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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거 힙합과 게토화한 한국사회

mc 워너비2017.03.30 11:15조회 수 1578추천수 13댓글 23

김봉현 힙합 평론가가 인터넷 웹진 ize에 기고한 글을 읽었습니다. 창모, ‘일리네어 키드의 등장이란 글인데요. 창모의 마에스트로차트 역주행의 원인을 살피는 걸로 시작해, 창모가 역주행한 배경이 일리네어의 상징자본을 상속받은 것이라 진단한 후, 이 현상이 모든 젊은이의 꿈 “‘하고 싶은 일로 성공해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얻는 삶'”으로 통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후 일리네어의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일리네어 키드가 탄생했다고 결론을 맺습니다. “일리네어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삶의 태도를 제시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팬들은 그것을 내면화하며 일리네어의 발걸음을 따라간다.”

 

멍한 기분이 들더군요. ‘마에스트로차트 역주행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고, 음악 평론가가 그걸 분석하는 거야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차트 역주행은 그렇게까지 드문 현상이 아니죠. 그 함의를 꼭 사회적인 방면에서 찾아야 하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그로부터 이르는 결론이 전혀 정확한 거 같지 않아요. 간단하게 말해보죠. 한국에서 창모나 김효은처럼 랩스타로 데뷔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젊은이들에게 보여줬다? 게다가 일리네어식 자수성가가 젊은이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삶의 태도? 이 글은 곳곳에 의심스러운 진술로 차있습니다. 김봉현이 다루는 주제는 결국 한국에서 스웨거힙합이 흥행하는 이유, 그것이 음악 팬들, 나아가 사회의 기층과 어떻게 호응하고 있는가, 와 상통합니다. 이 점에 대해 평소 생각하던 바를 풀어보겠습니다.

영화 장르 이론에 도상(icon)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장르의 기본 구성단위라고 생각하면 돼요. 히어로 무비에선 히어로가 변복하는 유니폼이 도상이고, 필름 누아르에선 양복과 시가, 팜므파탈이죠. 슬래셔 무비라면 사이코패스와 전기톱, 서부극이라면 황야와 권총, 열차, 인디언, 모뉴먼트 밸리 같은 거대한 계곡이 도상이지요. 음악장르 힙합에도 도상이 있습니다. 가사적 서사가 있고 캐릭터가 있으며 그것들로 구성되는 장르적 관습이 확고한 음악이니까요. 힙합의 도상은 금시계와 금목걸이, 롤스로이스, 멋진 몸매의 'shawty', 랩스타를 등쳐먹는 'Bitch', 스트릿과 게토 같은 공간입니다. 이 중 게토와 스트릿은 힙합의 장르적·ᆞ문화적 서사를 길어 올리는 원천입니다.

 

미국 힙합에는 왜 그렇게 자수성가와 부귀영화의 가사가 많을까요. 개인에 대한 사회의 책임과 복지 시스템을 강조하는 유럽과 달리, 신대륙 개척에서부터 시작한 생존주의와 자유 시장경제에 입각해 개인의 자기계발을 강조하는 미국적 전통이 한 배경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랩스타들이 척박하고 핍박받는 흑인 공동체 게토에서 성공을 쟁취했기 때문입니다. 가난과 범죄의 무간도 같은 뒷골목에서 탈출하고 싶지만, 사회적 지원은 없고 흑인의 사회 진출이 차별당하는 상황에서 단 하나의 탈출구가 음악을 통해 스타가 되는 것입니다. 스웨거 가사를 읽어보면 게토-허슬-스웨거가 서사적 세트를 이루는 경우가 많잖아요? 어린 시절에 불행했지만 죽도록 랩을 해서 지금은 부귀영화를 누린다, 이 넘치는 돈과 여자는 다 내 손으로 거머쥔 것이다, 라는 자전적 스토리요.


