빠빠빠’ 하는 것보다 장사가 안 되거든요. 나름대로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소스를 가미시킨 정도? 그렇게 말하면 설명이 좀 될 것 같아요.





LE: 지금은 알리(Ali) 씨와 같은 회사에 소속되어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신기한 게, 회사에 딱 두 분만 계세요. 알리 씨와는 평소에 연락하고 지내시나요?

일단 대화는 잘 되고요. (웃음) 자주 보지는 않고요. 근데 연락은 하죠. 이번 선공개 싱글 냈을 때도 누나가 자극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굳이 표현을 빌리자면 “심쿵했다.”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같은 회사 소속 아티스트고 하다 보니 서로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도 모니터하면서 피드백 줄 수 있는 건 주고… 좋은 동료 뮤지션이죠. 교류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배울 게 많은, 엄청 프로페셔널한 분이십니다.





LE: 간단하게 몇 가지를 여쭤봤고,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처음 음악을 접한 건 언제인지, 또 어떤 계기로 음악을 시작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처음에 빠진 건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일주일마다 책과 음반을 하나씩 고르게 하셨었어요. 책은 맨날 7대 불가사의, 모험 북 이런 것만 골랐었죠.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왕성했던 편이었거든요. (음악은) 그때 당시에는 HOT, 젝스키스 이런 것만 듣다가 아마 4, 5학년 때였을 거예요. 그때 TV 뉴스에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내한을 한참 보도한 적이 있었어요. (뉴스에서) ‘팝의 황제’라길래 이름만 기억하고 있다가 언젠가 음반 코너에 갔더니 제 눈높이에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I] 앨범이 있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고 샀었어요. 근데 그 마이클 잭슨이 절 음악을 하게 만들었죠. (웃음) “Black or White” 듣고 컬처 쇼크 먹고… 그때부터 쉽게 말해 ‘덕후’가 되었죠. 그렇게 문화의 불모지인 포항에서… (웃음) 포항은 진짜로 황야와도 같아요. 황야에 지푸라기 대신 철들이 있는 도시인데, 거기서 혼자 되게 튀었죠. 고등학교 때도 야자 시간에 (친구들한테)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의 “Death Song” 들려주면서 이런 거 듣고 반항해야 한다 그랬죠. 그러면서 음악에 대한 열망을 엄청 품게 되었고, 결국 직접 하게 된 거죠.





LE: 어릴 때부터 음악을 다양하게 들으셨나 보네요.

저는 테크트리가… 처음에는 잘 모르니까 컴필레이션 앨범을 많이 들었거든요. [NOW] 시리즈, [MAX] 시리즈 이런 걸 들었어요. 앨범을 막 수집할 수는 없으니까요. 처음 꽂혔던 건 록이었고, 그다음 힙합, 그다음 전자음악 계열 순서였어요.





LE: 어린 시절에 그렇게 다양하게 들었던 게 지금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겠네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LE: 보컬보다 랩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는 따로 있었나요?

제가 고등학교 때 힙합을 제일 좋아했었어요. 음악은 다 듣는데, 그중에 조금 더 마음이 가는 게 있잖아요. 그런 게 다 힙합이었고, 듣는 것과 관계없이 그때 당시 팍 오는 것들도 힙합이었어요.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죠. 또, 당시가 한국에서 힙합이 태동할 때였어요. 1999년 이후에 대한민국 시리즈, 컴필레이션 앨범이 막 나올 때였으니까요. 그런 게 (랩을 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죠. 만약 음악에 빠져있을 때 대단한 록스타가 나왔거나, 청소년들 문화에 영향을 끼친 것이 전자음악이었다면 제가 바뀌었을 수도 있겠는데, 그때는 환경이나 흐름 자체가 힙합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한 것 같아요.





LE: 지금은 음악을 접한 것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처음에는 아이어스(Eyass)라는 4인조 팀으로 활동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포항을 근거지로 두고 있는 팀이었나요?

그렇습니다. 포항에 세 팀 정도가 있었어요. 아까 불모지라고 말씀드렸지만, 그 와중에 요만한 싹이 있었거든요. (웃음) 말도 안 되게 미군 바 가서 공연하고 그랬어요. 진짜 말도 안 되죠. 아마 귀여워서 환호해줬던 것 같아요. 아무튼, 저는 처음에는 혼자 하고 있었는데, 당시에 빅딜 레코즈(Big Deal Records)에 425라는 형이랑 아는 사이였어요. 그 형도 포항 출신이거든요. 고등학교 한 해 선배였는데, 아무튼 그 형이 “선배 중에 힙합하는 형이 있다. 한 번 가봐라.”라고 해서 만났는데, 그 형이 JA 형이었죠. 그때 JA 형이랑 다른 형이랑 친구 한 명이 아이어스를 먼저 하고 있었고, 저는 나중에 합류하게 되었죠.





LE: 아이어스로는 따로 작품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이후에 JA 씨와 펜토 씨가 만드신 팀 JNPB가 저희가 볼 수 있는 공식적인 첫 활동이에요. 2005년에 “냄새”라는 싱글이 나왔었죠. 그때 들어도 그렇고, 지금 들어도 그렇고 실험적인 음악인 것 같아요. 첫 작품임에도 범상치 않았는데, 당시 “냄새”를 그렇게 만든 의도나 만드는 데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독특했을 것 같아요.

일단 당시에 들었던 음악들은 미국 언더그라운드에서도 언더그라운드였어요. JA 형이나 같이 음악 들었던 우주선 형들이랑 모여서 공유를 하잖아요. 우리 사이에서 제일 메이저 가수가 제이딜라(J Dilla), 매드립(Madlib)이었어요. 그러니까 말 다했죠. 엄청 진지하고, 진짜이고 싶었던 때였는데… 더 안으로 파고들고. (웃음) 각자 연구도 엄청 많이 했었죠. 저 같은 경우는 랩, JA형 같은 경우에는 비트. “냄새”라는 곡의 탄생이 좀… 외부를 통해서 나왔다기보다는 우리 안을 엄청 파서 나온 결과에요. 우리만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고 하다가 그렇게 나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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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당시 랩 네임이 PB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름을 바꾸신 건가요? 바꾼 계기나 뜻에 대해서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스토리가 있어요. 원래 PB가 프레데터 B라는 미사일 이름이었는데, 어렸을 때는 의욕만 있고 확실한 미래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라크 전쟁이었나… 고등학교 때는 시사에 밝아야 하니까 (전원 웃음) 신문을 보다가 미사일 이름을 본 거죠. 그게 엄청 센 미사일이었어요. 전쟁 때 쓰던 거였는데, “오, 이거 이름 멋지다.”라고 생각해서 골랐고, 너무 길어서 줄였죠. 그게 PB가 되었는데, 노출되기 전에는 저 혼자, 혹은 주변 사람들만 그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 (외부에) 노출될 때쯤에 주변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일단은 <프렌즈>의 여자 이름도 피비고, <물 위의 하룻밤>이라는 엄청 옛날 영화가 있어요. 저 중학교 때인가 나온 건데, 대한민국 최초로 플레이보이 잡지에 나온 여자 분이 주연한 영화에요. (전원 웃음) 거기 주인공 이름도 피비였어요. 공연할 때 어떤 형이 “니 이름 뜻이 파리바게트야?”라고 그런 적도 있어요. 자꾸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꾸준히 쓰기에는 위험요소가 너무 많겠다 싶어서 바꿨죠. 놀림은 사실 농담이니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는데, 여자 이름 같다는 게 마음에 걸렸죠. 펜토라는 이름은 본(Von) 형이 지어줬어요. 갑자기 뜬금없이, 제가 추천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이거 너랑 어감이 맞는 것 같다.”라고 해서 쓰게 되었죠. 이거 관련해서 사족을 붙이자면, (이름이니까) 대외적인 설명이 필요하잖아요. 이런 인터뷰 자리에서도 그렇고요. (웃음) 근데 실제로는 뜻이 없으니까 그냥 “뜻 없어요. 누가 지어줬어요.”라고 얘기하고 다니다가 사촌 누나가 간호사인데 마취약 중에 펜토로 시작하는 게 있다는 거예요. 그걸 줄여서 펜토라고 하는데, 제 이름을 듣더니 이거 마취약 이름인데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길래 ‘어, 이거 득템이다.’ 했죠. (전원 웃음) 근데 그러고 나서 힙합플레이야(Hiphopplaya)인가 어디 인터뷰할 때 이름 뜻을 물어보길래, 얘기하는데 순간 그 생각이 났죠. ‘가요계를 강타할 강타입니다.’처럼 마취제 얘기를 했죠. (웃음) 그때 이후로는 또 그냥 뜻이 없고 어감이 좋아서 쓰고 있다고 하고 다녔어요.





LE: 본 씨는 정말 아무 뜻 없이 지어준 건가요?

아마도 그럴 거예요. 제임스 본드(James Bond) 영화를 보고 뭔가 영감을 얻었을 확률은 높죠.





LE: 아까 잠시 얘기가 나왔던 JA 씨는 전혀 다른 길로 가고 계시잖아요. 자람 프로젝트도 하셨고, 작년에는 페이스북 페이지 사건도 있었고…

(그 사건은) 직접적으로 들은 건 아니고 전해 들었어요.





LE: 최근에는 연락 안 하고 지내시나요?

워낙 어렸을 때부터 같이 했다 보니 제가 소울 컴퍼니와 같이 일하게 되었을 때 서로 소원해졌었어요. 그러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멀어졌죠. 근데 각자가 하는 일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일이다 보니까 “서로 뭐 하고 있구나.” 정도는 듣게 되죠.





LE: 소원해진 부분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엄청 복잡하죠. 다 말씀해드릴 수는 없지만, 소울 컴퍼니 간 게 배신감 드는 일이었을 수도 있고… 그때 (살롱) 내부에서는 크루와 레이블은 엄연히 다른 거라고 얘기는 해도 저나 JA 형이나 본 형이나 각자가 느끼는 바가 또 달랐던 거 같아요. JA 형 같은 경우에는 본 형을 알기 이전부터 저랑 알고 지낸 세월이 워낙 길었으니까… 그런 것들도 이유가 되었겠죠. 사람이 살다 보면 설거지 때문에 멀어지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근데 음악적으로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각자의 방향이 있는 거니까요.





LE: JJK 씨 첫 앨범 [비공식적 기록] 속 가사를 보면, JJK 씨가 두 분을 브라운 비트(Brown Beat)라는 곳에 소개해줬다는 내용이 나와요.

그건 제가… 기억이 잘 안 나요. 일단 말씀 드려야 할 게 제 주변 지인들은 잘 아는데, 제가 기억력이 진짜 안 좋아요. 건망증도 무지 심하고… 어느 정도냐면… 제가 대변을 보고 물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까먹을 정도예요. (전원 웃음) 자주 그러지는 않고 한두 번 정도인데, 그 정도로 건망증이 심해요. 워낙 옛날 얘기라 기억이 안 나는 것도 있고… 그때 당시에는 제가 (사람들 사이에서) 막내였거든요. 그래서 아마 형들이 하자고 해서 한 것 같아요. 정확히 어떤 이야기가 오갔었는지는 못 들었거나, 기억을 못 하거나 그럴 거예요. 브라운 비트 간 건 기억이 나요.





LE: 브라운 비트가 살롱의 전신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전신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죠. 왜냐하면, 우주선 형들이랑 JA 형이랑 저는 살롱의 원년 멤버라면 원년 멤버인데… 근데 브라운 비트라는 곳에 들어가기 이전에 이미 넷이서 서로 교류하고 그런 완성된 울타리가 있었거든요. 뒤에 나올 것 같은데 오버클래스에 저희 넷이 들어갔다 나온 때가 있었어요. 쉽게 말하면 그런 그림인 거예요. 살롱이라고 칭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끼리의 뭔가 울타리는 있었던 거죠. 그 울타리 자체가 브라운 비트에 들어갔다 나온 그림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LE: JNPB 곡이 나온 2005년이 스무 살 때였나요?

군대 가기 직전에 냈었죠. 스물한 살 때였던 것 같아요.





LE: 그리고 나서 [Pentoxic]이 나왔던 거군요. 그래서 그 사이에 공백이 있었던 거고요.

그렇죠. 국방의 의무를 다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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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본격적으로 살롱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알기에는 우주선 분들과 몇 분들은 대전의 아폴로 쪽에서 활동하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포항과 대전은 꽤 거리가 있는 지역인데, 아무래도 서로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거겠죠?

설명을 해드리기 쉬워요. JA 형이 제 고등학교 선배고 포항에서 처음 만났잖아요. 그다음 해에 대학을 갔을 거예요. 그게 대전에 있는 충남대학교에요. 그리고 형이 학교에서 힙합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이 본 형이었던 거죠. 그 형들 빼고 나머지 (동아리 멤버) 분들은 평범한 분들이었는데, 그 두 형만 남달랐죠. 자이언(Giant) 형이랑 본 형은 친한 친구였고, 이미 음악적으로 교류가 있었고…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대전으로 가게 됐었죠. 대학교를 1학년만 하고 6개월은 대전에 있고, 6개월은 서울에 있었어요. 그렇게 반년씩 보내고 군대 갔다 와서부터는 쭉 서울에 있는 거죠. 이렇게 말씀드리면 대전이 기반이 되었던 게 설명이 될 것 같아요.





LE: 대학은 포항 쪽에서 다니셨던 건가요?

대학은 부산에서 다니다 그만뒀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뭘 해도 제가 재미있어하고, 흥미를 느끼는 걸 항상 하고 싶어 했었어요. 대학교 입학할 당시에는 요리에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요리가 창의적일 수가 있잖아요. 회사 들어가는 것보다는 재미있겠다 하고 요식업 관련된 학과에 진학했죠. 호텔관광학부였을 거예요. 그러다 음악으로 전향했죠. 군대 갔다 와서도 일단은 휴학하면서 지냈어요. 아무튼, 현실적인 부분은 놓치면 안 되니까요. 그러다 오스카 엔터테인먼트 들어가면서 학교를 그만뒀어요. 개인적인 잣대는 사실 그 전에 확실히 선 상태였어요. 1, 2집을 내고 나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평가가 있잖아요. 그 평가들을 봤을 때, 음악 해서 굶어 죽지는 않겠다 싶더라고요. 결정적인 건 부모님을 설득해야 하니까… 그게 아무래도 메이저 회사인 오스카 엔터테인먼트가 되었고, 그때 이후로는 학업을 과감히 접었죠.





LE: 그러면 대전의 아폴로에서도 활동하셨던 건가요?

