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빈지노가 가사를 잘 쓰는지
자세하게 이유를 설명하는 분이 없는 듯 해서
제가 느끼는 빈지노의 장점을 써드릴게요.
근데 결국 음악은 자기가 좋으면 좋은 거고, 자기가 싫으면 싫은 겁니다.
제 의견이 옳다 이건 절대 아닙니다.
단지 님의 궁금증을 풀어드리면 좋고, 더 나아가 님이 빈지노 팬 되면 더 좋으니까 써볼게요.
웰시님은 BORN HATER라는 곡 내에서
빈지노의 가사를 다른 아티스트들과 비교하시면서
그 기준으로 펀치라인을 들고 계셨는데요.
‘웰시님께서 생각하는 펀치라인’, 즉 언어유희를 잘하는 사람으로 아마 타블로와 스윙스를 꼽으실 것 같아요. 두 랩퍼가 한국에서 언어유희를 즐겨 사용하는 분들이거든요. 애초에 웰시님께서 갖고 있는 펀치라인의 정의가 스윙스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아요. 스윙스가 국힙씬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펀치라인킹‘이라고 규명하면서 사용한 수단이 대부분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유희였기 때문에, 국힙 리스너들에게 ’펀치라인은 언어유희를 사용하는 것이다.‘라는 인식이 박힌 것 같습니다.
원래 음악용어라는 게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보니 사람들마다 펀치라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다른 것 같은데요. 그래서 영문 위키피디아에서 펀치라인의 정의를 가져와봤습니다.
A punch line (or punchline) is the final part of a joke, comedy sketch, or profound statement, usually the word, sentence or exchange of sentences which is intended to be funny or to provoke laughter or thought from listeners.
(발번역주의) ‘펀치라인’은 농담이나 코미디 또는 진지한 내용을 전달하고자 할 때 마지막 순간에 특정 단어나 문장, 또는 문장의 순서를 바꿈으로써 듣는 사람이 웃거나 깊은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펀치라인의 기본적인 정의를 보셨는데, 설명에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유희여야만 한다는 내용은 없죠. 사실 펀치라인이라는 건 엄청 크고 넓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쉽게 말하면 어떤 이야기에서 핵심이 되는 단어나 문장,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은 모두 펀치라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일상 생활에서 “공부 안하니? 니 인생이니까 조지든 살리든 알아서 해라.” 또는 “너 요즘 왜 이렇게 늙었냐? 세월이 오면 좀 피하고 그래라. 얼굴로 다 받아들이지 말고.” 같은 말을 할 때, 밑줄 친 부분을 펀치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거죠.
“니 개그 존나 빅파이같아.”
“왜?”
“잼이 거의 없어.”
이는 언어유희를 사용한 펀치라인의 예인데요. 언어유희 역시 펀치라인을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하나의 수단인 것이죠.
그런데 언어유희를 잘 사용하는 랩퍼가 가사를 잘 쓰는 랩퍼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너무 한쪽 기준에서만 가사를 평가하는 것일 수 있어요. 물론 가사를 평가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좋으면 좋은 것이 맞죠.
하지만 청바지를 고를 때 ‘나는 스크래치를 어떻게 냈는지가 가장 중요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해볼게요. 옷을 고르면서 무릎이 어떻게 찢어져 있는지, 허벅지는 얼마나 긁어놨는지, 등등 오로지 스크래치만 본다면 어떻게 될 까요. 스크래치만 기발하게 되어 있으면, 재질이 싸구려라 무릎이 늘어나든 말든, 핏이 북한 동무 느낌이든 말든, 색감이 구리든 말든, 그 옷을 입을까요? 언어유희 역시 펀치라인을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일 뿐입니다.
청바지에 스크래치를 낸다는 것은 결국 ‘기발함’의 문제입니다.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유희 역시 기발함에 의존하는 방식이죠. 일상에서 생각지 못했던 동음이의어를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도대체 이런 가사를 어떻게 생각해냈지?’하는 신기함을 느끼게 하죠.
