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연재 기사나 다름없는 ‘당신이 주목해야 할’ 시리즈가 돌아왔다. 새롭게 다루게 될 국가는 오세아니아 대륙의 호주와 뉴질랜드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알앤비/소울 아티스트들은 퓨처 소울 무브먼트(Future Soul Movement)라는 하나의 큰 흐름을 그려내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퓨처 소울 밴드 하이에이터스 카이요테(Hiatus Kaiyote)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음악적 흐름이 나타난 것으로 미뤄볼 때, 두 국가의 알앤비/소울 씬이 가진 내공은 남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아티스트가 로컬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그중에는 독특한 스타일의 음악으로 전세계 팬들을 매료시킨 이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권역의 대표 격이 아니라면 제대로 소개된 바가 없기에 그 갈증을 풀고자 본 기사를 준비했다. 우선, 앞으로 세 편이 나누어 서른아홉의 오세아니아 알앤비/소울 아티스트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호주는 솔로 아티스트와 밴드로 나누어 열세 팀씩, 이어 뉴질랜드 열세 팀을 차례로 큐레이팅할 예정이다. 씬의 규모가 워낙 방대한 만큼 에디터들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뽑았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순서는 알파벳 순이다.
Banoffee
바노피(Banoffee)는 굉장히 천천히 알려졌다. 2012년 처음 사운드클라우드에 곡을 올린 뒤, 아주 천천히 입소문을 탔고, 2013년 처음으로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당시 공개했던 곡 중 몇을 포함하여 2014년에야 자신의 이름을 딴 첫 EP를 발표했다. 외에도 바노피는 많은 DJ, 프로듀서들에게 리믹스를 받았으며, 지금까지 싱글, EP 단위의 작품만 발표하고 있다. 지금까지 낸 음악은 대부분 알앤비와 뉴웨이브, 신스팝을 결합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정규 앨범과 같은 긴 호흡에서는 어떠한 변화를 줄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싱글, EP 단위로만 작품을 내다보니 뚜렷하게 자기 정체성은 뚜렷하게 보여주는 대신 지나치게 한결같은 느낌이다. 과연 긴 호흡일 때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 Banoffee - With Her
Blasko
블라스코(Blasko)의 음악은 하나 같이 편안함과 달달함을 자랑한다. 그는 최근 믹스테입 [Blasko In Love Pt.1]을 발표하였는데, 모든 곡의 타이틀에 러브가 붙어 있을 만큼 나름의 컨셉(?)을 공고히 하고 있다. 특히나 각 곡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애수가 묻어 있는 그의 보컬 덕분. 분위기에 따라 때로는 애절함을, 때로는 사랑의 풋풋함을 담아낸다. 대표적으로 믹스테입의 선공개 곡인 “Another Love”에선 댄서블한 비트에서 사랑의 순간을 그려낸다. 전자음이 다소 섞여 있지만, 그 느낌이 과하지 않아 누구나 부담 없이 들을 만하다. “Future Love”에서는 좀 더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선사하려 한 노력이 느껴지는 만큼 곡의 컨셉을 헤아리며 앨범을 듣는다면 흥미롭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 Blasko - Another Love (Live)
Elizabeth Rose
데뷔 직후부터 쭉 지켜본 엘리자베스 로즈(Elizabeth Rose)는 2012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조금씩 주목받는가 하면, DJ, 프로듀서로도 활동 중이다. 전자음악과 알앤비를 결합한 음악이 더 이상 비범하게 느껴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지만, 비슷한 갈래의 음악을 구사하는 편이다. 호주의 동성결혼 법제화를 위해 곡을 쓰기도 했으며, 2016년에는 마침내 첫 정규 앨범 [Intra]를 발표했었다. 영미권에서는 조금씩 알려지고 있으나, 인디펜던트로 활동해서 그런지 실력이나 음악의 멋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 Elizabeth Rose - Should Coulda Woulda
George Maple
조지 메이플(George Maple)은 지난해 무려 스무 트랙이 수록된 자신의 첫 앨범 [Lover]를 공개했었다. 팝, 알앤비, 전자음악을 적절히 결합한 이 앨범은 데뷔 앨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고 알찬 구성과 깊이를 담고 있다. 조지 메이플은 그간 싱글은 물론, 뮤직비디오, 커버 아트워크에 있어서도 비주얼을 굉장히 중시하고 있으니 지금까지 공개한 모든 영상을 하나하나 찾아보는 것을 강하게 권하는 바다. 런던과 호주를 기반으로 미국의 정서까지 이야기하는 이 독특한 음악가는 앨범의 제목처럼 사랑, 섹스, 이별 등 관계에 기반을 둔 내용을 솔직하게 담아내고는 한다. 로드(Lorde)의 <Melodrama World Tour> 중 호주 공연을 함께하기도 했다.
