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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염따 (Yumdda)

title: [회원구입불가]LE_Magazine2018.11.30 20:02조회 수 4457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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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차는 의외로 공간적이다.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 어느 곳으로 옮겨갈 때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원재의 "시차" 속 내용처럼 시차는 서로 다른 시점과 시점 사이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많은 것이 사람들의 관점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중에서도 시간과 세대는 우리 스스로를 각기 다른 사람으로 구분 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차는 그 점에서 다시 본질로 돌아가 대단히 시간적이다. 여기, 염따(Yumdda)라는 래퍼가 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확실히 요즘 트렌드에 맞는 힙합 음악을 해왔다. 누군가는 그런 염따를 집시의 탬버린 시절과 "Where Is My Radio" 등을 지나 음악적으로 환골탈태한 래퍼로 기억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무한도전> 돌아이 콘테스트에 출연하고, <모스트 원티드(Most Wanted)> MC를 하며 쌓아온 방송인 이미지를 벗어나 진짜 아티스트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아니면 그 모든 역사를 모른 채로 뛰어난 센스로 흐름을 잘 캐치하는 중고 신인으로만 알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든 염따는 상관하지 않고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 그 태도는 이미 긴 시간을 거쳐오고, 많은 것을 알아버려서 슬슬 '꼰대'스러운 기운을 감출 수 없는 어른들이 잃어버린 무엇이다. 그러니 자연히 쌓여가는 세월 속에서 생기는 시차를 부정할지, 인정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이 인터뷰 속 염따의 말들이 필요할 것이다. 둘 중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우문현답을 염따의 동네 강동에서 듣고 왔다.




LE: 우선, 저희 힙합엘이 회원분들께, 또 힙합 팬분들에게 자기소개 겸 인사 부탁드릴게요.

Y: 엘이에 뭘 쓰고 그러진 않는데, 커뮤니티는 늘 관심 있게 보고 참고하고 있어요. 자주 가는 사이트니까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저를 알게 되는 기회가 될 거 같아요. 잘 부탁드립니다. 염따입니다.





LE: 요즘 여러모로 상승세이신 거 같아요. 본인이 느끼기에는 어떠세요?

옛날보다는 그래도 여기저기 참여도 많이 하고, 공연도 많이 해서인지 저도 그런 기운을 느끼고는 있어요. 제가 뭘 했을 때, 팬들한테나 주변 아티스트들의 반응에서 추진력을 좀 얻는 거 같아요. 예전에는 뭘 해야겠다고 생각만 했던 걸 해 버렸을 때 반응이 없을 때도 있지만, 반응이 있으니까 그 피드백들을 토대로 계속하고 있는 거죠.





LE: 얼마 전에는 <마이크 스웨거>에 출연하셨던 게 흥미로웠어요. 특별히 출연 비화가 있진 않나요? 아무래도 뉴올(Nuol) 씨와 전부터 친분이 있어서 출연하신 건지 싶기도 하네요.

뉴올 형이랑은 집시의 탬버린 때부터 같이 작업실에도 있었던 적도 있는데, 친하지는 않았어요. 물론, 안 지는 오래됐고, (<마이크 스웨거>를) 하는지도 알고 있었는데, 연락은 따로 안 하니까 저도 보고만 있었어요. 언제 뜬금없이 한번 연락이 왔어요. 하자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가서 재미있게 잘 나온 거 같아요. 근데 맨 처음에 촬영을 벌스 하나 했는데, 잘한 거 같다고 해서 가려고 하는데 한 번만 더하자고 하더라구요. 왜 그러냐니까 분량이 짧다고 해서 (그다음에는) 프리스타일을 막 했죠. 사람들은 그게 더 재미있었다고 하는 거 같더라구요.





LE: 평소에 프리스타일을 자주 하시는 편은 아니시죠?

프리스타일을 안 하는데, 또 사실 되게 자주 하죠. 매일 하고, 매시간 하는데, 그걸 레코딩해서 기록에 남게 하진 않죠. 제가 가사를 안 쓰고 프리스타일로 몇 번 뱉는 식으로 작업해요. 그중에 좋은 걸 남겨두는 편이라 프리스타일이 그렇게 생소하진 않은데, 어디 가서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죠. 생각해보니까 예전에 송파구 문정동 작업실에서 집시의 탬버린 형들이랑 했던 게, 맨날 모여서 길거리에서 프리스타일을 했었어요. 길거리에서 힙합으로 입고 다니는 사람 있으면 붙잡고 ‘랩 배틀 할래요?’ 이러고 다녔어요. (전원 웃음) 한 20년 전인데, 그때는 힙합으로 입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힙합으로 입었다는 건 힙합을 X나 좋아하거나 래퍼거나 둘 중 하나였어요. 거의 방구석 래퍼였어요.





LE: 사실 프리스타일이라는 게, 래퍼 분들은 소위 ‘가오’ 같은 게 있으니까 사실은 프리스타일을 잘 못 하시면 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마이크 스웨거>에서 프리스타일을 선보이신 게 염따 씨의 솔직하고 스스럼없는 성격이 드러나는 거 같더라구요.

저는 사람이 가오를 잡는 순간 가오가 더 없어지는 거 같아요. 그건 상대방이 느껴야지, 제가 잡는다고 해서… (웃음) 그리고 보이잖아요. 상대방이 ‘아, 이 새끼 힘 좀 줬네?’라고 느끼면 멋이 없는 거 같아요. 제가 뭘 했을 때 멋있다고 해주는 게 멋있는 거지, 사람들이 생각하는 멋있는 걸 했을 때는 이미 멋이 없는 거 같아요. 뉴올 형이 그런 얘기를 하기도 했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마이크 스웨거>가 벌스를 써와서 자기 벌스를 보여주는 콘텐츠가 됐는데, 자기는 사실 조금 더 자유로운 콘텐츠를 원했어서 그렇게 안 된 게 아쉽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프리스타일을 한 건 아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일리 있는 거 말인 거 같아요. 프리스타일 안 하고 그냥 벌스할 거면 굳이 <마이크 스웨거>가 아니어도 다른 라이브 클립 내면 되죠. 아무튼, 프리스타일 할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웃음)





LE: 가사 보니까 3년 전만 해도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이하 롤)만 하고 다녔다는 내용이 있더라구요. 혹시 최고 티어가…? (웃음)

1집 내기 전에 롤을 많이 했어요. 그때 힘든 시기를 보냈었는데, 작업실에 혼자 있으면 음악을 안 하고 한 1, 2년을 그냥 롤만 했어요. 브론즈까지 갔다가 브론즈에서 플래티넘까지 갔죠. 거기서 끊었어요. 1집인가 2집 내고 음악을 만들다 보니 바쁘니까 할 시간이 없더라구요. 요새도 생각나면 가끔 해요. 지금은 골드고, 최고는 아마 플래티넘 4까지 갔나 그랬을 거예요. 미드에서 애니비아(Anivia)를 좀 했었죠.





LE: 염따 씨의 가사를 보면, 보드를 탄다던가, 바이크를 탄다던가 그런 내용이 있잖아요. 액티브한 취미 활동을 되게 좋아하시는 거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고 방에 틀어박혀서 게임만 할 때도 있고, 왔다 갔다 하시나 봐요.

활동적이고, 가만있으면 나가서 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편이에요. 근데 아무래도 맨날 그러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보통 패턴이 작업을 하든, 뭘 하든 대부분 시간을 컴퓨터 앞에 있죠. 그렇게 몇 시간 있으면 근질근질하죠. 여기, 강동 경희대병원 근처가 제가 뛰는 코스에요. 예전부터 제일 좋아하는 게 이 동네 한 지하철 서너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를 음악 들으면서 뛰거나 자전거 타고 다니는 거예요. 한강까지 갔다 올 때도 있구요. 그러면 한 시간, 한 시간 반 되는데, 보통 그럴 때 음악을 들어요. 순수하게 음악 듣는 시간을 가지는 거죠. 어떻게 보면 순수하게 음악만 들으면서 음악 공부를 하는 시간인 거죠. 방에서 딱 음악만 들으려고 하면 듣다가 컴퓨터 있으니까 어디도 들어가 보고, 뭐 검색도 해보고 하니까 짜증 나잖아요. (나가서 들을 땐) 두 가지가 있는데, 새로 나온 음악이나 들으려고 찜해놓은 거 듣기도 하고, 나머지는 집에서 작업을 X나 하다가 작업해 놓은 걸 제 선 안에서 됐다 싶은 정도까지 만들어놓고 들어요. 듣다가 툭툭 걸리는 데다 부족한 데가 느껴지면 기억해 놨다가 다음날 수정하죠. 그렇게 수정하고 나서 또 들어보는데, 계속 들어도 부족함이 없다고 느껴질 때 얜 됐다고 생각하고 끝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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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마이크 스웨거> 영상 댓글을 보니까 이런 댓글이 있더라구요. ‘이 댓글에 추천을 안 하면 염따처럼 머리털이 다 사라지는 저주에 걸린다’ 이 댓글의 추천 수가 무려 2,800개라고… 탈모가 진행 중인 건 아니시죠? (웃음)

탈모는 없어요. ‘빽빽충’이에요. 곱슬이고, 두꺼워요. 드레드나 머리에 뭔 개짓을 해도 어떻게 되진 않아요. 출연했을 때 머리를 빡빡 밀어서 사람들이 그렇게 쓴 거 같은데, 저만 아니면 되죠. (웃음) 자기들끼리 놀 수 있는 게 있는 거 좋아요. 저도 봤어요. 근데 거기다 대고 ‘아닌데? X발?’ 이럴 수도 없잖아요. 어차피 미니까 탈모 있어도 상관없을 거 같아요.





LE: 예전에는 머리를 되게 화려하게 했던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머리를 미는 걸 많이 선호하시나요?