우주선 형들은 아폴로였고, 저 같은 경우는 45rpm의 현배 형이 제의를 해주셨었는데, 생각해보겠다고 했었죠. 왜냐하면, 군대 문제도 있었고, 서울에 대한 갈망도 있었기 때문에… 근데 이게 대전 씬을 비하하고 그런 게 절대 아니라, 아직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잖아요. 단순히 그 정도 이유에서 저랑 JA 형은 좀 더 겪어보고 싶었던 거죠. 정확히 아폴로는 아니었는데, 같이 움직이는 사람 중에 아폴로였던 사람들이 많았죠.





LE: 살롱은 등장부터 활동이 축소될 때까지, 집단의 색깔이 남달랐었는데요. 사실 한국 언더그라운드 씬의 대다수가 미국에서의 메인스트림 음악을 추구하잖아요. 언더그라운드 씬 안에서도 성향에 따라 메인을 차지하고 있는 집단은 따로 있고 그랬었죠. 살롱은 확실히 빅딜 레코즈나 소울 컴퍼니와는 또 다른 행보를 보여줬었는데, 요즘 표현을 따르면 힙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그 당시 집단 내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실험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는 않았나요?

일단 마지막에 말씀해주신 것에 대한 답을 드리면, 저희 스스로 그런 강박은 없었어요. ‘어렵게 해야 해, 꼬아야 해’. 그런 건 전혀 없었는데, “냄새”랑 뉘앙스가 비슷할 수 있어요. 만남이 있고 서로에 대해 교류를 하고, 그러다 보면 우리 안에서 탐구하는 분위기였어요. 예를 들면, 저는 살면서 존경하는 사람 몇 가운데 한 명으로 본 형을 꼭 꼽거든요. 이 형은 미친 사람이에요. 되게 좋은 의미로요. 어떤 ‘척’을 하지 않기 위해서 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남들이 뭔가 어려운 걸 하면 “쟤네 되게 고차원적이고 돕한 걸 하려고 하나보다.”가 아니라 “저런 게 있으니까 우리도 우리 안에서 뭔가 디깅을 하자.”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그랬죠. 근데 그런 영향이나 영감을 줬던 음악이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음악들이었으니까요. 우리 사이에서는 잘해봤자 (메이저한 게) 제이딜라였고… 우리 식으로 엄청 깊어진 거죠.





LE: 외적으로 다른 아티스트를 탐구하기보다는 내면으로 파고들어 우리 것이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는 거네요.

그렇죠. 일단 각자 아이덴티티에 대한 생각이 강했어요. 어려워야 한다기보다는 확실한 자기 것에 대한 탐구의식이 각자 무지 강했었죠.





LE: 당시 JNPB도 그렇고, 우주선 앨범도 그렇고 알만한 사람들만 알고 반응이 엄청 좋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때 당시 우주선 음악의 팬이에요. 정말 지금 내놔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진짜 신선하고 좋은 음악이 많아요. 근데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그림이든, 음악이든 보고 듣는 사람이 있어야 또 그것대로의 효용가치가 있는 건데, 그런 거에 대한 안타까움 정도는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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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살롱 자체가 본인들만의 아이덴티티가 있는 음악을 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특이한 점이 많았던 거 같아요. ‘Director’s Cut’이라는 이름으로 외전 같은, 감독판 앨범이 나왔던 적도 있고, 리믹스, 신곡이 들어있는 믹스테입을 만들어 공연장에서 배포했던 적도 더러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또, 당시에는 싸이클럽도 생각보다 번영했던 걸로 알고 있고요. 그런 것들이 다른 집단에 비해 특이하다 싶었는데, 여러 부분에서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일단 본 형이 거의 다 주도했었어요. 워낙 에너지가 넘치고 실행력이 강한 사람이라…그때 같이 살롱을 했던 멤버들 모두가 본 형이 아이디어를 내고 결정하면 힘을 실어주려는 게 많았어요. 각자가 의견을 내서 뭔가 만들어가는 부분도 당연히 있었는데, 워낙 추진력이 좋고 스스로 증명해온 게 많으니까… 왜냐하면, 어떤 집단이든 확실한 리더는 필요하잖아요. 장단점이 있겠지만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지금 말씀해주신 어떤 행보나 아이디어들은 다른 사람 머리에서 나왔을 수도 있죠. 그런데 그걸 밀어붙이고 했던 건 다 본 형이었어요. 멀리 보고 그런 건 본 형의 몫이었죠. 혜안이 있는 사람이니까… 큰 그림은 다 본 형이 그렸다고 보시면 돼요.





LE: 앞서 살롱의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제이딜라, 매드립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전자 음악 계열의 실험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내적 탐구를 많이 했었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영향받은 아티스트, 집단이 있을 것 같은데, 어느 쪽일지 궁금해요. 개인적으로도 좋고, 살롱 집단으로도 좋습니다.

살롱은 제이딜라, 매드립까지였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당시 진짜 좋아했던 사람은 탈립 콸리(Talib Kweli)였어요. 지금은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는데… (웃음) 되게 좋아했었어요. 지금은 생각이 잘 안 나는데, 디깅해서 들은 음악도 있죠. 아프리카 퓨처 뮤직 같은 것도 찾아들었고, BBE(Barely Breaking Even) 레이블에서 나온 앨범도 많이 듣고요. 집단으로 치면 제이딜라, 매드립 주변의 음악들이었죠. 개인적으로는 래퍼로서의 아이덴티티나 이고가 강한 뮤지션을 많이 찾아들었었죠. 플래닛 아시아(Planet Asia) 좋아했고… 플로우나 내뱉는 게 창의적인 사람을 좋아했어요. 워즈워스(Wordsworth) 같은 기본에 충실한 랩도 좋아하기는 했는데, 그런 건 평소에 편하게 손이 가는 것과는 다르게 래퍼로서는 흥미가 가지 않더라고요. 제가 딱 들었을 때 흥미 있는 래퍼 위주로 들었던 것 같아요.





LE: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아티스트, 음악도) 같이 공유하고 즐겼나요? 함께 의견도 나누고 그랬을 것 같아요.

서로 추천했었죠. 나 요즘 뭐 듣는다고 얘기하고… 그리고 그런 것도 있었어요. 워낙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의식적인 부분이 있으니까 진짜 유치하지만 (웃음) “이게 더 좋아, 저게 더 좋아.” 그런 것도 있었어요. 여담이지만 그런 장난도 쳤어요. 우주선 형들이랑 차 타고 동아리 방에 프리스타일 연습을 하러 간 적이 있었어요. 가면서 본 형이 “아직 안 알려진 제이딜라 비트테입이야.”라고 하면서 틀더라고요.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죽인다.”라고 하면서 들었죠. 그러다 중간에 본 형이 “이 트랙 존나 죽이지 않냐?”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진짜 좋다고 답하면 알고 보면 자기 곡이라고 하고… (웃음) 엄청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서로 영감을 많이 주려고 노력했었죠. 저도 많이 받았고, 주려고도 했었고…





LE: 살롱 자체의 이름을 짓는 거나 집단화시키는 거나 거기에 뜻을 부여하는 건 모두 본 씨가 했던 거겠네요. 몇 년도부터 살롱이라는 이름이 생겼던 건가요?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아마 제가 군대에 있었을 때 생겼을 거예요. 군대에서 음악적 자아의 전투력이 최대치였거든요. 어느 정도였느냐면 한 번씩 자가 테스트를 했었어요. 제가 아는 뮤지션 이름을 일기장에 싹 적어요. 그리고 훈련소 가기 전에 적어왔던 것과 비교해서 빠진 게 있으면 자책하고… (전원 웃음) 엄청났죠. 형들끼리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거라는 이야기를 주로 전화로 들곤 했었어요. 그러면 그걸 일기장에 기록하고… 그래서 제가 군대 갔을 때 살롱이 생겼을 거예요. 제가 나왔을 때는 이미 살롱이 있었으니까요.





LE: 사실 살롱이라는 집단이 말씀해주신 네 멤버가 주축이긴 했지만, 이름이 특이한 분도 계셨잖아요. A, 알렌(Allen) 등등…

에이조쿠(Aeizoku) 형도 살롱이었고, 김아일(Qim Isle)도 살롱이었고, 시모(Simo) 형도 왔다 갔다 하기는 했는데 같이 했었고요. A라는 친구랑 같이 팀을 한 친구가 있어요. SB2east라는 팀이었는데, 그 정도인 것 같아요. 제 머릿속에 있는 데이터는… 아, 기린도 있고요.





LE: 당시 기린 씨의 행보는 지금과 많이 다른 것 같기도 해요.

기린이 원래 미술하는 친구잖아요. 그때 당시에도 뉴잭스윙은 아니었지만, (결과물에서) 복고스러움이 꾸준히 있었어요. 음악적 결과물을 내기 1, 2년 전에 들려줬던 음악들이 다 뉴잭스윙 음악이긴 했어요. 하여튼, 그때도 최근의 행보와 아예 동떨어지진 않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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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자이언 씨의 [Tiger Style] 앨범 때문에 그런 건지는 몰라도 우탱클랜(Wu-Tang Clan)의 멤버인 즈자(GZA)의 앨범이랑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요. 그 당시에 앨범이 1년에 한, 두 장씩 멤버 별로 하나씩 나왔었잖아요. 마치 순번처럼 돌아가면서 말이죠. 그래서 혹시 우탱클랜의 영향을 받았나 싶더라고요.

그런 건 없었어요. 제 기억에는 순서도 특별히 없었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진행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자면 기억력이 형편없는데, 순번 같은 건 없었고 일단 계속 서로 푸쉬하고 많이 해보자고 했던 것 같아요. 기다렸다가 작업하고 그런 건 없었고, 작업하는 게 겹친 적도 별로 없었어요.





LE: 살롱에게는 크림(CREAM)이라는 지지 집단이 있잖아요. 추종 집단이라는 게 이미 있는 개념이기도 하지만, 한국 내에 있는 팬클럽의 개념과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일단 크림이 아직 존재하는지부터 말씀해주세요.

크림 같은 경우에는 말씀하신 개념으로 이해하는 게 빠르긴 할 거예요. 지금 크림으로 활동하는 건 아마 없을 거예요. (살롱의) 다른 멤버들에게는 어떻게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감사한 게, 제가 5년 만에 정규 앨범을 내고 공백이 긴데도 불구하고, 간간히 나오는 콘텐츠나 제 활동에 대해서 그때만큼 여전히 뜨겁게 지지해주는 분들이 계세요. 엄청 고맙죠. 아마 지금은 그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아요. 당연히 팬의 개념에서, 베이스는 팬덤으로 만들어졌지만, 능동적으로, 의욕적으로 할 수 있는 걸 하고 되게 좋은 에너지였어요. 순수한 거잖아요. 대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 정말 좋아서 하는 거였으니까요. 서포터즈 개념이랑 비슷한지는 모르겠어요. 젊고 건강하고 힘 있는 집단이었죠.





LE: 살롱이 삼각형 때문인지 몰라도 일루미나티(Illuminati)스러운… 보편적이지 않은 가사, 세계관이 음악에서 꽤 엿보였었는데요. 서로 모이면 어떤 얘기를 했었는지 궁금해요.

모이면 엄청 웃겨요. 서로 엄청 놀리고… 사실 음악이라는 걸 공유하면서 만나긴 했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섞일 수 없으면 그게 오래가기가 힘들잖아요. 같은 음악을 좋아하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안 맞으면 그렇잖아요. 근데 (인간적인) 그런 것도 잘 맞았어요. 그래서 보통 만나면 처음 시작은 음악 얘기부터긴 하죠. 누구 들었다고 하고, 어떤 앨범 추천해주고, 작업한 거 들려주고… 그 외에는 그냥 우리끼리 노는 거였어요. 랩 할 때도 있고, 그냥 놀 때도 있고… 특별히 괴상한 일을 벌인다거나 의식을 치른다거나 (전원 웃음) 상식 밖의 그런 것들은 전혀 없었어요. 그리고 어떤 아이디어든 다 회의를 했던 거 같아요. 개인이 그냥 한 건 거의 없었어요.





LE: 살롱이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라고 하면 아마 버벌진트(Verbal Jint) 씨의 [무명]에 수록된 “Overclass 2007”이라는 곡에 참여하면서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때부터 살롱 멤버들이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냈던 것 같아요. 그쯤 발표된 JA 씨와 에이조쿠 씨의 [Double Feature]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걸로 기억하고요. 일단 그 당시에 오버클래스에 영입되었던 거죠?

그렇죠. 웜맨(Warmman) 형이 제의했고, 내부적으로 회의를 해서 함께 해도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려서 같이 하게 되었죠.





LE: 이후에 (씬에서 살롱을) 좀 더 찾아준다든가 등등의 어떤 반응이 있었나요?

개인적으로는 별로 없었어요. 그런 건 있었죠. 버벌진트 형 같은 경우에는 예전부터 좋아했고, 지금도 음악가로서 좋아하는데… 워낙 예전부터 이슈메이커이어서 여러 이야기가 많지만, 개인적으로 작업했던 경험, 그 전에 들었던 음악까지 포함해서 봤을 때는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에요. 그런 사람과 함께 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소속감이나 뿌듯함은 있었죠. “내가 바라봤던 음악가랑 이제 교류를 하기까지 하는구나.” 싶은 그런… 근데 외부적으로 반응은 특별히 없었어요. 인지도라든가 그런 거요.





LE: 영입 이후에는 오버클래스의 컴필레이션 앨범인 [Collage 1]에 참여하게 되십니다. 수록곡 중에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했던 트랙은 “Bang Bang Bang”인데…

저도 좋아해요.





LE: 근데 그 앨범을 자세히 보면 사실 한 트랙 안에서 지금도 오버클래스에 계시는 분과 살롱 멤버 분들과 섞여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따로 작업한 걸 모아놓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실제로 작업할 때는 어땠나요?

맞습니다. (웃음) 왜냐하면,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컴필레이션 형태였을 거예요. 앨범 제목처럼 섞여낼 수 있을만한 건 섞어냈던 걸 텐데, 저희 안에서 이미 만들어진 음원이 충분하게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 실렸던 음원들이 전부 발표는 안 되었는데, 이미 공연에서 선보였던,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이었어요. 발표되긴 되어야 했는데, 그때 그런 기회가 생겨서 실렸던 것 같아요. 만약에 계속 오버클래스에 있었고, 그다음 시리즈까지 함께 했으면 다른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었겠죠.





LE: [Collage 2] 나올 때는 살롱 분들이 오버클래스를 탈퇴하시잖아요. 영입되었지만 딱히 같이 활동하지는 않았던 건가요?

