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핑커, 프리모 레비같은 논픽션 위주의 작가나 사상가들은 제외했습니다.
순전히 좋아하는 작가들이죠. 존경하거나 경애하는 작가들이 아닙니다. 아마 경애하는 작가들 순위였으면 거의 다 극작가거나 시나리오 작가였겠죠. 만화도 넣을까 하다가 딱히 그만큼 많이 본 것 같지는 않아서 제외했습니다. 말그대로 재밌게 읽고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이상 - 시 전집
이상. 선각자라는 프레임을 두고 많은 해석이 오가는 작가입니다. 그가 글을 잘 쓴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단편들과 수필들만 읽어도 됩니다. 날개,종생기 같은 단편과 권태 같은 수필은 이 지식인이 가지는 감각을 선연히 담아냅니다.
하지만 그의 대단한 면모는 시인으로서 보입니다. 선각자,예언자 등등 현재의 평론가들이나 독자는 여러 틀을 가져와 이상을 분해하고 분석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우선시 되어야하는 정체성은 그가 지식인이라는 겁니다. 지식인이 상위의 존재는 아니지만 이상은 본인만의 시선을 가진 지식인이었습니다. 예컨데 오감도는 그의 남다른 시선을 볼 수 있는 대표작입니다. 그의 전집들은 이런 측면서 즐길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이언 매큐언 - 속죄
이언 매큐언의 최고작은 단연코 속죄입니다. 속죄는 사랑,죄책감,예술,타인을 향한 이해,서구문명에 대한 비판에 대한 깊이있는 인식을, 문학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는 수준으로 구사합니다.
암스트레담도 다른 소설들도 대단하지만 이언 매큐언의 지성과 능력은 속죄에서 폭발합니다.
속죄의 강철같은 문장과 섬세한 감정묘사, 이야기에 깊이를 부여하는 플롯 등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마지막 반전과 함께 새겨넣습니다.
속죄의 미덕은 그가 정확한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질문을 듣고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맞습니다. 이언 매큐언은 멈추지 못하는 독서를 하게 만듭니다.
이청준 - 당신들의 천국
한국문학이 던지는 윤리적 논의의 무게는 곧 이청준문학이 가지는 논의의 그것입니다. 당신들의 천국이 대표적 예겠죠.
그는 하나의 도서관이고 그는 거대한 질문을 또박또박 적어 독자에게 건네는 소설을 씁니다. 그 소설을 다 읽고 독자에게 쥐어진 것은 한층 더 복잡해진 질문입니다.
나병환자의 섬을 다룬 당신들의 천국은 여러 층위를 생각하게 만들고 한국현대사를 경유하게 만듭니다.
결국 말하자면 당신들의 천국의 대척점이 뭐냐겠죠. 그건 아마 우리들의 지옥이겠죠? 마지막 소장이 만지던 나무조각은 뭘 의미할까요? 이청준은 또렷하게 질문하고 그 질문들은 한국문학사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댄 시먼스 - 히페리온
존 키츠의 시구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작품들 중 히페리온이 단연 최고입니다. 피츠제럴드의 밤은 부드러워라든가 닐 게이먼의 안개의 계절이라든가 보다도요.
히페리온,히페리온의 몰락이라는 두 편의 훌륭한 SF는 절대적으로 재밌고 풍부합니다. 감히 과장해서 말하자면 제프리 초서의 캔터배리 이야기를 SF에서 찾고 싶다면 댄 시먼스를 읽으시면 됩니다. 풍부하고 다채로운 인물들, 풍성하고 기발한 소재들. 이 모든 것들을 융화시키는 능력은 댄 시먼스의 이 시리즈를 걸작의 자리에 위치시킵니다.
레이먼드 챈들러 - 빅슬립
챈들러는 역사상 최고의 탐정소설을 쓴 작가입니다. 빅슬립을 옮긴 김진준 번역가는 번역하는 동안 포크너와 헤밍웨이, 피츠제럴드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챈들러는 자신에게 그런 작가라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믿음직스러운 번역가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챈들러는 문체의 장인이고 비유의 달인입니다. 그의 묘사와 비유는 생생하고 정확합니다. 마치 멜로디만 아는 노래를 지나가던 가게에서 들을 때의 쾌감에 비견되는 즐거움을 안기는 문장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필립 말로가 거리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교보문고에서 구경하다가 빅 슬립의 첫 문단을 보고
이거다!
하며 바로 사들고 집으로 왔던 기억이 나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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