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일권, "난 힙합의 예능화를 뭐라 한 적이 없다."
지난주부터 한국힙합 씬은 디스전의 열기에 휩싸여있는데요. 그중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던 것은 단연 '블랙넛 사태'라 여겨집니다. 힙합엘이는 이번 사태 관련자들 몇몇에게 인터뷰 신청을 했는데요. 그중 가장 강력하게 디스를 당했던(?) 리드머(Rhythmer)의 편집장 강일권과의 인터뷰를 진행해봤습니다.
지난주, 본인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블랙넛의 "Part 2"라는 곡이 나왔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이름도 거론되었지만 말이다. 우선, 곡을 듣고 나서 어떤 감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당시 SNS에 올렸던 드립이 나올 정도의 감흥이었어요. 주관 뚜렷하고 날 선 비평을 추구하고자 맘 먹은 이래로 욕먹는 건 각오한 바고, 실제로 욕도 많이 먹어와서. (웃음) 오히려 빙빙 돌려 까지 않은 직격탄이라 재미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내용이 있었고, 개중에는 리스너들이 가사로만 접하면 오해가 생길만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그런 부분이 있었는지, 또 그 부분을 당사자로서 어떻게 정정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처음 이 인터뷰 제의가 들어왔을 때 해야겠다고 맘 먹은 게 다름 아닌 이 부분 때문이에요. 전반적으로 블랙넛 씨의 가사는 사실관계 파악이 제대로 안 된 지점이 많은데, 뭐 ‘페미니스트의 왕언니’나 ‘착한 힙합’ 같은 부분은 웃으며 넘어간다 치고, 한국대중음악상(이하 한대음) 관련한 내용은 정확히 밝혀야 할 것 같아요. 이곳 힙합엘이 게시판에서도 꾸준히 이야기가 올라오는 거로 알아서. (웃음) 여기에 관한 음모설이 대략 두 가지인 듯해요. ‘리드머가 인맥으로 선정한다.’, ‘리드머 입김이 너무 세다.’.
우선 한대음 선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길지만 잘 봐주세요. 현재 선정위원은 70여 명이고, 이중 리드머 소속은 저를 비롯한 리드머 필자 남성훈과 이병주, 이렇게 셋입니다(예동현 필자는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선정위원들은 각자가 선택한 주력 장르에 기반하여 두 개 분과에 속해있어요. 분과를 나눈 이유가 보다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였기 때문에 1차 후보작 선정은 각 장르 분과 위원들이 투표와 회의를 통해 정하는데요. ‘랩&힙합-알앤비&소울’ 부문을 예로 들어, 저를 포함해 9명(10명일 때도 있으며 유동적입니다.)의 선정위원이 각자 음반과 노래 다섯 작품을 골라 투표하면, 분과장이 이를 집계하여 상위 다섯 작품을 추립니다. 이후엔, 해당 결과를 놓고 이의제기 시간을 가져요. 음악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후보에 오르기에 무리는 없는지 등을 논하는 거죠. 이 과정을 거쳐서 다섯 작품, 혹은 여섯 작품의 후보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최종 후보 선정은 전체회의에서 또 한 번의 검토를 거치게 돼요. 다른 분과의 선정위원들도 모인 자리에서 각 장르 분과가 고른 후보작들을 공개하고, 전체 위원들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확인할 시간을 갖는 거죠. 여기서 만약 누군가가 심각한 이의를 제기하고 그게 많은 이들에게 타당하다 받아들여지면, 상위 5위에 들지 못했으나 많은 점수를 얻은(보통 6위~7위) 작품들을 포함하여 다시 한 번 선정작업을 거치고요. 하지만 이 역시 특별한 이슈가 없다면, 투표 순위대로 결정하는 게 대부분이에요. 이 과정은 모든 장르 분과 후보 선정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사항이고요. 이런 경로를 거쳐서 최종 후보작이 선정됩니다.