원래 화려한 걸 좋아하는데, 밀게 된 계기가 있어요. (드레드를) 하고 다니는 사람은 모르는데, 아무리 관리를 해도 냄새가 좀 난다고 하더라구요. (웃음) 머리를 감을 수도 있고, 똑같이 잘 (관리)할 수도 있는데, 감고 나서 잘 안 말리면 뭉치니까 30분에서 1시간 정도 말려야 해요. 누구였더라, 어떤 여자랑 있을 때, 한 번은 계속 뭔가 가까이 오는 걸 꺼리는 거 같더라구요. (전원 웃음) 느낌이란 게 있잖아요. 같이 있어도 자꾸 멀어지는 것만 같은… 왜 그러지 싶다가 집에 갈 때쯤 물어보니까 에둘러서 말하더라구요. “이런 머리 하면 잘 못 감지?”라고 하더라구요. (웃음) 냄새나냐고 하니까 좀 난다고 해서 그때 짜증 나서 그냥 밀었죠. 드레드도 했고, 펌도 한 적 있지만, 민 사람은 알겠지만, 다시 기르기가 너무 귀찮아요. 좀 자라면 밀고 싶어지잖아요. 전 중학교 때부터 집에서 머리를 혼자 밀었어요. 그러니까 못 참고 또 밀어버리고 그러는 거죠.





LE: 이제 좀 더 본격적으로 들어가 볼 텐데요. 중학교 때부터 머리를 혼자 밀어왔다고 하셨는데, 염따라는 랩네임이 어릴 적 친구들이 ‘염현수 왕따’를 줄여서 부른 게 유래라고 하더라구요. 저희가 봤을 때, 염따 씨는 씬에서 ‘슈퍼 인싸’이신 거 같은데… (웃음)

계기가 딱 있는 건 아닌데, 제 기억에 제가 서울에서 태어나서 유치원까지 서울에 있다가 아버지 따라서 경상남도 진주로 갔어요. 그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다시 서울에 왔어요. 사투리를 쓰니까 애들이 나쁘게는 아니지만, 어쨌든 놀렸어요. 집에 가서 다시 진주 가고 싶다고, 애들 너무 무섭다면서 울었죠. 진주에는 누구를 괴롭힌다든가 하는 그런 분위기가 없었거든요. 그 당시만 해도 지방 쪽은 선하고, 서울이랑 온도 차가 심했거든요. 그때 서울에 전학 온 날인가, 바로 다음 날인가 비 오는 날 축구를 했는데, 제가 뽀록으로 골을 넣었어요. 그 당시 초등학교 ‘찐’ 애들이 와서 제가 골을 넣어서 자기들이 졌다고 가만 안 두겠다고 했어요.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있진 않았고, 그냥 조용히 다녔죠. 근데 보통 초등학교 때 생일 파티를 하면 애들 불러서 뭐 먹고 그러잖아요. 저를 안 불렀는데, 전 어디인지 아니까 그냥 갔어요. (웃음) 그러면서 애들이랑 알게 되고, 놀게 됐죠. 불리가 된 건 중학교 때부터 인 거 같아요. 맨날 수업 시간에 나가서 랩하고 그랬거든요. 그러다 보니 어떤 애가 “아, 얘 염따에요”라고 했던 거 같아요. 왠지는 모르겠는데, 그때 ‘따’라는 게 많이 쓰이는 표현이었어요. 왕따라는 단어는 막상 안 쓰였는데, 요새도 ‘맘충’, ‘한남충’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따’가 그랬고, 그래서 염따가 됐던 거 같아요.




LE: <황치와 넉치> 보면, 그 당시 일화를 재미있게 설명하시잖아요. 자리에서 일어나서 랩하고 싶다고 하고, 손들고 조PD 랩 하고 그랬었다고. 그게 실제로 웃긴 상황이었던 건가요, 아니면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웃긴 상황은 아니었던 건가요? 약간 분위기 메이커 같은 느낌이었나 싶기도 하구요.

웃겼는지는 모르겠네. 그냥 유쾌한 상황이었죠. 그 당시에 다들 수업은 하기 싫고, 선생님들도 그걸 아니까 보통 수업을 일찍 끝내주려고 하는데, 종 치기 전에 나가게는 못하잖아요. 끝나기 5분 전, 10 분 전 쯤에 선생님들이 나름 옛날얘기를 해준다든지, 자유 시간을 가지려고 하죠. 그럴 때 제가 랩 하나 하겠다고 하면서 조PD 랩 따라 하고 그랬었죠. 그 당시에는 (랩을) 할 때가 없었으니까요. 방에서 따라만 부르지, 어디 가서 랩을 할 일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교실 안에서 푸는 거죠. 분위기 메이커 같은 거긴 했죠. 어렸을 때부터 깝치는 걸 좋아했어요. 관종이라… (웃음)





LE: 염따 이전에 쓰셨던 랩네임이랄 건 특별히 없을까요?

있었어요. 옛날에 ‘다치프’라고, 고등학교 때 팀이 있었어요. 할 게 없으니까 맨날 이름 만들고, 이름 바꾸고 그랬는데, 플렉스 플로우(Flex Flow)가 기억나네요. (웃음) MC 아치 이런 것도 있어요. (LE: 벼슬아치인가요, 양아치인가요?) 양아치요. (웃음) 누가 그런 이름을 쓰는지도 모르고, 그냥 혼자 떠들고 다녔죠. 공개적으로 쓸 데가 어디 있겠어요. 그때 밀림(Millim)이 있었나 없었나 모르겠네요. 이 동네 애들은 알았죠. 왜냐하면, 학교 축제가 있었으니까요. 그때부터 학교에서 좀 깝친다 싶은 저 같은 애들은 무대 올라가서 가수들 랩 따라 부르고, 춤추는 애들은 비보잉하고, 그러는 게 1년에 한 번씩 있는 학교 축제 문화였죠. 좀 한다 싶으면 배재고에서도 하다가 다른 학교로 스카웃이 돼요. 한영외고 가서도 공연하고 그러면서 스타는 아니더라도 동네, 로컬 래퍼가 되는 거죠. (웃음)





LE: 알기에는 염따 씨 세대가 쉬는 시간 교실 뒤편에서 비보잉하고 그런 게 유행이었던 시절인 거로 알고 있어요. 그게 굉장한 멋이고, 잘하면 학교에서 잘 나가는 존재로 포장되고 그러지 않았나요?

맞아요. 그때는 비보잉이 X나 짱이었어요. 랩은 사실 너무 소수였어요. 좀 논다, 자기만의 뭔가가 있다 하는 친구들은 거의 춤을 췄죠. 춤 추는 써클에 들어가고… 옛날에 뉴스 나오던 불량 서클이 다 그런 거였죠. 그거밖에 할 게 없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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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집시의 탬버린도 멤버들이 강동 지역에서 만나 시작된 거로 알고 있어요.

여기 옆 동네, 문정동 쪽이에요. 어떻게 된 거냐면, 제가 학교에서 이름을 좀 날리다가… (전원 웃음) 그때는 뭐가 없으니까 이 조그만 동네에서 이름을 좀 알리다가 송파구나 다른 데서 애들이 (공연을) 보러 와요. 우리도 보러 가구요. 워낙 (랩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니까요. 전 그 당시에 주석, 양동근 이런 사람들이 스타가 되기 전을 보기도 했어요. 그때 천호동 쪽에 청소년 하자센터가 있는데, 거기서 랩을 X나 하고 있었어요. 그때 (집시의 탬버린 형들이) 온 거죠. 공연 끝나고 모여서 같이 프리스타일 막 하다가 알게 됐고, 저는 그전까지 같이 하던 사람이 없었으니까 제가 그쪽 동네로 갔죠. 고2 때인가? 그때부터 학교에 안 갔어요. 그 형들은 마천동에 지하 작업실이 있었어요. 거기서 생활하면서 형들이랑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죠. 20대 초, 중반 정도까지 그랬어요.





LE: 집시의 탬버린 멤버분들을 알기 전까지는 같이 하던 사람이 없었다고 하셨는데요. 아무래도 염따 씨가 본인이 사는 동네에서 랩을 하는 무리 중에 가장 진지하게 랩에 임했던 편이었던 걸까요?

그랬겠죠. 그 작업실에 갔던 이유도 생각해보니까 다치프를 같이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얘가 고등학교 들어가고 입시를 해야 한다면서 자기는 그만하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계속하자고 설득했는데, 결국 대학교 가야 한다면서 튕겨 나갔어요. 저는 더 하고 싶었으니까 갈 길을 찾아간 거죠. 뭐라도 같이 할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요. 혼자서는 재미도 없고. 맞아, 그전에 선배 중에 배치기 형들을 따라다녔었어요. 그때 배치기 형들이 원래 네 명이었는데, 아까 말한 학교 축제 공연하는 동네 스타였어요. 배치기는 이미 스타였어요. (웃음) 천호동부터 명일동까지는 배치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대학교 축제하면 연예인 온다 이런 것처럼 명일여고, 성덕여상 이런 데 축제를 하면 (애들이) ‘배치기 언제 나오지?’ 하는 정도의 형들이었죠. 배치기가 <아우성 힙합 페스티벌>인가 어디서 상도 타고 그랬을 거예요. 그 당시에 랩 대회가 많았거든요. 롯데 월드(Lotte World), 뭐 이런 데서 1년에 한 번씩 했었어요. 생각해보니까 <아우성 힙합 페스티벌>은 저도 나갔었어요. (웃음) 제 기억에 아마 그때 더콰이엇(The Quiett)이 1등이었던 거 같아요. 전 떨어졌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전 잘한 거 같은데, 떨어지니까 빡쳐서 카페에 들어가서 ‘난 내가 X나 잘한 거 같은데, 왜 내가 떨어졌냐’라는 식으로 글을 남겼었어요. 그 당시 심사위원이 본 킴(Born Kim)이었어요.





