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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5 FM 이벤트] 엑스트라의 시점에서 바라본 주인공의 이야기

이오더매드문2024.10.14 18:55조회 수 1224추천수 30댓글 38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이 세상에서 별볼일 없는 엑스트라 중 하나일 뿐이다.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말처럼 만약 이 세상이 하나의 영화라면, 아마 난 1초 정도 스쳐지나가는 사람 중 하나겠지.

그리고 엑스트라의 시점에서 바라본 이 세상 주인공의 이야기를 지금 얘기해보겠다.

 

아무래도 내가 온갖 음악을 디깅하고 그걸 여러 블로그, SNS, RYM 같은 곳에 정보를 공유하니 자연스레 다양한 리스너들과 연이 닿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람도 그 리스너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진정한 영화광은 영화를 좋아하는 걸 넘어 결국엔 스스로 영화를 만들게 된다는 트뤼포의 말처럼

 

직접 음악까지 만드는 사람이었다.

음악을 직접 만드는 만큼 어마어마한 음잘알이었고, 자기가 좋아하는 장르라면 다 섭렵하는 음악광이었다.

 

그 사람이 새로운 명의로 낸 데뷔 앨범을 들어봤을 때, 사실 그때는 포스트락/슈게이징 장르가 취향이 아니라서 큰 감흥은 없었다.

 

그래도 분명 편곡이나 구성 면에서 실력이 확실히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 사람은 2집의 컨셉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포스트 하드코어, 슈게이징, 이모 같은 장르이며

전체적으로 브레이브 리틀 애배커스 같은 느낌의 편곡이지만, 카 시트 헤드레스트 같은 대곡 구성이며,

그와 동시에 언니네 이발관과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같은 찐따 정서에서 영향을 받았다 등등

수많은 앨범들을 언급하면서 2집 제작 계획을 말했다.

 

그 계획을 직접 듣고 "분명 뭔가 나오긴 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고,

아주 조금의 스포트라이트만 받으면 분명 더 성공할 수 있다는 격려를 했다.

 

내가 뱉은 말이 설마 이렇게까지 현실이 될 거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발매 며칠 전에 1번 트랙과 2번 트랙을 먼저 들을 기회를 얻었다.

 

사실..... 처음엔 아주 큰 감흥이 없었다.

아니 분명 둘 다 잘 만든 곡이다. 훌륭하다. 그때도 잘 만든 곡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앨범 통으로 듣는 게 아니라서 그 전체적인 스토리를 알 수 없기에 감흥은 지금에 비해서 적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그냥 "정공적으로 잘 만들었다" 정도의 평범한 호평을 내렸다.

 

그리고 발매 하루전쯤에 풀 앨범을 통으로 들을 기회를 얻었다.

 

온갖 훌륭한 곡들이 3번 트랙부터 즐비하기 시작했고, 정말로 잘 만들었음을 그때 체감했으며,

"RYM에서 소소하게 반응은 얻겠구나"라고 예상했다.

 

무엇보다 큰 감흥이 없었던 1번 트랙이 더더욱 좋은 곡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앨범의 매력이다. 여러 트랙들이 서로 보완해주는 것 말이다.

 

그리고 드디어 앨범은 발매되었고, 난 가장 처음으로 RYM에서 그 앨범에 별점을 주었다.

 

발매되고나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때도 당황하고 놀랍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심 예상도 했었기에, 아주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아무리 잘해봐야 공중도둑 정도의 인기에서 그치겠지"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피치포크에서 그 무명 듣보잡의 앨범에 리뷰를 올려준 순간,

"이거 진짜 큰 일이구나"라는 것이 드디어 체감되었다.

 

정말로 그 곡의 가사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세상은 아름답다. 그런 무명음악가도 먹고 살게 만들어줬으니까.

 

비록 그 노래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트랙들이 앨범에 많지만

매번 내게 그때의 충격과 추억을 새록새록 피어오르게 만들어주는 노래는

결국엔 항상 오프닝 트랙이다.

 

모두가 예상못했던, 어떤 방구석에서 쏘아올린 작은 슈게이징의 신호탄은

모두가 그 신호탄을 보게되었고

하필 나도 모르게 바로 발사지점 바로 옆에 있었다.

 

 

이걸

이와이 슌지 감독 영화에 비유해보자면

 

쏘아올린 불꽃을 바로 밑에서 본 것이다.

 

 

 

하지만 난 지나친 감상주의에 빠지고 싶지는 않다.

 

사실 그 사람은, 분명 운도 작용하긴 했지만,

결국 전략을 잘 짜는 영리함도 있었고, 재능도 있었고, 노력도 엄청 했던 사람이다.

 

그의 이야기를 멀리서 바라보면

픽사 같은 교훈을 주는 이야기

혹은

<서칭 포 슈가맨>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기적적인 이야기

혹은

서프라이즈 같은 방송에 나올만한 기적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겠지만

 

바로 옆의 시점에서 봤을 땐

그는 그저 행동했을 뿐이다.

그의 말을 그대로 빌려서 그는 "행동하는 찐따"였을 뿐이다.