하지만 언어유희는 동시에 단점이 분명하기도 하죠. 그 반복적으로 들으면 더 이상 기발함과 신기함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거죠. 그러면 가사가 매우 유치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스윙스는 특히 지나치게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유희에 집착한다는 문제가 있죠. “너흰 환희와 준희 / 진실이 없어”같은 가사를 썼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또 언어유희를 주로 사용하는 가사들 같은 경우 한 VERSE 내에서 가사들 간에 통일성이 없게 됩니다.
스윙스 ‘불도저’ 중
나의 입이 나의 루거 난 물건 들어
네 이름 첨 들어 왜 껴들어
썩을 년 너네 전부 썬글 벗겨
목 졸라 졸라 쫄라 like pump it up
넌 이미 없어 마치 스윙스 언플러
가짜 rapper들만 내 존재가 껄끄러워
날 막 대했던 형들 왈 '너무 컸어'
오디션 나와 떴어 like '버스커'
3년 뒤에 살 내 차 이름은 버스커
넌 라이토가 아냐 내 말 쳐들어
좆 되는건 너뿐 내 이름 적으면
마치 "난 a지, 왜냐하면 b니까. 그러므로 난 ㄱ이지, 마치 ㄴ해. 따라서 난 1, 너는 2이고 난 月이고 너는 日지. " 이런 느낌입니다.
스윙스는 이런 식으로 가사가 전체적인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냥 기발한 생각들을 이어 붙여 놓은 수준에 머무르게 된 곡이 많습니다. 그래서 스윙스에게 유독 가사가 유치하다는 비판이 많은 거구요. 스윙스는 언어유희에 너무 의존하다보니 자기의 랩을 ‘이게 어떤 의미냐면’ 하면서 설명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가사를 잘 쓰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언어유희가 있는 거지, 기발한 언어유희를 사용하기 위해서 가사를 쓰는 건 아니거든요. 자기 가사를 리스너들에게 설명해줘야 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가사가 이해가 잘 안될 수 있다는 단점을 인정하는 셈인거죠.
실제로 스윙스가 언어유희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설명하지도 않는 랩 같은 경우는 훨씬 좋은 경우가 많았어요. a real lady 같은 곡은 가사를 참 잘 풀어냈다고 생각됩니다.
빈지노를 볼게요. 빈지노는 국힙씬에서 가사를 정말 잘 쓰는 랩퍼 중 하나입니다.
1. 각 곡의 제목이나 테마, 비트의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내용을 담는다는 것.
2. 비유적, 중의적, 언어유희적 표현까지 참신하게 사용해가면서 라임도 적절한 것.
3. a-b-c-d-e-f-g 이런 식으로 한 벌스 내에서 가사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진다는 것.
4. 그렇기 때문에 플로우가 좋은 랩이면서도, 그냥 글로만 읽어도 좋은 것.
예로 핫펠트 (예은)의 노래 bond에 피쳐링한 가사를 들어볼게요.
노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007 제임스 본드의 테마송을 가져와서 재창조한 곡이거든요. 그래서 빈지노는 곡의 컨셉에 맞게 자기 자신을 제임스 본드에 비유하면서 가사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원작인 007에서 제임스 본드는 악당은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 살인면허를 갖고 있는 에이전트이자, 작품에 나오는 좀 예쁘다 싶은 여자들과는 꼭 성관계를 맺는 인기남이죠. 그래서 가사를 살펴보면 성기를 총에 비유하여 2가지로 해석할 수 있도록 썼습니다.
빈지노 랩은 01:55부터입니다.
여자들은 요즘에 자꾸 내 총을 요구해
>>> 자꾸 총 맞을 짓(악행)을 한다
>>> 내 성기를 요구 한다.
