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스윗하트의 아찔한 일탈
올해 가장 큰 성과를 거둔 팝가수가 누구냐 묻는다면
모두가 입을 모아 Sabrina Carpenter를 언급할 것이다.
커리어 첫 빌보드 싱글/앨범 1위에 앨범 전곡 줄세우기는 물론,
5위 안에는 무려 3곡이나 본인의 이름을 올렸고
영국 싱글 차트에선 3곡의 1위을 만들어냈으며,
MTV VMA에선 올해의 노래상까지 수상하면서
현재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히트가 그저 운으로 얻어진 건 아니다.
이 모든 게 가수 10년차에 일어난 일이니까.
2012년부터 배우로서 연기 커리어를 쌓아온 그는
디즈니의 유명 시트콤에도 출연하며 대중들 앞에 나섰지만
2015년 이후로 디즈니 산하 레이블에서 발매했던
4장의 정규 앨범들이 모두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 했다.
그러다 2022년, 새로운 레이블에서 발매한
정규 5집 "emails i can't send"는 평론의 호평을 받았고
수록곡 중 'Nonsense'와 'Feather'가 히트를 기록했으며,
연이어 테일러 스위프트의 투어 오프닝, 코첼라 등 각종 무대에 참여하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커리어 제2막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스스로 자신의 두 번째 앨범이라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Short n' Sweet은 가장 짧았던 연애가 그에게 제일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로
지어진 타이틀처럼 2020년대의 연애와 사랑의 여러 모습들을 그려낸 앨범이며,
마치 그의 데이트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느낌마저 든다.
핀업걸 콘셉트의 스타일링, 성적인 표현이 담긴 가사, 본인의 가십과 사생활의 활용,
뮤직비디오에서 표현되는 퀴어 코드까지 팝의 히트 공식이란 공식은
다 긁어모은 이번 앨범은 본격적인 팝스타로 도약하기 위한
노골적인 의도가 많이 보여 자칫 과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부드러운 보컬과 푸릇한 멜로디의 질감으로 그 부담을 조금 덜어준다.
또한, 앞서 공개되어 핫걸 바이브를 풍기던 두 곡의 싱글에 비해
어쿠스틱과 컨트리 사운드가 전반적인 분위기를 감싸며
눈부신 여름과 선선한 초가을의 향이 공존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앨범의 전체적인 감상엔
적지 않은 방해를 유발한다는 점도 인지해야 한다.
통통 튀는 팝핑캔디 같은 팝 트랙과 은은한 차 같은 어쿠스틱 트랙이
랜덤으로 배치되어 충돌하고 어떤 맛에 집중해야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대중적인 사운드의 트랙들(Good Graces, Bed Chem, Juno)과 그외 트랙들의
스트리밍 수치(스포티파이, 유튜브)만 비교해봐도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이지리스닝이 강세를 보이는 요즘 시기와
이런 음악에 반응하는 현 세대를 저격한 앨범으로 수혜를 받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지나치게 안전한 노선을 택했다는 시선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한동안 대다수의 가수가 진지함과 우울함을 머금었던 팝씬에서
대중들은 이런 가벼움을 바라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게 팝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니 말이다.
(그것이 비록 뻔하고 익숙한 맛이라 할지라도)
허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연차가 10년이나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만의 오리지널리티는 다소 부족해보인다는 점이다.
테일러 스위프트, 아리아나 그란데, 케이티 페리 등
여러 팝스타들의 잔상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마 착각은 아닐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앨범은 마시멜로우나 솜사탕으로 비유하고 싶다.
첫 입엔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과 질감이 혀에 착 감기지만
금세 녹아버려 그리 큰 여운을 남기진 못 한다.
솜사탕을 씻어먹으려던 너구리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다.
이번 앨범은 누구도 거부 못 할 향과 맛으로 잘 넘어갔지만
앞으로는 다른 팝가수들과 차별화되는 부분 하나는
증명해야 짧은 전성기로 끝나지 않고 더 큰 명성을 얻을 것이다.
그동안 운이 잘 따라주지 않았던 노력파 팝스타로서
드디어 메인스트림에 넘어온 그에게 남겨진 숙제를 잘 풀어가길 응원한다.
(아래부터는 개별곡 리뷰가 담겨있습니다.)
1. Taste
자신의 전 애인과 재결합한 사람에게
본인을 떠올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 말하는 곡.