모임이나 이런 건 항상 같이 했었는데… 사실 당시에 오버클래스와 관련해서 몇 가지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게 저희 넷한테는 별로 좋지 않은 거로 생각했었어요. 당시에는 생각이 ‘굳이…’였죠. 넷이서 처음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게 그 사건 때문이었죠. (저 그림이) 우리한테도 맞는 그림인가 고민하게 되었고…





LE: ‘Collage’ 시리즈는 1에서 2로 넘어오면서 색이 많이 바뀌었던 걸로 기억해요. 오버클래스라는 집단도 그렇고, 살롱이라는 집단도 그렇고 오리지널리티 강한 집단인 건 맞는데, 실험의 방향이 조금 달랐던 것 같기도 해요.

집단 자체가 잘 섞일 수 있는 멤버를 모았다기보다는 각자가 가진 게 그때 씬에서 뚜렷한 사람들이 함께했던 집단이라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사실 오버클래스는 로보토미(Lobotomy) 형이나 웜맨 형 같은 사람이 뒤에서 묵묵히 해준 게 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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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Pentoxic]에 관한 얘기를 해볼 텐데, 그 전에 베이식(Basick) 씨와 지금은 김아일이라는 이름을 쓰는, 게릿 아일(Gehrith Isle) 씨와 함께했던 “Trinitas”라는 곡이 있더라고요. 예전에 들어봤던 기억이 있는데, 당시 게릿 아일 씨는 살롱이었지만, 베이식 씨와는 어떻게 콜라보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특히나 펜토 씨 같은 경우에는 살롱의 다른 분들에 비해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많이 했던 것 같아서 더욱 궁금하네요.

일단 베이식 같은 경우는, 정확히 말씀 드리면, 기억이 안 나요. (전원 웃음) 제가 생각을 잠깐만 해볼게요. 대충 생각나는 대로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일단 콜라보레이션 같은 경우에는 당시 제가 주도적으로 같이 뭔가를 하는 것보다 외부에서 들어온 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그 당시 래퍼로서 아이덴티티가 있었고, 딱 봤을 때 다른 부분이 있으니까 그런 제의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제가 음악이라는 것 자체에 개방적인 편이라… 그때 당시만 해도 그런 게 있었어요. 홍대에서 록 밴드들이랑 공연이 있었어요. 힙합하는 팀이랑 네 팀씩 합동 공연을 하고 그랬는데, 그런 걸 하면 서로 팔짱 끼고 깔보고 그랬던 게 있었거든요. “쟤네는 악기 다룰 줄 몰라.”라고 하면서 그쪽에서 깔보거나, 이쪽 힙합하는 사람들도 자기들대로 또 내려다보고… 저는 그런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았거든요. 왜냐하면, 사실 이건 진짜 다 그럴 것 같은데, 힙합하는 사람도 친구들이랑 놀다 보면 트로트에 신나 할 수 있고, 댄스에 춤출 수 있는 거잖아요. 근데 거기다 대고 뭐가 좋고 나쁘다고 하는 게 무의미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컨택이 오면 장르 같은 거에 있어서 연연한 적도 없고, 음악만 괜찮고, 흥미로운 작업이면 다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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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Pentoxic]이 나왔을 때, 살롱 내에서도 랩 자체에 있어서는 가장 다이나믹하고 재미있는 요소가 많은 래퍼의 앨범이라는 느낌도 있었고, 뭔가 전격적으로 나왔다고도 느껴졌었는데요. 집단 내에서도 특별히 어떤 기대 같은 게 있었나요?

다들 기대는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그나마 대중적인 래퍼가 저였으니까요. 물론 그마저도 대중적이지 않았지만, 하여튼 그 와중에 가장 대중적이었어요. 멤버들이 “니 랩은 그래도 팬들이 듣고 좋아할 수 있으니까.”라고 한다든가… 실제로도 저는 제가 랩을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전원 웃음) 각자의 특색이 있잖아요. 근데 그런 것까지 다 아울러서 제 랩이 어떤 것에 특화된 것보다 조금 더 유연한 속성이 있지 않나 그런 생각도 있었고요. 개인적으로도 공연할 때 ‘살롱의 에이스’라는 말을 많이 하기도 했고요. 내부적으로도, 제 개인적으로도 기대하고 자신감이 있었어요.





LE: 당시 혹시 평가가 상당히 갈리지 않았나요? 호불호가 확실했던 것 같은데, 다른 살롱의 멤버들이 한 앨범 안에서 색깔을 일관되게 가져갔었다면 펜토 씨는 [Pentoxic] 안에서 여러 스타일이 담으셨던 것 같아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나마 가장 대중적인 편이었고요.

진짜가 되려면 진짜이고 싶어야 진짜가 되잖아요. “어, 나는 ‘척’ 해야지.” 이게 아니고요. 그런 것처럼 첫 번째 정규 앨범을 만들면서 저는 멀리 봤어요. 평생 멋진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래퍼로서 새롭게 제시할 수 있는 뭔가를, 다른 래퍼들이 못하는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 랩의 한계점을 깨고 싶었고… 근데 플로우든, 발성이든, 내뱉는 방법이든 간에 그게 다 묻어나는 앨범이었죠. 처음에는 랩으로 선보일 수 있는 스펙트럼을 고루 보여주는 걸로 나름대로 계획했었어요. 랩이라는 보컬리스트로서 말이죠. 보통 사람들이 들었던 것 말고 “다른 음악적인 좋은 재료로 차용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걸 표현하고 싶어서 1집을 그렇게 작업했었어요. 그때 작업하면서 2집 때는 RATM(Rage Against The Maschine)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었고요. 노바소닉(Novasonic)도 재미있게 들었는데, 그것보다 좀 더 멋있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3집이 2집이 되었지만, 전자 음악 계열을 하고 싶다는 꿈은 그때부터 꿨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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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개인적으로는 “Akeba”라는 트랙을 제일 좋아하는데, 드럼 소스부터 펜토 씨가 비트를 타는 방식까지 되게 충격적인 트랙이었던 것 같아요. 악센트가 독특한 랩 있잖아요. 본인은 1집의 어떤 트랙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1집에서는 “Fu”을 되게 좋아했고요. 또 뭐가 있지… “High”도 되게 좋아했고요. 맨 마지막 트랙이죠.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도 좋아해요.





LE: 저도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가 주제의식, 서사하는 방식이 특이하다 싶더라고요. 이야기하고자 하는 걸 안 드러내면서도 슬쩍 드러내는 느낌이…

네. 저는 개인적으로 “Akeba”가 좀 재미있는 게 본 형이 쓴 곡인데, 첫 번째 버전이랑 두 번째 버전이 달랐었어요. 전반적인 바이브가 달라진 게 아니라 편곡적인 부분이 달라졌는데, 보통 힙합이 16마디고, 훅이 있고, 그런 식이라면 본 형은 진행만 쭉 있는 곡을 써왔더라고요. 근데 제가 그 첫 번째 버전을 듣고 “나 이거 써볼게요.”라고 했는데, 본 형이 그러면 좀 손을 봐야겠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 곡 자체가 맘에 들었던 거죠. 그래서 제가 그냥 그 위에 다 작업을 했죠. 처음에 슈퍼맨 아이비(Superman Ivy) 형 집에서 셋이 같이 들었을 거예요. 제 가이드 버전으로… 슈퍼맨 아이비 형이 이거 좋다고 재미있다고 했는데, 본 형이 자기는 편곡하려고 했는데 얘가 그대로 써버렸다고… 하여튼 저는 좋아합니다.





LE: 사실 앞서 말한 그 독특한 악센트와 박자 타는 방식 때문에 펜토 씨의 랩을 두고 엇박이다, 박자를 저는 거다 등등 말이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지금 본인이 생각하기에 그 당시의 랩은 어떤가요? 지금과 비교하면 다른 점이 많이 있나요? 아니면 그 당시 힙합 팬들이 냈던 의견에 관한 생각도 궁금하고요.

그런 얘기들을 어느 정도 모니터했었는데… 어린 마음에 조금 답답했던 게… 발표했던 음악 중에 크루셜 스타(Crucial Star)가 소울 컴퍼니에 같이 있었을 때 냈던 “ipod girl”이라는 노래에 제가 피처링을 했었어요. 그게 좋은 예가 될 것 같아요. 사실 래퍼로서 박자를 전다거나 박자를 못 탄다는 얘기는… 실제로 그러면 모르겠는데, 아니면 되게 자존심 상하잖아요. 근데 거기다 대고 특별히 얘기를 안 했던 게 애초에 저는 쉬운 랩 자체에 대해서 흥미가 없었어요. 나중에 그런 랩을 할 수 있을 때 해서 보여주면 안 좋은 얘기들은 자연스럽게 수그러들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아까 말씀드린 “ipod girl”같은 게 그런 (조금 쉬운 랩이 담긴) 노래였죠.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악플도 관심이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들도 언젠가 저에게 얼굴을 돌릴 거로 생각했었거든요. 왜냐하면, 저 사람이 언젠가 좋아하는 음악을 저는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거든요. 그 음악이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저는 앞으로 진짜 랩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장르를 다루고 싶거든요.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은 감사하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굳이 밉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LE: 사실 저는 인터뷰를 많이 하다 보니까 특히나 래퍼 분 중에 본인의 랩과 원래 말씀하실 때의 억양이 비슷한 분들을 꽤 만나뵙게 되더라고요. JJK 씨도 그런 케이스였는데, 펜토 씨도 랩 하실 때의 억양이 말씀하실 때도 살아있는 것 같아요. 발음하는, 악센트를 주는 방법이 레퍼런스가 따로 있거나 영향을 크게 받은 래퍼가 있는 게 아니고 처음 랩을 하실 때부터 특이하셨던 거죠?

네. 그렇죠. 제가 아까 탈립 콸리를 되게 좋아한다고 말씀드렸었잖아요. 그렇게 되고 싶어서 [Quality]라는 앨범에 수록된 “Gun Music”이라는 곡을 4마디인가 따라 했다가 뭔가 이건 아닌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이렇게 따라 하는 건) 뭔가 좋은 방법론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사실 어떤 교과서 같은 인물을 비롯해서 어떤 롤모델을 잡아도 잘되어봤자 그 롤모델을 따라잡는 데에서 그치잖아요. 나쁘게 하면 카피캣이 될 수도 있는 거고, 그 그늘을 못 벗어날 것 같았어요. 따라 하자마자 자각을 했던 것 같아요. 원래는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또 여태까지 없었던,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 나만의 뭔가가 있고 싶었던 건데, 그러기 위한 시작을 누구를 따라 하는 걸로 끊으면… 물론, 당연히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든가 그런 말도 인정은 해요. 그런데 어느 정도 자의식이 있고,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위치에서부터는 내 안에서 창조하고, 파괴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이 길면 길수록 나만의 뭔가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게 잘못 전해지면 디스리스펙처럼 들릴 수 있는데, 저는 그때부터 한국힙합을 잘 안 들었어요. 팬이라서 찾아 듣는 건 있는데, 그런 음악 말고는 안 들으려고 해요. 지금 나온 거든, 아직 나오지 않은 거든 간에 제 음악은 객관적으로 봐도 정말 흔히 얘기하는 트렌디함을 담고 있지 않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게 좋고, 그래서 트렌디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영향 받을 수 있는 것들을 차단하는 것 같아요, 제가 어레인지, 모니터링을 비롯한 모든 과정을 직접 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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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Pentoxic] 얘기를 더 해보면, 어쨌든 데뷔 앨범으로 한국대중음악상 힙합/랩 부문에 오르기도 하고,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하기도 했었어요. 당시의 씬이 나름대로 호황이었던 걸 생각하면, 앨범도 꽤 많이 팔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실제로는 어땠나요?

천 장 조금 넘었던 것 같아요.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천오백 장인가, 이천 장을 찍어서 거의 다 팔았던 거 같아요.





LE: 또, 살롱의 다른 멤버들의 앨범과 비교해서는 어땠는지도 궁금하네요. (웃음)

정확한 장수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비슷했거나 제 앨범이 조금 더 잘됐던 거 같아요. 근데 잘 되어봤자 거기서 거기였죠.





LE: 당시 살롱이 벨벳바나나 같은 공연장에서 공연을 했던 것도 기억이 나요. 살롱의 분위기는 보통 어땠나요?

저희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진짜로 감상하러 왔었어요. 당연히 공연을 하면서 관객들이랑 화합? 케미가 일어나는 때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도 있었어요. 어떤 공연에서 2집에 들어있는 곡 중에 “Ney York Doll”,인가, “Rock Disco”인가를 하는데, 신나면 춤추든지 알아서 각자의 방식대로 감상하라고 했었거든요. 그렇게 말하고 공연을 하는데, 관객석 어느 한쪽은 진짜 클럽인줄 알았어요. (전원 웃음) 다섯 명 모여서 집단으로 춤추고… 저는 그런 게 재미있거든요. 외국 페스티벌 같은, 관객이 자기가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거죠. 그런 팬들이 꽤 많았던 거 같아요. 물론, 대부분 관객은 앞을 보고 있지만요. 근데 특별한 거여야 봤자 끽해야 삼각 핸드싸인 정도? 저희가 우리 팬들의 문화를 위해서 특별히 뭔가를 하진 않았던 거 같아요.





LE: 우연일 것 같긴 한데, 살롱이 점점 활동이 축소됐다고 해야 하나요? 예전보다 앨범이 덜 나오고 했던 시기가 씬이 불황을 맞이했던 시기인 2009, 2010년이에요. 그 당시 살롱 내부의 상황이나 배경은 어땠는지 궁금한데요.

제가 기억이 잘… (전원 웃음) 제가 소울 컴퍼니를 언제 들어갔죠?





LE: 아마 2010년에… (웃음)

(이걸 왜 여쭤 보냐 하면) 제가 소울 컴퍼니를 들어가기 훨씬 이전이면 제가 잘못 얘기할 수도 있으니까…





LE: 사운드 크래프트(Sound Craft) 앨범이 2011년에 나왔었는데요. 그쯤에 JA 씨나 본 씨의 개인 앨범은 많이 나왔지만, 뭔가 다 같이 공연을 같이 한다든가 이런 건 많이 줄어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 제가 살롱에서 소울 컴퍼니로 넘어갈 때쯤을 설명해야 할 것 같은데요. 살롱 자체적으로 과도기를 맞았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느끼기에는 그때 당시에 살롱을 이끌었던 본 형이나 옆에서 힘이 되어준 자이언 형이 아마 지금 제 또래 혹은 한 28, 9살? 그 정도 나이였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제가 이번에 낸 앨범에 담긴 이야기들처럼 온전히 음악에만 인생을 쏟기에는 여러 가지가 인생사에 껴들 때잖아요. 그런 거였을 것 같아요. 저도 그때 당시에 개인적으로 애매했던 것 같아요. 진짜로 음악에 평생을 걸어야겠다고 생각을 한 게 몇 년 안 되거든요. 아무튼, 그런 상황들이 딱 그 순간에 모였던 것 같아요. 아, 그때 저는 그것도 있었어요. 집에서는 복학을 엄청 권유했고, 저는 복학에 대한 걸 쟁취해야 서울에 있을 수 있던 거예요. 하여튼, 힙합 씬 전반적인 상황과는 무관하게 살롱 내에서 각자의 고됨이 있었던 거죠.