♬ George Maple - Hero
Guy Sebastian
한때 논란이 되었던 EXID의 “Who’s That Girl”을 통해 이름을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외에도 한국에서는 한때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가이 세바스찬(Guy Sebastian)은 2003년 <Australian Idol>이라는 프로그램에 등장하여 초대 우승자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팬층이 생겨났고, 호주 최고의 팝스타 중 한 명이 된다. 이후 그는 호주에서만 머물지 않고 영미권 전역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으며, 다양한 이들과 호흡을 맞췄다. [The Memphis Album]과 같은 작품을 통해 과거를 향한 존경도 잊지 않는, 어느덧 중견에 해당하는 음악가다.
♬ Guy Sebastian - Bloodstone
Jace XL
제이스 엑셀(Jace XL)은 솔로 아티스트보다는 하이에이터스 카이요테의 투어 멤버로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아직 이렇다 할 정규 앨범을 발표하지는 않은 상태다. 이번 리스트에서 소개하는 이유는 순전히 그의 감각적인 보컬 때문이다. 그는 원초적이고도 애수 어린 보컬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함께 협업하는 프로듀서가 누구냐에 상관없이 자신의 색을 발산하는 보컬리스트다. 일례로 사일런트 제이(Silentjay)가 프로듀싱한 곡에서는 한없이 더럽고도 습한 느낌을, 빌리 데이비스(Billy Davis)의 곡에서는 아련함과 애절함을 선사한다. 뚜렷한 개성을 지닌 그가 과연 자신의 앨범에서는 어떤 색을 펼칠지 관심을 두고 지켜보게 된다.
♬ Jace XL - Really Want That
Jack River
잭 리버(Jack River)가 선보이는 음악적 범주는 굉장히 넓다. 인디 록, 싸이키델릭 계열, 혹은 전자음악, 포크 팝, 여기에 발라드 넘버까지, 다양한 결의 음악을 한데 담거나 각각의 곡을 통해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로 그가 영향을 받은 음악가 중에서는 테임 임팔라(Tame Impala),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와 같은 밴드가 많다. 그러나 이제는 어떤 문법을 어떻게 쓰느냐만큼이나 음악가의 곡을 해체하여 장르 문법을 분석하기보다는 그 음악가의 감성이나 전반적인 결을 보는 시대가 되었다. 잭 리버의 음악은 그 최근의 힙한 사운드를 닮았는가 하면 어느 정도 대중적인 감각도 지니고 있는데, 어떤 음악가인지 궁금하다면 대표곡인 “Fault Line”을 들어보자.
♬ Jack River - Fool's Gold
Kita Alexander
지난해, 얼터너티브 알앤비 넘버 “Hotel”로 호주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키타 알렉산더(Kita Alexander)는 차분한 음색에 안정감이 느껴지는 가창력을 겸비했다. 사실 2년에 한 번 EP를 발표할 정도로 작품 활동이 많은 것은 아니다. 더불어 2년 전에 발표한 [Like You Want To]는 좀 더 팝에 가까운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한 [Hotel]은 “Hotel”을 비롯해 “A Girl”까지, 최근의 메인스트림 알앤비가 지닌 경향을 잘 흡수하고 있다. 다음 작품이 또 2년 후에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번 EP는 적은 곡 수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듣는 재미를 준다.
