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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DTD는 과학이다: 7 One Hit Wonders

Pepnorth2015.01.29 11:33추천수 9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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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D는 과학이다: 7 One Hit Wonders


스포츠계에는 여러 가지 명언이 있다. 알렉스 퍼거슨 (Alex Ferguson)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 감독은 트위터에 일상을 하나하나 기록하는 구단 선수들에게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다.”라며 일침을 가했고, 농구 선수지만 신발을 벗으면 키가 180 정도밖에 되지 않던 앨런 아이버슨(Allen Iverson)은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라며 심장의 의학적인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처럼 명언은 스포츠라는 세계에 한정된 뜻보다 더 큰 뜻를 지닌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명언을 넘어 자연의 섭리를 담은 이론이라는 찬사를 받는 희대의 명언이 이 땅에 존재한다. 바로 지난 2005년 현대 유니콘스의 감독이었던 김재박 감독이 주창한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즉, DTD(Down team is down) 이론이다.


매사에 진지한 태도를 지닌 이들은 DTD 이론(이하 DTD)의 기본 골격인 “Down team is down”의 문법적,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론 자체를 깎아내리려 아우성을 친다. 그런데 사실 언어 구조는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이 이론이 얼마나 범 우주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 이론 아래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연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이론의 부정적인 의미에 질겁하여 보기도 전에 덜덜 떠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들에게 필요한 건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바라보는 방법이다. DTD는 혜안이 부족한 이에게 또 하나의 프리즘이 되어 일곱 빛깔 무지개를 선사할 것이라 자신한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음악계 또한 DTD의 가치 아래에서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보았다. 시작은 음악이라는 측면에서 DTD의 효용성을 알아보기 위함이었으나, 조사와 연구 끝에 이론을 불필요하게 검증하기보다는 조금 더 실리적인 접근을 통해 DTD가 얼마나 실용적인 이론인가를 많은 이들에게 널리 전파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았다. 앞으로 살펴볼 이들은 DTD의 과학적이고도 복합적인 증명의 알고리즘 끝에 도출된 DTD형 가수 7인이다. 신을 자처한 랩갓을 제외하고는 DTD의 완벽함에 무릎을 꿇지 않을 가수는 단 한 명도 없지만, 밤하늘의 별 일곱 개가 모여 북두칠성을 이루고, <드래곤 볼>의 용신을 부르기 위해서는 여의주가 일곱 개 필요하고, 한국형 음악의 신들이 모여 경합을 펼치던 <나는 7ㅏ수다> 또한 7인 체제였다는 것을 고려해 단 7명에게만 DTD의 명예를 수여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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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upid


지난 2012년, 한 가수가 신분을 숨긴 채 미국의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The Voice>에 참가했다. 그는 2007년 세 번째 정규 앨범 발매 이후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지 못했고, 이에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히트곡을 들고 직접 오디션의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그는 무대를 등지고 앉아있는 심사위원 네 명을 향해 직접 큐피트의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지만, 곡이 끝날 때까지 그 어떤 심사위원에게도 명중하지 않았다. 과연 같은 프로 가수에게 ‘목소리’로 선택받지 못하는 수치를 맛본 프로 가수는 누굴까. 그는 바로 과거 “Cupid Shuttle”로 빌보드를 뜨겁게 달궜던 싱어 큐피트(Cupid)이다. 


앞서 말한 싱글 “Cupid Shuffle”로 큐피트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가 DTD 형 가수에 첫 번째로 선정된 게 다소 의아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현직 가수가 오디션으로 재기를 노린다는 것 자체가 그의 현재 위치를 반증하는 일이다. 심지어 첫 라운드부터 보기 좋게 탈락하는 건 정말 보기 드물다. 근데 그 일을 현실로 만든 게 큐피트이다. 1년 뒤 네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하긴 했지만,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차트에서 자취를 감췄다. 항간에 도는 소문에 의하면 몇 달 전 소리소문없이 내한 공연을 펼친 뒤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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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Kris Kross


