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믹스테입 [Imperfection]의 4번 트랙 'Bad Pressure'입니다.
I'm a lyricist, 비트는 내 뒤에 버티고 선 벽인 동시에
담길 이야기를 위해 놓인 접시
난 무가치하고도 염치없지
내 일은 요리를 내오는 것보다는 그릇공예
기묘하게 뒤틀린 죄책감이 흐르고
내 랩을 둘러싼 이 박자와 선율이 빈 껍질이
아니라는 사실이 전혀 안 기껍지
Insano가 만든 비트를 건네받아
잘 채색된 캔버스에다가
Insano한테서 새로 비트를 받아
그 위에 신나선 온갖 색으로 붓을 휘두르다가
너무 오래 정신을 놓고 달렸다 싶은 순간
아차, 하고 돌아보면 군데군데 맞물린 부분마다
뜻하지 않은 얼룩이 흠씬
꼭 내가 만용을 부린 듯이
손 대선 안 될 것을 건드린 느낌
첫 번째, 내가 시작하는 곳은 백지가 아니라는 것
내게 속하지 않은 세계지만 발 들여놨고
멋대로 원래의 뜻을 배신하거나
그 매력에 철저히 품긴 채 곡을 만들어
두 번째, 무한정 말을 늘일 수도 없지
3, 4분짜리 구속복이
시작도 하기 전에 내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그 선을 미리 그어뒀지
한정, 그 단어가 슬퍼지기 시작한 건
새 곡이 떠오르기도 전이지
그 말은 곧 한계와 같아지고
시인이 되지 못하는 난 한 켠 가장자리로
쓸 수 있는 양의 제약이
더 좋은 표현, 더 묘한 뜻을 가능하겐 하지만
주제 여럿을 한 곡 안에서 함께 가지고 가질 못해
가사만 쓰면 할 말은 늘 제자리
비트를 듣자마자 떠오른 영감으로 시작한
이야기를 느슨하게 끄적이다가
매끄럽지 않은 논리에 찢겨 끊어진 감상
세심하게 고른 어휘마다
예상치 못한 얼룩이 흠씬
꼭 내가 만용을 부린 듯이
손 대선 안 될 것을 건드린 느낌에
더는 쓰고 싶지 않아질 만큼 풀이 죽지
한평생 산문조에만 익숙해 함축이 불편한가본데
가서 미완성 소설이나 작업해
넌 재능 없어, 덜어낼수록 오히려 무게감 없네
배워왔던 게 글뿐이라서
음악, 그림, 무용까지 죄다 문외환
말로 해주질 않으면 알아듣지를 못하지
Insano가 만든 비트를 건네받아 봤자
나 편한 대로 뼈대 뒤틀어대잖아
I'm a lyricist, 그게 내 존재의 핵심
쓰지 않는다면 눈과 혀마저 도태되겠지
내 일은 퇴고본을 빨갛게 뒤덮는 수정펜
기묘하게 뒤틀린 욕심에 불투명해진 타인의 성취
굳이 나여야 하는 이유마저 파리해졌지
내 랩이 둘러싼 처음의 주제의식 역시
구차한 동어반복 속에서는 부질없지
내가 시작하는 곳이 새하얀 종이 위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때마다
무한정 반복되는 비트를 들으며 공책 한 장을
가득 채운 단상들에 절망이 새나와
산문조에만 익숙해 잔가지라 생각하는 게
하나도 없어, 최선이 최선이 아니게 된 상황
시작이 새하얀 종이 위가 아닌 걸 알 때마다
공책 한 장을 채운 절망이 새나와
최선이 최선이 아니게 된 상황에
Insano가 만든 비트를 건네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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