여기엔 윤리적 딜레마가 있습니다. 래퍼들은 돈 자랑을 하는 한편 게토를 고향이라 부르며 애정을 바칩니다. 하지만 성공의 서사를 빛내주는 배경화면이 되기 위해선 게토는 언제까지나 궁핍한 채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게토에 남은 형제들 모두가 살만하다면 그 곳을 빠져나온 자신의 영광이 퇴색된다는 간단한 이치지요. 게토는 장르적 관습 스웨거의 성립 전제이고 양자는 상징적 착취관계에 있습니다힙합이 변질되었다, 예전과 달리 스웨거 타령만 넘친다, 따위의 비판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 힙합씬에서도 제기되는 레퍼토리입니다. 힙합 밴드 더 루츠의 드러머 퀘스트러브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죠. 과거 래퍼들의 스웨거가 런-디엠씨의 ‘My Adidas’처럼 듣는 이가 얼마든지 따라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면, 지금은 도저히 꿈꿀 수 없는 환상 같은 사치품을 자랑하며 듣는 이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고요.


스웨거 가사가 본격적으로 수입되고 있는 한국에서 게토의 도상적 기능을 하는 건 무엇이냐. 좁게 보면 언더그라운드고 넓게 보면 한국사회입니다. 도끼와 콰이엇 같은 언더 출신 2세대 래퍼들은 밑바닥에서 이곳으로 왔다며(came from the bottom) 스스로 이룬 성공신화를 과시하지요. 여기서 밑바닥은 페이도 받지 못하고 작업하던 언더 씬입니다. 불과 몇 년 전 까지 힙합은 비주류 장르였습니다. 한국은 인디 예술가의 생활고가 사회적 문제가 되는 나라고요. 이런 특수한 맥락을 통해, 탑 연예인에 비하면 소박한 일리네어의 성공이 극적인 이펙트를 얻는 겁니다. “한국에서 힙합은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할 때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타협 없는 힙합을 고집하며 결국은 거대한 성공을 이루어낸 한국 최초의 (진정한) 랩 스타라고 김봉현이 일리네어에게 바치는 찬사처럼 말입니다. 이런 언더와 스웨거의 대립항 속에 언더는 탈출해야 할 수난의 장소로 은연중에 규정됩니다. 자본에 길들지 않는 자의식과 자존감의 창작지대라는 언더 혹은 인디 본연의 정체성이 부서지는 거지요.

 

한편 <쇼미더머니> 출신 래퍼들이 부르는 인생역전, 젊은 갑부의 서사는 젊은 세대가 처한 사회적 빈곤과 공명합니다. 88만원 세대라는 개념으로 젊은 세대의 빈곤이 의제화된 건 이미 00년대 후반입니다. 알다시피 실업난은 해결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매해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죠.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절대다수 청년들이 있기에 밥 먹듯이 외제차를 사 젖히는 래퍼들의 삶이 특별해 보이고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쇼미더머니> 신드롬이 암시하는 현실 하나는 그겁니다. 한국 사회가 거대한 게토가 되어가고 있다는 거지요. 시청자들은 빈곤이 일상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탈출하는 젊은 래퍼들의 승천의 서사에 취합니다. 상업씬 규모에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있고 저변도 방대한 미국 힙합에선 랩스타의 꿈이 게토를 벗어나는 현실적 수단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안 그렇죠. 아무리 힙합이 상업화됐다지만 랩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잡아야 백 명쯤 될까요. 비와이와 일리네어 레코즈 같은 슈퍼스타는 손가락으로 꼽아야 하고요. 한국 힙합은 상업씬 등용문이 <쇼미더머니>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쇼미더머니>도 기성 래퍼들이 돈을 더 땡기고 싶어재탕 삼탕을 불사하며 출연해 아마추어 출연자를 밀어내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었습니다. 래퍼가 돼서 도끼처럼 살겠다는 건 로또 당첨만큼 가능성이 낮습니다. 한국 힙합의 허슬러 서사는 완벽한 판타지입니다.

