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생활을 이리저리 하다보니 리뷰를 진짜 오랜만에 올리네요...
앞으로 간헐적으로라도 최대한 양질의 리뷰 올리도록 노력할테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정규 4집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 리뷰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https://blog.naver.com/parzival0604/223647624505
브로콜리너마저, 2005년에 결성된 그들은 '덕원(작사, 작곡/베이스/보컬/기타)', '류지(드럼/퍼커션/보컬)', '잔디(키보드/보컬)', 그리고 객원 기타를 맡다가 2024년에 정식 멤버로 합류한 '동혁(기타)'로 이루어진 4인조 인디밴드이다. 정규 1집 '보편적인 노래'와 정규 2집 '졸업'은 '스페이스 공감 선정 2000년대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에 선정되었으며, 각 앨범의 동명의 수록곡인 '보편적인 노래'와 '졸업'은 둘 다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모던록 노래부문에 선정되었다. 멤버 교체와 정체기도 몇 번 있었으나, 그들의 음악 활동을 멈출 수는 없었다. 2019년, 정규 3집 '속물들'을 발표하고, 여러 EP 앨범도 발매하며 활동을 이어간 그들은 2024년 10월 1일, 네 번째 정규앨범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를 발매한다.
이번 앨범 같은 경우는 되게 좀
서글픈 앨범이지 않을까, 정서적으로.
왜냐하면, 내용이 거의 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대한 그런 이야기들이에요.
- 덕원, 유튜브 <디에이드> '아티스트의 아티스트 브로콜리너마저' 中 (2024) -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 (2024. 10. 01. / 12트랙 / 49분 45초)
-트랙
1.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요
2. 요즘 애들
3. 되고 싶었어요
4. 윙
5. 풍등 <Title>
6. CM
7. 세탁혁명 (feat. 최엘비) <Title>
8.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album ver.)
9. 다정한 말
10. 너를 업고 (album ver.)
11. 매일 새롭게
12. 영원한 사랑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는 덕원의 담담한 목소리와 서정적인 피아노, 기타 연주로 막을 연다. 앨범의 첫 번째 곡인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요'에선 '닳음'에 대해 노래한다. 닳는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맞는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말한다. 새 신발도 걷다 보면 언젠가는 무뎌지지만 점차 자신의 발에 맞아가며 편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정적인 분위기는 다음 곡에서 류지의 보컬이 시작되며 변화한다. 평소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퍼커션과 이펙트를 사용했으며, 이를 통해 레트로한 느낌까지 주는 '요즘 애들'은 앨범이 서정적인 곡들로만 가득 차 있지만은 않음을 드러낸다. '요즘 애들'에서는 브로콜리너마저의 과거 이야기들과 여러 이스터에그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재미를 준다. 노래에서 언급하는 아티스트인 '아마츄어 증폭기'의 실제 노래 제목인 '김형사! 끝나고 술한잔 어때?'를 후렴 가사로 차용한 것이 그 예시 중 하나다.
매끄럽게 잘 굴러가는 바퀴도
언젠가는 표면이 마모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것처럼 삶을 영위하다 보면
닳아가는 과정 역시 필연적으로 따라오죠.
그렇다고 하여 완전무결한 상태를 영원히
유지하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거든요.
-덕원, Living sense (2024) -
이후 '되고 싶었어요'를 통해 다시 잔잔한 분위기가 돌아온다. 비슷한 문장 구조를 통해 청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 곡은 표면적으로는 후회를 얘기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 희망과 격려를 느낄 수 있다. 곡이 끝나고 흘러나오는 드럼은 다음 곡 '윙'의 도입부로 연결된다.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매력적인 '윙'은 덕원 혼자서 부르던 후렴이 끝에서는 멤버 전원의 목소리로 불러지며 공간감과 편안함을 조성한다. 특히 밴드 사운드를 통해 고조되던 후렴은 점차 사그라들며 그들의 목소리만 남게 되는데, 곡의 주제와 연관지어보면 고조되는 것은 하늘에 떠있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을, 목소리만 남았다가 결국 그마저 사라지는 것은 온 힘을 다하고 난 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 고요함 속에서 피아노 선율이 서글프게 흘러 나온다. '풍등'은 지난 과거와 그 속의 꿈과 추억들이 이제는 어딘가로 멀리 떠나가 사라졌음을, 즉 '유한성'이라는 주제를 풍등에 빗대어 노래한다. 덕원에서 류지로, 마지막엔 같이 합창을 하는 곡의 전개 방식은 아련하고 슬픈 분위기의 전달력을 높이며 청자에게 여운을 남긴다. 여운 속에서 멤버 전원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CM'은 서글퍼진 분위기를 환기한다.