대체 그걸로 뭐 하려고 해
물으면 대답해 좋아 죽으려고 해
>>> 총을 맞으면 죽음
>>> 나랑 관계를 가지면 좋아서 죽음
God damn 난 경고해 너한테
내가 누군가에게 내 권총을 발포할 땐
>>> 내가 악당에게 총을 쏠 땐
>>> 내가 여자에게 성기를 삽입할 땐
그게 누구던 간에 죽을 듯 예뻐야 되고
아주 나쁘게 움직여야 돼
>>> 나쁜 행동을 하는 악당이어야 한다.
>>> 섹시한 몸짓을 갖고 있는 여자여야 한다.
Ok u a bad girl huh , u got that nasty함 huh
(bad girl = 직역하면 나쁜 여자지만, 섹시한 여자를 가리키기도 하는 표현)
(nasty = ‘위험한, 심각한’ 등의 뜻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추잡한 걸 좋아하는, 야한’과 같은 뜻도 있죠)
>>> 그래 넌 위험하고 나쁜 여자니까 총으로 쏴도 된다.
>>> 그래 넌 밝히고 섹시한 여자니까 관계를 갖고 싶다.
U got that handcuffs 근데 그건 내 취향은 아니야
(handcuffs : 수갑 = 악당에게 어울리는 아이템 & 구속 플레이 같은 특정 성욕을 위한 도구)
>>> 넌 수갑을 차고 있어. 나는 수갑 차는 악당은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 죽이겠어)
>>> 넌 수갑까지 차고 왔네, 근데 나는 수갑 차고 하는 플레이는 선호하지 않는다.
어쨌든 준비해 오늘 밤 널 위해 준비한 러시안 룰렛
(러시안 룰렛 : 방아쇠를 몇 번 당겨야 발포되는지 모르는 채 총알 1발만 들어 있는 권총을 돌아가면서 자기 자신에게 쏘는 것.)
>>> 오늘 밤 악당인 너와 총으로 생사를 가르겠다.
>>> 오늘 밤 섹시한 너와 주거니 받거니 성관계를 나누겠다.
딱 한발이면 충분해
>>> 널 죽이는 데는 딱 한발이면 충분해.
>>> 널 절정에 이르게 하는 데에는 성관계 한 번으로도 충분해.
got One shot 2 kill
>>> got one shot 'to' kill >>> 널 죽이기 위한 총알 한 발을 갖고 있다.
>>> got one shot 'two' kill >>> 사정 한 번하면 너도 좋아 죽고 나도 좋아 죽는다.
가사 전체가 언어유희적이면서도 비유적입니다. 유치하거나 기발함에 의존하는 가사가 아니죠.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재미있는 가사입니다.
또 다른 추천 곡은 illionaire records - a better tomorrow입니다.
빈지노가 자신의 성공을 표현하는 방식을 느껴보세요. 성공한 자신의 시점에서 무엇이 보이는 지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그 상황을 묘사하죠. BOND 해석 쓰느라 힘 빠져서 중요한 부분만 볼게요.
공연뿐 아니라 런웨이에도 나가서
마이크로폰을 잡아 모델들과 오마이갓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잔 공효진 누나야
god damn, 또 내 옆 옆엔
아이돌이 있지 but i'm not her fan, sorry
사진기가 찰칵대고 사람들이 물어봐
zino what's that brand?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잔 공효진 누나야” 같은 것도 일종의 펀치라인이죠.
패셔니스타로 유명한 공효진이 옆자리에 앉아 있다. 내가 이만큼 성공했다는 것을 자랑함과 동시에, 런웨이라는 공간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죠.
“내 옆옆엔 아이돌이 있지. but i'm not her fan, sorry" 이것도 펀치라인
옆 자리는 아이돌도 앉아 있지만 자기는 그녀의 팬은 아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자신의 클래스를 높이죠.
“사진기가 찰칵대고 사람들이 물어봐. zino, what's that brand?” 이것도 펀치라인
빈지노가 입은 옷이 불티나게 팔리고, 사람들이 빈지노를 따라하는 것을, 자신의 인기가 이 정도라는 것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죠.