 

한국은 이미 계층이동이 단절된 사회입니다. 여러 사회경제적 지표상 팩트에요. 스웨거 가사는 차와 시계를 자랑하며 평판과 긍지를 대신합니다(“니들이 날 욕해봤자 나는 잘 살고 너는 못 살지같은 가사들). 부귀영화를 질투하는 헤이러를 상정하고, 물질적 성공을 곧 근면함과 재능의 징표로 강변하는데, 이런 논리 속에서 빈곤은 개인적 자질의 결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사회 구성원 다수의 빈곤을 암묵적으로 경멸하며 성립하는 가사입니다. 개인의 성공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합니다. 재능만 있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요. 자신이 놓인 환경과 핏줄과 배경과 기회가 작용하고, 어느 한 순간의 성패가 평생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빈곤은 개인의 탓을 넘은 사회적 문제입니다. 강남구 월 사교육비는 전국 평균의 6배가 넘고,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간 사교육비 지출은 17배 차이 납니다. 이 차이는 입시 결과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서울대 합격자 비율은 강남구가 강북구에 비해 21배 높고, 특목고 출신은 일반고보다 65배 많이 합격합니다. 졸업 후엔 전문직 종사자와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삶이 갈리겠지요.

핵심은 일리네어의 성공신화가 랩스타를 꿈꾸는 극소수에게 롤모델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한 절대다수에게 공허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일리네어의 현재는 그들이 이룬 성취로 존중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는 전통적으로 인기 있는 오락 재료이기도 하고요. 랩스타 판타지를 엔터테인먼트로 즐긴다면 모르겠으되, 거기서 무리하게 사회적 교훈을 찾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그건 무의미할 뿐 더러 심지어 해롭습니다.