('CM'은) 앨범이 중반부를 넘어섰음을 알려줍니다.
자세히 들어보시면 네 명 모두의 목소리가 담겨있어요.
앞으로 활용할 기회가 많다면 좋겠네요.
-동혁, tumblebug 프로젝트 소개글 中 (2024) -
래퍼 최엘비와 함께한 트랙, '세탁혁명'부터 분위기가 다시 밝게 전환된다. 마음 속 생각 · 고민을 날려버리고 싶은 걸 세탁 후 말리는 과정에 비유하였는데, 랩과 만난 그들의 음악은 저절로 고개가 끄떡이진다. 그리고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역시 곡의 처음부터 류지의 보컬과 통통 튀는 신디사이저 사운드가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신나는 분위기를 이어간다. 중간에 나오는 기타 솔로는 우리의 몸을 들썩이게 하기 충분하다.
그러나 밝은 분위기도 잠시, '다정한 말'을 기점으로 다시 차분해진 덕원의 목소리가 귀를 사로잡는다. '다정함'이란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면서도 어느샌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가사는 멜로디를 타고 청자의 귀에 들어가 기억 속 저편, 따뜻했던 순간의 감동을 상기시킨다. 노래가 끝나고 흘러나오는 밝은 연주는 상기된 감동의 순간을 그려낸 것만 같다. 티끌 하나 없는 순수함과 함께.
('다정한 말'의) 후주를 들으시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다정함을 간직한 채 어딘가로 떠나보는 일은
정말 따뜻하고도 신날 것 같습니다.
-잔디, tumblebug 프로젝트 소개글 中 (2024) -
이후 어른이 된 누군가가 어른이 될 아이에게 담담히 말을 건네는 듯한 '너를 업고'가 흘러나오고, 같은 문장을 반복하며 곡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일 새롭게'가 뒤를 따른다. 특히 '매일 새롭게'는 곡의 후반부에 템포가 빨라지며 수동적이었던 느낌의 후렴 '매일 새롭게'가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한 느낌을 준다. 템포 변화와 함께 사용된 신디사이저도 가사에 미래지향적인, 희망찬 느낌을 불어넣어주는 데 한몫했다. 그리고 덕원과 류지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마지막 트랙 '영원한 사랑'은 앨범명처럼 우리가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으며, 영원한 사랑은 가장 마지막 순간에서야 이뤄질 수 있다 말한다. 덤덤하지만 고백적인 말투의 가사로 그들의 생각을 남기고, 후반부엔 다같이 후렴구를 부르며 뭉클하게, 또는 여운을 남긴 채 앨범을 마무리한다.
인생에서도 완벽함이 있다고 믿는 순간
사람은 괴로워하고 쉽게 망가지거든요.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영원을 완성하는 건
영원한 완벽함은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거죠.
-덕원, Living sense (2024) -
앨범 커버를 살펴보면 회색 바탕에 희미하게 단풍 씨앗이 그려져 있다. 단풍 씨앗은 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지는데, 하강은 일반적으로 추락, 좌절과 관련되며 실패를 의미한다. 모두가 단풍 씨앗이 언젠가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앨범아트부터 '실패할 것을 알고 있다'라는 앨범명이자 주제를 드러낸다. 그러나 단풍 씨앗은 땅에 떨어져 단풍나무가 되고 거기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듯이, 실패의 연장선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이다.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다만,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인 다음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다.