LE: 얘기를 좀 돌아오면, 집시의 탬버린라는 팀이 씬에서 전형적이지 않고 독특한 음악을 하려 했던 팀이었던 거로 기억해요. 염따 씨의 기억 속에서는 집시의 탬버린이 어떻게 남아 있나요? 음악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말이죠.

그렇게 과거형은 아니에요. 저에게는 그냥 ‘베프’에요. 다 저보다 두 살 많은데, 제가 그 사람들이랑 학창시절을 보내서 불알친구 같은 사람들이죠.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서 가까운데, 음악적으로는 그 당시에 되게 멋있었죠. 제 기억에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같은 음악을 되게 좋아했어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편인 음악은 아니었는데… 아, 생각해보니까 꼭 그런 건 또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때 한국에서 힙합 하면 클럽 튠이나 메인스트림스러운 걸 하면 이유없이 너무 상업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거 같아요.) 어차피 X도 없는데, 지들끼리 이건 가짜라고 그러고, 약간 마이너하게 해야 ‘이 친구는 언더그라운드군’ 하는 X신 같은 문화가 있었죠. (웃음) 보통 그렇게 가면 너무 어둡거나 어려워지는데, 그 형들은 그래도 좀 밝고, 색깔이 있었어요. 가사도 희망적이고, 계몽적이었구요. 탈렌트가 많았죠. 지금 들어도 좋은 음악이 꽤 있어요. 앨범을 다 만들기도 했는데, 이래저래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못 냈었죠. 아무튼 멋있었어요. 그때 그 형들이랑 주로 하던 게 여기저기 LP 사러 가는 거였어요. 그 LP를 턴테이블에서 녹음 받고, 그걸 MPC에 넣어서 노래 만들고, 큐베이스 같은 거 어떻게 쓰는지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걸 같이 했죠. (LE: 회현상가 많이 다니셨겠네요.) 여기저기 다 갔어요. 송파 쪽에도 있었거든요. LP 사고, LP 듣고, 소울식(Soulseek)인가로 다운로드 받아서 찾아 듣고…





LE: 집시의 탬버린도 있지만, 시간이 좀 지나서였겠죠? 팀적으로 앨범을 내려다 안 좋은 일도 있었다고 하셨으니까 염따 씨의 첫 솔로 작업물인 [Where Is My Radio]는 혼자서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면서 내게 된 결과물이었겠죠?

근데 (집시의 탬버린 형들이랑) 늘 같이 있었지만, 막상 팀은 아니었어요. 집시의 탬버린은 네 명이었는데, 프로듀서 한 명이 그만둬서 세 명이 됐었죠. 불화가 있었던 건 아니고 한 명이 결혼을 해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면서 음악을 그만두게 되어서 팀이 무너진 거죠. 그 이후로도 같이 모여서 음악은 했는데, 제가 21살쯤인가? 군대에 다녀와야 하는 나이가 됐을 때였어요. 왜 내게 됐는지는 모르겠어요. 래퍼가 되고 싶은데, 앨범을 내야 한다니까 냈죠. 계속 MPC로 만들어왔던 걸 네다섯 개 했을 때, 뉴올 형네 작업실 가서 방에서 사진 찍어서 자켓도 만들고 그랬죠. 자켓도 집시의 탬버린에 결혼한 형이 아직도 디자인을 하는데, 그 형이 만들어준 거예요. (LE: 그 분이 혹시 왈구 씨인가요?) 네, 왈구 형. 비트는 제가 만든 것도 있고, 양성 형이 만든 것도 있었죠. [Where Is My Radio] 낼 때, 양성 형이 갑자기 미국 유학을 가게 됐었어요. 음악 그만두고 취업하겠다고 하더라구요. 저보다 두 살 많았으니까 스물다섯, 여섯일 때인데, 딱 취업할 때잖아요. 아무튼, 그 형은 음악 못하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때, (미국) 가기 전날인가, 전전날인가 우리 집에 와서 얘기하다가 녹음을 해서 [Where Is My Radio]를 만들었던 거 같아요. 그 녹음하고 (양성 형은) 바로 미국에 갔어요. (웃음)





LE: [Where Is My Radio]가 솔로 래퍼로서는 첫 결과물이잖아요. 근데 그 이후에 디스코그라피를 보면, 뒤늦게야 싱글들이 나오기 시작해요. 한 2011년, 2012년쯤부터죠. 저희가 알 만한 이야기들도 있긴 하겠지만, 몇몇 싱글이 나오기 전후로 공백이 있어 보이는 구간의 삶이 어땠는지 궁금한데요.

여기저기서 컨택이 많이 왔었어요. (“Where Is My Radio”) 뮤직비디오가 되게 재미있었거든요. 그래서 피타입(P-Type)이랑 쿤타 인 뉴올리언스 (Koonta In NuliuNce)가 있던 파운데이션(Foundation)이라는 회사랑 계약했었어요. 계약하고 나서 준비를 하고, 공연도 좀 했어요. 그때 쿤타(Koonta) 형이 갑자기 무슨 케이블 방송에서 MC를 하게 됐었어요. 언제 공연하고 와서 그 자리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 PD, 작가랑 쿤타 형, 회사 매니저, 실장님이랑 미팅하는 자리에 같이 있었어요. 저도 오라고 해서 갔더니 (PD랑 작가가 보기에) 제가 재미있었나 봐요. 그 프로그램을 한 1년 하면서 케이블 방송을 처음 하게 된 거죠. 그런데 저도 재미있고, 하다 보니까 타고 타고 연락이 와서 조그만 프로그램을 하게 됐어요. 방송을 하고 싶다,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하면서 조금씩 누가 알아보고 그러는 게 좋으니까요.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음악에는 집중을 안 하고 방송 쪽으로 활동을 많이 했죠. <무한도전>도 나가고, MTV에서 <모스트 원티드>도 하고, <켠김에 왕까지>라는 게임 방송 프로그램도 했어요. 한 1, 2년을 그렇게 지내다가 중간에 허무한 게 왔던 거 같아요. 정확히 계기는 모르겠는데, 뭔가 부질없다는 걸 느꼈어요. 맞다, 그런 짓을 하고 다니다가 정점이 하하 형을 만나서 하하 형 주도하에 메이저 데뷔를 준비했을 때였어요. 돈 많은 회사 가서 TV 나가자고 했었는데, 그게 빠그러졌어요. 갑자기 무산되니까 삶에서 지하로 들어갔던 거죠. 그때부터 방에서 게임만 하고, 일도 안 하게 됐어요. 게임을 했다기보다는 시간을 죽이고 있었던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거의 다 온 것처럼, 다 된 것 같았는데, 그 순간에 제로가 되니까 사람도 안 만나게 되고, 저를 부르지도 않더라구요.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으니까 무기력했죠. 아, 그리고 (하하 형이 서포트하는) 팀 준비하면서는 대학교 때 같이 곡 쓰던 같이 살던 친구랑 곡을 써서 파는 일을 하려고 한 1, 2년을 보냈던 거 같아요. <무한도전>이나 방송 일을 하면서도 광고 회사나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일들, 곡 쓰고, 편곡해주고, 예전에 버벌진트(Verbal Jint) 형이 많이 했던 광고 랩, 나레이션 해주고 그랬어요. 극장용 광고도 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야 너 이거 했어?’라는 식으로 연락 오고 그랬어요.





LE: 중간에 <무한도전> 출연을 잠깐 얘기해주셨는데요. 당연히 좋은 추억이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약간 혼동이 왔을 거 같기도 해요.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하셨지만, 래퍼였다가 본인이 소비되는 방식이 개그 캐릭터 같은 식이었으니까요. 나중 가서는 그런 부분에서 소위 ‘현자타임’을 느꼈을 거 같기도 해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지금도 안 그런데? 그게 제 모습이었고, 지금도 그래요. 웃긴 게 좋지, 각 잡고 있는 타입은 아니라서요. 그 당시에 제가 재밌다는 거에 자부심이 있었던 거 같아요. 어딜 가도 약간 일부러 ‘억텐’, 텐션 끌어올려서 사람들 사이에서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게 좀 있었어요. 굳이 (촬영을) 하는 게 아니고 그냥 사람들이랑 있어도 (그래요.) 지금도 기본적으로 누구랑 같이 있을 때, 상대방의 기분이 좋아야 제가 편안하고, 좋은 DNA가 있는 거 같아요.





LE: <무한도전> 때는 완전 ‘진텐’이었던 건가요?

그때는 진텐의 끝이었는데, 어떤 큰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이런 건 거의 왈구 형이 하라고 한 거예요. MTV <모스트 원티드>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는 돌아이 콘테스트를 몰랐고, 이걸로 뭐가 되어야지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그냥 제가 (평소) 하는 거로 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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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무한도전>도 그렇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서 공중파, 케이블 방송 다 경험해보신 거잖아요. 근데 아무리 사석에서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방송에서 재미있는 거랑은 갭이 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방송에 본인의 스타일이나 캐릭터를 녹여내는 게 힘들진 않았나요?

