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tzk, Leroy, venturing,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Jane Remover까지. 다양한 명의로 각각 개성이 뚜렷한 프로젝트를 발매하며 활발히 활동 중인 그녀는 아마 인터넷을 가장 잘 활용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일 것이다. 2021년 당시, 코로나로 인해 모든 국민들이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을 등에 업고, 그녀는 트위터에서 바이럴 되어 유명해진 그녀의 곡 'What's My Age Again?'을 시작으로 잇따라 Teen Week, Frailty 등 많은 프로젝트를 업로드하며 점차 그녀의 입지를 서브 장르 씬에서 더욱 공고히 했다. 2010년대 유튜브 등지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었던 EDM 사운드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기도 하는, 그녀의 매력적인 음악적 세계관 속으로 한번같이 빠져들어가 보자.
https://youtu.be/yA7diI6kQP0?si=5YdJFBUq90qJrUr6
그녀의 초창기 음악은 극대화된 신스와 과장된 베이스로 구성된 비트 위에 높은 피치로 튜닝된 멜로디컬 랩을 얹는 것이 특징인 음악 장르, 디지코어(Digicore)의 성격을 띤다. 그녀가 앞선 두 장의 프로젝트를 발매했을 당시, 그녀는 단지 평범한 인터넷을 좋아하던 미국의 한 고등학생이었다. 아직 자아가 완전히 형성되지 않았으며, 학업과 음악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그런 불안정한 사춘기 시절에 낸 두 프로젝트에는 당시 그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며칠간 연락이 없는 친구의 이야기라든가,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이 혐오스럽다든가, 자신이 올린 인스타그램 게시물 보더 다른 친구들의 게시물이 더 많은 좋아요를 받는다는 것에 질투심을 느낀다든가 등등.. 자기 주체성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또 주위 환경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나약한 자신에게서 느껴지는 무기력함과 분노를 가사로 진솔하게 표현한다. 또 나른한 랩과 과격하고 잔뜩 왜곡된 사운드는 이런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여과 없이 청취자에게 전해준다. 인터뷰에서 밝히기로는 그녀는 친구가 적었고, 때문에 많은 시간을 인터넷 세상에서 보냈다고 한다. 들어줄 친구가 없었기에, 자연스레 그녀의 음악을 인터넷에 올리며 그에 따라 결과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제가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가장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는 Skrillex, Porter Robinson, Kill The Noise, Shawn Wasabi, and Virtual Riot이었습니다." "중학교 후반과 고등학교 초반에는 Brockhampton, Odd Future, and Trippie Redd를 들었어요." 그녀가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그녀의 음악에서는 디지코어의 특성상 관련이 없을 수가 없는 힙합 음악의 영향과, EDM 아티스트들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언뜻 섞이기 힘들어 보일 것 같은 두 장르를 훌륭하게 절충해낼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것이 훌륭한 음악인지 구별해 내는 뛰어난 음악적 직관과, 자신이 과거에 경험했던 인상 깊은 순간을 재구성하여 그것을 음악으로 구체화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그녀의 음악적 원천이 어디서 왔는지 투명하게 느껴지는 앨범이라, 이 앨범은 그녀의 시발점이면서도 동시에 그녀가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해나갈 것인지 예측할 수 있는 지표가 되어주는 앨범이기도 하다. 그녀의 음악은 과거의 강렬했던 순간들을 재구성해 음악으로 표출하는 것, 이라고.
