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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chiko의 Ginkgo를 듣고

GeordieGreep7시간 전조회 수 219추천수 7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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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chiko - Ginkgo


 언젠가 기억이 감정보다 먼저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아 있는 것은 오히려 그 감정이 머물렀던 자리의 온도, 또는 그때 흘렀던 음악의 톤 따위다. Ginkgo는 그런 잔류감각으로 구성된 앨범이다. 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언어의 잔해만으로 자기를 부양하는 사운드. 이 앨범은 무엇을 말하려는 시도보다,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남겨진 채 서성이는 목소리에 가깝다. 고요하게 망가져가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음의 구성은 항상 무언가를 놓친 채 진행된다. 화음은 완성되지 않고, 리듬은 의도적으로 한 걸음 늦게 도착한다. 그 어긋남은 어떤 결핍의 구조를 만든다. 마치 이 음악은 처음부터 완결을 포기한 것처럼, 혹은 완결 자체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처럼. Ginkgo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제자리에 있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서로를 향해 조심스럽게 기울어 있다. 그것은 건축이 아니라, 무너짐의 균형이다.


 사운드는 맑지 않다. 흐림과 번짐, 심지어 오류에 가까운 뒤틀림마저 정서의 일부처럼 배치된다. 이 앨범은 차라리 하나의 폐쇄회로에 가깝다. 감정의 입력은 언제나 왜곡되고, 출력은 늘 지연된다. 그 안에서 우리는 확신할 수 없는 감각들을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마치 실시간으로 송신되는 꿈을 듣는 것처럼.


 Shandy in the Graveyard는 그 감각의 핵에 닿는다. billy woods는 이 곡에서 입이 아니라 흠처럼 등장한다. 그의 랩은 구조가 아니라 틈이다. Panchiko의 흐릿한 수면 위에 길게 파문을 남기고 사라진다. 말의 구조는 해체되고, 의미는 늦게 도착하고, 감정은 말을 앞선다. 그가 남긴 라인들은 결국 노래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빠져나간 자리를 스케치한다. 누군가의 흔적이 아니라, 부재 자체의 발화다.


 앨범 전체는 선형적인 흐름을 거부한다. 곡들은 순서를 갖지 않고, 시간은 방향을 잃는다. Ginkgo를 듣는다는 건, 시간의 안쪽에 쌓인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어내는 일이다. 그 안에는 이름을 잃은 감정들이 있고, 말이 닿지 못한 기억들이 있다. 그러므로 이 음악은 위로가 아니다. 오히려 위로의 가능성을 끝내 부정하는 방식으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허구를 재현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불가능성 안에서, 가장 정확하게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 앨범은 반복 청취에 의해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 실패에 의해 마침내 받아들여지는 종류의 서사다. 이해되지 않는 구절들, 해독 불가능한 멜로디, 불완전한 믹싱. 이 모든 것이 결함이 아니라, 곧 형식이고 정서이며, 그것은 조화로움이 아니라 조율되지 않은 감정의 진동이다.


 종국에는, 어떤 곡도 끝나지 않는다. 단지 사라질 뿐이다. 그리고 그 사라짐은 우리 안에 일종의 공명을 남긴다. 그것이 무엇인지 이름 붙일 수 없지만, 그 불확실함 속에서 오히려 우리는 가장 명확한 자기 자신을 느낀다. Ginkgo는 음악이라기보다, 꺼지지 않는 장면이다. 언제 끝났는지 기억나지 않는 대화, 누군가의 뒷모습, 찢긴 일기장,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잊힌 편지의 마지막 문장. 혹은, 그 모든 것이 동시에 던져진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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