한두 번 해보면 다 아는데, 억텐을 X나 자연스럽게 보여주면 그 사람은 프로인 거고, 그걸 컨트롤 못하면 힘든 거예요. 아까 인터뷰 시작할 때도 인사해 달라고 하셨었는데, 아무도 없으니까 X나 어색하잖아요.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잘하면 프로가 되는 거죠. 왜냐하면, 대부분 낯선 사람들이 있는 낯선 곳에 가서 자기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데, 그런 상황이면 다들 자기를 가리잖아요. 갑자기 깝치진 않잖아요. 저는 반대로 좀 깝치는 타입이니까 재미있고 좋았죠. 근데 (방송)하고 나서는 좀 힘들죠. 텐션을 X나 올려서 빡 해놓고 집에 와서 혼자 있으면 정신적으로 (에너지가) 훅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아요. 감정 소비를 빡세게 한 거니까요. 저는 그렇게 일을 많이 한 게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흔히 얘기하는 연예인 병에 걸리는 마음을 좀 알 거 같아요. 사람들은 놀리는데, 저도 그런 적이 있었거든요. 어떤 사건이 하나만 딱 있어도 그게 그 사람의 평생 트라우마가 돼요. 예를 들면, 평소처럼 지하철 타고 어딜 가는데, ‘염따다, 염따’ 이렇게 소곤소곤하는 게 들리면 그 순간 경직이 돼요. 뭐 야한 걸 보고 있었다고 하면 어떻게 계속 보고 있어요. 원하지 않는 채로 가만히 있어야 하잖아요. 커뮤니티 들어가면 수영복 사진이 있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건 그냥 간단한 예를 든 거고, 아무튼 그런 일이 한 번만 있어도 어딜 가든 신경 쓰여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다른 얘기를 하는 것만 봐도 ‘내 얘기하는 거 아닌가?’, ‘나 보는 거 아닌가?’라고 의식하게 돼요. 좀 바르게 해야 할 거 같고, 촬영할 때뿐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내가 아닌 나로 살아야 하니까 아는 사람들끼리만 보고, 어디 안 나가고, 밀폐된 데서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 공황 장애도 걸리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텐션 올려서 사는 게 사실 X나 힘들어요. 그래서 제가 지하에서 게임만 했던 거 같기도 해요. 몇 년 동안 (텐션 올려서) 살다가 한순간에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지니까… 머리는 독특하고, 옷도 좀 화려한 걸 좋아해서 어딜 가도 튀어요. 튀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고 (웃음), 그러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평범한 걸 잘 안 사요. 그런 사람이 뭘 하고 있으면 상관없지만, 아무것도 안 해서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지 않은 채로 어딜 가도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을 받으면 기본적인 삶 자체가 힘들어져요. 그래서 작업실에 돌아가서 롤만 했던 거 같아요. 음악 하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 많아요. 그때 (이)센스나 사이먼 도미닉(Simon Dominic)이나 예전 사이먼 도미닉 전 여친(레이디제인), 그 멤버들이랑 롤 X나 했어요. 그때는 베인(Vayne)이나 원딜 많이 했었는데, (이)센스를 한 번 이겼었죠. 얼마 전에도 만나서 얘기했는데, 팩트입니다. (전원 웃음)





LE: 개그맨들에게 그런 고충이 있다고들 하잖아요. 유쾌한 이미지로 많이 비치니까 주변 사람들이 약간 무례하게 구는 거죠. 기분이 안 좋은 데도 웃겨보라고 하는 식이겠죠. 아무래도 염따 씨의 이미지가 웃긴 쪽으로 소비된 시절이 있다 보니까 그런 측면에서 상처를 받거나 힘들었던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요.

웃겨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나? 그런 건 아니더라도 예를 들면 갑자기 뭘 보여 달라고 하거나 어떻게 하게끔 유도한다든가, 노래방 가서 랩을 하자는 식은 있을 수 있겠죠. 글쎄요. 그렇게 무례한 사람은 없었던 거 같아요. 아예 없진 않았겠지만, 그냥 무시했던 거 같아요. 제가 아무리 같이 있는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는 게 좋아도 기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그 대상이지, 저한테 X같이 굴면 더 X같이 구는 거죠. 옛날부터 인상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 (웃음) 연예인, 개그맨처럼 저한테 요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그럴 만한 꺼리도 없었구요. 개그맨들이야 유행어가 있으니까 그럴 수 있지만… 생각보다 편안했어요.





LE: 이제 방송을 한창 하던 시절로부터 시간이 좀 지났는데, 엔터테이너, 방송인으로서 방송을 계속 많이 하게 됐다면 일종의 중압갑 같은 걸 잘 견디면서 해나갔을 거 같나요?

솔직히 잘했을 거 같아요. 아까 얘기했던 텐션도 있지만, 전 그런 걸 잘 즐기는 편이고, 새로운 상황에 가서 돌파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서요. 남 신경 많이 안 쓰고, 잘되려는 욕망도 있었으니까 서포터가 확실하게 있었다면 잘 됐을 수도 있고, 잘되다가 약간 폭주해서 X됐을 수도 있겠죠. (웃음) 근데 너무 유명해지는 건 안 좋은 거 같아요. 저는 지금도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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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지금까지 음악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 음악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내가 알빠야”라는 노래의 가사를 보니까 이런 구절이 있더라구요. “구걸하는 게 난 싫어서 내 비트 내가 다 만들어” 말씀해주시는 걸 계속 듣다 보면 굉장히 오래전부터 시퀀싱, 프로듀싱을 해오신 거 같아요.

아마 열일곱, 열여덟부터일 거예요. 그때 처음에는 중고 MPC를 사서 방구석에서 형들이랑 같이 했죠. 제 기억에 엄마 차 몰래 끌고 나와서 타다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병원에 갔었어요. 그다음에 보험사에서 오더니 백만 원을 줄 테니까 나가라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나가서 그걸로 MPC를 샀었어요. 그때부터 그 짓만 했죠. 비트 만들고, 카페 같은 데 들어가서 찾아보고, 시퀀싱하고, 오디오 따서 만들고… 어디 뭘 낸 적이 없어서 그렇지, 그런 과정은 사실 거의 20년 가까이 계속해왔죠. 지금도 해오던 걸 하진 않고 새로운 걸 많이 하려는 편이에요. (새로운 걸) 찾으면 기분이 좋아요. ‘아, 이런 식으로도 만드는구나’ 하죠. 다른 프로듀서들 만나서 놀다 보면, 예를 들어 댄스에서는 사이드체인 같은 걸 쓰는데 뭔지 몰랐다가 알게 되는 거죠. 그걸 또 제가 써보고, ‘이게 내 거에서도 되네’ 느끼면서 배우죠. (LE: 요새는 MPC 안 쓰시죠?) 네, 안 쓰죠. 전 ‘장비병’ 있는 사람들의 완전 반대에요. 그런 건 다 X신이고, 그냥 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음악은 다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새는 다 그렇게 하는 거 같구요.





LE: “내가 알빠야” 가사 얘기를 조금 더 하면요. 키디비(KittiB) 씨와 블랙넛(Black Nut) 씨에 관해서 언급하셨잖아요. 한 번 짚고 넘어가면 좋을 거 같아요. 어느 정도 논란이 있었던 거로 기억해서요.

가사 그대로예요. 기본적으로 블랙넛의 팬이구요. 인간성은 별로 신경 안 쓰고,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요. 인성이 이상할수록 음악은 훨씬 멋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티스트를 인성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도 재밌다고 생각해요. 광대를 보고 ‘쟤가 쟤 부모님한테 잘할까?’ 이렇게 아무도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러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하구요. 기본적으로 걔가 하는 쇼가 재미있으면 1등 광대인 거고, 재미가 없으면 싸구려 광대가 되는 거죠. 전 그 사람이 어디서 술 먹고 싸움질을 하는지 마는지를 굳이 신경 안 써요. 영화를 보고 어떤 배우를 좋아하면 ‘이 여자 X나 이쁘다’, ‘결혼하고 싶다’ 뭐 이런 생각을 하지, ‘얘가 무단횡단을 하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잖아요. (전원 웃음) 근데 누구를 성폭행했다, 그 정도로 죄질이 무겁다면 욕 먹을 만하죠. (그 사건이) 그런 쪽이었기 때문에 후회스러운 면도 있지만, 사람마다 기준이라는 게 있잖아요. 제 기준에서 (블랙넛이) 그렇게 악질인 친구 같지는 않았어요.

아무튼, 음악 하는 사람들이 음악 밖에서 싸우는 게 별로 멋이 없는 것 같아요. 그때 기사를 봤었나? 보면서 음악 안에서 해결하면 더 재미있었을 거 같다고 느꼈어요. “내가 알빠야”는 관심이 없다는 걸 주제로 시작된 노래였는데, 그때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 곡을 만들었었어요. 전 제 감정을 음악으로 해소하는 편이고, 뱉으면서 녹음하는 편이라서 별생각 없이 (가사를) 썼었어요. 무슨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블랙넛을 예술가로서 X나 좋아해요. 그 생각은 변함이 없고, 사람에 대해선 잘 몰라요. 둘 다 어떤 사람인지 관심도 없고 잘 몰라요. 단지 블랙넛을 예술가로 생각했다면, (또 다른) 한 명의 음악은 저한테 그렇게 멋있게 다가오지 않았던 거예요.





LE: 다시 돌아오면요. 1집 [살아숨셔]부터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사운드적으로 연구했다는 티가 많이 났던 거 같아요. 트렌디하고 팝한 사운드를 구현하려고 공들인 느낌이 좀 들었어요. 실제로 1집을 준비하시면서 그전에 시퀀싱했던 것과 다르게 조금 더 탐구한 부분이 있을까요?

1집 만들 때 생각은 이걸로 뭐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아, X발 이거 내고 말아야겠다’ 뭐라도 하나 하고 끝내야지, 래퍼로서 앨범도 하나 없이 그만둘 순 없다는 생각이었어요. 진짜로 그다음에 랩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오히려 (앨범) 내고 돈 벌 일자리나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할 거, 잘될 거를 아예 신경 안 쓰고 제가 하고 싶었던 걸 집중해서 했던 거 같아요. 트렌디한 건, 제가 새로운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해요. 기본적인 모토가 누구보다 빨리 새로운 걸 듣고, 그걸 제 식대로 구현해내는 거 같아요. 그게 (앨범에) 녹아든 게 아닌가 아닐까 싶어요. 또, 그때는 다른 건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작업실에서 음악만 만들고, 들어보고, 그렇게 한 반년, 1년 정도 있었으니까요.




