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돌적 고뇌가 몽상의 요람 속으로 사라질 때, 난폭한 품위와 가식에 대한 비웃음을 띄며 2번째 대우주가 열린다", 앨범의 소개 문구. 참으로 <2>를 잘 표현해 주는 글귀이다. 국내 인디 씬에서 굉장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밴드 미역수염은 전작 <Bombora>에서 뜨겁고도 강렬하면서도, 동시에 슬프고 낭만으로 가득 찬 사운드들을 겹겹이 쌓아 올리며 보랏빛의 광활한 대우주를 넓게 창조해낸 바 있다. 새로운 정규 앨범 <2>에서 이들은 보다 처절하고, 또 때로는 달관達觀에 젖은 채로 쓸쓸하게 그 2번째 대우주를 더욱 넓게 펼쳐나가는데 — 그 과정들 속에서 여러 번뜩이는 순간들과 은하, 그리고 파멸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2>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곡의 구성이나 전개가 보다 훨씬 명료해졌다는 점이다. 전작 <Bombora>를 다시금 떠올려보자면, 미지의 별을 향해 뻗어나가는 소리와 우리 은하로 되돌아오는 소리, 바스러지는 기타와 드럼의 질감, 또 한없이 날카롭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 노이즈 사운드가 서로 충돌하고 어우러지며 마치 우주를 탐험한다기보다는 유영에 가까운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그러나 <2>에서 이들은 모든 트랙에 각 곡을 이끌고 정체성을 강조하는 Post-Rock의 선형적인 구조를 차용한다. 전작과 유사하게 반복적인 코드 진행을 선보이는 "DAL"은 정주이의 보컬과 중반부의 기타 리프가 곡을 확실하게 이끌어나가고, 이후 다시 보컬을 등장시키며 <Bombora>의 수록곡들보다 한층 더 정제된 구조를 선보인다.
"18YEARS"는 <2>를 상징하는, 본작에서 가장 핵심적인 트랙이라 칭할 수 있는 곡이다. Sonic Youth의 보컬리스트 Kim Gordon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는 정주이의 튠이 걸린 보컬과 파멸적으로 자아성찰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가사는 <2>의 전반적인 주제인 상실과 회상, 그리고 그 속에서 맞이하는 치유와 해방을 통찰하는 순간이다. 가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Telemore'와 'bright lights'라는 표현은 시간의 유한성과 불완전한 영속성을 암시하며, 그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과 남아 있는 것들을 동시에 포착하려는 시도들을 보여준다. 또한 그로울링 위에서 펼쳐지는 기타 솔로의 향연을 비롯한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도 "18YEARS"가 왜 앨범 전반에 흐르는 파괴적인 메시지를 가장 잘 담아내고 있는지에 관한 분명한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2>가 다소 아쉬운 이유는 음악적인 부분에 있는데, 생생하게 구현된 앨범의 서사에도 불구하고 연출적인 측면에서 다소 과하다 느껴질 수 있는 시도들을 보여주어 몰입감과 완성도를 저해시키고는 한다. "SWEETHOME"은 뮤지컬적인 요소를 도입하며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하는데, 6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계속해서 여러 사운드들을 다층적으로 겹겹이 쌓아나가는 접근 방식은 <2>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시도라고 느껴진다. 앞서 말했듯이 확실하게 곡을 전개해 나가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다른 트랙들과는 달리 홀로 떠 있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연극적인 연출과 사운드 레이어링은 다소 지나치게 과잉되어 있다고 느껴지며, 앨범의 흐름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또한 "GOODBYE"의 경우 "SWEETHOME"과는 조금 궤를 달리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는데, 그저 단순하게 무의미하게 곡의 일부분을 허비해가며 다소 산만한 마무리를 짓는다는 점이다. "GOODBYE"의 9분의 달하는 러닝타임은 반 정도로 길이가 줄어들었으면 더욱 괜찮게 들렸을 것이며, 8분 30초의 러닝타임 역시 의도되었다기보단 '어쩌다 보니' 만들어진 것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곡의 마지막 순간에 어두운 노이즈와 백색 소음이 들려오는 순간을 비롯해 번뜩이는 지점들은 분명 많았으나, 러닝타임 중 일부분을 의미 없이 소비하며 가장 중요한 순간에 지루함을 더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는 여전히 미역수염만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여러 감정적인 연출들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작품의 자아가 뚜렷하게 규정되지 않고 이질적인 순간들이 존재한다는 점은 아쉽지만, 전작 <Bombora>에서 느꼈던 광활함과 낭만이 더욱 명료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재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본작은 이미 굉장히 신선한 작품이다. 이들이 본작에서 추락(FALL)을 감행하기도 하고, 혼란(HEX)를 겪거나 회상과 이별을 겪는 세세한 과정들은 굉장히 흥미롭다. <2>는 분명 완벽한 앨범은 확실히 아닐지언정, 그 불완전한 속에서 빛나는 파편들을 찾아낼 수 있는 여정을 선사하는 미역수염의 2번째 대우주이다.
평점: 6.9 / 10
+ 곧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를 담당중이신 '최지훈'님의 첫 단독 인터뷰 역시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지금도 인스타 매거진 'year0610online'에서 읽어보실 수 있으니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미역수염 들어야지 하고 까먹어버렸는데
이 좋은 글이 다시 상기시켜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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