강렬한 팝락 사운드가 앨범의 오프너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데이트하던 관계였던 Shawn Mendes와
그의 애인 Camila Cabello를 향한 저격이라는 이슈와
배우 제나 오르테가의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팝스타로서의 스포트라이트를 이어갔다.
2. Please Please Please
현 애인에게 자신의 속을 썩이지 말라며
신신당부하는 말을 재치 있게 표현한 곡.
아바를 연상케하는 레트로 바이브에
달콤한 신스팝 사운드, 컨트리를 곁들여
곡의 매력을 한층 더 올렸다.
뮤직비디오엔 현 애인인 배리 케오간의 출연으로
곡의 설득력은 높이고 이미지는 더 각인시키면서
커리어 사상 첫 빌보드 HOT 100 1위를 이뤄냈다.
3. Good Graces
만약 애인이 본인에게 잘 하지 않는다면
떠날 것이라고 경고하는 내용을 담은 곡.
가사 자체로만 보면 Please Please Please와
비슷한 결을 갖고 가는 곡이다.
Mariah Carey, TLC가 떠오르는 90년대 R&B 사운드를
리드미컬한 팝 스타일로 표현하였다.
4. Sharpest Tool
(sharpest tool : 똑똑하지 않고 무언가를 이해하는 데에 오래 걸리는 사람을 뜻함)
전 애인의 둔감한 감정을 언급하며,
일방적인 관계에서 오는 고통에 대한 내용을 담은 곡.
어쿠스틱 기타 리프가 인상적인 포크 팝 장르의 곡으로,
잭 안토노프가 프로듀싱한 곡이어서 그런지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적 색채가 진하게 느껴진다.
5. Coincidence
애인의 외도를 알아챈 후의 본인의 감정들을
비꼬는 듯한 재치 있는 가사로 표현한 곡.
어쿠스틱 기타와 힘 있는 보컬로
가사 내용과 대비되는 경쾌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6. Bed Chem
처음 만난 순간부터 상대에게 강하게 이끌려
욕망에 가득찬 생각들을 풀어낸 곡.
(현 애인인 배리 케오간에 관한 내용이라 추측하는 분위기)
R&B 풍의 신스 사운드와 보컬이 여유 있게 느껴지며
2000년대 팝의 그림을 제시하는 곡이다.
(실제로 Sabrina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밝힘.)
7. Espresso
빌보드 HOT 100 3위,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기록하며
여름을 강타한 올해 최고의 히트곡.
자신 때문에 잠 들 수 없을 것이라며
본인의 매력을 당당히 어필하는 내용을
위트 있게 표현한 곡이다.
여름의 분위기를 담은 뮤직비디오,
중독적인 멜로디와 디스코 사운드,
"That's that me espresso"와 같은 아이코닉한 가사까지
히트를 위해 작정하고 나온 머니코드의 향이
코를 찌를 듯이 강하게 자극하고 있지만
이런 풍미의 커피 한 잔을 그냥 지나칠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
8. Dumb & Poetic
지적인 매력의 애인의 모습이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다는 것을 직면하고,
속은 자신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곡.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곡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면서
화자의 심정을 잘 담아냈다.
9. Silm Pickins
(silm pickin : 고를만한 좋은 물건이 많지 않을 때 쓸 수 있는 단어)
매력적이고 완벽한 사람을 찾고 있지만
그런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현실과 타협하는 내용을 담은 곡.
이 곡을 프로듀싱한 잭 안토노프로 인해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 'folklore'와 'evermore'의 사운드를
떠올리게 하는 포크, 컨트리 사운드가 진하게 묻어나온다.
10. Juno
상대에게 느끼는 성적 흥분을 주체하지 못 하고
더 깊은 관계로 유도하는 내용을 담은 곡.
신나는 밴드 사운드, 벅차오르는 보컬,
캐치한 멜로디와 대비되는 발칙한 가사가 인상적이며
개인적으로 다음 싱글로 활동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11. Lie to Girls
부정직한 상대에 대한 비판과
연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거짓말의 순환의 내용을 담은 곡.
덤덤하게 뱉는 보컬과 차분한 기타 사운드가
섬세한 감정을 능숙하게 표한다.
12. Don't Smile
이별 후 느끼는 고통과 상처에 힘들어하고
상대도 똑같이 본인처럼 아프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곡.
건조한 피아노 건반의 인트로를 시작으로
chill한 분위기의 드림팝 장르의 곡이며,
이별의 공허함을 로파이 감성으로 풀어냈다.
PICK
Taste
Please Please Please
Good Graces
Espresso
Ju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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