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글주의) 이전 세대의 래퍼들을 향한 존중에 대하여

오랜만에 엘이에 들어왔는데, 전혀 상반된 입장의 글 두 개가 화제의 글로 올라와 있네요. 이전의 래퍼들과, 그들이 내놓아 온 음악들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할지 고민하다 적어봅니다.

1. 음악을 과학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과학적' 이라는 언어가 조금은 적절하지 않지만, 말하자면 예술을 일종의 법칙들이 공존하는 시장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힙합 씬을 바라보면, 우리가 흔히 구분짓는 음악의 장르라든지, 구사하는 플로우의 스타일이라든지, 혹은 가사에서 뿌려내는 의미 같은 것들이 모두 하나의 작은 '패러다임'으로 여겨집니다. 이때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는, Khun 같은 과학철학자들의 발언을 참고하자면, 본질적으로 어떤 붕괴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곧 새롭게 '트렌디한' 어떤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날 경우, 이전의 패러다임은 대부분 완전히 폐기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화제의 글을 보니 '이전의 음악적 폐기물들' 이라는 다소 과격한 표현을 쓰셨더군요. 

우리가 지동설을 받아들인 이래로 다시 천동설을 토대로 우주를 이야기하지 않듯, 여기서 '예전의 음악'은 현재 인기를 고가하는 트렌디한 패러다임의 음악으로부터 철저히 분리되며, 쓸모없다, 투박하다, 혹은 심지어 틀렸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쇼미더머니' 같은 프로그램에서 1세대 래퍼들이 겪는 리얼리티죠.

2. 예술가의 역량

-그러면 이런 관점으로 음악을 본다면, '좋은 예술가'는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느냐? 간단합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하여 도태되지 않고,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하여 끝까지 살아남는 음악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여기서부터  어떤 '획일성의 문제' 가 나타나게 됩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모두에게 사랑받는 음악이 분명 존재하지만, 모든 음악가에게 그것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요. 한 시대를 풍미하는 트렌드에 맞추어 살아남으려고 애쓰다 보면, 결국 예술가와 대중 모두가 중시하게 되는 어떤 '역량' 같은 것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역량이라는 말이 지금은 널리 쓰이고 있지만, 사실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로부터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사회 전체로 퍼져 다른 분야들도 점점 개인들에게 어떤 역량을 요구하고 있지요. 제가 공부하고 있는 교육학에서도 마찬가지구요.

어쨌든 요즘에는 래퍼들에게도 점점 트렌디함과 관련된 어떤 역량이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술가의 창작물을 어떤 역량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곧 구체적인 평가의 척도가 생겨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겠죠. 결국 현재의 음악적인 유행이자 패러다임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인물, 혹은 주류 문화가 등장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들은 어떤 평가로부터 '도태될 수도 있다'는 불안에 떨며 창작 활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낙제한 자들은 살아 있는 채로 고이 무덤에 모셔지겠지요.

3. 힙합 음악에서의 회귀성

-늘 좋은 음악을 들을 때마다 예술가와 그의 철학에서부터 나온 가사들이 청자에게 전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교육'의 과정과 참으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글을 쓰는 것을 가르치거나, 생각하는 법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요소는 '회귀성' 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창작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이전에 무엇을 생각했는가, 그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고민하는 일의 깊이가, 단순히 결과적인 창작물만 놓고 보았을 때에도 어마한 차이를 가져오거든요. 음악을 만들거나, 음악을 들을 때에도 이런 회귀적인 과정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단순히 "Back to the basic"이나  복고 같은 진부한 되감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의 철학자들이 여전히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나 동양의 주희의 철학으로부터 무언가를 끌어와 자신의 사상을 펼치듯, 지금은 다소 투박해 보이는 이전의 힙합 음악들이 단순한 존중을 넘어, 지금 생겨나는 음악들의 창작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생각이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