LE: 저는 개인적으로 안타깝다고 생각이 드는 게 요즘 잘 되는 레이블의 잘 되는 공연이 참 많잖아요. 특히, 옴니버스 공연에 이어서 이제는 단독 공연이 더 잘 되는 추세가 되어가고 있는데요. 뮤지션들의 페이나 관객 수 등 양적으로 성장했잖아요. 물론, 그런 양적 성장을 무조건 좋게 바라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옛날보다는 나아진 거잖아요. 살롱의 멤버 분들도 지금 흐름에 껴있었다면 어땠을까 궁금해요. 씬의 한 축을 맡고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렇죠. 본 형 같은 경우는 딱 만나면 그런 얘기를 하진 않는데, 에이조쿠 형이나 주변 사람들한테 여러 얘기를 듣잖아요. 저도 (살롱이) 정말 멋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때 당시에 하던 것들이요. 모였던 멤버들만 봐도 모두 지금까지 꾸준히 했다면 되게 더 크고, 더 단단한 음악 집단이 되었을 것 같아요. 완전히 문화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그런 데서 오는 아쉬움은 있죠. 당연히 드는 생각이고… 아무튼, 집단이기 때문에 존폐에 대해서는 제가 개인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으니 뜻을 따랐죠.





LE: 요즘도 그때가 가끔 그리울 때가 있나요?

네. 저는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가사를 쓸 때 썼다 지웠다 한 내용이 무지 많아요. 이승열 형님이 참여해주신 마지막 곡인 “Now Or Never”에 살롱 얘기를 무지 많이 썼었어요. 이따가 [ADAM]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또 말씀 드리겠지만, 저는 이번 앨범이 엄청 사적인 이야기로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 얘기처럼 느끼길 바라서 살롱 얘기가 담긴 벌스를 과감히 통째로 덜어내고 가사를 새로 썼거든요. 그때 쓰면서 혼자 오타쿠처럼 웃고, 실제로 울기도 했어요. “아, 그때 진짜 너무 좋았는데…” 하면서… 아까 그 차 타고 가면서 있었던 그런 에피소드 있잖아요. 혼자 막 피식피식하고… 좋았죠. 지금도 되게 추억하죠.





LE: 요즘 살롱 멤버 분들은 보고 지내시나요?

본 형 같은 경우에는 간간이 보고요. JA 형 같은 경우에는 안 본 지 오래됐고요.





LE: 살롱이란 집단 자체는 유지가 되고 있나요? 유명무실해진 건지…

저 개인적으로는 슬프지만 이제 집단으로서 뭔가를 하기에는… 근데 이렇게 또 얘기하면 안 되는 게 지금 본 형이 하고 있는 게 있어요. 영상 쪽이라든가… 정확히 얘기하면 회사일 거예요. 그 회사 이름이 SAL이거든요. 약자인지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아마 관련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때 당시가 1년 전이었는데, 저는 이런 앨범 낼 거다 얘기하고 그랬는데, 본 형은 아직도 살롱의 재건에 대해서 뜨거운 게 있어요. 자이언 형도 분명히 꼭 같이 음악 할 거라고 하고요. 제 생각에는 본 형이 지금 하는 게 2보가 아닌 몇 보의 전진을 위한 후퇴 정도?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옛날의 살롱 정도로 집단의 이름을 건 활동이라든가 뭔가 드러나는 건 없지만, 아예 사라졌거나 이제는 볼 수 없다고 하기에도 좀 그런 것 같아요.





LE: 다른 멤버 분들은 본업이 있으신 건가요?

아마 자이언 형은 있을 거예요.





LE: 아, 있을 ‘거예요’군요.

네. 근데 프라이버시가 있으니까…





LE: 근데 저는 사실 그런 걸 보면, 살롱의 멤버 분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결국에 살아남은 솔로 아티스트는 펜토 씨 거의 한 분이잖아요. 그런 걸 보면 ‘아, 정말 강해야 살아남는 게 아니고 살아남아야 강한 거구나.’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게 아 다르고 어 다른 건데, 강해서 살아남을 수도 있죠. 저는 좀 이런 거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은 문화적인 건 자정 작용이 일어난다고 봐요. 기업체는 모르겠는데, 문화적인 건 좋고 나쁘거나 팔리고 안 팔리고의 경계가 되게 애매하잖아요. 근데 그런 흐름이 계속되고, 뭔가 꾸준한 좋음이 있고, 꾸준한 그 아래 것이 있는 건 그 안에서의 자정 작용이 항상 있다고 봐요. 근데 그게 예를 들면, 표현하신 것처럼 강한 게 될 수도 있고, 더 나은 뭔가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순간에 똑똑하거나 약삭빠른 걸 수도 있는데… 근데 부정적인 행위로 남거나 연명하는 건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자연정화로 사라진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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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소울 컴퍼니 시절에 관한 질문을 이제 곧 들어갈 텐데, 마지막으로 살롱 시절에 관한 질문을 하나 더 드려볼게요. 예전에 힙합플레이야와 하신 인터뷰를 보면, 오리지널리티, 실험 정신에 대한 생각이 투철하시더라고요. 또,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마저도 팔리는 거에 대해 신경을 쓰면 정말 끝나는 거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더라고요. 씬의 경계 자체가 애매해지긴 했지만, 위치상으로는 언더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셀링에 대해서 욕심을 내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분들은 펜토 씨의 가치관에 있어서는 안 맞지 않나 싶은데요.

그렇죠. 각자의 음악 방식인데, 저는 그러기를 원치 않는 거죠. 언더그라운드라는 말 자체가 가진 각자의 의미가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단 깔고 가야 하는 건 인디펜던트 성이 강해야 하는 거죠. 100% 금전적인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음악 자체적으로 독립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래도 제가 여태까지 듣고 마음이 동했던, 동경했던, 봐왔던 뮤지션들이 제가 생각했던 길과는 다른 길을 가지 않을까 해요. 실제로 지금 많이들 그렇게 되고 있죠. 막말로 옛날의 살롱이든, 오버클래스처럼 재미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 이렇게 하면 판매가 되네?”라고 느끼고, 그런 쪽으로 파고드는 경향이 생겨나 버려서…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문화는 어떻게든 형태가 바뀌고, 발전될 거고, 그런 와중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날 거니까요. 칸예 웨스트(Kanye West)도 처음 나타날 때부터 “나 이저스(Yeezus)야.”라고 하지는 않았잖아요. “Good Life”도 하고 그랬잖아요.





LE: 2010년에는 소울 컴퍼니와 계약하게 되시는데요. 소울 컴퍼니가 그 당시 나름대로 변혁을 꾀하던 시절이기도 해서 들어가셨잖아요. 어떻게 보면 이해가 되는 영입이기도 했어요. 당시 소울 컴퍼니를 들어가게 된 계기나 과정 같은 건 어떻게 되나요?

계기는 없고요. (웃음) 과정은… 소울 컴퍼니 측에서 제의를 받은 그 시점에서 며칠 전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팔로알토(Paloalto) 형도 하이라이트 레코즈(Hi-Lite Records)과의 계약을 제의했었어요. 고민을 했어요. 왜냐하면, 그때 레이블화된 집단들이 많이 생겨났었어요.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저는 살롱은 크루고, 어떻게 보면 FA잖아요. (팔로알토 형에게 제의를 받고) 뭔가 재미있는 그림이겠다 싶었는데, 다음날인가 며칠 안 지나서 소울 컴퍼니 쪽에서 제의가 왔을 거예요. 일단은 주요했던 게 화나가 동갑내기고, 그때 당시에 친했으니까 큰 역할을 했었죠. 화나한테도 “내가 가는 가장 큰 두 가지는 너랑 더콰이엇(The Quiett) 형 때문이다.”라고 했었어요. 그리고 현실적인 부분에서 얘기하면, 저는 음악을 시작했을 때부터 집안의 지원을 안 받았었어요. 부유한 편도 아니고… 진짜로 돈 몇십만 원에 벌벌 떨 때였는데, 소울 컴퍼니가 계약금 100만 원을 준다 했었어요. (웃음) 그것도 있었고… 그때 제 생활비가 한 달에 30만 원 왔다 갔다 했나 그랬을 거예요. 근데 그때 당시에는 어려서인지 “와, 서울에 좀 더 있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었죠. 나중에 팔로알토 형한테는 풀었죠. 얘기하고, 사과하고… 에이조쿠 형도 한때 살롱이었고, 하이라이트 레코즈였으니까 이런 얘기를 하면 좀 웃겨요. “네가 그때 하이라이트 레코즈 갔으면 어땠을까?”하고… (웃음) 아무튼, 그래서 들어간 계기는 특별히 있지 않았어요. 답만 딱 얘기하면 화나와 더콰이엇 형과 계약금… 정도로 정리되겠네요. (전원 웃음)





LE: 펜토 씨가 당시에 굉장히 탐낼만한 인재였던 거네요.

뭐,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너무 감사합니다. (웃음) 얘기를 하고 나니까 그렇게…





LE: 계약 이후 나온 두 번째 정규 앨범 [Microsuit]는 사실 소울 컴퍼니 계약과는 무관하게 인디펜던트 앨범으로 준비하고 있었다고 알고 있어요. 그러다가 소울 컴퍼니를 통해 발매하게 됐는데, 소울 컴퍼니 측에서는 그 앨범 그대로 내는 데에 있어서 별다른 말은 없었나요?

네. 그 집단 자체가 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의견 교환은 당연히 있었겠지만, 음악 자체에 대해서는 선을 그어놨었기 때문에 특별히 (터치는) 없었고요. 심의 때문에 “Ney York Doll” 라디오 에디트 버전 만든 정도? 그 정도 빼고는 뭐… 근데 그런 거는 크게 문제 될 건 아니니까요.





LE: 그럼 외부에 들려줬을 때의 반응은 어땠나요?

뭐, 예상하신 대로… 무슨 예상을 하실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게 맞을 거예요. (전원 웃음) 특이한 거 한다고 그랬던 것 같아요. 아, 원래 “New York Doll”에 훅이 없었어요.





LE: 샛별 씨가 하시지 않았나요?

아니요. 제가 노래를… 샛별 누나는 약간 데코 느낌으로… 아, 지금 표현이 너무 저급했는데… (전원 웃음) 씬 스틸러, 씬 스틸러. 아무튼, 그때 훅이 없었는데, 훅을 같이 했죠.





LE: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프로듀서 팀 L.S.V.에 대한 정보가 없어요. 되게 갑자기 나타나서 앨범 한 장만 하고, 전후로 커리어가 없다 보니까 L.S.V.가 펜토 씨가 아닌가 생각을 했었거든요.

맞습니다.





LE: 그래요? 아, 정말인가요?

네. 일단은 이런 앨범을 내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그랬던 것도 있고… 곡을 쓰는데, 힙합 만드는 것보다 다른 장르를 만드는 게 더 재미있더라고요. 그때 당시에 전자음악 말고 무지 많이 만들었었는데… 곡을 쓰면서 얼터이고(Alter-Ego)의 필요성을 느낀 게… 제가 일단 래퍼잖아요. 근데 제가 래퍼란 걸 생각하고 작업을 하니까 뭐랄까, 발전소에 에너지가 잘 안 생기는 느낌? 그래서 저 스스로 얼터이고가 필요하다고 느꼈었어요. 곡 쓸 때는 제가 어떤 누군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당시의 인터뷰에 영국 일본계의 혼혈 쌍둥이라고… (전원 웃음) 제가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든 거죠. 인격체가 달라지는 건 아니고요. (웃음) 스스로 그런 이미지를 떠올렸죠. 재미있게 상상하면서…





LE: 영국, 일본, 혼혈, 쌍둥이요?

그때 당시에는 아이디어가 무지 많았어요. 예를 들면, 사진을 잘 빌려서 가상 계정을 만들고, 운영도 해볼까 생각했었고요.





LE: 철저하게 숨기려고 하셨던 거네요.

네. 그것도 있었어요. 주변 뮤지션들이든, 팬들이 봤을 때, 저는 래퍼의 이고가 무지 강했잖아요. 심지어 a.k.a.같은 게 건 랩이었으니까요. 근데 그런 캐릭터가 [Microsuit] 앨범의 전곡을 프로듀싱했다고 하면 뭔가 폄하될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색안경 끼고 듣진 않을까 싶었던 거죠. 그 두 개의 생각이 바탕에 있었죠.





LE: 그런 거네요. “펜토가 곡을 쓰면 얼마나 쓰겠어? 래퍼 아니었어?”

네. 차라리 힙합이면 모르겠는데, 완전 다른 음악이니까요. 그래서 [Microsuit] 앨범 발매 당시에 그런 평가가 많았어요. 이건 펜토의 앨범이 아니고 L.S.V. 반, 펜토 반인 앨범이다… 되게 쾌감이 좋았어요. 정확히 들었구나 싶었죠. 제가 의도한 바가 (앨범에) 잘 묻어났구나 싶었어요.




LE: 모두가 속았어. (전원 웃음)

엄청 밝히고 싶었어요. “야, 그거 다 나야.”라고 하면서…





LE: 그렇다면 이게 최초 공개인가요?

네. 그렇죠. 오피셜하게는요.





LE: 근데 다시 공개를 하고, 펜토로 프로듀싱진에 이름을 올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주변에 만류를 하더라고요. 루드 페이퍼(Rude Paper)의 RD 형 같은 경우에는 제가 오스카 엔터테인먼트에 있을 때 얘기를 해줬었는데요. 이미 앨범이 좋은 평가를 받았고 한데, 지금까지도 굳이 숨기는 건 에너지를 모으는 게 아니고 분산시키는 게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동의해요. 물론, L.S.V.의 컨셉인 영국 일본 혼혈 쌍둥이를 버린 건 아니에요. 근데 명확하게 그 친구들을… (웃음) 꺼내서 제 커리어와 같이 섞어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생각이 들었어요.





LE: 그럼 L.S.V.로 별개의 활동을 하실 생각은 없으셨나요?

