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아시노 이니오 - 잘 자, 푼푼 (만화, 4 / 5)
불행.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불행을 만난다. 그리고 세상이 내미는 불행을 우리는 당연하게도 좋아하지 않는다. 맞닥뜨린 불행에 짜증을 내거나, 슬픔을 흘린다. 그렇다보니, 우리는 이 불행을 피하려 하기도 한다. 숙제를 내일로 미룬다거나, 거짓말을 한다거나 그러한 짓들 말이다. 그렇게 이룬 행복은 정말 행복할까? 그 행복 아래에 깔려있는 늪을 보고도 그 무언가를 행복이라 생각할 건가? 또, 그렇게 피한 불행은 그대로 사라져 줄 것이라 믿는 것인가? 늪에 빠져 익사하는 과정, 그것이 내가 리뷰할 “잘 자, 푼푼” 이라는 만화다.
주인공, 푼푼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행으로부터 도망치기만을 반복한다. 아이코와의 관계에 불행이 찾아올까 두려워 거짓으로 반응하고, 추후에 그대로 되돌아온 불행조차 두려워하며 피하기만 한다. 그렇게 불행에서 달아난 푼푼은 그대로 자기가 바라던 푼푸니아에 뛰어놀았을까? 이미 알고 있겠지만, 아니다. 푼푼은 사실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불행을 피함으로서, 불행의 밑바닥에 있는 늪에 빠진 것이다. 초반에 그나마 평범하던 푼푼은 중반부에 들어서며 늪에 침잠되기 시작한다. 초반부의 푼푼이 꿈꾸던 우주박사, 푼푸니아는 불행의 회피를 위한 거짓말이었기에, 푼푼을 더욱 아래로 끌어내린다. 그렇게 우울이 마치 침수된 차에 물이 차오르듯 만화를 메우는 것이다. 그렇게 푼푼은 불행을 될 요소를 제거해간다. 동시에 늪에 더욱 깊이 빠지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푼푼은 점점 비인간적으로 변해간다. 자신의 것이라고는 자신이 빠져있는 늪이 전부인, 갈수록 인간 자체가 불행에 스며든다. 개인취향이랄 것도 없으며, 불행을 피하기 위해 남이 하라는 것을 하려 한다. 하지만 문제는 푼푼은 이미 늪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하라는 것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그 결과의 근거로 또 늪의 바닥을 판다. 그리고 푼푼은 늪의 바닥을 파면서도 양면적으로 늪에서 꺼내달라 소리친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는 것은 불행일 뿐이었다. 무언가가 달려오는 소리에 푼푼은 늪 속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도리어 불행이 푼푼의 목을 졸라온다. 그렇게 늪에서 완전히 분해되려던 찰나에, 푼푼은 이제서야, 늪에서 구조 당하게 된다. 그것도 시체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말이다. 그 끔직한 몰골을 우리에게 큼지막하게 보여주며 끝나는 만화, “잘 자, 푼푼”이다. 이러한 불행의 이야기로 작가가 전하고픈 바는 하나다. 불행을 피하려 하지말고, 받아드려라. 이의 반면교사로서 푼푼의 일생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또한 만화 내에서도 푼푼에게 일갈을 할때도 등장한다. 푼푼이 절대 선인이 아니라는 것을 이를 통해 못박는다. 또한 푼푼이 불행의 늪에 다시 발 빼기만 했어도 금방 불행은 사라졌을 것이다. 푼푼에겐 언제든 손을 맞잡을 기회가 있었다. 단지, 푼푼은 늪에 빠져 그 불행에 도망쳤기에 시체로 건져올려진 것이다.
내가 주인공, 푼푼의 이야기만 해서 그렇지, 이 작품은 주인공과 결말에서야 재회하는 세키, 시미즈의 이야기나, 초중반에 나오다가 푼푼이 성인이 되서부터 나오지 않는 유이치의 이야기나 푼푼을 제외하고도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이야기들 또한 위의 푼푼의 이야기와 비슷한, 불행으로서 서사를 이끌어간다. 즉, 불행의 늪에 빠지는 것은 푼푼 뿐만이 아닌, 모두의 것이라는 거다. 불행의 늪에 빠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고 인간적이지만, 거기에서 최대한 빨리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아닐까 싶다.
이 만화만의 신기한 특징이라면, 모든 관점이 푼푼의 관점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초반부는 그야말로 우스꽝스럽다.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자 혀를 놀려댄다. 그리고 그걸 보는 푼푼의 모습 또한 아기자기하다. 초반부의 푼푼에게는 그저 행복했나 보다. 하지만 푼푼이 빠질수록, 세상은 극도로 현실적이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부정적인 부분이 강조되어 비친다. 그걸 보는 푼푼의 모습 또한, 어둠에 집어 삼켜져있다. 심리가 투명하게 비친다.
종합적으로, “잘 자, 푼푼” 은 우울한 한 인간의 속을 너무나 말끔히 꺼내놓은 만화이다. 너무 잘 꺼낸 나머지, 내가 다 보기가 망설여질 지경이다. 그러한 끔찍한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우리다. 우리또한 거짓말을 이따금 치곤 하며, 일을 미루기도 한다. 그러한 우리에게 푼푼이 보인다. 왼쪽 눈을 찌를 지경에 이르고 싶지 않다면, 인간이라면, 다시 일을 잡아보아라. 불행에 직면하라. 불행에서 나아가라. 그저 나는 이 말밖에 해줄 말이 없다. 그런고로 내 창작시 하나로 이 똥글을 끝내고자 한다.
<어느새 져버린 별들에게>
어느새 져버린 별들에게
우리도 져버린 채
우리를 져버렸네
검게 뻗어나간 수평선상에서
다가오는 구멍들에게
우리는 져버린 채
우리를 져버렸네
그럼에도 말하지
모두가 언제라도
삶에서 살아가길
죽음에서 죽어가길
져버리며
엘이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
https://www.youtube.com/watch?v=JFzG1ukww58
아이코 시체 업고 걷는 장면은 진짜 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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