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나도, 수학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 '지-지구의 운동에 대하여'에 대한 스포 포함

갈루아는 20살에 죽었지만 불멸의 업적을 남겼고, 테렌스 타오는 아기 때부터 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으며, 영재발굴단에는 유아기의 수학 천재들이 등장한다. 사실 주변만 둘러봐도, 아이큐가 150이 나오는 학원 수학쌤, 수학학원을 안다니는 전교 1등, 수학 경시대회에 드나드는 학생들 등등... 수학계, 혹은 세상엔 나를 아득히 뛰어넘는 재능들이 넘쳐난다.

나는 올해 초 학원 수학쌤한테 받은 calculus교재의 입실론 델타 편을 보고 수학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수학을 업으로 삼기로 했으나, 수학 혹은 이러한 거대한 재능들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범부에 불과함을 느껴왔다. 살면서 다른 부분에 두각을 드러낸 적도 없고,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고 유일하게 재능과 재미를 보였던 수학에 매달리지만, 정작 그 재능의 총량은 한없이 작은 초라한 모습에 끝도없는 자기혐오에 빠졌고, 마찬가지로 세상과 사람들도 혐오했다. 주변 사람들이 천재로 치켜세워 주는 것도, 그렇지 않는 것도 싫었다. 무조건적인 혐오인 걸 알았기에 사람도 멀리하고 살았다. 자고 일어나면 죽어있길 바랬다.

그러다 지-지구의 운동에 대하여라는 애니를 접했다.

이미 만화책으로 한 번 읽어봤지만, 읽는 데 급급하여 연출에 몇 번 감탄이나 하고 말았던 작품이었다. 그러다 애니가 2부까지 나왔다는 소식에 넷플릭스에서 몰아보기를 했다.

1부의 주인공 라파우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인생의 합리적인 탄탄대로를 포기하고 아름다움과 감동을 좇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천재라니! 분명 감동적이고 지식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캐릭터였지만, 이놈의 열등감은 고작 애니 캐릭터한테도 표출됐다. 나는 저렇게 될 수 없다는 막연한 절망감이 있었다. 뭔가 보면 볼수록 이런 좌절감이 커질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이미 내 좌절감은 커질대로 커진 상태였기에 체념하고 2부를 봤다.

이 2부가 내 인생을 바꿀 줄은 몰랐다. 2부를 보는 내내 학문추구의 순수한 아름다움에 감동하였고, 거기에 천재 캐릭터 바데니나 욜렌타에 대한 열등감 같은 건 없었다. 피아스트는 평생 잘못된 연구를 하고 있었음에도 후대에 큰 진전을 만들어내는 관측 기록을 남길 수 있었고, 오크지는 글도 못읽는 천한 신분이지만 아름다움을 느끼고 지식 추구를 도울 수 있었다. 이들 모두가 나한테 '지금까지 쓸데없이 열등감을 느낀 건 모두 바보같은 일이었고, 그곳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면 너의 학문에 매진하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만화의 결말을 이미 알고 봤기에, 결말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결국 주인공들이 목숨걸고 해왔던 짓은 '?'하나로 귀결됐다. 목숨걸고 지켜낸 것에 비해 허무한 결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저 물음표 하나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큰 희망으로 다가왔고, 저거 하나를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순수한 아름다움에 2부를 보는 내내 미친 듯이 울었다. 오크지와 바데니가 죽는 순간, 아름다운 별하늘을 바라보며 죽은 것처럼, 내가 지금 이순간 최선을 다해서, 내가 죽을 때, 수학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죽고, 내 수학적 유산이 조그만 것이더라도 후대에 계승되어, 내가 수학의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더라도, 수학의 발전에 이바지 되기를.

https://youtu.be/UexbDmxHW0U?si=F-EI0_Mu_fLI2D_o

https://youtu.be/QQwuc7IdMFs?si=5XJXNNTNiXqkPX0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