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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Vince Staples - Summertime '06

Pepnorth2015.08.15 11:05추천수 6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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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 Staples - [Summertime ’06]


Disc 1

1. Ramona Park Legend, Pt. 1

2. Lift Me Up

3. Nort Nort

4. Birds & Bees (Feat. Daley)

5. Loca

6. Lemme Know (Feat. Jhené Aiko & DJ Dahi)

7. Dopeman (Feat. Joey Fatts & Kilo Kish)

8. Jump Off The Roof (Feat. Snoh Aalegra)

9. Señorita

10. Summertime


Disc 2

1. Ramona Park Legend, Pt. 2

2. 3230

3. Surf (Feat. Kilo Kish)

4. Might Be Wrong (Feat. Haneef Talib aka GeNNo & eeeeeeee)

5. Get Paid (Feat. Desi Mo)

6. Street Punks

7. Hang ’N’ Bang (Feat. A$ton Matthews)

8. C.N.B.

9. Llike It Is

10. ’06


예나 지금이나 힙합에서 가장 사랑받는 가치는 진정성이다. 가사를 직접 써야 하는 건 물론이고, 그 가사 안에 들어가는 컨텐츠 또한 래퍼 자신이 직접 살아본 삶에 조금이라도 기인해야 리스너들은 수긍하고 관객들은 환호한다. 삶과 음악이 조금이나마 방향을 같이해야 음악에 진정성이 생긴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그 진정성을 판가름하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는 모호하다. 가끔 보면 잘 만든 픽션이 논픽션보다 더 진실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래퍼가 실제 삶에 기반한 가사와 음악으로 팬들의 귀를 즐겁게 해준다. 그렇다면 매해 쏟아지는 신인 가운데 이런 음악을 가장 잘 구사하는 래퍼로 누가 있을까?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겠지만, 이에 가장 알맞은 답은 신예이자 베테랑 프로듀서 노아이디(No I.D.)의 총애를 받는 래퍼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이다.


빈스 스테이플스는 캘리포니아(California) 롱비치(Long Beach)의 빈민가에서 자랐다. 주변 친구들은 어려서부터 총을 마치 장신구처럼 허리춤에 끼우고 다녔고, 이웃 어른들은 마약을 거래했다. 경찰에게 붙잡혀 감옥에 가는 일도 적지 않았다. 빈스 스테이플스 자신도 친구들과 함께 그 유명한 갱단 크립스(Crips)에 몸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삶을 살았다는 이유로 빈스 스테이플스의 음악에 진정성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저 그의 음악을 설명해주는 배경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빈스 스테이플스가 자신이 겪었던 삶을 마주하는 자세에 있다. 그는 빈민가의 삶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마약으로 번 돈다발에 우쭐대지도 않고, 그 돈으로 산 멋진 자동차와 금목걸이를 자랑하지도 않으며, 거리의 여자들을 최고의 여성으로 추켜세우지도 않는다. 단지 한 발짝 떨어져서 그런 삶의 모습 자체를 덤덤하게 묘사할 뿐이다. 여기에는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도 없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시선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삶이 빈스 스테이플스의 시선을 통해 랩이라는 형태로 드러날 때, 비로소 그의 음악에 진정성이 생기는 것이다. 빈스 스테이플스가 [Stolen Youth]와 [Shyne Coldcahin Vol. 2]를 통해 수많은 리스너, 에디터의 주목을 받고, 나아가 아티움 레코딩스(ARTium Recordings)의 수장이자 베테랑 프로듀서 노아이디의 귀를 사로잡은 이유는 모두 이러한 요소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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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 Can Wait] EP에 이어 발매된 첫 번째 정규 앨범 [Summertime ’06]에서도 빈스 스테이플스는 그러한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자신이 겪었으며, 누군가는 지금 겪고 있을 거리의 삶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눈동자에 비친 그 모습을 가감 없이 묘사한다. 그러나 이전 믹스테입, EP와는 어딘가 다르다. 프로듀싱은 더욱 어둡고 음울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그는 거친 단어와 슬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소재를 보다 현실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다가도 가끔은 적극적으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며 이야기의 흐름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이를테면, “Norf Norf”, “Señorita”, “Surf”, “Street Punks” 등의 곡에서는 폭력을, “Dopeman” 등에서는 마약 거래를, “Birds and Bees”, “Loca”, “Lemme Know” 등에서는 갱스터와 여성의 관계를 논하면서도, 중간 중간 “Jump Off The Roof”, “Lift Me Up”, “Summertime” 등 주인공 갱스터의 내면이 드러나는 곡을 배치하는 식이다. 


갱스터와 여성의 관계도 단순히 돈으로 엮인 사이가 아닌 돈과 사랑, 그리고 섹스가 얽힌 복합적인 관계로 묘사한다. 그리고 이 관계를 세 곡 정도에 차례로 실으며 욕망에 사로잡힌 갱스터가 여성 앞에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그려낸다. 특히, 섹스를 탐닉하는 모습이 담긴 곡 “Lemme Know”에서 그는 여성 화자로 저네이 아이코(Jhene Aiko)를 등장시키며 갱스터와 여성의 목소리도 공존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소재 자체는 여성, 돈, 마약, 폭력, 빈민가의 현실 등 갱스터라는 단어의 이미지를 언급할 때 꼭 등장하는 클리셰에 가까운 것들이지만, 그리 상투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 Vince Staples - Norf Norf