LE: 새로운 걸 추구한다고 하셨는데, 각각의 작업물과도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시러 REMIX” 같은 경우에는 주로 요즘 가장 트렌디한 걸 하는 어리고 젊은 래퍼들이 잔뜩 모여 있잖아요. 범주를 국내로 봤을 때, 가장 최신의 감각으로 음악을 하는 플레이어들 디깅하는 편이신가요?

디깅은 항상 하는 편이에요. 옛날엔 한국힙합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제가 한국에서 힙합을 하는 순간부터 한국힙합이 되게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다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었어요. 도끼(Dok2)가 한창 잘 나가기 시작할 때도 전 솔직히 도끼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래퍼로서 잘 나가는 모습이 싫으니까 듣기도 싫은 거예요. (웃음) 사실 저도 저렇게 되고 싶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는 애가 있으니까 X같아서 안 듣는 거죠. 이제는 달라졌죠. 누가 나온다 그러면 다 들어보고, 좋다고 하는 앨범 있으면 찾아보고, 좋다고 하기 전에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먼저 들어보려고도 해요. 요새는 데모가 진짜 많이 와서 시간 나면 거의 다 들어보는데, 하루에 한 개씩은 와요. 제가 듣다가 좋아서 사운드클라우드 계정에 가보면 어느 정도 라이즈 업되고 있는 중이더라구요.

디깅을 많이 하면 좋은 게, 제가 많이 배울 수 있어요. 보통 어리고 경력이 많이 없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래서인지 비트 기본 툴로 다 만든 거라는 식으로 자신감이 없더라구요. 전 오히려 잘 몰라서 그런 건지, 일부러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러프한 맛이 그 친구들한테 있다고 생각해요. 그 맛을 느끼려면 그런 류의 음악을 찾아서 들어야 하는 거 같아요. 들으면서 계속 배우고, 탑 티어의 음악들은 그거대로 듣죠. 그러다 보면 이 음악이 어디서 왔고, 이 악기를 이렇게 썼고, 가사도 이런 식으로 쓴다는 걸 알게 되죠. 노래는 구려도 X나 멋있는 가사 하나가 있는 곡도 있잖아요. 그런 포인트를 신예들한테 흡수할 수 있는 게 좋더라구요. 영감받을 수 있는 걸 여기저기서 찾는 거예요. 그리고 사운드클라우드를 쓴 이후부터 기본적인 음악의 퀄리티가 되게 높아졌어요. 즐긴다기보다는 어떤 트렌드가 있으면 방구석에서 음악 하는 애들이 다 하고 있는 걸 보면서 그 트렌드가 벌써 이만큼 와 있고, 지금 애들은 뭘 좋아하고, 제가 좋아하는 다른 누구도 좋아한다는 걸 깨달으면서 음악 순환을 시키는 거죠. 저도 아무리 찾아 들어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원래 “시러 REMIX”를 낸 것도 그전까지는 음악을 너무 혼자 하다가 이제는 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였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필요할 때 딱 그 사람이랑 할 수 있게 같이 하고 싶은 이런 애, 저런 애를 많이 찾아 놨었죠.





LE: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좋은 아티스트를 발견하면 ‘저 염따인데, 만나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편인가요?

다 그렇게 했죠. 메시지 보내서 안 읽으면 마는 거구요. 전 다 그런 줄 알았는데, 하자고 했을 때 유명하든 안 유명하든 다 같이 하더라구요. 음악하는 사람들은 누가 유명하고 안 유명하고가 신경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지만, 일차적으로 딱 보냈을 때 음악이 X나 좋으면 무조건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서 제가 자신감이 있어요. 제가 어떤 사람한테 이 비트를 보낼 때는 얘가 분명히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있으니까 보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 그 사람이랑 같이 하고 싶은 거구요. 유명세는 음악 만드는 데 도움이 안 되거든요.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게 좋지, 그걸 갑자기 슈퍼스타가 와서 한다고 몇 백만 원이 더 벌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LE: 요새 힙합이 워낙 많이 변하다 보니까 이전의 힙합을 아는 사람 중에는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한 분들도 있는 거 같더라구요. 염따 씨는 수용하고 인정하는 과정을 거친다기보다는 그냥 새로운 것 자체에 항상 열려 있는 편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오히려 그 반대인 거 같아요. 옛날 거를 들으면 ‘어떻게 이런 걸 들었었지?’ 싶어요. (전원 웃음) 솔직히 음악을 매일 들으면 그런 생각을 가질 틈이 없어요. 부모님 시대까진 안 가더라도 우리 시대 때 TV에서 가수들 보다가 지금 걸그룹들 보면 ‘옷을 뭐 다 저렇게 입고 있어?’ 싶잖아요. 근데 늘 TV를 보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느끼죠. 없던 게 뿅 나타나는 게 아니거든요. 요즘 힙합에서 베이스 쓰는 스타일이나 특이한 헤어스타일 같은 건 늘 있어 왔고, 단지 그 예전 사람이 그 시대의 탑 티어가 아니었던 것뿐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투팍(2Pac) 때도 그런 사람들은 조금 다르게 있었어요. 그중 어떤 게 사람들 문화에 잘 적응하느냐인 거 같아요. 인정하는 건 저랑 포인트가 안 맞는 거 같아요. 음악을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힙합은 뭐다 이런 식. 힙합이란 말도 X나 간지러운 거 같아요. 이건 힙합이고, 저건 힙합이 아니라고 누가 얘기하는 거 자체가 웃겨요. 누가 나와서 힙합은 어떻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뭐, X발 X도 얼마나 안다고’ 싶어요. (전원 웃음) ‘젊은 세대는 이런 거 아니야?’, ‘아빠는 이래야 하는 거 아냐?’ 뭐 그런 건데, 정해진 게 어디 있어요. 이 아빠, 저 아빠 사람 다 다르고, 서로 다르게 살 텐데. 힙합하는 사람이 몇천 만 명 될 텐데, 그걸 누가 이거다 아니다 하는 건 그냥 그 사람이 속으로 생각하는 힙합이 그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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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럼 요즘 국내 쪽에서 본인이 생각하기에 프레쉬한 걸 한다 싶은 아티스트를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요새 스타렉스(Starex) 크루 애들이 멋있게 하는 거 같고, 그중에 퓨처리스틱 스웨버(Futuristic Swaver)를 되게 좋아해요. 걔 음악을 항상 듣는 게 전 그냥 래퍼보다는 좋은 음악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해요. 그런 기준에서 퓨처리스틱 스웨버가 되게 멋있는 거 같아요. 최근에 웻 보이즈(Wet Boyz)도 좋게 들어서 같이 한 번 작업했었고, 걔네 친구 중에 밀하우스(Milhouse)라는 친구도 괜찮았던 거 같아요. 얼마 전에 밀하우스랑 홈보이(Homeboy)가 같이 한 “망치로”라는 노래를 되게 많이 들었어요. 하나 꽂히면 계속 듣는 편이라서요.





LE: 왠지 요즘 좀 반응이 있다 싶은 어리고 젊은 계열의 아티스트들에게는 웬만하면 다 연락을 해보셨을 것만 같네요. (웃음)

이걸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저는 유명하든, 안 유명하든 간에 모든 래퍼를 제 악기로 가지고 있고 싶어요. 제가 딱 듣고 좋다고 생각했을 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제가 노래를 항상 만드니까 뭔가 만들었다가 그 친구가 필요할 때 바로 얘기해서 할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좋다고 판단하는 건 5초도 안 걸리거든요. 요새는 DM을 바로 보낼 수 있는 게 좋은 거 같아요. 메시지 보내서 (작업을같이 해도 좋다는 의사를) 받아놓고, 나중에 생각나면 (노래 보내고,) 잘 되면 잘 되는 거구요. 그래서 “시러 REMIX”도 단시간에 그렇게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연락하고, 벌스받고 그러는 건데, 그런 과정이 재미있어요. 요즘은 현장에서 만날 일이 많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전 <백앤포스(BACK N FORTH)>를 하니까 많이 만나는 편인 거 같아요. 굳이 뭘 안 해도 누가 놀러 오면, 아니면 저도 클럽을 자주 가니까 알아 놓는 경우가 많죠. 작업할 때쯤 연락하겠다고 얘기를 해두고 번호를 따놓죠.





LE: 보통 그런 어린 세대의 래퍼들과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거나 하면, 어린 세대들은 본인을 동년배들과 좀 다르게 바라본다고 느껴질 때가 있나요? 아니면 나이나 경력 같은 걸 서로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인가요?

저는 신경 안 쓰는 거 같아요. 근데 살면서 지내보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늘 제 또래들인 거 같아요. 그런 걸 항상 물어봐요. 저랑 노는 애들이랑 저는 그런 걸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누구라고 말은 못 해도 제 또래나 제 주위로 조금 위아래인 친구들은 (세대가 다른 걸) 조금 어려워하더라구요. 저는 성격상 굳이 어린 친구들 쪽으로 가서 만나는 건 아니구요. 제가 됐든, 그 사람이 됐든, 기본적으로 호감이 있으면 다가가는 거죠. 다가가서 자연스럽게 저를 보여주는 과정이 성격적으로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요. 뭘 의도하고 그러지는 않는데…
 




LE: 의도하지 않으니까 더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나이가 있으니까 요새는 동년배들이랑 놀 일이 없어요. 생각해보면 서른다섯, 여섯인 사람들한테는 친구랑 논다는 개념이 아예 없어요. 근데 저는 친구랑 놀고 싶으니까 친구를 만들어서 노는 거죠. 아무래도 나이가 많을수록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기 힘든데, 어린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조금 더 편하겠죠. 저를 편하게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재미있고 좋아요. 일단 같이 놀 사람이 필요하구요. (웃음) 작업을 안 해도 클럽 같은 곳에 갈 때도 혼자서 가는 건 싫으니까. 혼자 갈 때도 많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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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백앤포스 얘기를 좀 더 해볼까요? 요즘도 꾸준히 백앤포스 활동을 하고 계시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일이면서도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활동이잖아요. 사명감이 있다기보다는 지금도 즐기고 계시지 않을까 싶은데요.