이렇게 최종 결정된 후보작들을 놓고 70여 명의 선정위원이 모든 분야에 투표를 해요. 기권도 가능하고요. 그리고 전체 투표를 마친 결과를 놓고 최종 수상자 선정회의를 가져요. 후보작 선정 때와 마찬가지로 선정작으로서 타당한지 검토하는 시간인데요. 여기서 아주 치열해져요. 1위와 2위의 득표 차가 큰 경우는 표절 등의 문제가 발견되지 않은 이상 별다른 이의 없이 넘어가지만, 박빙의 차이일 경우엔 각 선정위원들의 토론을 통해 간혹 최종 수상자가 뒤바뀌기도 해요. 이상이 대략적인 선정과정입니다.
그럼 이제 리드머와 얽힌 음모론을 얘기해볼게요. 일단 후보작 선정과정에선 의심하는 분들이 있을 법도 해요. 9명 중 3명이 리드머니까. 근데 진심으로 말하건대 누가 누굴 뽑든 관여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어쨌든 같은 리드머 소속이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아도 영향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거 같아요. 그러나 리드머 필자들은 전체적으로 씬을 바라보는 방향성은 비슷할지 몰라도 작품에 대한 평가에서는 각자의 주관이 뚜렷이 드러나요. 지난 화지의 [EAT]을 아예 뽑지 않은 분도 있어요. 전체투표로 가면, 음모론은 더 어불성설이에요. 말했듯이 70여 명의 투표에 기반을 두고 결정하기 때문이죠. 다시 화지의 [EAT]을 끌어와 얘기하자면, 정확한 득표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2위와 표 차이가 무려 30표 이상이었어요. 토론할 것도 없이 선정된 케이스죠.
근데 전 리드머가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마저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현재 장르 전문 비평을 하면서 한국힙합과 알앤비 앨범에 점수를 매기는 곳은 우리가 유일하다 보니 타 장르 선정위원들이 이를 참고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거예요. 그런데 이건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음모론을 접하면서 한편으로 재미있는 건 그들이 좋든 싫든 리드머의 영향력을 반증해주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상상해보세요. 70여 명의 전문가들을 리드머가 움직인다니. (웃음) 그것이 정당한 비판이든 단지 조롱이든, 리드머와 리드머 비평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건 상관없어요. 하지만 이를 리드머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에까지 악의적으로 연관 지어 확실히 알지도 못하는 사항을 사실인 양 주장하고 퍼트리는 행위는 아주 위험한 행위죠. 한대음 선정위원들에게도 예의가 아니고요."
뒤이어 다른 디스전이 터지기도 하면서 이번 일이 일주일 만에 약간은 소강상태에 접어든 양상을 띠고 있다. 온,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이후의 여러 가지 상황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여러 심경이 들었는데, 특히, SNS 힙합페이지들에 게재된 '싸워라 싸워' 류의 댓글들에서 마치 투견장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외에도 추가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이야기해달라.
이번 디스가 있은 후, 3명의 블랙넛 팬이 각자 제게 걱정하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어요. ‘블랙넛의 정규 앨범이 리드머, 혹은 한대음에서 평가 면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맘에서 말이죠. 한편으론 오해와 루머가 어디까지 퍼진 건가 싶어 참 씁쓸했어요. 어쨌든 아주 조심스럽게 제 의중을 파악하고자 하는 듯해서 전혀 그럴 일 없으니 안심하라고 말씀드리자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더라고요. 블랙넛 씨는 정말 이런 팬들도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웃음) 여튼 메시지를 줬던 분들, 그리고 그와 같은 걱정을 안고 있을 분들을 위해 얘기하자면, 블랙넛 씨와 그의 팬들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음악적 완성도만 좋다면야 리드머에선 그에 걸맞은 평가를 할 것이고, 한대음은 지금까지 밝혔듯이 저나 리드머가 어떻게 할 수도 없지만, 역시 완성도만 좋다면 70여 명의 선정위원들이 알아서 뽑아줄 겁니다. 그러니 못 받겠다며 지레짐작할 필요도 없는 거죠.그리고 끝으로, 전 힙합의 예능화를 뭐라 한 적 없어요. 그 안에서 힙합에 대한 왜곡된 정보와 인식을 사실인양 전파하는 문제를 비판해온 거죠. 힙합 역사적으로 끝내주는 디스곡 뒤에는 언제나 상대에 대한 정성 어린 사전조사가 있었다는 걸 숙지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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