아니요. 있었어요. 실제로 지금도 있어요. L.S.V.가 레이저 사운드 비전(Laser Sound Vision)의 줄임말인 데요. L.V.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앨범이 있어요. 그런데 그건 진짜로 마데온(Madeon) 같은 일렉트로니카 아티스트의 음악 같은 일렉트로니카 앨범이에요. 이미 만들어둔 앨범이 많아요. (핸드폰의 재생 목록을 보며) 칠 웨이브도 있고, 덥스텝 기반으로 한 것도 있고, 트렌디한 힙합도 있고, 피비알앤비 느낌도 있고, 하이 피델리티 같은 거고요. 이 앨범들은 사실 시기만 노리고 있어요. 아무튼,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L.S.V.라는 캐릭터만이 온전히 할 수 있는 앨범이 나올 거로 생각해요. “사실 나 펜토였으니까 이제 그런 거 안 할 거야.” 이런 건 아닌 거죠. 명확히 존재합니다.





LE: 그럼 이번 앨범도 L.S.V.가 작곡한 걸로 크레딧에 실려 있나요?

이번엔 공개해야겠다 싶어서 프로듀싱 관련된 크레딧에는 L.S.V.를 괄호치고 a.k.a.로 써놨어요. Release By는 그냥 펜토로 했고요.





LE: [Microsuit] 같은 경우에는 펜토의 랩만큼 L.S.V.의 트랙이 좋은 평가를 많이 받았어요. 말이 이상하긴 한데… (전원 웃음)

저는 그때 당시에 이걸 얘기를 안 했었어요. 근데 무지 궁금해하는 거예요. 그때 당시에 리듬파워 애들도 자꾸 곡 받고 싶다고 그러고… 근데 (곡을 주려면) 회사 쪽에 사실 저라고 얘기를 해야 하니까… 진짜 몇 명만, 소수만 알았던 거 같아요. 근데 가깝게 아는 사람들한테는 연기를 해야 하잖아요. 되게 곤욕이었어요.





LE: “어, 내가 물어봐 줄게. 비트 줄 수 있는지.”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겠네요.

네. “어… (걔네) 잘 지내고 있어.” 이러면서… 그래서 요즘도 소울 컴퍼니 사람들 만나면 농담으로 다른 멤버들이 걔네 잘 지내느냐고 하고 그래요. (전원 웃음) 그러면 저는 여전히 음악 잘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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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 보면, [Microsuit]는 트랙과 트랙간의 유기성이 굉장히 뛰어났었는데요. 그런 점들이 앨범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줬는데요. 댄서블한 넘버들도 각자 고유의 매력이 있어서 인상적이었는데요. [Pentoxic]이 펜토라는 아티스트의 색깔과 정체성을 펼쳐놓은 듯한 앨범이었다면 [Microsuit]는 그걸 다시 하나로 모아둔 느낌이었어요. 실제 본인의 의도는 어떤 것이었나요?

앨범 안에 담긴 의도는 되게 명확해요. 전자음악과 랩이라는 게 잘 섞여서 일렉트로니카, 랩/힙합이라는 장르 이름을 꺼내는 거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하나의 것이 나오기를 바랐었어요. 이건 힙합도 아니고, 랩도 아니고, 전자음악도 아닌 그 무언가. 근데 저는 그게 좀 잘 맞아떨어졌다고 봐요.





LE: 그래서 당시에 앨범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굉장히 멋진 수트 하나를 갖춰 입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앨범이라고 설명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네. 맞아요. 그런 거예요. 요즘 말로 하면 ‘취향 저격’? 하나 아쉬웠던 건 뭐였느냐면, 그 앨범을 평가하는 보통의 많은 사람은 제 이전의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래퍼, 건 랩이라는 a.k.a.가 붙은 래퍼의 앨범으로 이 앨범을 들었을 것 같아서… 근데 그렇게 들으면 그건 반쪽밖에 못 듣는 셈이에요. 그렇다고 거기다 대고 “너희는 음악도 모르는 게…”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긴 하죠. 만약에 전자 음악에 관심이 있어 들었던 사람이 힙합도 좋아하고 있는 채로 [Microsuit]를 들었다면 더 좋은 평가가 많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저는 [Microsuit]가 아직도 제대로 평가를 못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제가 생각하는 정도의 이야기가 오고 갈 거라고 확신해요.





LE: 사실 2010년이면 전자음악을 자신의 음악으로 끌어들이는 게 전체적인 흐름에 비해 빠른 편이셨던 거 같아요. 펜토 씨는 전자음악 자체나 그 음악을 만드는 작법에 대해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셨던 건가요?

일단은 관심을 가진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죠. 제작자로서는 [Pentoxic]을 작업할 때부터였어요. 그때부터 제가 [Microsuit]를 준비하면서 [Pentoxic]을 작업했었는데… 그때 한참 프로듀싱할 때라서 완곡은 아니더라도 하루에 7개씩 룹 만들고 하면서 엄청 많이 만들었었거든요. 근데 그러다 보니까 갈무리도 좀 되고, 앨범을 표현할 정도도 되더라고요. 원래는 2집을 록 앨범으로 하고 싶었는데, 여건이 안되어서 자연스럽게 전자음악으로 넘어갔던 것 같아요.





LE: 전자음악이 가지는 리듬과 랩/힙합이 가진 리듬을 나누려면 나눌 수 있잖아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네. 힘들었던 게 일렉트로니카 같은 경우에는 다 정박이잖아요. 쪼개거나 그루브… 그루브라고 얘기하는 그 개념이 조금 달라요. 노래 같은 것도 하긴 했지만, 어쨌든 제가 목소리를 입히는 방식이 랩이니까 이리저리 실험을 많이 해봤었어요. 1집 때처럼 랩을 하니까 그 곡의 리듬도 망가지고, 랩도 무지 못하게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랩을 (비트에) 더 맞췄죠.





LE: 캐치한 느낌이 있더라고요. 딱딱딱딱 떨어지는…

네. 맞아요.





LE: 펜토가 L.S.V.에게 양보를 한 거네요. (웃음)

그렇죠. 제가 저한테 양보한 거죠. (전원 웃음) 근데 뭐, 그런 것들이 사실 사람들은 잘 몰랐을 테지만, 프로듀싱도 제가 하고, 랩도 제가 했으니까 저는 이 앨범을 곡이랑 랩을 따로 분리해서 평가할 수가 없어요. 그냥 하나인데… 그렇기 때문에 랩이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도록 했던 거 같아요.





LE: 그렇게 [Microsuit]가 나오고 나서 한참 뒤에서야 한국에도 인스트루멘탈 힙합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비트 씬이라고 할만한 영역이 생겼잖아요. 그런 걸 보면 감회가 있으실 것 같아요.

지금 머릿속에 여러 단어가 떠오르고 있어서 적절한 걸 찾고 있는데요. 뿌듯하다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좋아요. 되게 좋아요. 이건 어떻게 보면 <쇼미더머니>랑도 교집합이 있을 수가 있는 부분인데, 저는 일단 저변이 넓어지는 거에 대해서는, 그리고 뭔가 안정된 기반이 생기는 건 되게 찬성해요. 왜냐하면,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자정 작용이 일어날 거로 생각하기 때문에… 일단은 비트 씬 같은 게 거의 없다가 2000년대 이후부터 생겨나잖아요. 근데 그 씬 자체가 진입 장벽이 높잖아요. 그래서 아예 존재 자체가 쉽지 않았던 건데, 일단 생겨났으니까 더 많은 사람이 그 테두리 안에 들어가려고 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저도 그 씬에 일조하고 싶어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L.S.V.라는 캐릭터, 그 친구로서의 그림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트 씬을) 엄청나게 반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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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사운드 소스를 찾고 만드는 과정에서도 지금은 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는 음악들이 굉장히 많지만, [Microsuit] 당시에는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사실 전 프로듀싱도 랩이랑 비슷한데, 저는 레퍼런스라는 게 좀… 맨 처음 그 단어가 가진 뜻이 지금의 뜻은 아니지만,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레퍼런스 자체는 되게 안타까워요. 종사자로서. 있으면 안 되는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프로듀싱을 할 때도 예를 들면 내가 방법만 캐치를 하고, 나머지는 될 수 있으면 다르게 가져가는 정도로… 기술은 알아야 하잖아요. 이큐잉이건, 컴프레싱이건 기술적인 건 배워야 써먹을 수 있는 거긴 하죠. 그런 거 같은 경우에는 여기도 보고, 저기도 보고 했지만, 그걸 가지고 (사운드 소스를) 어떻게 가공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연구했죠. 보면 모든 기술자가 다 창조하고 있는 거잖아요. 기계가 발명되고, 기술이 생겼을 때, 그걸 어떻게 이용하냐는 건 그 사람의 몫이잖아요. 디스토션이든, 에코든, 리버브든 내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어떤 걸 다르게 써먹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아웃풋에 대해서는 온전히 제 거만 가지고 한 거고… 나머지 기술 같은 건 제가 공부를 했었죠. 개인적으로는 그때 당시에 진짜로 많이 연구했던 거 같아요. 거의 밤새서 사운드 디자인해보고 그랬거든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때 같이 살던 형이 룸메이트 형이 저한테 “야, 너는 성공하겠다.”라고 하는데, “왜요?” 물어보니까 고등학교 때 밤샌 적 있느냐는 거예요. 없다고 하니까 너 맨날 밤새지 않냐고 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까 우등생들이 하는 걸… 제가 하고 있더라고요. 속으로는 약간 한 번 칭찬해줬어요.





LE: L.S.V.한테… (전원 웃음)

네. L.S.V.한테… 너 이 자식 한국 와서… 고생이 많다. (웃음)





LE: [Pentoxic]도 그렇지만, [Microsuit]도 은근히 참여진이 많아요. 처음부터 그렸던 그림부터 많은 참여진을 염두에 두었는지, 섭외에 난항도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섭외에 난항은 없었고요. 1집 때도 포함해서 제가 각 곡을 프로듀싱했건, 안 했건 앨범 전체 프로듀싱한 건 저라고 볼 수 있는데요. 신기한 게 들었을 때 혼자 해야겠다 싶은 곡이 있고, 피처링이 있는 곡은 거의 다 처음에 딱 듣자마자 (게스트가) 떠올랐던 것 같아요. 2안으로 갔던 적이 한두 번? 그래서 2집 때도 작업할 때 곡을 쓰고, 하나하나 들으면서 만약에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면 거의 요청을 했었죠. 그런 아이디어나 이런 건 작업 초반부에 떠오르더라고요. 개인적으로도 그런 건 신기한 것 같아요. 항상 결과가 만족스러웠고… 아, 샛별 누나 같은 경우에는 이걸 얘기 안 할 수가 없는 게… 축구 선수로 치면, 약간 애국심을 담아서 얘기하면 박지성 같은 느낌이에요. ‘Unsung Hero’죠.





LE: 까메오 같은 느낌이라는 거죠?

까메오라기보다는… 레알 마드리드(Real Madrid)에서는 토니 크루즈(Toni Kroos)죠. (전원 웃음) 드러나지는 않는데, 엄청난 보물인 거죠. 곡 사이사이, 요소요소에 진짜로 제가 필요했던 걸 다 채워줬었어요. [Microsuit]를 만들면서 여자 목소리가 필요했던 건데, 사실 샘플은 한계가 있잖아요. 제가 명확하게 구상하는 그림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정말 구현해주셨었어요. 부탁했을 때도 굉장히 흔쾌히 수락해주셨고요. 그래서 그때 앨범 크레딧에도 ‘Special Performer’인가로 써놨을 거예요.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웃음)





LE: [Microsuit]를 들어보면, “Separate”이나 “Go (Teleport!)”와 같은 트랙을 통해 어떤 하나의 세계로 빠져드는 느낌을 주는데요. 그러고 나서 댄서블한 트랙이 연속적으로 나오다가 후반부에 “Fluid”라는 트랙이 나오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트랙이 다른 트랙에 비해서 차분하고, 이질적이어서 살짝 생뚱맞다고까지 생각했었는데요. 당시에 앨범에 수록했을 때는 어떤 의도였었는지, 또 생뚱맞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들으시는 분에 따라서 다를 수가 있는데, 저는 앨범을 하나로 바라보거든요. 영화처럼요. 장편의 것으로 보고, 제목, 내용, 트랙 배치 등을 통해 유기성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데… [Microsuit] 같은 경우에는 “Fluid”가 뒷부분의 트랙들과 앞부분의 트랙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주는 트랙이었어요. 만약 그 사이에 연결부가 더 있어야 했다면 트랙리스트가 더 길어졌을 거예요. 근데 저는 그때 당시에 애초에 앨범을 시작할 때부터 12트랙을 정해놨었어요. 앨범이 너무 길어지면 (듣는 분들이) 어떤 곡이 좋다고 하실 수는 있지만, 앨범 전체로는 못 들으실 것 같더라고요. 아무튼, 개인적인 의도는 그런 연결부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던 거고, 들으시는 분들에 따라서 그렇게 느끼실 수는 있죠. 왜냐하면, 곡의 바이브가 갑자기 처지니까요.





LE: [Microsuit] 때는 비주얼적인 면모도 인상적이게 가져가려고 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비주얼적으로도 다른 걸 보여줘야겠다는 욕구가 강하셨는지 궁금해요.

물론이죠. 저는 1집 때도 그랬어요. 펜토라는 래퍼가 만들 때도 캐릭터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대신 제가 잘할 수 있는 것, 잘 어울리는 것. a.k.a.가 건 랩이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죠. [Microsuit] 때 같은 경우에는 사실 힙합이라고 부를 수 없는 코스튬이었잖아요. 근데 사실 거기서도 드러났다고도 보는데요. 사실 뉴에라가 랩을 더 잘하게 만든 아이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웃음) 어떻게 보면 그런 의도가 우회적으로 담겨 있다고 보시면 돼요. 제가 하려고 하는 것들이 다 통일성이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행동까지 포함해서요. 제가 의도를 심어놨는데, 안 드러난 경우도 많은데, 그런 것들을 또 일일이 설명하면 좀 웃기잖아요. 멋이 없어요. 캐치해주시면 감사하고 그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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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제가 예전에 2008년쯤에 공연을 봤을 때도 하드 모히칸, 롱코트, 고글형 선글라스를 쓰셨던 걸로 기억해요. 그 하나하나가 캐릭터의 일부인 건가요?

네. 저는 시그니처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선글라스도 사실 저는 고글만 쓰고 싶은데, 사람들이 고글을 잘 안 사나 봐요. 고글이 거의 없어요. 아무튼, 모히칸 머리랑 고글 선글라스만 떠올려도 펜토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5년이나 쉬긴 했지만, 그 사이에도 (그 이미지는) 유지했습니다.