올해가 7주년이네요. 노는 거랑 일 중간이라서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이렇게 (백앤포스 활동을) 오래 할 수 있는 게, 아무도 집착을 안 해요. 이걸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요. 자기 벌이는 자기가 알아서 해요. 맨 처음에 백앤포스를 시작한 계기가 힙합 클럽들이 다 망하고 일렉트로닉 음악 트는 클럽밖에 없었을 때, 우리가 술 먹고 놀 데가 없어서였어요. 지금도 마음가짐은 같아요.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서 놀고 싶으니까 하는 거죠. 지금은 다들 몸집이 커지다 보니 조금씩 의무감으로 하는 게 없지 않지만, 일차적으로는 여전히 술 먹으면서 놀자, 짜치지 않는 공간에서 짜치지 않는 음악으로 놀자는 주의에요. 남의 클럽 가서 돈 내고 노는 거랑 우리 집에 불러서 노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그래서 저보다 나이 많은 형들인데도 계속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백앤포스 활동을 꾸준히 안 했다면 지금 음악을 안 하고 있었을 수도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을 때도 백앤포스 활동 덕분에 조금이나마 사람들을 만나면서 해소했었으니까요. 제가 (씬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게 도와준 거죠. 





LE: 백앤포스 활동이라든지, 아니면 다른 클럽으로 놀러 다닌다든지 하면 어쨌든 홍대, 이태원 쪽에 있을 일이 많은 거잖아요. 어딜 가든 강동에서 가려면 멀다는 느낌이 강한데, 집을 옮길 생각을 해보신 적은 없나요?

생각 많이 해봤죠. 노력도 좀 해봤는데, 굳이 사람들 많은 데 가는 게 좋을 것 같지는 않았어요. 아티스트는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야 작업물을 제대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저는 성격상 이태원, 홍대, 이런 데 살면 분명히 엄청 놀 거예요. 지금도 일이 있든 없든 적어도 주 1회는 가는 거 같은데, 굳이 (집을) 옮겨야 하나 싶은 거죠. 집에서 혼자 작업하고 있으면 근질근질하긴 해요. 그래서 참고 작업하다가 주말이 되면 아는 DJ한테 전화해서 몇 시에 하느냐고 물어보고 그냥 가는 거예요. 돌아와서 또 조용히 작업하구요. 지금 강동에 오셨으니 아시겠지만, 여기가 또 기본적으로 사람 사는 한적한 동네라서요.





LE: "그럼" 같은 곡에서 강동을 샤라웃한 건 이런 분위기나 환경을 좋아해서인가요?

사람들은 제가 강동을 샤라웃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가사를 생각하고 쓰지 않고 일단 뱉고 짜깁기하는 편이라 자연스럽게 제 얘기가 나오는 거예요. 맨날 여기 있으니까 여기 얘기가 강조되는 거 아닐까요? (웃음) 사람이 처음 만나면 물어보잖아요. ‘안녕하세요?’, ‘어디 사세요?’, ‘몇 살이세요?’ 저는 그냥 그런 얘기를 한 거예요. 아무래도 강동이라는 지역이 강남, 홍대처럼 유명한 지역이 아니다 보니 사람들한테 어필이 된 것 같아요. 여기가 서울인 줄도 잘 모르고 경기도인 줄 아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전원 웃음)





LE: 작사 방식이 자연스러운 편이라고 하셨는데요. 앞서도 얘기해주셨던 동시에 많은 것을 함께 진행하는 작업 스타일에 관해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일단 요새 나온 음악을 찾아 듣죠. 이 노래 X나 좋다 싶으면 그 곡을 계속 들어요. 여기서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이런 걸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하죠. 그러다 예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고, 가사 내용이 떠오르죠. 누구의 공연이 멋있거나 구려서 얻은 영감이 녹아들기도 하구요. 그런 걸 평소에 저장해놨다가 제 텐션이 좋을 때 하나씩 끄집어내요. 그때 곡을 대충 만들고, 그 위에 노래를 부르면 멜로디든, 라임이든 뭐가 나오긴 해요. "’X발, X발 어쩌구’하다 보면 뭐라도 하나 나와요. (웃음) 그 후에 운동하면서 듣다 보면 다듬을 게 보이고, 어떤 내용으로 이어갈지 구상이 나와서 가사도 쓰고, 편곡도 하는 거죠. 어떤 과정이 따로 있는 게 아닌 거죠.

예전에 믹스, 작사, 편곡을 별개로도 해봤는데, 저한테는 안 맞더라구요. 제가 작곡, 편곡을 웬만큼 하고 다른 사람한테 (믹스를) 맡겨본 적도 있는데, 싫더라구요. 기본적으로 그 사람이 제가 무슨 마음, 의도로 만들었는지를 전혀 모르잖아요. 전 다른 사람 손으로 조금이라도 바뀌는 게 싫더라구요. 'X발, 네가 뭘 안다고 바꿔 놔?' 이런 느낌. (전원 웃음) 돈을 내고 맡겼는데도 다시 가져와서 수정을 해야 하니까 '뭐 하는 거지?' 싶더라구요. '누구한테 맡겨 봤자 내가 더 잘하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생기니까 그때부터는 제 마음대로 한꺼번에 작업하는 방식이 편해졌어요. 





LE: 멜로디 라인도 영감이 오는 대로 마구 짜 버리는 편인 건가요? 싱잉 랩 스타일을 본능적으로 가져가시는 거 같더라구요.

전 사실 싱잉 랩 같은 용어가 생소해요. 개인적으로 정말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게 구분 짓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자기가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잘 모르니까 이게 어떤 스타일이라고 하는 거 같아요. 저는 노래를 해야겠다, 랩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항상 음악을 만들어왔고, 제가 만든 음악 위에 목소리를 넣었던 거예요. 생각해보면 옛날에 (작업물을) 조금씩 냈을 때도 지금처럼 노래 부르는 스타일로 많이 했었는데, 단지 화제가 안되다 보니까 사람들이 잘 몰랐던 거죠. 따져보면 전 스타일을 바꾼 적이 없고, 특별히 어떤 스타일을 의도하지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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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예전에도 노래를 한다든가, 랩에 멜로디를 입히는 편이었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마인드나 음악 자체는 “스타렉스”를 비롯해 [살아숨셔]를 낼 때 즈음부터 자연스러운 쪽으로 변화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Simple Is The Best’라는 말이 있잖아요. 히트곡들을 들어봐도 복잡한 곡보다는 툭 만든 것들이 좋고, 전 그걸 직접 체감하는 편이에요. 뭔가를 만들어 냈을 때, 피드백을 보면 뭘 의도해서 만든 것보다 최대한 손이 덜 간 걸 사람들이 더 좋아하더라구요. 최소한 제 음악 안에서는 어떻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갈수록 별로인 거 같아요. ‘이번 건 좀 구린데, 다시 녹음할까?’ 생각이 들어도 최대한 참아요. 처음 만들 때부터 수정하지 않게끔 하려고 노력해요.





LE: 그럼 녹음할 때도 웬만해선 한 번에 끝내시는 편이겠네요.

많이 해봤자 변하는 것도 없어요. 오히려 초반에 쌓아 놓는 작업을 많이 해요. 거의 가사도 없이 웅얼웅얼하는 걸 많이 녹음해 놓고, 맨날 들으면 쓸 내용이 생각나요. 그렇게 디테일 없이 스케치가 나오면 한두 마디 정도 녹음해보고, 그게 또 괜찮으면 다음 가사 써서 녹음하는 거죠.





LE: 들었던 음악이 본인 음악에 반영될 수밖에 없을 거 같은데요. 어떤 분들은 염따 씨를 보고 국산 드레이크(Drake)라고 하시더라구요. (전원 웃음) 그런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시나요?

언제 공연할 때 누가 저보고 “어! 드레이크!” 이랬어요. (전원 웃음) 칭찬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걸 예전부터 많이 들었는데, 드레이크 X나 멋있잖아요. 영향을 안 받았다고 하면 구라지. 근데 드레이크를 따라 했다기보다는 드레이크를 X나 들었으니까 그 색깔이 우러난 것 같아요. 전 드레이크가 만드는 음악을 항상 좋아해요. 고집스럽지 않고 돕하면서도 히트도 하잖아요. 그리고 저도 말에 담긴 뉘앙스를 알잖아요. 국산 드레이크라고 하는 게 부정적이지 않고 재미있는 느낌이잖아요. ‘아, 드레이크 카피캣 X발 새끼’ 이러면 기분이 안 좋겠지. (전원 웃음) 근데 황색 드레이크, ‘드레이크가 미국의 염따 이런 식으로 재미있게 말하는 게 저라는 사람을 갖고 노는 거니까 아티스트로서 되게 고마워요.





LE: 드레이크도 드레이크인데, “스타렉스”의 곡 스타일을 보면 드레이크를 넘어서 OVO 사운드(OVO Sound)의 느낌이 나기도 하는데요. 레퍼런스한 곡, 아티스트가 있었던 건가요? 꼭 일부러 참고하지 않더라도 영향받은 게 있을 수도 있구요.

그때는 빅 션(Big Sean)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Dark Sky Paradise]를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사실 “스타렉스”는 실제로 그런 친구를 만나서 같이 있다 보니 제가 보게 된 장면을 청각화한 곡이라서 음악적으로 어떤 걸 참고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LE: 레퍼런스로 봤을 때, [살아숨셔]와 [MINA] 사이에 어떤 차이가 특별히 있을까요?