한국사회가 게토화되어 간다는 징후는 아이돌 고시가 성행할 때부터 관측됐습니다. 케이팝 스타를 꿈꾸며 적지 않은 중고생들이 기획사 오디션을 전전하는 현상 말이지요. 스웨거 힙합의 유행은 이것과 한패의 현상입니다. 그 많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의 난립도 마찬가지죠.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 통로가 틀어 막히니까, 미디어와 스포츠 스타가 되어 일확천금의 바늘구멍을 뚫으려 합니다. 미국 흑인사회가 정확히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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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3
  • 3.30 11:27
    끝까지 정독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3.30 11:41
    @루팽
    말씀 감사합니다-
  • 3.30 11:47
    잘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 올리시면 이제 무조건 노력하면 성공하는데 왜 환경탓하냐는 댓글 달릴듯 ㅋㅋ
  • 3.30 11:54
    @친남츠리
    음 설마 그렇겠어요 ㅎㅎ 암튼 말씀 감사합니다-
  • 3.30 12:31
    긴 글 잘 읽어봤습니다
    어찌보면 좀 씁쓸하기도 하네요
  • 3.30 13:11
    @FROMbt
    네 그렇죠. 스웨거 가사도 그렇고, 힙합이 상당히 보수적인 장르라 느낄 때가 있어요.
  • 3.30 12:49
    구조주의 담론을 오래전부터 싫어해왔지만, 요즘 현실(+ 팩트)를 보면 적잖이 인정할수밖에 없네요. 잘 읽었습니다
  • 3.30 13:13
    @EconPhd
    사회가 더 나빠지니 힙합은 성공하고, 이런 인과관계가 있는 듯해 아이러니하네요.
  • 3.30 13:13
    핵심을 꼬집으셨네요 정말 많이공감하고 갑니다.
  • 3.30 13:18
    @fgamce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 3.30 14:42
    저랑 생각이 비슷하시네요
  • 3.30 14:49
    @만두입니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니 반갑네요.
  • 3.30 17:36
    좋은 글이네요 스웩 누릅니다. 자주 글써주세요. 이런글들이 더 흥해야합니다.
  • 3.30 18:18
    @manduu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잖아도 생각 거리가 생길 때 마다 조금씩 글을 쓰고 있는데,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 덕에 동기부여가 됩니다.
  • 3.30 17:57
    하라는 대로 해야하고 옷도 연애도 말도 시키는 대로 해야하는게 아이돌인데. 아이돌의 삶과 도끼의 스웨깅을 한패로 놓는 건 real 무리수입니다.
  • 3.30 18:20
    @못쓰뎊
    아이돌의 삶과 도끼의 스웨거를 한 패로 놓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미디어 스타가 대안적 삶의 우상으로 부상하는 이유에서 둘이 같은 흐름 위에 있다는 겁니다. 아무튼 길게 댓글 주셔서 감사하고 잘 읽었습니다.
  • 3.30 18:09
    한국에서 계층이동이 어려워지고 전세계적으로 빈부격차, 부의 집중이 문제되는건 맞음. 거기까지만.
    자본과 대기업 앞에서 개인들은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철저히 자본이 원하는 그림으로 사용 당하게 됌, 거기서 내 주관과 선택은 지극히 제한당하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 관두거나, 명퇴당하고 자영업자로 나서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극히 적고.
    큰 돈을 벌거나. 아니, 망하지않고 살아만 남아도 의미있는 거.
    도끼는 거기서 성공한 자영업자임.
    사회계층이야기를 늘어놓고 계층간 이동도 정기적인 수입확보조차도(자영업이든 정규직이든) 어려운 현실에서 성공했을 뿐이죠.
    은근슬쩍 판타지일 뿐이다, 빈곤한 자들이 게토에 남아있어야 완성된다 같은 괴상한 전개로 끌고 가는 이유가? 도끼 전에도 가수든은 기획사의 소모품이었고 정산(물론 아냐 산이)을 받네못받네 돈을 떼먹혔네 몸도 떼먹혔네로 허덕였지.
    도끼의 성공과 상위계층으로의 이동. 인디펜던트로서의 성공이. 나머지의 실패로 의미를 갖는다는건 너무나 무리한 전개임.

    안타깝지만 도끼는 반대로 행동했는데. 도끼가 모든 게토와 비정규직을 구원할 순 없지.그러나 빈지노에게 기획사에서 떼어가는 돈 없이 일리네어로 활동하게 하고, 차메인 효은 창모 등을 샤라웃하고 같이 작업함.
  • 1 3.30 18:15
    언더와 스웨거의 대립항 속에 언더는 탈출해야 할 수난의 장소로 은연중에 규정됩니다. 자본에 길들지 않는 자의식과 자존감의 창작지대라는 언더 혹은 인디 본연의 정체성이 부서지는 거지요.

    ??

    창모, 수퍼비, 효은, 도끼 본인의 음악이 바뀐 게 있나? 도끼는 하던 대로 성공했고 안변했고 변하기 싫다고 스웩 부림. 자본에 길들여지는 쪽은 어디지? 돈없어서 ㅈ같아서 저퀄의 뽕짝랩하면서, 난 멜른1위 했다고 외치는 애들같은데?

    성공한 래퍼와, 하고싶은 음악하는 창작을 무작정 대비시키려고 디테일을 다 놓치신 건 아닌가 합니다.
  • 날카롭네요 잘봤어요
  • 3.30 21:55
    @원팍투팍쓰리팍
    감사합니다 (_ _)
  • 3.31 23:54
    안농하새오. 댓글이 길고 짜증납니다. 주의해주세요.

    선생님의 브런치를 읽진 않았지만 있다는 건 알고있구, 충분히 많이 읽고 계신 거라 판단하구 그냥 학술적 논의, 레퍼런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 생략하고 바로바로 인용하겠습니다.