-브로콜리너마저,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 앨범 소개글 中 (2024) -
앨범은 전반적으로 서정적인 분위기를 띠며 우울감 · 아쉬움 · 후회 · 유한성 등 부정적이라 생각될 수 있는 개념들을 주제로 하는 노래가 많다. 그러나 부정적 요소 뒤에 희망을 머금은 가사들과 밝은 연주는 그 개념들이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은연 중에 말한다. 보컬이 매우 유니크한 목소리나 창법을 가진 것은 아니기에 서정적인 분위기가 곧 따분함으로 향한다는 혹평을 받을 수도 있지만, 깊고 낮은 목소리의 덕원과 순수한 류지의 보컬이기에 오히려 곡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준다.
그렇다고 그들의 가사가 대놓고 청자를 위로하는 방식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들은 약 20여년 경력의 베테랑 인디밴드다. 그들도 죽을 힘을 다해 음악에 빠지고 즐겼던 시절이 있었고, 그때의 새파란 마음들은 세월이 흘러 어느새 중년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가사를 곱씹다보면 그들의 경험담을 듣는 것 같으며 그로부터 조언을 받고 희망을 얻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다며 차갑게 말하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청자는 오히려 위로를 느낀다. 그들이 남겨놓은 비유적인, 흡입력 있는 가사를 발자취 삼아 청자가 생각을 넓히고 가사에 공감하며 그로부터 격렬한 감정이 촉발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홈런을 노리고 만들기보다는
삼진을 당하지 않는 스타일로 만드는 것 같아요.
지금 순간에서 어떻게든 무엇이든
전할 수 있는 것을 앞으로 보내자,
보내기만 하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배트를 짧게 잡고
가사를 쓰는 것 같은 마음가짐이 있습니다.
-덕원, 유튜브 <EBS 교양> 'EBS 스페이스 공감 - 보편적인 노래, 졸업 - 브로콜리너마저' 中 (2024) -
앨범의 공간감 역시 뛰어나다. 라이브스러운 세션 연주가 돋보이고 그 덕분에 청자는 현장감 있는 음악을 청취할 수 있다. 이로부터 만들어진 공간감은 곧 청자가 음악과 가사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환경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퍼커션과 이펙터를 사용하여 청각적으로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는 점도 인상깊다.
보컬은 편곡 과정에서 녹음을 다 마치고 나서
라이브를 하게 되거든요,
이번에는 2년간 오른 여러 무대에서
먼저 곡을 선보인 다음에 앨범에 담을 곡을
녹음하는 수순으로 진행했어요.
-잔디, Living sense (2024) -
청춘을 노래했던 그들은, 이후 인생의 혼란스러움에 대해 노래했고, 어느덧 중년이 되어버린 지금, 그들은 닳아가는 과정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이미 지나갔거나 공감이 되는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에겐 먼 미래의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브로콜리너마저의 곡은 언제나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들여왔고, 이번에도 이 감각은 날카로웠다. 그들 특유의 서정적이고 잔잔한 음악은 '닳음'이란 주제를 노래하기 너무나 적합하다. 심지어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를 업고'는 앨범의 흐름에 맞게 곡을 편곡하였는데, 이러한 노력을 통해 더더욱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4집이란 하나의 이야기로 잘 전달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그들의 은유적이고 뜻을 곱씹어보게 하는 가사도 주제 전달력에 힘을 보탰다.
청년이 중년으로, 그 중년이 새로운 청년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우린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게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고. 언젠간 모두 끝나는 것을 알지만, 소리 내어 울지 않을 뿐이라고. 그런 현실이라도, 불확실한 미래라도 아직 우리는 멈춰서는 안된다. 모두가 모르기에 서로의 존재에게 의존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새롭게 쓰는 가사는 결국
미래에 대한 질문이고,
과거에 대한 답변이고,
또 그 반대이기도 하고 그런 것 같네요.
-덕원, 유튜브 <EBS 교양> 'EBS 스페이스 공감 - 보편적인 노래, 졸업 - 브로콜리너마저' 中 (2024)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캬 긴 리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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