사실 모든 곡에 (레퍼런스가) 있어요. 왜냐하면, 저는 좋은 곡이 있어서 팍 꽂히면 그 노래만 천 번 이상 들어요. 물론, (노래를) 틀고 ‘자, 베껴볼까!’ 이러는 건 아니구요. (웃음) 근데 사람들한테 굳이 레퍼런스가 있다고 먼저 얘기하고 싶진 않아요. 레퍼런스라는 단어가 어떻게 보면 부정적이잖아요. 물어보면 맞다고는 하죠. 좋게 말하면 다른 노래에서 영감을 얻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비빈 건데, 어쨌든 제 모든 노래에는 무언가의 영향이 있어요. 완전 무에서 유를 창조한 건 없고 다 제가 들었던 음악의 기억에서부터 출발하는 편이에요. 기본적으로 모두가 다 그렇게 음악을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표절인지 아닌지는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아요. 다른 사람들이 다 몰라도 자기는 알고, 다 표절이라고 해도 내가 아니면 아닌 거죠. 저는 표절이라고 생각되는 걸 만들지도 않고, 또 선을 지키려고 노력하죠.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비슷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과감하게 털어내요. ‘이건 내 노래다’라고 말할 자신감이 있을 때 그 음악을 내는 것 같아요.





LE: 그 자신감은 보통 어디서 오는 편인가요? 염따 씨만의 개성적인 요소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저는 래퍼다 보니 아무래도 가사인 거 같아요. 사운드적으로는 이제는 완벽하게 다를 수는 없는 거 같아요. 힙합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힙합을 만들 수도 없잖아요. 래퍼의 음악이 멋있다고 느낄 때는 사운드보다는 가사 한 줄이 꽂힐 때인 것 같아요. 가사에서 자기 얘기를 자기 방식대로 하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최근에는 더콰이엇이 그랬어요. “니가 가진 돈이라곤 t money” 이런 거. (웃음) 누가 들어도 기억에 남는 그런 가사가 딱 있으면 그 노래는 제 마음 속에서 이미 멋있는 노래죠. 저도 그런 가사를 찾아보면서 힙합에 빠졌으니까요. 사실 가사적인 게 없으면 아무리 잘 만들어도 그냥 X밥 같아요. (웃음)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은 티가 나고 재미도 없어요. 그런 사람들 노래 들을 바엔 외국 노래 중에 X나 멋있는 거 듣죠. 근데 드레이크를 안 듣고 저를 듣는 이유는? (전원 웃음) 제가 하는 얘기가 재미있으니까 듣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운드나 스타일로 멋있는 사람들은 훨씬 많지만, 우리는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의 이야기가 듣고 싶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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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살아숨셔]에는 피처링이 아예 없는데, [MINA]에는 몇몇 래퍼분들이 참여했었는데요. 던밀스(Don Mills) 씨, 뱃사공 씨, 디보(Dbo) 씨는 모두 자기 것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해서 함께 작업하신 건가요?

디보는 그 부분에서 선두주자죠. 표현 방식이 재미있잖아요. 제 찜 리스트에 넣고, '언젠가는 얘랑 해야지’ 생각했던 아티스트 중 하나였어요.  기린도 마찬가지였어요. 뱃사공은 음악적으로 잘 알지 못했고, 리짓군즈(Legit Goons)도 잘 몰랐어요. 뱃사공의 랩을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그냥 인스타그램에서 댓글로 장난치길래 러브콜을 보냈어요. (웃음) 던밀스는 원래부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었구요. 다른 말이지만, [살아숨셔]를 낼 때는 누구랑 작업을 같이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그냥 '내 노래 열 개 만들어서 내고 끝내자' 이런 식이었어요. 그 이후로 계속 음악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래퍼들도 만나고,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보니 ([MINA]에서는 콜라보) 작업이 성사된 것 같아요.





LE: [살아숨셔]는 피처링이 없는 대신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고 있고, [MINA]는 한 여성을 주제로 게스트들과 흥미롭게 만든 앨범이잖아요. 둘 중에 가사적인 면이나 스토리적인 면에서 더 애착이 가는 앨범이 있을까요?

우위를 따지기는 힘든 것 같아요. [살아숨셔]는 어떻게 보면 제가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고, [MINA]도 제 삶에 영향을 많이 준 앨범이에요.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엔 사랑 노래로 힙합을 내면 시끌벅적했잖아요. 전 역으로 사랑 노래만 하는 앨범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MINA]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에 여자친구와 만나고 헤어졌을 때 심리가 그대로 담겨서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둘 다 좋은데, 사실 옛날 것들 생각을 잘 안 하는 편이에요. 지난 일로 후회하거나 뿌듯해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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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근데 [살아숨셔]를 발매한 즈음에 <황치와 넉치> 나오셔서는 되게 감격스럽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앨범 반응을 보고 울었다는 말도 하셨던 것 같은데요.

그때는 앨범 낸 직후였고,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지금처럼 이렇게 인터뷰를 해주신다든지, 피드백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살아숨셔]를 내고 나서는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개인적으로 연락도 오고, 댓글도 처음으로 달렸으니까요. 원래는 제 얘기가 없어서 보기 싫기도 해서 커뮤니티를 잘 안 봤어요. 근데 제 작업물로 처음 인정을 받으니까 지하철에서 눈물을 흘린 거죠. 그때 음악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고, 바로 [MINA] 작업에 돌입했어요. 전 그냥 인정을 바라는 사람인 거 같고, 그 맛을 봐서 그런지 지금 같은 상황이 너무 기분 좋아요.





LE: [MINA]를 만들고 앨범의 여주인공(?)분에게 직접 문자를 받으셨다고 알고 있어요. 혹시 다른 분에게도…?

저는 보통 음원을 발표하기 전에 얘기해요. 네 얘기를 썼다면서 먼저 들려줘요. 그런 피드백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우리 얘기를 썼는데, 화가 나면 화가 난다, 좋으면 좋다, 의견을 먼저 받아야죠. 이 사람이 못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들도 못 받아들일 테니까요. 그래서 그 친구한테도 피드백이 왔어요. 그 때 아마 헤어졌다가 만나다가 다시 헤어지는 과정 사이에서 앨범이 발매됐을 거예요. 걔가 ‘나 팔아서 돈 버니까 좋냐?’ 이런 식으로 얘기했었죠. 어떻게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냐고 욕을 먹었죠. 그게 “비가 와요”라는 노래 때문이었어요. “나도 알아요 그대가 지금 내게 원하는 건 나랑 결혼해줄래 그대라는 그 말이죠 (…) 지금은 널 사랑하지만 언젠간 너보다 훨씬 나은 여자를 만날 것만 같은 생각이 나요” 이 부분에서 화가 많이 난 거 같더라구요. 진짜 그런 생각을 했냐고 하길래 아니라고, 음악을 만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말이 부풀려진다고, 미안하다는 식으로 얘기했었죠. 걔도 제가 진심만 담아서 음악 만드는 걸 알아요. 전 아무도 안 드러내는 솔직함까지 최대한 끌어내는 게 멋있다고 생각해서 한 거구요.

그리고 헤어지고 나서도 몇 번 서로 연락한 적 있어요. 저한테 뜬금없이 욕한 적도 있어요. 저는 계속 노래를 내고, 자연스럽게 그 친구가 알 만한 우리 둘만의 얘기나 공간이 툭툭 노랫말에 나오니까요. 그럼 아까랑 똑같이 뭐라 하고, 미안하다고 하는 거죠. (웃음) 그 친구가 계속 제 음악을 예의주시한다기보다는 친구 중에 음악 좋아하는 애들이 많아서 주변에서 귀띔을 해주나 봐요. 항상 제보(?)가 온다고 하더라구요.





LE: “그녀를 원해” 같은 곡은 상황이 무척 구체적이잖아요.

그건 오히려 주인공이랑 커버 아트워크도 같이 찍어서 논외죠. 아, 가사에서 언급한 킬라그램(Killagramz)한테 연락이 온 적은 있어요. 어떻게 생각할까 싶었는데, 재미있게 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전 그게 디스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어차피 여자 꼬시려고 하는 건 누구나 똑같으니까. 얘가 미국물을 좀 먹었으니까 쿨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쿨한 반응이 돌아왔어요. 저도 “고맙다… 한 곡 하자…” 그랬죠. (전원 웃음)  “시러”라는 곡이 그렇게 시작한 거예요. 막상 킬라그램은 빠졌지만요.





LE: 그랬군요. (웃음) 어쨌든 [살아숨셔]나 [MINA] 둘 다 꽤나 좋은 성과를 거뒀잖아요. 레이블에서 러브콜이 온 적은 없었나요?

있긴 있었는데, 음악 외적인 일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요. 지금 준비하는 앨범에 최대한 영향이 안 가게 하고 싶어요. 솔직히 제가 인제 와서 어디 들어간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구요. 누굴 데리고 사장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면 거짓말이죠. 왜냐하면, 팔로알토(Paloalto), 딥플로우(Deepflow) 같은 제 나이대 친구들은 그러니까요. 근데 그 마음보다는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비즈니스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요. 지금은 또 저만의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으니까 일단 3집까지는 음악에만 집중하려 해요.





LE: 그럼 지금은 음악 외의 모든 업무를 직접 맡고 계신 건가요? 인디펜던트 뮤지션 중에는 행정적인 부분을 도맡는 걸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다 힘겨워하죠. 음악 하는 사람들은 보통 음악 말고 다른 일을 하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건 음악인데, 음악 외적인 것들을 해야 하니까 힘든 거고, 저도 똑같이 하기 싫고 귀찮죠. 게다가 훌륭한 퀄리티를 원하면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미팅도 해야 하고 돈도 엄청 많이 들잖아요. 그렇다고 너무 커리어 없는 사람이랑 일을 하면 아마추어같이 나오구요. 저는 그 상황을 다 거쳐봐서 지금은 크게 힘들지 않아요. 커버 아트워크도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음악 디깅하는 것처럼 사진이나 아트워크하는 사람들을 디깅해서 인스타그램에 보관해놔요. 나중에 필요할 때 쭉 다시 훑어보고 연락하죠. 사실 커버 아트워크는 정규가 아닌 이상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어느 정도 분위기만 맞으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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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정규 앨범의 커버 아트워크를 맡아주신 로우 디가(Row Digga) 씨와는 어떻게 함께하게 되신 건가요?