    1. 일단 김봉현이 작업하는 이론적 틀은 그거죠. 김홍중의 <<사회학적 파상력>>에 등장하는 '생존주의' 말이에요. 물론 김봉현의 분석은 추상에서 구체로 접근하는 아주 초보적인 실수까지 팡팡 때리는 개초보 허접 쓰레기...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상학의 '무시간적'(또는 초월적)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도 제겐 부적절해보이네요.

    일단 김봉현이 김홍중으로부터 끌어오는 부분은 '생존주의'의 의미론인가 어쩌고인가 하여튼 5번 테제입니다. 김홍중에 따르면 우리는 '생존' 말고는 다른 '꿈'이 불가능한 사회를 살고있고, 그러한 우리의 세대를 '생존주의'라 이름하고 있다는 거죠. 성연주의 작업에서 컨트롤 대란을 접근하는 방식도 약간 그러하죠. 우리에겐 생존 이외에 (사회적) '토템'이 불가능하다. 꿈이 무너져 부서졌다는 건데 이 부분에 있어서 "젊은이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삶의 태도"라는 말이 나오는 거죠. 생존 이외에 다른 종류의 '진정성'이 불가능한 시대에서 머니-스웩 하는 어쩌고가 제일 멋있고 짱된다는 거...일겁니다.

    물론 이 접근은 사회 외부에서 힙합 텍스트로 접근하는 쓰레기 같은 접근법이니 그 가치가 거의 0에 가깝지만, 힙합도 이런 '생존주의적' 텍스트를 가지고 있었던 때가 있습니다.

    가령 <<#1>> 시절의 스윙스가 그렇고 <대답해줘>나 <반격> 시절의 딥플로우가 그렇죠. "진실해서 상 받은자는 아무도 없거든"(<리얼리스트 쉿 아 에버롯>)이나 "살아남아야 해"(<밀어붙여>와 같은 가사를 보면 '생존' 이외에 다른 '힙합'적 가치가 붕괴되는 상황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이게 대충 2008년인 셈이죠. 그런 의미에서 힙합의 '토템'(뒤르켐적 사회학의 용어지만 비평에서는 거의 안 쓰는 용어니까 정신분석학이 더 편하시다면 대충 '대타자'라고 할까요?)이 붕괴되는 시점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텍스트들을 살펴보면 묘하게 생존에 대한 불안과 힙합적 가치에 대한 불신 등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도상학이 제공하는 통합적이고 비역사적인 틀에서 설명되기 참 어려운 부분이 있죠. 한국 힙합씬에서 기존 힙합 도상학이 완전히 무너지는 시점이 적어도 한 번은 있다는 거니까요. 그 어떤 이콘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들이 설령 그 도상들을 배치한다고 해도, 그리고 우리가 그 배치를 보고 도상의 의미를 추론한다면 좀 부적절한 일이 되겠죠.

    연결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빈지노가 <<12>>에서 의도적으로 힙합 관용어(가령 Flexin은 존멋탱 터지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가랑이를 찢"는 준비운동의 뜻으로 쓰고)들을 기존의 의미에서 이탈시킬 때, 이를 도상학적으로 읽어내는 것은 여전히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생존주의로 분류될 수 있는 텍스트가 존재하며, 사회 기층..이나 어떤 단면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물론 사회학의 열성신자가 아니지만은 어느 시점 이후로 한국 힙합의 '진정성'은 단절을 이루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과거에는 야! 내가 제일 진정한 말을 하니까 진정해! 였다면 이후에는 야! 너희들 다 가짜고 나도 가짠데 나는 적어도 돈을 벌고 그 얘기를 하니까(<respect my money>) 너희들보다는 진정해!) 로 바뀌는 것은 여전히 논의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습니다.
  • 4.1 00:26
    2. 자수성가와 스웩 이야기에 대한 문제인데, 서부극을 말씀하셨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부극도 시대에 따라 내러티브 구조가 바뀌었다는(윌 라이트) 점은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힙합 역시 상징 자원으로서의 '힙합' 문제와 내러티브의 문제를 분리시켜야 한다고 해야 좋을까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남부 힙합의 고졸한 양식에서는 돈자랑이 성공서사의 일부로 통합되지 않고 하나의 레파토리 정도로 등장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적어도 UGK까지는). 그리고 가정하고 계신 현재의 성공 서사는 말씀하신 것과 같이 게토의 '재현'과 '성공'에 대한 양가감정을 다루던(나스, 제이지, 비기에 이르는) 동부 힙합과 묘한 습합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쿨쥐랩&나스의 패스트 라이프나 뭐 비기&제이지 아럽 도에서도 분명 돈에 대한 애착이 나오지만 그건 결코 순수한 '자랑'으로서의 돈 자랑은 아니고 또 '능력'에 대한 증거물로서의 돈도 아니었죠. 그러니까 개인적으론 약 90년대 중반까지 게토-성공-돈자랑이라는 서사 세트는 지금의 모습과 달랐다는 가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Self-made의 서사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나중으로 하기로 하고 넘어가자면

