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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a Dog & 내 이야기

애가셋라키2025.03.25 11:12조회 수 236추천수 7댓글 5

Portrait of a Dog | Pitchfork
Portrait of a Dog
개의 초상—

 

유구한 역사 속에서 ‘개’는 늘 두 개의 얼굴을 지녀왔다. 
한편으론 방랑의 상징, 또 한편으론 변치 않는 충실함의 상징. 
어떻게 이 대립하는 둘이 함께하느냐 함은,
어쩜 그 본질인 맹목적성에 있을지 모른다.

 

Jonah Yano 역시 말한다.
"첫 번째 앨범이 제가 무엇을 봐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라면, 
두 번째 앨범은 제가 무엇을 향하고, 무엇을 추억하는지에 대한 것이죠."
그의 음악적 지향은, 마치 개의 초상처럼, 떠돎과 귀속 사이에서 길을 찾는다.
전통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되, 그는 그 갈등 사이에서 혼란한다.


처음 이 앨범을 접했을 때, 나 역시 그랬다.
지금도 음악에 대한 지식이 많다고 할 순 없지만,
그땐 정말이지, 아무것도 몰랐다.
뜻밖의 추천으로 이 앨범을 들었고,
재즈 팝 사운드에 익숙하지 않던 내게
이 작품은 어려움보다는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저 조용히 쉴 때 틀어놓는,
솔직히 말해 ‘그 정도의 앨범’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듣지 않았던 트랙들을 재생해 보았다.
방 안에 홀로 앉아,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삶을 음악을 통해 느끼는 것.
그건 내 오랜 취미였다.
하지만 Portrait of a Dog는 분명 이전 것들과 달랐다.
사실은 다르다기보다는, 나와 같았다.
난 동질감을 깊게 느끼고 있었다.

 

 

앨범 자켓의 뭔가 초라해보이는 이 개의 형상은,
애초에 초상화도 아니다. 초상화는 사람을 담는 그림이니,
그러니까, 이 개는 Jonah Yano 자신을 의미한다.
그러나, 앨범 속의 Jonah의 정신력은 과할 정도로 거칠고, 굳건하고, 고집투성이다.
차가운 진실에도 굴하지 않으려 맞서고, 그 맞섬에 묘한 자조가 전제되지만, 희미해져가는 기억과 그의 의지만큼은 서둘러 붙잡으려 발악한다.

 

 

Yano 와 마찬가지로,
그냥 하루가 흐르고, 그게 몇년이 되다 보면,
내 손을 떠나가는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마치 이는 강박과도 같은 것이다.

미련이라기엔, 간절하지 않고,
후회라기엔, 그만큼 깊지 못했다.
동시에 이는 내 삶의 명분이자, 역설적이게도 도피였다.
내 옷깃을 스치기만 하곤, 뒤돌아볼 틈 없이 시간은 야속했다.

 

내게는, 좋아하던 여자애가 있었다.
난 그 애를 볼 때마다 잘 보이려 노력했고,
친구 이상으로 가까워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내가 여자를 좋아한다면,
그 이유는 뻔했다.
이쁘고, 몸매가 좋고, 직관적으로 끌리는 것.
그래서 사실 여자애라곤 하지만, 그것은 여자들에 더 가까웠다.
난 그냥 여자에 완전히 매료되어있었다.

 

그래서인지,
본능과 이성을 구분하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꽤나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난 이 개인적인 짝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내 순수함을 담으려 노력했다.
그게 겉포장이든, 실재하는 것이든.
 

 

수려한 외모를 지닌만큼
그 애에 대한 소문은 비단 나의 것만이 아니었다.
학원에서 그 애를 접한 이래로 그 애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영상을 보았다.
내가 모르던 남자친구가 있었고,
영상에서 헐벗은 채로 그와 정을 나누고 있었다.
그래, 남자는 나쁜 새끼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안에 스며든 감정은 상실뿐만이 아니었다.
나로썬 영영 보지 못했을, 금기의 너머를 보게 된 그 야릇한 만족감.
그것이 모든 감정을 제치고 내 가슴에 들이닥쳤다.
난 그런 내 자신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내 눈을 의심하고, 내 손을 의심하고,
그것은 이 순간마저 의심하게 한다.
애초에 누가 숨기기나 했을까?
이건 결코 진실 같은게 아니었다.
그냥 옆방에서 들리는 사소한 잡음에 그 이상 이하도 아녔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있었다.
난 내 눈 앞의 모든것을,
내 눈이 비추는 내 세계를, 난 더는 믿기 힘들었다.

 

 

Yano 의 음악은 그 무엇보다도 진실되며,
진실의 존재를 전제하고 긍정한다.
난 지금도, 당시에도, 정말 진실이란 무엇인지,
삶의 격차란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저 이 어린 나에게 세상이란, 무식하고도 경외스러웠고,
그 티끌만을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Yano 가 나보다 세상을 더 잘알지 말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음악을 들을 때면,
나는 한층 더 먼 시야를 갖게되는 것 같았다.
나 혼자 깨우친 것 같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본단 우수에 젖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이는 내 무능에서 비롯된 상념이란걸 알고 있었다.
내가 여자를 만들 능력도,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능력도 없는 내가, 대리만족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합리화를 늘어놓기만 한다는걸.
이 역겨운 찰나를 난 견딜 수 없어, 난 이런 방식으로 지금을 외면하기로 한 것이다.