LE: L.S.V.도 생각하고 계시는 비주얼이 있으신가요?

아뇨. 왜냐하면, 걔네는 숨겨진 애들이기 때문에… (웃음)





LE: 히치하이커(Hitchhiker)처럼 홀로그램으로 만들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그런 아이디어 좋죠. 저는 사실 칸예 웨스트(Kanye West)가 진짜 부러워요. “All Day” 무대에서도 화염방사기로 퍼포먼스했잖아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잖아요. 너무 부러워요. 결과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확신이 있어요. L.S.V.가, 아니면 펜토가 한국 음악 씬을 뒤집어 놓을 무언가를 가져올 거라는 걸요. 아무튼, 칸예 웨스트 부러워요.





LE: [Microsuit] 역시 한국대중음악상 힙합/랩 부문에 오르는 영예를 안게 되는데요. 하지만 앞서 잠시 얘기가 나왔던 것처럼 앨범 자체가 많이 회자되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그런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세요.

아주 작게는 있었는데, 크게는 없었어요.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계속해서 회자되게끔 제가 만들어야겠고, 또다시 평가받을 수 있는 앨범이에요. 그때 당시에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더라고요. 저는 이 앨범이 클래식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평가 받지 못한다면 빠진 요소는 시간일 거라고요. 지금도 저는 마찬가지라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금 [Microsuit]가 사람들 입에 얼마만큼 오르내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언젠가가 올 거로 생각해요. 근데 그렇게 되려면 제가 꾸준히 좋은 음악을 해야겠죠. 그냥 사라졌는데, 갑자기 그런 얘기가 나오지는 않을 테니까요.





LE: [Microsuit]가 발매된 이후에는 소울 컴퍼니가 얼마 더 가지 않아 해체하게 됩니다. 해체했을 때 기분이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계약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서 더콰이엇 씨가 나가고 그랬잖아요.

되게 웃긴 데… (웃음) 나중 가서 안 건데요. 제가 들어갔을 때 이미 그 지경이 되어있었더라고요. 계속 소울 컴퍼니였던 친구들은 이미 그 내부적인 고름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는데, 그걸 타개하기 위한 움직임 중 하나가 저나 마이노스(Minos) 형이었던 거죠. 아마 맞을 거예요. 아무튼, 싸인은 했고, 시간은 지났고 했으니까 제 본분은 해야 했죠. 당연히 아쉬움이나 인간적으로 고맙고 미안한 감정은 당연히 있었죠. 근데 아무래도 저는 기간이 짧다 보니 그 정도? 요즘도 볼 사람들은 봐요. 만나서 그때 얘기하면 싸우는 건 아니더라도 감정 격해질 때도 있고 하는데, 근데 저는 그런 게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그게 어떻게 보면 저를 포함한 살롱 사람들이 보는 거랑 마찬가지죠. 오히려 서로 덮고 있고, 얘기 안 하는 게 더 비정상인 거 같아요.





LE: 그래도 마지막까지 열심히 활동하셨어요. “You Never Know”나 본킴(Born Kim) 씨와 발표한 “Dirty Ghetto Prince”, “Danger”까지 싱글로 발표하셨었는데요. 특히, 본킴 씨와는 두 분 다 스타일리쉬하다 보니 케미가 잘 맞았었는데요. 어떻게 함께 하게 되셨던 건가요?

일단 본 킴 형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먼저 연락이 왔었고요. 저는 일단 뮤지션뿐만 아니라 모든 아티스트을 볼 때 중요시하는 요소 중 하나가 아이덴티티거든요. 되게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런 게 갖춰진 형이었고… 만나서 나눈 대화에서 묻어나는 사상이나 마인드도 좋았고요. 그리고 그때 지슬로우(G-Slow)가 곡을 다 썼었는데… 그 친구 전역했는지 모르겠는데…





LE: 아직… 군대에 계실 거예요.

걔는 왜 이렇게 오래 있지?





LE: 남들에 비해 길게 느껴지는…

작년 연말에 소울 컴퍼니 모였을 때, 그때도 “걔는 아직도 전역 안 했어?”라고 했었는데… (전원 웃음)





LE: 이제 올해 나오시겠죠.

올해 안 나오면 직업 군인인데… (웃음) 그 친구도 엄청 재능이 좋은 친구예요. 작업하기 이전부터도 개인적으로 좀 기대를 했었어요. 재미있는 그림이 나오겠다 싶어서요.





LE: 혹시 앞으로 본 킴 씨와 다시 같이 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지금 당장은 없는데, 기회가 되면 하겠죠? 제가 5년 쉬는 동안 본 킴 형이 한 번 얘기한 적이 있긴 했어요. 근데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안된 것도 있고… 지금 같은 경우에는 원래였으면 나왔어야 할 제 결과물들이 안 나온 게 워낙 많아서요. 그래서 올해 목표는 다작이에요. 당연히 질적인 부분은 신경 쓰겠죠. 지금 준비된 것만 해도 올해가 무지 빠듯할 것 같아요. 그런 음악적인 어떤 응어리들을 다 털어내면 그때쯤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LE: 오스카 엔터테인먼트와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해볼게요. 계약 당시 주변 상황이나 배경 같은 건 어땠나요?

소울 컴퍼니 있을 때, 오스카 엔터테인먼트에서 러브콜이 왔었어요. 그때는 회사가 있다고 거절했는데, 소울 컴퍼니가 얼마 뒤에 해체를 했죠. 그 소식을 듣고 오스카 엔터테인먼트에서 다시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때 제 나이가 스물여섯인가, 스물일곱 정도였는데, 당시 [Microsuit]를 낸 뒤 힙합과 랩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저는 평생 좋은 음악을 하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제 능력이나 결과물들이 인정을 받고 해야 하잖아요. 그때 당시 언더그라운드 씬에도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러던 찰나에 메이저 회사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스스로 동기 부여가 될만한 뭔가가 있을 거로 생각했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MC 몽 스타일의 ‘팔리는 음악’을 생각했던 건 아니에요.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가 공중파에서 1위를 했을 때를 머릿속으로 그렸던 거죠. 그걸 힙합이 아니라  ‘어? 쟤 뭐지?’하는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음악으로 하는 걸 꿈꿨던 거예요. 그렇게 계약을 맺었어요.





LE: 회사에서 ‘음악적으로 터치하겠다.’ 같은 이야기는 특별히 오가지는 않았던 건가요?

일단은 터치를 안 하겠다고 했었죠.




LE: 제가 알기에는 오스카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 펜토 씨의 작품이 단 한 곡이에요. 더블케이(Double K) 씨의 “랩운동”이죠. 그렇게 오랜 기간 몸담았음에도 아티스트로서 결과물이 단 한 곡만 나왔던 이유가 궁금한데요. 이 부분에 관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메이저 씬에 첫발을 내디딘 게 그때에요. 그쪽 세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처음 본 거죠. 그래서 계약하기 전부터 문제를 마주해도 잘 대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이런 문제는 어떤 경우가 되든지 한 번은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어요. 능수능란하게 대처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죠. 제 삶의 방식도 그래요. 정공법을 좋아해요. 내줄 걸 내줬는데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면 그때 버리는 거예요. 그전부터 항상 의심하고 그러는 건 제 방식이 아니에요. 사기를 당해도, 저한테 뭘 빼먹으려고 한다고 해도, 그전까지는 100% 신뢰를 주려고 해요. 그중 한 명이라도 신뢰를 돌려주면 괜찮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래서 계약한 다음부터 회사가 요구하는 것들은 다 해줬어요. 프로듀싱도 했고, 랩도 가르쳤고, 엔지니어 일도 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생각하는 음악과 그림을 가지고 회사를 설득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거를 위한 기간이었다고 봐요. 그 이후 제 개인 커리어를 위한 앨범을 얘기했는데, 회사에서는 좋은 뮤지션들이 있으니 그분들을 위한 지원군이 되길 바랐던 것 같아요.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에요. 물론, 내 새끼들이 못 나오는 건 안타까웠지만, 그런 부분을 크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내가 역할을 잘하면 뭔가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LE: 그러면 앨범 발매를 바라긴 했지만, 회사 쪽과의 방향이 맞지 않았던 건가요?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 얘기조차 나오지 않았어요. 하고 있다가 보면 ‘지원군의 역할을 1년 정도만 좀 더 해보자.’라는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근데 그렇게 얘기한다고 제가 막 재고 그러는 건 너무 싫더라고요. 저는 알겠다고 하고 넘어가는 타입이에요. 그렇게 계약 기간이 다 됐고, 서로 생각하는 미래의 그림이 다르다는 걸 깨닫고 회사랑 이별하게 된 거죠.





LE: 더블케이 씨의 하이프 맨도 좀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2012년, MAMA 무대에서 라이브 퍼포먼스도 하셨는데, 당시 라이브 셋으로 하다 보니 무대 연출에 대한 고민도 대단히 많으셨을 것 같아요.

흥미로웠어요. 더블케이 형 같은 경우는 오스카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알게 됐지만, 본 형처럼 인간적으로든, 음악적으로든 참 좋아하고 아끼는 형이에요. 작업도 재미있었던 게, 그 형은 완전 힙합이에요. 그래서 협업을 하면 신기한 게 많이 나왔어요. 자극을 많이 받기도 했죠. 퍼포먼스 작업 자체는 무척 재미있게 했어요. ‘엠넷의 MAMA’라는 퍼포먼스의 한 그림이 되는 거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저는 해외 나가서 재미있는 사람들이랑 볼 거 보고 그러는 게 더 큰 즐거움이었어요. (웃음) MAMA에서 공연한 그 곡도 제가 쓴 건데, 작자가 퍼포먼스 하러 나오는 건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LE: 그때 진짜 라이브 셋으로 공연하셨던 건가요?

아니요. 엠넷이, 그 똑똑한 엠넷이… (웃음) 카메라가 바로 돌아가니까 연습을 빡세게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공연 여부 컨펌을 안 해주다가 2주 남은 시점에서 엠넷이 컨펌을 해줬어요. 그때부터 패턴 작업도 하고, 드러밍 연습도 하고 그랬어요. 그때 드럼을 쳐야 하는 게 한 사십 개에서 오십 개 정도 됐어요. 2분 좀 넘는 공연인데,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엠넷은 원래 싱크로만 할 생각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정말이지 똑똑한 엠넷이에요. (웃음)





LE: 회사에서 긴 시간 지원군의 역할을 했다고 하셨어요. 그렇다면 그동안 곡을 쓰거나 엔지니어를 보는 것도 전부터 계속 연마를 하고 있다가, 회사 들어간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가요?

사실 엔지니어링을 크게 한 건 아니에요. 딱 간단한 정도. 큰 비중은 아니었어요. 프로듀싱 같은 경우는 아까 보셨지만, 제가 구사하는 장르가 무척 다양해요. 오스카 엔터테인먼트에서도 그런 면을 높게 샀던 것 같아요. 랩도 되면서 여러 가지 장르를 작곡할 수 있으니까요. 프로듀싱은 원래부터 많이 했어요. 사실 프로듀싱이라는 건 비트 메이킹보다 더 큰 그림을 감독하는 거잖아요. 저는 곡의 컨셉부터 시작해서 가사의 컨셉을 정하는 것도 다 프로듀싱이고, 아이디어고, 재산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걸 따져보면, 오스카 엔터테인먼트 들어가기 전부터 작곡했다고 봐야 맞는 것 같아요. 





LE: 그럼 오스카 엔터테인먼트에 있는 동안 몇 곡 정도 쓰신 건가요?

한 삼백 곡? 프로젝트 파일은 한 이백 곡에서 삼백 곡 되고, 완곡 된 거는 아마 못해도 서른 곡은 될 거예요.





LE: 사실 따져보면, 펜토 씨가 오스카 엔터테인먼트에 계약할 때는 안 그랬지만, 그 이후부터 힙합 레이블이 줄줄이 만들어지고, 성장하면서 기존 뮤지션들이 이합집산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단 말이에요. 그 흐름을 타고 어떤 레이블의 한 축을 담당하셨으면 솔로 아티스트로서도 가치도 더 생기고 더 활발한 활동으로 씬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 수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타이밍이 살짝 어긋났던 것 같은데, 이 부분에 관해 펜토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공감합니다. 공감하는 바입니다. (웃음) 뭔가 통달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저는 사는 게 우연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를 만나는 것만 봐도 그래요. 신기한 게 정말 많아요. 저는 부산에서 학교 다녔고, 제 친한 친구들은 다 서울로 학교를 다녔어요. 그런데 음악 한다고 서울에 올라왔는데, 부모님의 원조를 안 받으니까 친구들이 저한테 도움을 많이 주더라고요. 금전적인 것부터 여러 가지로 다요. 그냥 우연이긴 한데, 그런 부분들을 보며 ‘지금 꼭 음악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저는 음악을 계속 오래 하고 싶었고,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보면 분명 언젠가 메이저 회사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소울 컴퍼니 해체 이후 꼭 메이저 회사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뭔가 저한테 온 거죠.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어요.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회사 생활이 썩 나쁘지도 않았어요.





LE: 오스카 엔터테인먼트가 힙합과 접점이 없는 회사는 아니지만, 어쨌든 메이저 회사잖아요. 힙합에 대한 완벽한 존중이나 장르 음악에 대한 이해도 풍부한 회사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조금이 아니라 없죠. (웃음)





LE: 네. (웃음) 부족한 편인데, 그런 타입의 레이블과 계약을 염두에 두고 있는 아티스트에게 나름 해주실 충고가 있다면 한 마디 부탁할게요.

일단,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그리고 일단 하세요. 하시고 망하고 다시 하세요. (웃음) 왜냐하면, 그게 제일 빠른 길이에요. 이번 앨범의 가사에도 담겨 있는 부분이지만, 제일 정확한 건 자신이 직접 체감하는 거예요. 대신 그 전제는 본인이 흙탕물에서 뒹굴고 사지가 절단되어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날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게 갖춰져 있다면 저는 도전해보는 걸 추천하죠. 그런데 ‘그런 타입의 회사에 들어가면 끝날 것 같다.’싶으면 하지 마세요. 이게 제일 현실적인 이야기인 것 같아요. ‘계약서 읽어 보세요. 사기당할 수도 있어요.’라고 해주는 건 별로 의미가 없는 이야기에요. 본인이 고민한다는 건 사실 이미 반은 넘어간 거거든요. 그럼 해보는 게 제일 빠른 거죠.





LE: 일단 경험해보고, 느끼고, 다시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이시죠?