1집 때는 로우 디가랑 진짜 하고 싶었어요. 2집 때는 로우 디가 말고 컨택해놓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잠수를 타버려서 취소가 됐거든요. 그래서 다시 로우 디가랑 했어요. 로우 디가의 작업물들을 워낙 좋아해요. [MINA] 커버 아트워크도 저는 마음에 들었는데, 사람들이 제 면상을 왜 박았냐고 말이 많더라구요. (전원 웃음) 저는 진짜 괜찮았는데, 로우 디가가 많이 미안해해서 오히려 제가 더 미안했어요.





LE: 얼굴을 넣자는 아이디어가 로우 디가 씨의 아이디어였나요?

그 아이디어를 제가 낸 거라서 미안했죠. (전원 웃음) 한 번쯤은 얼굴을 넣어 보고 싶었어요. 근데 사람들이 안 좋게 생각하니까 ‘다음번에는 빼야겠군!’ ‘멀리서 찍어야겠다!’ (싶었어요.) (웃음) 실은 제가 음악 외적인 피드백을 되게 신경 쓰는 편이에요. 음악은 어느 정도 제멋대로 하는데, 다른 분야에서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를 캐치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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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인터뷰가 거의 막바지인데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 확실히 염따 씨의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진심, 리얼함인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인생의 일부를 떼어서 두 장의 앨범으로 만든 거 같기도 한데요. 자전적인 얘기를 하다 보면 소재가 무한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뭐가 남아있는지를 고민할 때가 있을 거 같아요.

저는 남 일에 관심이 진짜 없거든요. 누가 X되든 말든 신경 안 써요. 그러다 보니 음악 안에서 계속 제 얘기만 나오는 거 같아요. 다른 사람이 제가 음악으로 얻은 기쁨을 느꼈으면 하는 것도 있지만, 제 얘기를 하면 그게 자연스럽게 전달된다고 생각해요. 1집도 친구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얘기가 아니에요.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그냥 있었던 이야기, 제가 바라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되겠죠.





LE: 친구한테 이야기하듯 편하게 들리는 음악을 추구하는 편이라고 말씀하셨던 게 생각나네요.

맞아요. 특별히 대단한 걸 하기보다는 듣고 나면 저라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음악. 그걸 넘어서 저라는 사람을 좋아할 수 있으면 더 좋구요. 내가 나를 알기도 쉽지 않고, 듣는 사람도 스스로를 알기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근데 제 음악을 들으면서 누군가가 저를 알아가고, 스스로를 생각해보는 과정이 생긴다는 게 좋아요.





LE: 그렇다면 세 번째 앨범에 관해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일단 12월 발매를 목표로 작업하고 있고, 곡은 거의 다 완성됐어요. 녹음을 좀 덜 한 부분을 더하고, 뺄 부분을 빼는 것밖에 안 남은 것 같아요. 커버 아트워크를 만들어 줄 사람도 컨택하고 있구요. 아예 신곡으로만 채울 거 같아요. 최근에 거의 한 달에 하나씩 싱글을 냈는데, 작업해놓은 곡들이 많아서 그 곡들은 전부 안 넣을 거예요.

갑자기 이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어떤 사람이 제 생각을 완벽하게 간파하고 쓴 글이 있더라구요. [MINA]가 나왔을 때였는데, ‘염따의 [MINA]는 칸예 웨스트(Kanye West)가 [Yeezus]를 내기 전 발표한 [Watch the Throne]처럼 진화의 전초전이다' 뭐 이런 말이었는데, 실제로 그랬어요. [살아숨셔]를 내고 지하철에서 울었다고 했잖아요. 그러고 음악에 대한 사랑이 넘쳐서 ‘X발 앨범 하나 바로 또 내버려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그냥 [MINA]를 내 버린 거예요. 근데 보통은 다음 단계로 발전하고 싶잖아요? 이제는 조금 더 발전한 모습이 담긴 앨범이 나올 거 같아요. [MINA]는 저한테 약간 1.5집 같아요. 새 앨범이 3집이지만, 진정한 2집 같은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같이 작업하고 싶었던 사람들이랑 다 해본 뒤에 당당하게 내놓는 앨범.





LE: 예전에 <7INTERVEW>에서 하셨던 말 중에 인상 깊었던 발언이 있었어요. “올드한 게 구린 게 아니라 구린 게 구린 거다” 염따 씨는 예전 것과 요즘 것을 섞으려는 편인지, 아니면 아예 트렌디함을 완전히 흡수하려는 편인지 싶어요. 또 그런 지향점이 3집에서 드러날까 싶은데요.

주변에서 ‘올구아’라고 줄여서 X나 놀려요. (전원 웃음) 일단 두 쪽 다 아닌 거 같아요. 그냥 제가 꽂혔던 음악을 모으고, 지금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걸 제 스타일대로 우려낸 앨범이 3집이에요. 그때 ‘올구아’ 발언을 한 건 <쇼미더머니>에서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X신 같은 모습만 보여주는 사람들 때문에 그랬어요. 많은 사람이 <쇼미더머니>를 보니까 선배, 형이면 방송을 똑똑히 써먹었으면 했어요. 악마의 편집이니 뭐니 떠드는 것도 구려 보였구요. 어차피 다 알면서 유명해지려고 나가는 거잖아요. 아무튼, 찾아 듣는 것 중에는 오히려 옛날 것들도 있죠. 진짜 좋은 노래는 언제 들어도 좋잖아요? 그때 좋았던 건 지금도 좋고, 그때 구렸던 건 지금도 구린 거죠. 파티에서도 갑자기 옛날 노래가 나온다고 구려지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얼마나 좋냐 안 좋냐의 차이지, ‘옛날 것’에 대한 관념은 없어요.





LE: 마지막으로 3집을 기대하는 팬들에게 미리 살짝 공개할 수 있는 정보가 있을까요? 참여진이 될 수도 있구요.

글쎄요. 참여진… 약간 오픈한 인물들도 있어요. 차붐이랑은 3집에 들어갈 곡을 공연에서 같이 부르고 있는데, 테스트 삼아 몇 번 공연해본 게 반응이 좋아서 계속하고 있어요. 또, “저나받어 2” 같은 것도 있어요. 군대 간 던밀스를 잘 조련해서 만든 곡도 있구요. 피처링진이 저번보다 좀 많은 것 같아요. (피처링이) 있는 곡과 없는 곡이 거의 반반인 거 같네요. 지금 저랑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거의 다 참여시킨 것 같아요.

아까 집시의 탬버린 얘기 나와서 기억났는데, 얼마 전에 10년 전 즈음 집시의 탬버린 시절 때 양성 형이 녹음해놓은 벌스를 우연히 하드 정리하다가 찾았어요. 그걸로 강제 피처링을 시킨 노래도 있어요. (전원 웃음) 심폐소생해서 만들었죠. 아무튼, 스스로 만족하기도 하고,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앨범인 거 같아요. 예전에는 앨범을 만들면 꼭 돌아다니면서 피드백을 받았는데, 지금은 제 선에서 괜찮다는 확신이 생겨서 그런 일이 적어졌어요. 제목은 ‘살아숨셔 2’가 될 거 같고, 앨범 나오기 전에 싱글이 계속 나올 예정이라 늦춰지더라도 많이 늦춰진다는 느낌은 안 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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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10년 전 벌스를 소생해서 넣었다니,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목소리를 가져온 드레이크와의 평행이론을 이렇게… (웃음)

[MINA]에도 그런 부분이 있었어요. 천재노창을 너무 좋아해서 노창 목소리를 그냥 잘라서 제 노래에 넣은 부분이 있어요. 그러고 나서 노창한테 연락했죠. “네가 너무 좋아서 내 노래에 네 목소리를 썼어… 어떡할래?” (전원 웃음) 너무 좋다고 해서 허락 아닌 허락을 받았죠. 사실 허락 안 받았어도 냈을 텐데. (전원 웃음) “Silhouette”이라는 곡에 노창 목소리가 들어 있는데, 이런 디테일을 좋아해요. 3집에도 비슷한 요소들이 많은 거 같아요.





LE: 큰 기대를 해봐도 될 것 같습니다. 긴 시간 인터뷰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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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bbi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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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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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2018.11.30 22:54 댓글추천 0

    잘 읽었습니다.

  • 2018.12.1 00:36 댓글추천 0

    진짜 비주얼만 보고 프로 정통 오리지널 붐뱁퍼인줄 알고 미나 나오기전까지 안들었던거 존나 후회된다 앵간하면 댓글 잘 안다는 눈팅 족인데... 후 염따 내 최애 래퍼 중 한명으로 등극... 마인드도 존나 멋짐 영감을 주는 마인드..

  • 2018.12.1 05:48 댓글추천 0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혼자 어렵게 음악 해왔을텐데 단순한 응원글이지만 이게 음악하는데 있어 좋은 원동력이 되면 좋겠습니다

  • Bu2
    2018.12.1 16:59 댓글추천 0

    그냥 너무좋다 우리형같다.

  • 2018.12.1 19:31 댓글추천 0

    롤만 1년 ㅋ

  • 2018.12.2 02:38 댓글추천 0

    요상한 웃음포인트가 많ㄷㆍㅋㅋㅋㅋ

  • 2018.12.5 19:24 댓글추천 0

    마이크스웨거 통해서 알게 됐는데 마인드도 좋고 너무 유쾌해요! 대화를 읽고 있는데 얘기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ㅎㅎ 좋은 음악 만들어주세요!! 3집 꼭 들어볼게요!!!

2018.11.30 조회 4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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