♬ Kita Alexander - Hotel
Meg Mac
멕 맥(Meg Mac)이라는 이름은 본명인 메간 설리번 매킬너니(Megan Sullivan Mclnerney)에서 따온 것이다. 본명을 줄인 것치고는 독특한 이름이지만, 멕 맥은 이른 시기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시작점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 2015년 전후로 매체를 통해 알려진 그는 그 해에 클린 밴딧(Clean Bandit)의 미국 투어, 디안젤로(D’Angelo)의 미국 투어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크고 작은 페스티벌에 조금씩 이름을 올렸다. 이쯤 되면 이미 검증이 완료되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얼터너티브 알앤비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필청이다.
♬ Meg Mac - Low Blows
Ngaiire
나이리(Ngaiire)는 그야말로 인간 승리의 아이콘이다. 그가 거쳐온 삶의 궤도는 매우 기구했다. 3살에 암 진단을 받아 필연적으로 많은 수술을 하였으며, 그의 부모님은 어린 시절에 이혼했다. 게다가 그가 태어난 고향은 화산 폭발로 인해 화산재 밑에 묻혀 있다. 이런 불우한 시절 속에서 나이리에게 유일한 벗이 되었던 건 음악이었다. 어릴 적부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고 자란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장르적 경계를 자유자재로 허물어뜨린다. 또한, 가사에 정치적 이슈를 담아 문제의식을 표현함은 물론,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낸다. 대표적으로 2016년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Blastoma]는 그의 투병 생활과 같은 개인사와 함께 호주 사회의 병폐 등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낸 작품이다. 이 때문에 그는 호주의 에리카 바두(Erykah Badu)라는 닉네임을 얻으며, 퓨처 소울 장르를 이끄는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 Ngaiire - Diggin
Nick Murphy(Chet Faker)
아마 쳇 페이커(Chet Faker)라는 독특한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쳇 베이커(Chet Baker)의 이름을 교묘하게 바꾼 이 이름의 음악가는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그러나 존경해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이름에 걸맞은(?) 좋은 음악으로 더 알려졌다. 퓨처 소울을 지향했던 그는 멜버른 사람이며, 데뷔 때 큰 주목을 받으며 2014년 발표했던 [Built on Glass]까지 그 기세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지난해 돌연 본명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을 했고, 현재는 닉 머피(Nick Murphy)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닉 머피와 쳇 페이커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직접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아마 닉 머피로 발표하는 정규 앨범이 나와야 어느 정도 비교, 분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Nick Murphy - Your Time
Sam Sparro
샘 스파로(Sam Sparro)의 음악은 숨겨진 내적 댄스 본능을 일깨운다. 그의 음악은 플로어에 적합한 댄서블한 사운드를 담고 있다. 실제로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Sam Sparro]는 일렉트로훵크(Electro-Funk)에 가까운 사운드를 띈다. 대표곡 “Black And Gold”와 “21st Century Life”가 그렇다. 두 곡은 타격감이 다소 강한 드럼 사운드와 함께 훵키한 기타 리프와 전자 음이 어우러져 한순간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두 번째 앨범 [Return To Paradise]에서도 흥겨움은 여전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장르가 디스코와 하우스에 가까워졌다는 것. 이런 사운드 변화는 “Happiness”, “We Could Fly”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 작에서 들을 수 있던 타격감 넘치는 드럼머신 운용은 줄어들었고, 경쾌하고 풍부한 악기 사운드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런 매력적인 음악 덕분에 샘 스파로는 아담 램버트(Adam Lambert)와의 협업은 물론, 주(Zhu)의 앨범에 참여하며 프로듀서로도 활동을 펼치고 있다.
♬ Sam Sparro - Happiness
Vera Blue
베라 블루(Vera Blue)를 두고 기본적으로 포크 음악가라고 하지만, 그의 창법은 알앤비에 가까우며 정작 많은 곡의 사운드스케이프는 전자음악에 가깝다. 베라 블루라는 이름이나 전자음악과 알앤비를 결합한, 그러면서 악기에도 무게가 이따금 실리며 꽉 차 있기보다는 여백이 있는 곡을 선보이는 그의 행보는 최근의 흐름에 충실한 듯하며 굉장히 힙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더 보이스> 시즌 2에 출연하여 3등을 차지했던 보컬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이미지 변신을 잘 해낸 셈이다. 가창력을 검증받은 자가 이렇게 멋진 음악을 직접 쓰기까지 하다니 여러모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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