단순하면서도 복합적인 앨범 구성 또한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핵심은 2 CD에 있다. 앨범은 1 CD로 구성하는 게 일반적이다. 2 CD는 스트리밍 중심인 현 음악 소비 구조 아래에서는 그리 큰 감흥을 주지 못하며, 자칫하면 용두사미로 빠지기 쉬운 포맷이기도 하다. 하지만 빈스 스테이플스는 당돌하게도 자신의 데뷔 앨범을 2 CD로 구성했다. CD마다 10곡을 담았다. 앨범의 이야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이다. 인트로는 겹치는 듯하면서도 중복되지 않고, 이후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비슷하면서도 인물의 감정 묘사나 전개되는 방향과 결 등이 묘하게 다르다. 이러한 병렬적인 구성은 각 CD의 온도 차이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여기에 2 CD의 마지막 트랙을 마치 TV 프로그램 하나가 끝나는 듯한 모습으로 연출하며 앨범 내용 전체를 하나의 TV 프로그램처럼 만들어버린다. 일종의 액자식 구성이다. 이를 통해 앨범은 현재 빈민가의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이런 삶을 마치 로망처럼 바라보는 리스너와 하나의 상품처럼 대하는 미디어란 또 무엇이냐는 철학적이면서도 비판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데 성공한다. 


빈스 스테이플스가 앨범을 굳이 이렇게 구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쉽게 영향을 받으니 대충 만들어서는 안 되며, 그에 부합하는 진정성을 갖춰야 한다. 또한, 단순한 앨범이 아니라 오랫동안 두고 들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음반 판매량이 아닌 이야기에 방점이 찍혀 있을 때 비로소 음반이 가치를 지닌다는 이야기였다. 앨범의 프로모션을 비교적 조용히 진행하고, 싱글도 두 장만 발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뮤직비디오 또한 화려한 영상미보다 메시지에 초점을 맞춰 제작하며 앨범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를 레이블에 영입한 노아이디는 앨범의 수록곡 대부분을 프로듀싱하고, 총괄 프로듀서 역할까지 자처하며 [Summertime ’06]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몰두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작업을 해나가는 빈스 스테이플스가 스스로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보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노아이디의 존재와 그의 든든한 후원은 뜻밖에도 앨범에 양날의 검처럼 작용했다. 분위기를 일관되게 조성하고, 앨범의 구성을 다채롭게 한다는 점에서 완성도를 높이기도 하지만, 색이 너무 강해 다른 프로듀서들이 존재감을 드러낼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앨범에는 DJ 다히(DJ Dahi) 클램스 카지노(Clams Casino) 등 유능한 프로듀서가 참여했지만, 그들의 색이 썩 드러나는 편은 아니다. 유독 다른 바이브를 지닌 “Señorita”의 프로듀싱만 조금 튈 뿐이다. 또한, 노아이디가 프로듀싱을 맡아 전반적으로 눅눅하고도 음침한 분위기를 담고 있고, 빈민가를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같은 레이블 선배 커먼(Common)의 지난 앨범 [Nobody’s Smilling]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 Vince Staples - Señorita



물론 이런 점들에도 불구하고 앨범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프로듀서들의 개성이 묻어나지 않는다는 건 역설적으로 빈스 스테이플스와 노아이디가 앨범의 분위기 형성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며, 커먼의 [Nobody’s Smiling] 자체도 지난해 높은 완성도로 평단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프로덕션 측면의 장단점보다 더 중요한 건 모든 걸 아우르는 빈스 스테이플스의 역량이다.


노아이디가 최근 선보이는 비트들은 리듬의 변주가 잦고, 보이스 샘플의 등장 시기도 불규칙한 경우가 많다. 별다른 악기의 사용 없이 드럼과 베이스만으로 전개하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 그래서 매력적이지만, 어딘가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 빈스 스테이플스는 특유의 물 흐르듯 유연하면서도 타이트하고 착착 감기는 래핑으로 노아이디의 비트를 완벽하게 씹어먹는다. 특히 "Jump Off The Roof"에서는 복잡한 드럼과 보이스 샘플 구성을 마치 서핑하듯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탁월한 랩 스킬을 맘껏 뽐낸다. 또한, 랩과 보컬, 나레이션 등을 다양하게 활용해 곡마다 매번 다른 바이브를 선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화려하게 랩을 선보이다가도 화자의 감정 변화에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트랙 “Might Be Wrong”에서는 랩을 배제한 채 보컬과 나레이션만을 선보이고, 빈민가의 현실적인 측면을 이야기하는 “Hang N Bang”에서는 매 마디 끝에 ‘사실이야(That’s True)’라는 문구를 간단하게 붙이는 식이다. 게다가 이번 앨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사실 그는 붐뱁부터 잔잔하고 재지한 비트, 피비알앤비, 하우스 등 다양한 스타일의 곡을 소화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발표하는 결과물마다 꾸준히 좋은 평을 받은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빈스 스테이플스는 또래 래퍼들 가운데서도 빼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이번 앨범을 통해서는 랩뿐만 아니라 앨범 단위의 결과물을 완벽에 가깝게 뽑아낼 수도 있다는 점을 입증해냈다. 물론 이번 앨범의 판매량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와 반비례하는 완성도는 분명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빈스 스테이플스가 지닌 녹록진 않은 랩 실력과 나이에 걸맞지 않은 노련함, 그리고 기존의 갱스터 랩과는 다른 문법은 분명 앞으로 그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글│Pepno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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