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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닮고 싶은 사람

Parkta19584시간 전조회 수 77댓글 1

제게 전범인 소설가는 둘이 있습니다. 뭐 아무 것도 아닌, 2000년대생의 그저 글쓰기가 취미인 늙은 학생이지만 롤모델이 있을 수밖에 없긴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쓰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 중 하나는 피츠제럴드 입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밤은 부드러워같은 장편도 보석같은 단편들도 있지만 그를 문학사의 불멸로 만든 것은 위대한 개츠비겠죠.


피츠제럴드의 말년 할리우드 실패기를 두고 위대한 예술가(감독이자 작가)인 빌리 와일더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배관공으로 고용된 조각가다. 문제는 그는 물이 흐르게 할 수 없다.

 역사상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 중 하나인 그가 남긴 이 말은 시나리오와 다른 글들의 차이를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피츠제럴드는 끝내 본인이 알아내고자 했던 시나리오의 작법과 원리를 알아내지 못하고 몰락했습니다.


언젠가 나보코프가 도스토예프스키는 극작가가 되는 게 나았을 거라고 한 적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실제로 극적인 순간들, 한 시공간서 압축적인 사건들이 발생하는, 밀도있는 장면이 종종 있습니다. 


번외로 시와 희곡에서 위대한 셰익스피어, 소설과 희곡 둘 다 위대한 체호프를 생각하면 다양한 문학장르를 넘나드는 것이 쉬워보이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위대한 소설가이지만 훌륭한 극작가는 아니었던 세르반테스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죠. 톨스토이의 희곡도 그렇죠.


여하튼 원래 얘기로 돌아가서 나보코프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묘사력에 큰 비판을 합니다. 상당히 재밌는 부분이죠. 디테일에 

집중하는 나보코프, 문장력의 세공에 있어서 경탄스러운 그답기도 하고요.


제가 이 얘기를 한 것은 피츠제럴드가 시나리오 작법의 진실을 알아내기 힘들어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의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답은 시나리오랑 소설이 아예 다른 장르- 소설과 시만큼이나- 여서겠지만 피츠제럴드의 특징과도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빛나는 지점은 묘사와 표현입니다. 혹자들은 이 작품이 딱 그 해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이 정도까지의 평가를 받지 못했을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피츠제럴드가 선보이는 비유와 표현 등은 생생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그가 인물들을 선보이는 능력은 이 소설가의 재능이 대단한 무엇인가 였음을 알게 합니다.

 이런 문학적인 비유와 표현은 시각화나 대사화가 힘들죠. 가련한 스콧은 소설만을 잘 쓸 수 있었을 겁니다. 혹은 시나요.


제가 피츠제럴드에게 매혹되고 그가 제 글쓰기의 롤모델이 된 이유도 거기 있을 겁니다.


피츠제럴드는 셰익스피어나 입센, 체호프, 멜빌, 베케트, 포크너,조이스가 아닙니다.

 열거한 작가들은 목욕을 한다음 성스러운 마음으로 한줄한줄 집중해야할 듯 하지만 피츠제럴드는 침대에 누워서 읽어도 될 듯 합니다. 

 예컨데 그는 고전을 쓴 작가지만 어떤 가벼움이 그에게는 내재되어 있습니다.


피츠제럴드의 생애를 보면 다양한 면모가 보입니다. 돈에 얽힌 에피소드들, 파티광. 거절쪽지를 붙여보면서 글을 써내던 작가 등등 여러 요소들이 혼합된 모습을 보이죠.

 제게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구절은 이 대목입니다.

 서로 절친했고 헤밍웨이의 커리어를 도와주기도 했던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의 단편에서 그가 자신을 묘사한 방식에 충격을 받고 서로 절연합니다. 스콧은 자살시도까지 하죠. 하지만 그 후에 헤밍웨이의 장편을 읽고 이렇게 보냅니다. '나는 자네가 한없이 부럽네. 이 말에는 어떤 아이러니도 없어.'

 이 애수어린 두 문장이 보여주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어떤 다정함 같은 겁니다. 구김없는 다정함. 실제로 피츠제럴드는 사치도 심했지만 그만큼 주변에 친절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모두가 그렇듯이, 더더욱 예술가가 그러하듯 이기적인 면모도 강했지만 남과 본인을 대하는 기준이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남을 더 너그럽게 대한 느낌도 들죠. 그것이 다정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자본주의나 사랑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제게는 환상에 관한 작품입니다. 개츠비든 데이지든 톰이든 머틀이든 누구든 삶에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 환상이 깨지는 순간을 선연하게 포착해냅니다.


그 파국이 일어나는 여름의 대화는 닉의 처연한 대사와 코멘트로 갈무리됩니다. 

 몰랐는데 오늘은 내 생일이야.

 그리고 닉은 30의 나이, 늙고 쇠락해가는 삶에 대해서 고민합니다. 닉의 표현대로 닉은 안에 있고 밖에 있는 존재고 웨스트에그와 이스트에그 사이에 있고 경계에 있습니다. 명확히 말하자면 파티에 참여는 하더라도 주인공은 아닌, 생일임을 참 슬프게 말하는 그. 30에 대하여 사라져가는 청춘에 관해 혼자 얘기하는 닉. 저는 그에게서 피츠제럴드를 봅니다.  

 하지만 닉은 이 우수에 잠겨있지만은 않습니다. 조던과 차에 있어서 기분이 또 좋아지기도 하죠. 


피츠제럴드를 제가 좋아하는 이유는 이렇게 삶의 편린들을 핀셋으로 잡아올리는 섬세함 같은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진지하지 않음에, 적당한 가벼움에도 있죠. 

 탁월하고 생생한 묘사와 비유에도 있죠.


위의 이유들은 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흔히들 간결하게 쓰라고 말합니다. 체호프와 카프카를 생각하면 맞습니다. 셰익스피어나 나보코프처럼 쓰지 못할거면요.


하지만 저에게 쓰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산문은 피츠제럴드와 같이 신선한 문장들입니다. 누군가는 씨앗 없이 미사여구만 가득찬 글이라고 하겠지만 저를 매혹시키는 것들은 늘 포장지였지 선물 그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누군가가 저를 셰익스피어나 히치콕, 세잔, 타르코프스키를 대하듯 읽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물론 그 경지는 저같은 삼류에게는 불가능하죠.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겨울에 까먹는 귤같이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글을 쓰는 겁니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도달한 핵심에는 저는 못 나아갈 거고 그럴 의지도 없습니다. 그저 글을 써감으로써 조금이라도 미문을 남기고 삶의 파편들을 길어올리고 싶을 뿐입니다.


피츠제럴드가 그랬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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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1시간 전

    피츠제럴드....

    읽어볼만한 것들은 다 읽어봤는데 최곱니다 ㅇ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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