https://youtu.be/cMkYZ49n5Gw?si=YyRi6oT5ybYZ2Ibf
Teen Week는 그녀가 앞으로 보여줄 음악에 대해 선언하는, 마치 러프한 스케치 같은 앨범이었다면 Frailty는 좀 더 성숙해진 가사와 사운드로 돌아온 앨범이다. 여전히 앞서 언급한 혼란스러운 사운드는 궤를 같이하지만, 그것이 좀 더 정제되고 하나의 확실한 음악적 스타일로 체화되어 표현된 느낌이다. 우선 가사를 살펴보면, 이전에는 직설적으로 표현됐던 감정들이 이 앨범에서는 혼란과 불안을 느꼈던 그 경험 자체를 묘사하는 방식으로, 다소 은유적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인적인 가사들을, 막 끓어오르다가 또 언젠가는 차분해지는 그녀의 음악과 함께 감상하고 있다 보면, 그녀의 감정 상태가 주입되는 것이 아닌, 마치 천천히 스며드는 것처럼 자연스레 몰입된다. 사운드 또한 여전히 디지코어의 성격을 엿볼 수 있고, 폭발적이고 실험적이며, 곡의 전개가 뜬금없이 바뀌기도 하는 등 변덕스러운 컨셉 또한 유지되나, 믹싱이 더 깔끔하고, 또 비슷한 톤과 구조를 가진 트랙들이 반복되는 탓에 피곤한 감이 있었던 저번 앨범과 비교했을 때, Search Party 라든가, Champ와 같이 쉬어가는 트랙들을 중간중간에 배치해 놓는 등 앨범 트랙 간의 완급조절이 잘 이루어진 덕에, 긴장감을 길게 유지하며 청취자로 하여금 음악에 더욱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제인 리무버도 Teen Week의 몇몇 작업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2022년, 앨범 수록곡의 절반을 삭제하기에 이르렀다. 다만 무한한 가능성을 포함한, 마치 가공되지 않은 원석 같은 앨범이기에 그녀의 음악 스타일을 더 깊게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Teen Week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https://youtu.be/1zQJRg_ibuw?si=T_tUEkvcZufypnWI
그녀의 음악이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했던 2021년, 그녀는 Leroy라는 사운드클라우드 계정에 현재의 'Dariacore'라는 서브 장르의 시발점이 되는 상징적인 프로젝트를 올리게 된다. 기존의 대중적인 팝 음악들을 해체하고 그녀의 '혼돈의 미학'으로 다시 훌륭하게 재결합해낸 이 앨범은, 실없는 농담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음악에 진지하게 몰입되게 만드는 구석 또한 존재한다.
다리아코어가 특히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초등학생 때 빠져들었던 애니 MAD가 생각나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애니메이션의 장면들을 분해하여 하나의 '시각적으로 혼란스러운 영상물'로 재구성하는 애니 MAD는 일종의 놀이와도 비슷하다. 서로 연관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개별적인 요소들이 서로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되는 것을 보는 것은 뇌를 자극하는 신선한 쾌감이 존재한다. 때문에 당시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용자로서, 또 창작자로서 애니 MAD를 향유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제인 리무버는 이러한 논리를 포착하여 하나의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이전에는 서로 별 연관성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익숙한 팝 노래들이 그녀만의 방식대로 재결합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신기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끊임없는 비트 드롭과 신나는 멜로디에 고개를 사정없이 흔들게 된다.
인터뷰에 따르면 Dariacore은 사실 장난같이 시작된 프로젝트였지만, 하나의 장르로까지 만들어지고 현재도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와 비슷한 앨범들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은, 이 장난스럽고도 진지한 놀이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이 꽤 많다는 뜻 아닐까.
https://youtu.be/8KPH_8x9EG0?si=5G_RP8KWiUxIYnsH
venturing은 그녀의 또 다른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그녀는 기존에 Venturia Online Support System이라는 그녀의 노래의 리믹스들을 올리던 계정을 다시 재활용하여 venturing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또 다른 새로운 노래들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의 사이드 프로젝트임이 명백하지만, venturing에는 가상의 컨셉이 존재하는데 90년대 후반에서 0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던 잊혀진 락밴드라는 컨셉이다.