그저 자기 하는 일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도 그저 그러고 싶을 뿐이다.

 

또 재밌는 것은, 나는 그 사람의 성공에 너무 기뻐서

조금이라고 그를 홍보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나무위키에 가서 그의 문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게 내가 나무위키를 시작한 첫출발이었으며,

나무위키 덕분에 여러 국내인디 해외인디 뮤지션들과도 친해지는

알 수 없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물론 나 같은 엑스트라 따위는 그런 주인공의 업적에 비유할 수 없겠지만

나 같은 엑스트라도 뭔가 아주 작은 성취 하나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말한 것처럼

스스로 행동했기에 말이다.

 

 

https://youtu.be/uR0dnQFsQHg?si=wL-LN2a7Es3kMg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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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8
  • 이오더매드문Best글쓴이베스트
    4 10.15 19:52

    감사합니다 ㅠㅠ

    이상하게 그렇게 이어졌네요.

    그냥 파란노을 문서만 만들고나서

    "흠 근데 안그래도 대중음악 부분에 문서가 너무 빈약해서 내가 한번 해볼까" 라고 생각한게 계기가 되었네요

  • 10.14 19:11

    캬… 글 맛있네

  • 10.14 19:12
    @DannyB
  • 10.14 19:16
    @이오더매드문
  • 10.14 19:16

    열등감을 주제로 성공한 사람의 주변사람의 열등감 얘기라니 맛있다

  • 10.14 19:18
    @모든장르뉴비

    "만약 이 세상의 누군가의 꿈이라면"

  • 10.14 19:36
  • 10.14 19:38
    @Rainymatic
  • 10.14 19:54
  • 10.14 19:54
    @에미넴앨범

    이제 다들 그만 우세요

    자꾸 눈물이 안멈추잖아요

  • 10.14 19:58
    @아이돈라이크힙합
  • 10.14 20:08
  • 10.14 20:09
    @포스트말롱
  • 10.14 20:37

    친한 프리재즈 뮤지션은 없나요?

  • 10.14 20:38
    @끄응끄응끄응
  • 10.14 20:42

    근데 궁금하게 하나 있는데 RYM에도 커뮤니티가 있나요? 물론 팔로우 시스템이 있긴 한데 RYM에서 반응을 얻는다는 것이 어떤 식으로 작동되는지 궁금해서요..

  • 10.14 20:46
    @수저

    Rym은 그해에 나온 앨범들중 점수순대로 랭킹을 매기는 차트 시스템이 있잖아요? 그걸로 많은 방구석뮤지션들이 인기얻는데 큰 도움을 받았죠

    그리고 포럼도 따로 있기도하죠. 자주 들어가진 않지만...

  • 10.14 20:49
    @이오더매드문

    그해 차트에서 이름을 알린다니 요즘으로 치면 Cindy Lee 느낌이려나요

  • 10.14 20:52
    @수저

    그렇죠

    2월에 발매되었는데 그땐 아직 유명앨범들이 많이 나오지않은 시기였고 그땐 파란노을앨범이 가장 독보적으로 치고올라오던 시기였죠 ㅎ

  • 10.14 20:58
    @이오더매드문
  • 10.14 20:51

    님 글을 볼때면 뭔가 할수있을거란 생각이 들어요. 질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 10.14 20:53
    @산지직송사이다
  • 10.14 21:12
  • 10.14 21:12
    @dongdoong
  • 10.14 21:59

    크아악 개추

  • 10.14 22:27
    @민니
  • 10.14 22:06

    ㄹㅈㄷ 서사네요 꼭 한번 들어봐야겠습니다!

  • 10.14 22:28
    @칸베지드예

    이젠 명백하게 한국인디의 거대한 발자국이 되었습니다. 필청

  • 10.14 22:27

    (트뤼포는 그런 말 한 적 없대요)

  • 10.14 22:28
    @whykennaut

    (그냥 좀 그런척 넘어가세요. 정성일 쪽팔리게)

  • 10.15 00:04

    이건 서사가 너무 지려서 1등할 수 밖에 없을 거 같은데 ㅋㅋㅋㅋㅋ 글도 잘쓰시네요

  • 10.15 10:58
    @예붕이

    솔직히 내심 치트키란 거 알고는 있었습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 10.15 19:50

    ㄷㄷ 파란노을 홍보가 나무위키의 시작점이었다니 신기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님도 대단하심

  • 4 10.15 19:52
    @Satang

    감사합니다 ㅠㅠ

    이상하게 그렇게 이어졌네요.

    그냥 파란노을 문서만 만들고나서

    "흠 근데 안그래도 대중음악 부분에 문서가 너무 빈약해서 내가 한번 해볼까" 라고 생각한게 계기가 되었네요

  • 10.15 22:51

    이 글이 1등 안된다면 문제 제기하겠습니다

  • 10.15 22:51
    @K드릭라마
  • 10.16 08:43

    아 이거 참여작이였구나

    보고 울었습니다

  • 10.16 09:33
    @김베이비킴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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