사람 인생은 그리 쉽게 망가지지 않아요. (웃음) 오스카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오고 얼마 안 있다가 프랙탈(Fractal) 형한테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자기가 이현우 형님이 <불후의 명곡>에서 부를 곡을 편곡하게 됐는데, 록 분위기에 조금 강한 느낌의 랩이 필요하니 제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형이랑 친하기도 해서 알겠다고 했고, 그러면서 이현우 형도 알게 됐어요. 그런데 다들 아시겠지만, 이현우 형님이 커리어 하이를 찍었을 때 사건이 터진 사람이잖아요. 아무튼, 방송 녹화 끝나고 맥주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인생 별거 없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웃음) 그때 그 사람의 이력에서 느껴지는 어떤 에너지, 말의 에너지가 확 느껴지는 거예요. 좀 아이러니한 일이죠. 그래서 별일을 별일 아니게끔 만드는 자기의 의지와 에너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만일 제 앨범이 인생 끝날 정도로 욕먹고 인간 이하의 비하를 받아도 그다음에 내놓을 카드가 있고, 본인의 의지가 있으면 판을 뒤집을 수 있다고 봐요. 현실적으로 계약이라는 게 절대 짧은 건 아니잖아요. 보통 5년에서 7년 정도인데, 그 이후에 나와서도 의사가 있으면 음악 할 수 있어요. [ADAM] 관련해서 또 얘기하겠지만, 제가 그 증거가 되고 싶기도 해요. 




LE: [ADAM]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싱글 “겨울인데…”와 “Pasta Hater”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각각 피처링한 아티스트가 팀(Tim)과 틴탑(Teen Top)의 천지에요. 어떻게 보면 이질적인 조합인데, 같이 하게 된 데에는 회사의 역할이 컸던 건가요? 

그렇죠. “겨울인데…”는 어떻게 보면 자이언티 곡이에요. 제가 반 정도 쓰고, 자이언티가 반 정도 썼는데, 곡을 탄생시킨 건 자이언티에요. 처음에는 자이언티가 노래를 부르기로 했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뤄지고 작업 기간이 길어져서 회의 끝에 보컬을 바꾸게 됐어요. “Pasta Hater”는 조금 달라요. 회사의 같이 작업할 수 있는 아티스트 목록 중에 틴탑의 천지랑 니엘(Niel) 군이 있었어요. “Pasta Hater”가 유쾌하고 트렌디한 컨셉의 곡인데, 나이 많고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은 안 어울릴 것 같더라고요. 어린 친구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고. 그래서 틴탑의 천지 군이 괜찮을 것 같아서 함께 작업하게 됐었죠.





LE: 사실 틴탑의 프론트 맨은 니엘 군이잖아요. 그런데도 천지 군과 함께 작업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그때 당시 니엘 군이 솔로 앨범 준비 중이었어요. 그래서 (천지 군과) 하게 됐어요.





LE: 그러고 나서 이번에 [ADAM]을 발표하셨죠. 일단 여러 이야기를 듣기 전에 앨범에 대해 간단한 소개부터 들을게요. PR시간입니다. (웃음)

타이틀이 [ADAM]인 이유는 제 음악적인 시초가 재정립됐다는 의미에요. 근래 3~4년 동안 있었던 제 사적인 이야기를 긴 시간의 퇴고 끝에 가다듬었어요. 남녀노소가 듣고 뭔가를 얻어갈 수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사운드적으로는 누군가에게는 이질적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텍스트적으로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역사적인 앨범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제가 원하는 의도와 감정을 소리에도 담았기 때문이에요. 소스, (곡 전체) 바이브 하나하나에 제 생각이 스며들어있어요. 그 부분까지 느껴주신다면 전무후무한 앨범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앨범 안에서도 타협을 많이 했어요. 808 같은 것도 쓰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일부러 넣기도 했어요. 앨범 중간중간 트렌디함이 느껴지실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진짜 짱인 앨범입니다. 이번엔 진심이라고요. (웃음)





LE: 앨범에 담겨있는 바이브가 조금씩 변하긴 했지만, 이번 앨범에서도 전자 음악을 하셨어요. [Microsuit]의 연장선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트렌드를 의식해서 한 것인지 궁금해요.

[Microsuit]의 연장이긴 해요. [Microsuit]와 [ADAM] 사이에 [Omega]라는 전자 음악 앨범이 있어요. 이번 앨범의 1번 트랙 “Monolith”는 [Omega]의 마지막 트랙과 연결되고, 진짜 [ADAM]의 시작은 2번 트랙 “Meteor”부터에요. [Omega]의 첫 트랙도 [Microsuit]의 마지막 트랙과 연결돼요. 미리 설명을 해드리면, [Microsuit] 마지막 트랙 제목이 “Diorama (Starship L.S.V.)”인데, 우주 멀리 떠나는 내용의 곡이에요. 스포하기는 좀 그런데, [Omega]는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은 앨범이거든요. “Universe”, “Explosion” 같은 제목의 트랙도 수록되어있고 그래요. 이번 앨범의 “Meteor”도 마찬가지예요. 혜성이 지구로 막 떨어지는 느낌을 사운드로 디자인한 곡이에요.





LE: 트랙 넘버도 1번부터 매기지 않으셨어요. 이것도 [Omega]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Omega] 작업은 이미 끝난 상태예요. 열두 트랙이고, 랩 비중도 적은 앨범이에요. <스타워즈>를 예로 들어 볼게요. 가제가 항상 붙긴 하지만, 순서가 있잖아요. 트랙 넘버링도 그런 개념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시리즈 물인데 앨범 제목은 붙어 있되, 순서는 따로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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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에이조쿠 씨랑 함께 아트워크 작업을 하셨잖아요. 그런데 단순히 아트워크만 한 게 아니라 조형물도 만드시는 등 공을 많이 들이셨어요. 여기에는 어떤 의도가 있는 건가요?

조형물 같은 경우는 엄귀현이라는 작가분이 만들어주셨어요. 엄귀현 작가님께 “조형물은 어떤 사람의 얼굴인데, 동양인도 아니고 서양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고 그냥 어떤 존재인 조형물이 있었으면 한다. 제 얼굴도 같이 섞으면 좋겠다.” 라고 말씀드렸었어요. 그래서 제 얼굴을 마스킹 뜬 다음에 조형물 성형에 들어갔죠. 보시면 눈도 짝짝이고, 원래 귀도 없었는데, 그렇게 해놓으니까 너무 외계인처럼 생겨서… (웃음) 보면 조형물의 머리 가운데에 뭐가 들어가 있어요. 그 부분은 엄귀현 작가님이랑 계속 회의하면서 결정된 부분이에요. 어떤 단순한 존재가 무엇이 되느냐를 결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뇌 같은 거죠. “Monolith”라는 곡과 연결된 부분이에요.



그리고 완성된 조형물을 에이조쿠 형한테 가져갔어요. 형님이랑도 전반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아트워크부터 해서 전부 이것저것 다요. 이번 음감회 포스터도 ‘ADAM’이라는 글자가 기둥처럼 디자인되어 있어요. 그게 머리에 박힌 기둥인 모놀리스(Monolith)를 의도한 거예요. 앨범 패키지도 열어 보면 다 검은색인데, 가운데에 흰색이 있어요. 그것도 모놀리스 같은 거죠. 그렇게 패키지, 종이의 질감, 곡의 순서, 사운드 디자인, 의상 등 모든 걸 하나로 엮어 놔야 한번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고 생각했어요. 에이조쿠 형이랑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LE: 워낙 오래 알고 지낸 사이로 통하는 게 많을 것 같아요.

그렇죠. 지금 회사는 제가 한심스러울 거예요. (웃음) 제가 굳이 안 해도 되는 걸 다 하고 있으니까요. 하다못해 기사 초안도 제가 관여하려고 했거든요. “ADAM” 곡 소개 같은 것도 직원이 하기보다는 제가 하는 게 나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아트워크를 단순히 잘하고 잘 나가는 사람에게 맡긴 다음 금액을 맞추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더군다나 이번 앨범에는 담긴 게 많아서 더 그렇죠. 이 얘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사람과 작업하는 게 좋아요. 에이조쿠 형을 만났을 때도 그런 얘기를 했어요. “이번 앨범에 디테일한 걸 다 담고 싶은데, 그러려면 마음이 잘 맞고 이야기도 통하는 사람이랑 해야 할 것 같다.”라고요. 그 형 같은 경우는 제가 지내온 세월을 다 봤으니까 가능한 거죠.





LE: 마음이 잘 맞고 통하는 사람이 에이조쿠 씨라 다행인 것 같아요.

정말 좋았어요. 에이조쿠 형이 신경 써준 것도 많고, 제 앨범 자체에도 흥미를 많이 가져줬어요. 





LE: 도훈, 게이트 플라워즈(Gate Flowers)의 박근홍, 이승열 씨와 같은 힙합 씬 밖의 아티스트 분들이 눈에 띄는데요. 어떻게 섭외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이분들이 참여 진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애초 앨범의 색깔을 남다르게 잡으셨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신기하게도 피처링 같은 경우는 작업하면서 바로바로 떠오르더라고요. 게이트 플라워즈라는 밴드는 등장부터 워낙 센세이션했고, 이승열이 형님은 제가 아기 때였던 94년에 데뷔하셨으니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뮤지션이죠. 사실 [Microsuit]를 작업할 때는 그런 분들을 알긴 해도 막상 작업할 때는 떠오르지 않았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팍팍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만나봬서 들려주고 그랬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다들 작업에 응해주셨어요. 제 진정성을 봐준 게 아닌가 싶어요.





LE: 다 안면이 없던 분들인가요?

일면식도 없었죠.





LE: 반대로 쿤타(Koonta) 씨나 이그니토(Ignito) 씨 같은 경우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들이라 곡 특유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더없이 적합한 선택지였던 것 같아요. 이 두 분이 참여한 트랙이 “Doomsday”와 “Funeral”인데, 어떤 이유로 섭외하신 건가요?

쿤타 형부터 이야기할게요. 쿤타 형이 루드 페이퍼에서 썼던 가사를 보면 어떤 캐릭터인지, 그리고 제가 왜 그 형을 떠올렸는지 아실 거예요. 완전 진짜 같은 형이에요. (웃음) 말과 행동이 다르고 기믹으로 자신을 치장한 뮤지션이 있는 반면에 말과 행동이 다 같은 사람이 있잖아요. 쿤타 형이 그런 사람이에요. “Doomsday”라는 곡 자체가 가진 바이브를 쿤타 형만큼 잘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작업하면서 재미있는 일도 있었어요. 제가 어떻게 어떻게 해달라고 부탁해도… 형이 잘 안 해요. 게을러요. (웃음) 열심히는 하는데 제 거라서 그렇게 하셨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녹음하는 날 만나서 녹음을 하려는데, 녹음은 안 하고 두 시간 반 동안 수다만 떨었단 말이에요. ARK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 하시는 승현이 형도 같이 있었는데, 형도 막 힘들어했어요. 쿤타 형이 자꾸 레게 소개하고, 다른 음악 소개하고 그러니까요. (웃음) 좋긴 좋은데 어쨌든 녹음은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진짜 웃긴 게, 30분 남은 상황에서 녹음을 다 끝냈어요. 그리고 제가 부탁한 파트만 한 게 아니라 곡 사이사이도 채워주셨어요. 덕분에 곡의 수준이 한 단계 더 높아졌죠. 그래서 그 형은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신기할 정도예요. 또, 자기가 자기 입으로 그런 이야기를 해요. “이승철 형님이랑 프리스타일 노래 배틀 했는데 인정받았다.” 뭐 그런 웃긴 얘긴데, 진짜 그런 스타일이니까 반문을 못 하겠는 거예요. (웃음) 형은 곡을 주면 노래가 나오는 사람이에요. 자메이카가 완전 몸에 배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진짜 넘버 원이라고 생각해요. 스컬(Skull) 형보다도 훨씬 위라고 생각하고요. 물론 개인적인 취향, 사견입니다. (웃음) 아무튼 쿤타 형은 그런 사람이에요. 





LE: 쿤타 씨가 얼마 전에 자메이카에 갔다 오셨다고 알고 있어요.

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앨범을 좀 들어봤는데, 진짜 완전 본토에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망할 수도 있어요. (웃음) 그런데 정말 좋아요. 깜짝 놀랐어요. 페스티벌에서 떼창하면 간지 날 그런 곡이에요. 쿤타 형이랑, RD 형의 루드 페이퍼 새 앨범 다들 꼭 들어주세요! 

그리고 이그니토 형 같은 경우도… 심판이 날이 오잖아요. 누군가는 종말을 고해야 할 텐데, 그러면 이제 이그니토 형밖에 안 남거든요. (전원 웃음) 사탄이 나와서 데려가야 해요. 낫 들고 막. 이그니토 형은 “Funeral”이라는 곡 바이브를 생각해도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어요. 적임자죠 적임자. 드럼만 잔뜩 있는 러프한 상태의 곡을 말씀드렸는데, 무척 힘들어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걱정하지 말고, 일단 가사 쓰고 작업하면 곡 나올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Funeral”은 앨범 수록곡 중에서도 후반부에 완성된 곡인데,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워요. 이그니토 형도 정말 잘해주셨어요. 





LE: 가사를 보면, 앨범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고, 트랙마다 의미가 꽉꽉 담겨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각 곡에서 드러내고 싶은 주제가 확고하게 있어요. 제 얘기지만, 어떤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들으면 공감을 많이 하실 수 있는 주제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각 곡에 담겨 있는 모든 의미를 한데 모아 짜낸 곡이 마지막 곡, “Now Or Never”예요. 그래서 이 앨범은 에너지가 넘치고, 의지가 가득한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듣는 분들의 동기도 부여하고, 용기를 심어줄 수 있는 가사도 많아요. 아까 우스갯소리로 ‘남녀노소 모두 들을만한 앨범’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진짜 어린 학생, 어른, 제 또래 모두 에너지를 얻고 사색을 할 수 있었으면 해요. 그런 노력을 기울여 만든 앨범이에요.





LE: 자기 생각이나 감정 같은 걸 담아낸 작품을 만들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는 아티스트가 우리나라에 상당히 많잖아요. 그런데 펜토 씨는 이번 앨범에 생각이나 감정 같은 걸 풍부하게 담아내셨어요. 그래서 그런 분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화자를 단순화한 게 눈에 띄어요. 펜토라는 아티스트의 삶을 세밀하게 묘사하지 않으니까 펜토의 이야기가 아닌 그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느껴져요.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필요한 부분 외에는 최대한 배제했어요. 살롱 얘기도 “Now Or Never에 넣고 싶었어요. 눈물 나고 막 그런 이야기를 넣고 싶었는데, 저만 아는 거니까 못 넣었죠. 물론, 그 감정에도 공감을 해주실 분들이 계시겠죠. 그런데 그렇게 되면 앨범의 원래 의도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가사 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평이한 문장 외에는 되도록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어요. 나만 아는 얘기가 아니라, 조금만 생각하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게끔요. 이런 작업을 굳이 한 이유는 제 삶을 통해 보통 사람들도 뭔가를 느끼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LE: [ADAM]을 [Omega]보다 먼저 낸 이유도 현재 펜토 씨 상황이 오스카 엔터테인먼트를 나오고 본인의 음악을 하고 있기 때문인 건가요?