빈지노는 언어유희(펀치라인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도 곧잘 사용하지만 지나치게 사용하는 법은 없습니다, 스토리텔링에 매우 신경을 쓰기 때문에 언어유희를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펀치라인’의 개념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랩퍼입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기억에 남는 국힙 펀치라인은 profile에서 the quiett이 했던
“지폐를 세는 것도 질려 이제 난, 정말로 필요해 지폐를 세는 기계그아! 어!” 이겁니다.
자기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를 귀엽고 재치있고 간결하게, 리스너의 기억에 남도록 던지고 있죠.
이 펀치라인에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유희는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멀어, 가뭄, ALWAYS AWAKE,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SMOKING DREAMS 같은 곡들이 가장 좋은 가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컨셉에 맞추기 위해서 써내려간 가사들은 진실된 감정에서 나온 가사가 아니죠. 곡을 쓰기 위한 필요에 의해서 쓴 가사니까요. 말씀하신 곡 같은 것들은 분명히 어떤 순간에 빈지노가 느꼈던 진실된 감정과 치열한 고민을 담아서 쓴 가사들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울림이 대단하죠. 그게 진짜 힙합이고 그게 진짜 poet이죠.
본헤이러 곡에 대고 별로라고 했으니 그 곡을 분석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이 글은 좋네요.
swag!
가사 해석은 저렇게 하는거였다니!
BOND경우 저런 뜻이 있는지 몰랐는데 님덕에 알아갑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써주세요
부기온앤온 같은경우에도
지각생 엎드려 뻗쳐
너에게 줄 성적은 없어
여선생들은 열정이 넘치는
날 가르치느라 엎드려줬어 이거듣고 피식하면서 캬 죽인다 이랬어요ㅋㅋ
머릿속으로 OTL이게 떠오르니까 상상하게 되더라구요ㅎㅎ
근데 그냥 겉으로만 보이는 빈지노를 일반 대중이
가끔 빈지노보고 나이키슈즈가사때문에 딴지 걸 때
괜히 제가 당황스럽더라구요..그렇다고 나 빈지노빤데
그런뜻아니니까 진정해 이러기도 그렇고..
사람들이 그 가사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서 살짝 안타까움도 있네요ㅋㅋ
하지만 빈지노의 명품과 돈 그리고 물질문화에 대한 인식이 불호에서 호감으로 변하긴 변했다고 봅니다.
돈을 만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돈을 벌면 변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죠. 돈을 많이 벌었는데도 변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고, 돈을 벌어서 변한 건 평범한 것인데....
사람들은 돈을 벌어도 변하지 않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죠. 사실 돈을 많이 벌면 변하는 게 오히려 당연한 건데.
아무튼 아쉽습니다.
"여선생들이 날 가르치느라 엎드려줬다" 엄청난 펀치라인이죠 ㅎㅎㅎ
단지 이 글은 애초에 웰시님이 스윙스는 잘쓰는데 빈지노가 못쓴다고 '비교'한 글에 대한 '반박글?'의 성향이기 때문에 스윙스의 문제점을 지적해봤습니다.
저번 글 역시 바비, 미노에 비해서 빈지노가 랩을 못했다고 '비교'한 글에 대한 반박글이었기 때문에 바비와 미노를 언급한 것이구요.
사실 누가 더 낫네 누가 더 별로네, 국힙 원톱이 누구네 하는 건 다 의미없는 일이죠.
아티스트를 평가하는 기준은 '내가 좋아한다, 안한다'가 유일한 기준인 것 같습니다.
날카로운 지적 고마워용.
확실히 한국에는 스윙스가 펀치 라인에 대해서 배려놓은 것 같아요.
swg누르고가여!
덕분에 빈지노를 좋아하고 빈지노의 팬이라는것에 대해 더욱 자랑 스러워졌습니다!!
공효진 누나..
글 잘 읽었습니당 수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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