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움 붙이는 건 언제나 재밌다. 지금도 어떤 커뮤니티에는 두 개의 단어 사이에 'vs'를 끼워 넣는다. 그게 '폴 vs 진'이든, '제라드 vs 램파드'든, 대상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재밌을 뿐이다. 그래도 선정된 둘이 공통점이 있다던가, 각 대상의 팬층이 있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기준 정도는 있다. 그런 의미에서 로이스 다 파이브 나인(Royce Da 5' 9", 이하 로이스)과 DJ 프리미어(DJ Premier, 이하 프리미어)가 함께한 [PRhyme]과 프레디 깁스(Freddie Gibbs)와 매드립(Madlib)이 함께한 [Piñata]는 싸움 붙이기 참 좋은 앨범들이다. 왜 저 둘인가 묻는다면, 요즘 흔치 않은 1 MC, 1 프로듀서 구성이며, 래퍼와 프로듀서들이 각각의 분야에서 장인이라 불리기 때문이다. 그들의 음악이 대부분 묵직한 베이스를 무기로 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정도면 위에 말한 기준은 충족한 것 같으니, 몇 가지로 나누어 싸움을 붙여보려 한다. 누가 더 맘에 드는지 고르는 건 자기 맘대로다.


1. 13 vs 17

2. Host - 자기과시 vs 자아성찰
로이스는 [PRhyme] 앨범 전체를 통해서 랩 스킬과 돈, 자신의 태도와 같은 힙합 고유의 주제를 반복한다. 곡의 초점이 돈이면 "난 너보다 돈 많다", 랩이면 "나보다 랩 잘하는 애 아무도 없지."와 같은 식이다. 이는 로이스라는 아티스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살린 것이며, 이를 통해 래퍼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 번 단단하게 다질 수 있었다. 그러나 프레디 깁스는 과거 본인의 전작들과는 달리, 과거 이야기와 후회 등 일종의 자아 성찰에 집중한다. 프레디 깁스의 마초적인 면모를 좋아하던 사람들에겐 아쉬운 일이겠지만, 그의 진중한 면모를 볼 수 있단 점에서, [Piñata]는 프레디 깁스의 커리어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3. Guest - 자기과시 vs 자아성찰
애초에 프리미어가 구상하던 [PRhyme]은 로이스만이 아닌, 슬로터하우스(Slaughterhouse)가 함께한 앨범이었다. 당연히 프리미어의 머릿속 앨범에는 강한 랩이 잔뜩 배치되어있었을 것이며, 이를 증명하듯 피처링 게스트진은 화려한 래퍼들로 가득하다. 스쿨보이 큐(ScHoolboy Q), 로직(Logic)과 같은 신예부터 커먼(Common), 킬러 마이크(Killer Mike), 블랙 똗(Black Thought), 슬로터하우스의 나머지 세 멤버 같은 베테랑까지, 모두 압도적인 랩 퍼포먼스를 갖춘 이들이다. 프레디 깁스와 매드립은 그보다는 '본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를 중점으로 본 듯하다. 래퀀(Raekwon), 스카페이스(Scarface)와 같이 갱스터 시절의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부터 얼 스웻셔츠(Earl Sweatshirt)와 도모 제네시스(Domo Genesis) 같이 조금은 다른 시각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했다. 물론 랩 실력도 일정 이상 갖춘 이들로 고른 만큼, [Piñata] 속 랩 퍼포먼스 역시 수준 이상이다.
♬ PRhyme (Feat. Dwele) - You Should Know
4. 시대 vs 개인
[PRhyme]이 화제가 됐던 이유 중 하나는 힙합의 90년대를 대표하는 프로듀서인 프리미어가 다시 한 번 듀오 팀을 결성해 앨범을 만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앨범의 목적은 명확하다. 힙합의 황금기라 불리던 90년대의 느낌을 다시 한 번 재현해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로이스의 가사는 원초적이고, 프리미어의 비트는 힙합의 정석적인 바이브를 따라간다. [Piñata]는 특정 시대를 지목하기보다는, 개개인의 과거를 돌아보기에 적당하다. 매드립이 제공한 따뜻하고 소울풀한 비트는 프레디 깁스의 개인사와 어우러져, 프레드릭 팁턴(Fredrick Tipton, 프레디 깁스의 본명)이라는 한 인간의 개인사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이런 경험이 듣는 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곳까지 닿는 데에는 개인차가 있겠으나, 적어도 앨범이 의도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내기에는 문제 없다. [PRhyme]이 지나간 시대에 주목한다면, [Piñata]는 한 사람의 인생 장면장면을 눈앞에 보여준다.
♬ Freddie Gibbs & Madlib - Deeper
5. 대표작 vs 실험작
[PRhyme]과 [Piñata]는 비슷한 느낌의 아티스트들이 듀오로 뭉쳤지만, 사실 결코 비슷한 앨범은 아니다. 이는 각 아티스트에게 앨범이 갖는 의미에서도 다르게 나타난다. 우선 로이스에게 [PRhyme]은 커리어에서 대표작이라 부를 만한 '앨범'으로 자리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것도 자신의 가장 잘 팔린 싱글, "Boom"을 만들어준 프리미어와 함께 했단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프리미어 역시 최근 본인의 기량에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던 사람들에게 아직 건재하다는 걸 보여줬다. 프레디 깁스는 본인의 고민이나 후회를 거침없이 드러냈고, '깡패짓밖에 모르는 새끼'라는 인식을 어느 정도 바꾸는 데 성공했다(물론 이를 좋아하는 팬들도 많다). 매드립은 프레디 깁스의 랩을 볼륨 조절이나 편곡 등으로 세세하게 뒷받침하며, 자신이 실험적인 비트메이커뿐 아니라, 한 명의 메인 프로듀서로서 앨범을 만드는 역량 역시 뛰어남을 증명했다.
위의 항목들을 따라 내려오면, 결국 '1 MC, 1 프로듀서'라는 점 외엔 두 앨범의 공통점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도 그저 '재밌으면 그만'이라는 단순한 이유에서 이러한 글을 써보았다. 누군가가 두 앨범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그건 아마 당연하게도 개인의 선호도가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할 것이다. 다만, 이 글은 그 선호도가 어떠한 이유에서 형성될 것인지를 볼 뿐이다. 자, [PRhyme]이 좋은가, [Piñata]가 좋은가? 자신의 취향과 감상을 여과 없이 써보자. 그리고 마지막은 역시 '앞으로 좋은 앨범을 기대한다.'로 끝내면, 두 앨범에 대한 건전한 대화를 나눈 기분이 들 것이다.
글ㅣGDB/AN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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