네. 그 이유가 크죠. 그리고 [Omega] 같은 앨범은 지금 내면 망해요. 확실합니다. 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시기상 [Microsuit] 보다 저평가 받을 수 있어요. 오랜만에 컴백했기 때문에 여전히 ‘래퍼 펜토’의 이미지가 강한데, 앨범에는 랩도 별로 없고 그렇거든요. 트렌드랑 별로 관련이 없는 앨범이기도 해서 나중에 내도 될 것 같아요. [ADAM]은 새로 태어난 저를 표현한 앨범이기에 지금 이 시기에 나와야 하는 앨범이에요. 내용 중에는 저 스스로 약속하는 것도 있어요. 사람들한테 “나 담배 끊는다. 다이어트 할 거다.” 라고 하면 보는 눈이 많아지잖아요. 그런 식으로 전국에 선포하는 거죠. 





LE: 트랙을 만들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물론, 프로듀서 L.S.V.의 입장에서요.

한두 곡 빼고는 리듬부터 먼저 했어요. 그 리듬 가운데서도 원시적이고 전형적이지 않은, 그러니까 음악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뭔가를 두드리는 느낌의 소리나 리듬감을 기초로 작업을 시작했죠. 완성됐지만 앨범에 담지 않은 곡이 한 세 곡 있어요. 그 곡들도 말씀드린 방식으로 작업했었죠. 앨범의 컨셉이 태초의 것이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소리로 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이게 시리즈 물이니까 이 전의 앨범에서 스며드는 바이브 위에 미래지향적인 신스라든가, 앞서 말씀 드린 현대적인 808 드럼 같은 걸 가미하기도 했어요. L.S.V.의 관점에서 이전 앨범의 흐름을 이어가면서 앨범 컨셉에도 맞고 요즘 사람들도 들을 수 있게끔 신경을 쓴 거죠.





LE: 싱글 발표 때와는 다르게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는 느낌이 확 들어요. 그래서 행보를 가져가는 데도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요즘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사실 이번 앨범에는 면죄부 같은 성격도 있어요. “Pasta Hater”나 “겨울인데...”에 대한 보상의 의미도 있고, 앞으로 제가 할 음악에 대해서도 보상의 의미가 있어요. 보상이라는 게 좀 웃긴 표현이긴 한데, 이건 확실하게, 자신 있게 약속드릴 수 있어요. 저는 지난 5년 동안 “Pasta Hater”, “겨울인데…”라는 싱글을 냈고, 그다음에 낸 앨범이 [ADAM]이거든요. 저는 앞으로 5년 뒤에도 또 할 수 있다고 봐요. 갑자기 제가 사업하거나 알바를 뛰다가 인생 망할 것 같아도 또 앨범을 들고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의 의지와 능력이 그에 이유로 충분하다고 봐요.



그래서 앞으로 행보에 대해 생각하면 지금도 생각이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지만, 아무튼 저는 회사에 소속된 뮤지션이잖아요. 동료 의식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회사를 바라보면 그쪽도 그렇게 볼 거예요. 그러면 시너지 효과도 없겠죠. 그래서 회사에서도 반길만한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고 봐요. 어떻게 보면 회사에서는 이번 앨범을 양보한 거거든요. 제 입장에 그런 것도 있어요. 타이틀곡 “MMM” 내용이 그런데,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한때는 음악을 위해 숭고한 삶을 살기를 바라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가족, 친구 등 제 주변 사람들이 다 힘들어지더라고요. 이제 더 그렇게 하면 시기적으로 안 되겠다 싶어서… 되게 복잡한데, 다음 행보가 무엇이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올해 뭔가 최대한 많이 할 거고, 그 뭔가에 대해서 사람들의 반응은 다르겠지만, 그다음, 또 다음다음을 보면 생각이 많이 달라지실 거예요. 꾸준히 관심 있게 봐주셨으면 해요. 





LE: 말씀하시는 걸 보면 어떤 판단을 하실 때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자존감도 높으신 것 같고요.

그렇다고 이해타산을 따지는 건 아니에요.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상식만 생각해서 결정하려고 해요. ”주변에서 사기를 당했으니 안 돼. 가면 고생만 할 거야.”라고 가변적인 걸 따지며 판단하면 너무 생각해야 할 게 많아지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제가 처음에 그렸던 그림을 놓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있을 것 같기도 해요.





LE: 활동을 둘러싼 환경이 많이 바뀌었잖아요. 펜토라는 이름으로 앨범이 5년 만에 나오는 거기도 하고요. 그런 부분에 대한 우려는 없으신지 궁금해요.

오스카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면서 원래 친했던 래퍼들 말고는 새로운 래퍼들과 교류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이제 주류를 이루고 있잖아요. 그러니 우려는 당연히 있어요. 아니, 우려라기보다는 대전에서 서울 올라갈 때의 느낌 같아요. 오랜만에 돌아와서 우려도 자연스럽게 있지만, 우려만 있는 게 아닌 우려에서 다시 회복되는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해요.





LE: 혹시 L.S.V.로서 라이브 셋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진짜 하고 싶죠. 아주 아주 아주 먼 제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어요. 당연히 스눕 독(Snoop Dogg)처럼 나이 들어서도 음악을 하면 좋겠지만, 나이라는 게… 사실 문화는 젊은 거잖아요. 변하는 것 중에서도 제일 빠른 속도로 변하고요.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늙은이가 아무리 트렌디한 걸 해도 플레이어로서 할 수 있는 건 각 포지션마다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 점을 따져보면, 나중에 L.S.V.가 라이브 셋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봐요. 그 시기가 빠를 수도, 느릴 수도 있죠. 그런데 라이브 셋은 전부터 생각하고 있긴 했어요.





LE: 쌓여있는 작품도 많고 한데, 이걸 빨리 내고 또 보여줘야겠다는 조급함은 없으신 것 같아요. 

네. 없습니다.





LE: 요즘 듣고 계시는 건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요.

요 라 텡고(Yo La Tengo)라는 인디 밴드 앨범을 요즘 다시 듣고 있어요. 그리고 이름이 어려워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게사펠슈타인(GESAFFELSTEIN)도 좋아요. “Pursuit”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까먹고 있다가 미디어 관련 채널에서 다시 보고 기억나서 듣고 있어요.





LE: 힙합보다는 다른 쪽 장르를 더 들으시는 것 같아요.

네. 전에는 재미있는 힙합 앨범이 많았는데, 요즘은 별로 없어요. 물론 재미있는 트랙이 있긴 하죠. 그런데 자기 복제도 많고, 한계도 뚜렷한 곡이 많아요. 릭 로스(Rick Ross)도 [Teflon Don] 이후 발매한 앨범을 다 들어봤는데 뭐 없더라고요. (웃음) 다 비슷하던데요.





LE: 런 더 쥬얼스(Run The Jewels)는 좋아하실 것 같아요. 

진짜 짱이에요. 엘피(El-P)는 예전에 솔로 앨범 냈을 때부터 엄청 좋아했어요. 푸샤 티(Pusha T)도 꾸준히 듣고 있어요. 요즘 신보들은 장르 안 가리고 많이 찾아들어요.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도 다시 듣고 있어요. 그리고 또 뭐가 좋더라… 아, 요즘에는 [ADAM] 진짜 많이 들어요. (전원 웃음) 그리고 혼자 막 감동의 눈물을… 디안젤로(D’ Angelo)도 요즘 많이 들어요. DJ 슬러고(DJ Slugo)의 “Ghetto”라는 곡이 있는데 좋아요. 끝도 없네요.





LE: 인터뷰가 막바지입니다. 저희 힙합엘이는 자주 오시나요?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나요?

힙합엘이 사랑하죠. 아마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럴 거예요. 한국에서 힙합하는 사람들은 되게 고마워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뮤지션 당사자에게도 좋은 콘텐츠가 많거든요. 사실 그런 게 있었어요. 지금처럼 사람들이 외국 힙합에 관해 관심이 없었을 때, 이미 한국에서 랩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었거든요. 그러면 우리끼리만 알고, 팬들은 그 문화를 잘 알 수 없는 상태거든요. 그런 부분이 (힙합엘이를 통해) 해소되는 것 같아요. 사랑합니다. 진심입니다. (웃음) 이번엔 진심이라고요.





LE: 마지막으로 질문에 없어서 하지 못한 말, 인터뷰 소감 등등 자유롭게 얘기해주세요.

저는 사람들이 음악을 많이 아꼈으면 좋겠어요. 각자의 삶처럼 타인의 삶을 존중한다면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이번 앨범은 그냥 들으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느껴질 거예요. 꼭 들어주세요. 스트리밍도 상관없어요. 회사 때문에 공짜로 뿌릴 수는 없지만… (웃음) 이번에 사실 한 곡을 공개하려고 했었는데, 유통사에서 못하게 했어요. 그런데 그런 점은 이해해야 하니까… 아무튼,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행복하려고 노력하면 행복해질 거예요. 화이팅. 그리고 포부는 말로 하는 것보다 보여주고 들려주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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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인터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관련링크 |
쥬스 엔터테인먼트 공식 블로그: 링크
펜토 트위터: @xPENTOx / 페이스북: 링크 / 인스타그램 : xpentox



인터뷰, 글 | Melo, Bluc, Pepnorth
사진 제공 |Juice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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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2
  • 3.22 22:03
    1집 아직까지도 잘 듣고있는데 오랜만이네요.. 처음 샀던 앨범이 ja & giant 의 sound craft 였는데...

    살롱 참 좋아햇는데..
  • 3.22 22:11
    펜토 1집이랑 마이크로수트 미친듯이 좋아했었다가 잊혀졌었는데 이렇게 다시 돌아와줘서 고마울따름.
  • 1 3.22 22:13
    국내게시판에 펜토 엄청 좋아하시는분 계시던데
    좋아하시겠네
  • 3.22 22:47
    펜토는 어디부터 들어야할까요?? 계속 들어야지 들어야지 했는데 못듣다가 인터뷰보니까 더 듣고싶네요.
  • 3.22 22:50
    @LogiB
    1집부터 들으셔용!
  • 3.22 22:54
    @Prairiewolf
    순서대로 가나요??
  • 1 3.22 22:57
    @LogiB
    네 그냥 1집 2집 3집 순으로 들으시면 되요

    펜토는 호불호가 꽤 갈리던 래퍼여서 (요즘은 언급이 잘 안 되고 있죠ㅜ)

    1집과 2집은 서로 많이 달라요
  • 1 3.22 23:01
    @LogiB
    그냥 1집부터 들으셔도되요.
  • 펜토님 2집진짜개좋음
  • 1 3.22 23:09
    LSV가 펜토인 건 사실 그 당시에 살롱과 친하던 지인에게서 들었는데 어디에다 말도 못하고 답답했던 기억이...
  • 3.22 23:19
    폥툐니ㅁ... 섕이ㅇ츄캬햔댜교 폐몌뵤냬ㅆ뉸뎨 댭쟈ㅇ듀 얀햬쥬시규...미워얀~~~!!!ㅠ~ㅠ

    그럐듀 쟤갸 귝냬예셔 쟤ㄹ 죠야햐뉸 럐펴~~!!♥♥
  • 3.22 23:53
    아 영국 일본계의 혼혈 쌍둥이 여기서 개뿜었네요 ㅋㅋㅋㅋㅋ LSV가 펜토였다니 뭔가 예상은 했는데 자꾸 2명이라고 하시길래 잘못짚었나 했습니다ㅋㅋ
    기다린 시간도 길었고 정말 힙합씬에서 가장 반가운 이름이에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알아가는게 정말 많네요 항상 응원합니다!!
  • 3.23 00:53
    정말 본인의 음악을 제대로 하고있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음악 많이 들려주세요! 이번앨범도 정말 잘듣고있습니다
  • 3.23 01:23
    인터뷰가 드디어 나왔네요
    저는 2집으로 빠지고 완전 팬이 됬는데
    진짜 5년만에 정규라는 말에 혼이 나가는 줄 알았습니다ㅋㅋ
    이번 앨범 퀄리티도 상당히 뛰어나고
    시리즈격인 오메가도 빨리 듣고 싶고
    그동안 쌓아두신것들 올해 많이 풀어주셨으면 합니다!
  • 3.23 01:41
    펜토 2집은 정말 국내힙합중 손에 꼽을 만한 명반이라 생각합니다. 개짱임
  • 3.23 13:40
    옛날엔 좋앗는데 최근에 낸 싱글들은 기대이하엿어요ㅠ 정규 기대해볼게용
  • 3.26 08:42
    파스타 헤이러 듣고 실망해서 안 들어보려고 했는데
    이거 보니깐 또 함 들어봐야 겠단 생각이 드네요 ㅋㅋ
    파스타 헤이러는 정말 전자음악 모르는 사람이 만든 트랙 느낌이었어요
    굳이 이거에 왜 랩을 얹어야 하지? 같은 생각도 드는데
    그렇다고 랩을 안 얹조 미니멀로 가면 심심할 거 같은 곡
    컨셉만 재밌었고... 걍 펜토 컴백에 의의가 있던 곡 같아요
  • 3.26 08:42
    그래서 좀 실망했는데 이 인터뷰 보니깐 앨범 전체 들어보고 판단 해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 3.26 19:50
    인터뷰 정말 감명깊게 잘읽었어요
  • VT
    3.27 12:10
    이야 긴 인터뷰 정말 재밌게봤습니다. 아직도 제 아이리버mp3안에는 아케바 fu 아직도 있어요ㅠㅠ 정말 좋아함
  • 4.4 10:42
    감히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입니다. 본토주류힙합만 듣던 제게 한국에서도 이런 움직임, 이런 음악을 하는 분이 있구나를 깨닫게 해준 정말 리스펙하는 형님..살롱 공연 거의 하나도 안빼먹고 갔었는데 군대 갔다오니 활동이 거의 사라져서 참 아쉬웠죠 꾸준히 좋은 음악 좋은 모습 보여주세요
  • 8.23 02:10
    1집 너무 좋게들었는데 오랜만에 보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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