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오전에 들려온 소식은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김영대 평론가의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사실 그와의 인연은 많지는 않다. 2020년 그가 박사과정을 막 마칠무렵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던 그와 채팅을 몇번 나눈게 다였다.
그는 늘 미국에 있으면서 소통을 자주 하고 싶어했다. 미국 팟캐스트처럼 그냥 주저리주저리 음악얘기만 하고 싶었던 그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즐거워했다.
나는 같이 채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추천하고, 틀린 정보가 있으면 수정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그가 방탄소년단 평론으로 주목을 받았으니, 주로 방탄 아미들이 많았다.
그런 분들에게 내가 씨잼의 킁과 이센스를 추천하기도 하고, 아이돌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그래서인지 김영대 평론가는 내가 음악을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많이 했다. 특히 80년대 90년대 음악을 이야기하다보면 정말 많이 아신다는 칭찬을 항상 받아왔다. 그 순간이 크게 보면 별게 아닌데, 특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소중한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이 청춘을 보냈던 1990년대를 늘 재조명하려 했다. 내가 중학교 시절 처음 읽었던 그의 책도 <90년대를 빛낸 명반 50>이었다. 나는 90년대 가요계 음반들을 하나씩 디깅하면서 매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이 책이 길라잡이가 된 것은 더 아티스트들의 생각을 들여다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낸 저서 <더 송라이터스>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물론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발라드를 총망라하는 책이지만, 1990년대 라디오에만 출몰하면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었던 가수들, 언더그라운드라 불렸던 가수들에 대한 애정이 깊이 있다. 특히 그는 그가 꿈꿔왔던 음악 팟캐스트를 만들어 마음껏 그 시대에 대한 재조명을 계속 해오고 있었다.
1990년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지극히 '영포티 음악'스럽다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당시의 음악은 지금보다 더 수제, 수공예같은 느낌이 있기 때문에 대형 미디어에 잡히지 않는 장인정신이 있다고 그는 믿었을 것이다.
그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미국의 붐뱁 프로듀서들과 랩퍼들, 일본의 사토 신지같은 뮤지션들도 포함되는 정신적인 연결점일수도 있다. 그가 아이돌 산업안에서도 작가주의성을 외친 이유도 이러한 정신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일수도 있었다.
언젠가 그에게 내가 좋아하는 일본음악을 리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분명 일본의 90년대와 00년대는 우리와 다르면서도 같은 부분이 많기에, 그가 평론하는 피쉬만즈나 키린지같은 아티스트들은 어떨까하는 궁금증이 원인이었다. 그의 마지막 팟캐스트 출연에서도 케이플립에 대한 이현파씨의 분석을 흥미롭게 들었기 때문에 더 왕성하게 활동해야 했다는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이제 그는 떠났다. 하지만 나는 그가 떠났다는 것을 믿지 않기로 한다.
그는 어디선가 다시 돌아올것이다. 그게 설렁 ai일지라도.
그래서 나는 그를 다시 기다릴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aqxiVEjOlak&list=RDaqxiVEjOlak&start_radio=1&pp=ygUQ7Jik656Y7KCEIOq3uOuCoKAHAQ%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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