 

그 후로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나 또한 겪어보았다.
달동네에서 여자랑 하룻밤을 보내고, 심지어 애인이 있는 여자를 만나기도 했다.
난 그것이 내 삶의 너머에 가까워지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난 무턱대고 그것을 진실됨이라 믿어왔으니까.
그리고 그런 인연이 늘수록 주변에선 좋지 않은 얘기만이 들려왔다.
여자애들이 스스로 자진해서 몸을 팔고, 성인과 미성년이 함께하고, 누가 누구 애인을 뺏었냐느니, 누구를 단체로 줘팼냐느니. 등등
다행이도, 난 거기까지 물들진 않았다.
자의든 타의든, 그것이 나와 아주 다르단 것만을 인지했다.
그 이상은 알길이 없었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말 터무니 없고, 무책임한 일들이 벌어진다.
이조차도 오로지, 내 눈에 담긴 이야기들일 뿐.
이것이 하나의 진실도, 전부도 아니다.
누구를 혐오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냥 이건 내가 본 것이고, 내가 봐오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솔직히, 조금은 할말을 잃게 되었다.

 

내가 누구랑 관계를 맺던, 조금의 일탈을 하던,
난 본질적으로 그들과 가까울 수 없는 천성을 지녔다.
아마 환경 탓이 제일 클 것이고, 나에게 너무나도 좋은 부모님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 호기심은 불필요하게 컸고, 난 기어코 도를 넘고 말았다.
실은, 꼭 그게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난 억지로 나 자신을 진실이란 명패를 두룬, 자기혐오에 스스로를 몰아붙인 것이다.

 

 

여전히 공허함은 컸다.
Yano 의 음악은 그리고 그런 내 옆을 묵묵히 지켜줬다.
등교 버스에 앉아, 분명 학교 앞 정거장을 지나쳤음에도
난 그냥 노선이 가는대로, 내 자신을 내비두기로 했다.
그렇게 종횡무진 이리저리 배회하는 버스와 함께
난 다시금 서울을 새로이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밤이 되고,
익숙치 않던 버스 속 장면들이 일상이 되고,
종점에 다다렀을 땐, 음악도 듣지 않고 있었다.
늦저녁 9시에, 나 홀로 버스차고지에 서서
그 빈 공허만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트랙은 앨범과 동명의 것인
Portrait Of Dog 이다.
반주 없이 보컬만 흐르다, BaBADBADNOTGOOD
의 드럼과 현악기가 음악에 같이 오른다.

 

난 마지막 부분을 가장 애정한다.
고조되면서도 정제된 Yano 의 보컬과 함께
혼자 보다못해 터져버리는 일렉의 향연은,
뭐랄까 내겐 별이 쏟아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점층적으로 일렉이 쌓이고, 빗발치고, 기타는 얼룩져있다.
난 그 부분만으로도 이 앨범이 지니는 가치는 그 무엇 이상이라 느끼곤 한다.

 

 

Yano 의 음악도, 내 스스로 앉아 골머리를 앓던 기억도
무언가를 변하게 할만한 힘 따윈 없다.

여전히 난 똑같은 눈을 지니고 있고, 

아마 그 반대편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그러니까, 

개는 개다.

 

자켓의 그림을 멋스럽게 완성한다한들,

개의 형상임엔 역시 틀림 없다.

 

난 이미 다른 것이 되기엔 한참을 글러먹었고,

긴 시간 동안, 나는 한 마리의 개였으니까.

 

 

Jonah Yano - portrait of a dog (Official Video)

신고
댓글 5
  • 애가셋라키글쓴이
    3.25 11:12

    https://www.youtube.com/watch?v=gD_mc5-E-L8

  • 23시간 전

    음악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마저 개인적인 감상과 함께 뒤범벅되어 있는게, 뭐랄까 너무 재밌는 글이네요.

    개인의 경험이 음악과 강하게 결부되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게 가끔 보면 참 신기해요. 심지어 저는 나와 참 닮아있다고 느껴져 좋았던 앨범이 시간이 흐른 후 싫어진 경험이 있는데, 그 이유가 과거의 나 스스로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라는.. 은 당신께 그렇지 않길 바라며, 너무 잘 읽었습니다!

  • 애가셋라키글쓴이
    23시간 전
    @끄응끄응끄응

    허허 고맙습니다

    사실 이 앨범에 한해서만 얘기하면 더 많은 얘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앨범은 제가 느낀 것과는 많이 다르더라구요

    제가 느낀 감정을 완전히 설명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제 상황도 같이 섞는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23시간 전

    아티스트 개인으로부터 시작된 예술이 또 다른 개인에게 더욱더 개인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은 참 아름다우면서도 음악의 본질적 기능이 아닐까 싶네요. 글에서 작성자님의 여러 고뇌와 솔직함 등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 애가셋라키글쓴이
    23시간 전
    @브라이언이노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도 가사에 너무 목 맬 필요는 없다 생각해요

    의미부여는 정말 듣는 사람 나름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더 좋은 경험을 만들 수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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