    문제는 이들이 '게토'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 자신의 '성공'을 극대화하기 위한 상징적 배치라고 단언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이중적 소속, 다시 말씀드려서 게토의 사람이자 성공한 사람으로서의 (식민지적) 이중 의식이 드러나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이 자신의 진정성을 위해서 게토를 노래하는 것도 또는 자기증명을 위해서 노래하는 것도 아니라 성공 이후에 상실된 자신의 어떤 '뿌리' 또는 뿌리의 상실을 말하기 위해서 게토를 동원하던 시점이 있었다는 것이죠. 이 점에서 게토라는 상징 공간은 굉장히 복잡해집니다.

    물질적 성공을 노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에 대한 회의를(크리미널 매스터마인드의 릭뚱갓도 여전히 회의하죠) 품는다는 점에서 단순히 래퍼가 게토를 상징적으로 착취하는 관계에 있다고, 너무 켄드릭적으로 말하는 것은 약간 섭섭한 부분이 있네요. 도상의 의미는 내재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고, 충분한 이탈의 사례들도 있으며, 심지어 지금의 도상들이 그 도상들이 갖고 있는 과거의 내력을 충실히 잇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도상학적인 접근이 살짝? 못미더운 지점이 있습니다.(물론 김봉현의 사회학보다는야)

    뭐 어차피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죠. 넘어가서 언더그라운드라는 장소가 게토와 비슷한 상징으로 운용된다는 말씀엔 대체로 공감을 합니다. 그런데 "안 된다는 길"만 가서 여기까지 왔다는 도끼 고유의 서사는 사실 그의 개인적 성공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것이고, "청개구리"처럼 자꾸 안 되는 길만 골라서 왔다는 것이 그의 자부심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스웩과 언더를 과연 이항대립 구도 속에서 배치하고 있느냔 의구심이 듭니다. 아 사실 뭐 도끼의 작업물을 2015? 이후로 거의 안 들었지만... 그의 스웩과 언더그라운드를 이항대립 구도 속에서 소화하는 것은 김봉현이지 도끼는 아니지 않나요? 도끼가 부정의 대상으로 삼는 '장소'는 컨테이너박스지 언더그라운드는 아니라는 점에서 조금은 주밀한 독해가 요청되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근데 저도 잘 몰르겠네요)
  • 4.1 00:35
    3. 큰 논지인, 소망충족, 대리만족으로서의 '스웩 서사'에 관한 문제입니다. 글쎄요... 소망충족의 문제가 없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렇게 읽는 것은 텍스트가 지시하는 것 이상을 더 읽어내지도 또 덜 읽어내지도 않는 것 같다는 점에서 다소 심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김봉현이 지극히 해롭지만 뭐 긴 이야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말씀드려봐야 별로 흥미로울 것 같지는 않군요. 줄이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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