마치 Panchiko나 나의머리카락뭉치를 떠올리게 하는, 일명 '로스트 미디어'의 매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컨셉에 따르면 그들은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락밴드였으나 드러머가 죽고 나서 해체한 후 점차 시간의 흐름 속에 잊혀졌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에 팬들에 의해 다시 재발굴되어 이 계정에 노래들을 업로드한다는 그런 흥미로운 전설이 이 프로젝트에는 존재한다.
이러한 컨셉 덕에 우리는 venturing의 노래를 들으며 마치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 속을 탐방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빛나기도 했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쓸쓸한 마음이 슬그머니 들기도 하는 그런 소중한 추억 말이다. 음악과 청취자의 귀를 가로지르는 겹겹이 쌓인 노이즈 때문에 멀리서 지켜볼 수만 있고 다시 되돌리거나 사건에 개입할 수는 없는, 그런 '추억'의 속성이 떠오르는지도 모르겠다.
자극적인 사운드를 가득 담고 있던 그녀의 이전 음악들과는 다르게, 이 ep는 다소 평범한 로파이 프로덕션의 슬래커 락 프로젝트이다. 그러나 여전히 뛰어난 그녀의 멜로디 메이킹 능력과 가상의 뒷배경 이야기의 존재로 인해 좀 더 특별하게 들리게 된다.
그녀는 새 앨범 'Ghostholding'을 발매함과 동시에 돌연 이 흥미로운 컨셉을 팬들에 의해 창작된 가짜 정보이며, 이 프로젝트는 명백히 그녀의 사이드 프로젝트에 불과할 뿐이라고 부인했다. 사운드 클라우드 페이지에 당당하게 적혀있던 정보이기에 왜 갑자기 그녀가 이런 변덕스러운 모습을 보였는지 당사자가 아니기에 알길은 없지만, 감히 추측해 보건대 이 프로젝트가 그녀의 프로젝트임이 이미 너무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기에 더 이상 '잊혀진 밴드'라는 컨셉이 의미가 없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https://youtu.be/eJkzC50mAFE?si=cUaZItWcmllBdeFT
그녀는 2023년, 'Jane Remover'로 활동명을 바꾸고 슈게이징 사운드의 새 앨범을 발매했다. 기존의 디지코어 사운드를 기대했던 입장에서는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던 그런 변화였는데, 그런 사사로운 감정들을 배제하고 평가하자면 역시 그녀답게 훌륭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슈게이징 음악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 그녀의 혼돈의 미학을 그대로 담아내어 그녀 방식대로 만들어낸 자유로운 앨범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2025년에는 그녀의 새 앨범이 나온다. 앞서 공개된 싱글들을 들어보면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기대가 된다. 그녀가 옛날 창작물들을 계속해서 부정하려고 하는 것은 솔직하게 팬으로서 마음이 아프지만, 또 그녀가 나아갈 새로운 미래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꾸준히 나오게 될 그녀의 작업물들을 기대하며 글을 마쳐본다.
개추개추
이글이 묻히다니 ㅜㅜㅜㅜㅜ
제 냉철한 분석으로는 '칸예웨스트 왜 욕먹는거임?'이 제목이었으면 안묻혔을듯합니다
아쉽네여 외게에 한번 쓰시는 것도 ㄱㅊ을듯 제인이니까 안될려나? ㅜㅜㅜㅜㅜ
저는 괜찮은데 나중에라도 제인이 누군지 묻는 사람이 있으면 이 글을 보여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진짜 좋아하는 아티스트인데 감사합니다.. 제인이 제 음악 취향에 정말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개인적으로 제인의 장점은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활용이라고 생각하는데, 올해 신보에서는 1집의 일렉트로닉 요소와 2집의 락 사운드를 잘 섞어 제인만의 인디트로니카가 나오면 좋겠네요
근데 선공개곡 보니 레이지일 것 같기도 하고..
저도 2집 스탈을 오랜만에 보고싶군요
오 감사합니다
근데 본명은 zeke tosun일걸요
Dltzk가 deletezeke 줄여서…
찾아보니까 그렇네요. 잘못된 정보 전달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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