프로듀서 저메인 듀프리(Jermain Dupri)가 발굴한 크리스 크로스(Kris Kross)는 1992년 “Jump!”라는 명곡을 대중의 귀에 내리꽂으며 혜성같이 등장했다. 당시 크로스 크로스의 기세는 대단했다. “Jump”는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했고, 정규 앨범 [Totally Crossed Out]은 백만 장 이상의 판매량를 올렸다. 야구 저지를 거꾸로 입는 패션 스타일 또한 대중의 큰 주목을 받았으며,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월드 투어에 함께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후 한두 차례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오르긴 했지만, 과거처럼 대중음악과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지금 들어도 크리스 크로스의 음악은 재미있다. “Jump” 속 크리스 켈리(Chris Kelly)와 크리스 스미스(Chris Smith)는 귀엽고도 패기 넘치며, 비트와 잘 어울리는 랩은 귀에 잘 감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화려하게 데뷔한 래퍼가 출루마저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딱히 분석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최근 크리스 스미스가 다시 음악 작업에 몰두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지만, 결과물은 빈약하고 반응 또한 싸늘하다. 설상가상으로 크리스 크로스의 반쪽 크리스 켈리는 2013년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다. 그해 크리스 켈리의 사망 전, 레이블 쏘 쏘 데프 레코딩스(So So Def Recordings)의 20주년 기념 콘서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크리스 크로스의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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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Hurricane Chris


Hurricane Chris


[명사] 


1. “Bay Bay”라는 키치한 곡으로 랩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저질 래퍼이며, 가사 또한 정말 구림. 랩의 망신!!


2. 리믹스 버전은 게임이나 제이다키스 등 좋은 래퍼들이 참여한 덕분에 좀 괜찮긴 했으나, 여기서도 허리케인 크리스의 랩은 정말 별로임.


*출처 어반딕셔너리(Urbn Dictionary)


미국의 오픈 비속어 사전이라고 볼 수 있는 어반딕셔너리(Urban Dictionary)에 기재된 허리케인 크리스(Hurricane Chris)의 정의이다. 이 정도만 놓고 봐도 허리케인 크리스가 지닌 DTD 형 DNA는 충분히 설명했다고 본다. 하지만 영단어 암기장만 봐도 소름이 돋을 이들을 위해 조금 더 친절하게 이야기해야겠다. 이름만으로도 왠지 힙합 계의 폭풍 같은 남자가 될 것 같았던 허리케인 크리스는 지난 2007년 “A Bay Bay”라는 싱글로 씬에 등장했다. 귀에 쏙쏙 박히는 훅과 어렵지 않은 가사 덕에 이 곡은 빌보드 랩 차트 2위에 올랐다. 후속곡 “The Hand Clap” 또한 전작의 성공을 이끈 요소를 두루 차용해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DTD의 사전에는 자고로 오르막길이란 없는 법이다. 그러니까, 이게 다라는 얘기다.


물론 몇 가지 긍정적인 부분이 있긴 하다. 하나는 1989년생이라 아직 20대 중반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어느덧 힙합의 세부 장르로 커가고 있는 래칫(Ratchet)에 대한 열정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는 점이다. DJ 머스타드(DJ Mustard)의 도움을 받아 새 싱글을 발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 DJ 머스타드는 힙합계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도 되는 듯 허리케인 크로스의 랩에도 플로우라는 걸 심어준다. 하지만 이 싱글 하나로 허리케인 크로스의 실력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일러도 너무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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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Gucci Mane


구찌 메인(Gucci Mane)은 한때 남부 힙합계에서 밥값은 하는 래퍼였다. 지금까지 정규앨범 12장과 믹스테잎 50장을 발표했을 정도로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타입이었지만, 잘나갈 때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었다. 특히, 2009년에 발표한 두 번째 메이저 정규 앨범 [The State vs. Radric Davis]로 빌보드 차트에서 10위에 올랐고, 45만 장이라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종전에 [Hard to Kill]로 세운 최다 판매 기록보다 30만 장이나 더 팔아 치우는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앨범 참여진도 릴 웨인(Lil Wayne), 캠론(Cam’ron), 와카 플라카 플레임(Waka Flocka Flame), 키샤 콜(Keyshia Cole), 번 비(Bun B) 등 예상보다 화려했다. 그렇게 구찌 메인은 특유의 트랩과 다작으로 힙합계에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였으나, 역시 그 또한 DTD의 늪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약에 대한 열정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구찌 메인이 약에 처음 손댄 건 2001년이다. 인디펜던트 데뷔 음반 [Trap House]를 발표한 게 2005년이니 음악을 시작하기도 전에 DTD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그 뒤 한참 괜찮은 음악을 쏟아내던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폭행 또는 보호 감찰규정 위반으로 몇 번 경찰에 체포되었던 게 전부였다. 하지만 한해가 지나고 2013년이 되자 결심하기라도 한듯 자신의 DTD 감성을 고스란히 SNS에 풀어내기 시작했다. 가족과도 같던 브릭 스쿼드 레코즈(Brick Squad Records) 식구들과 동료 래퍼에게 디스를 일삼고, 절친한 동료였던 와카 플라카 플레임에게는 입에도 담기 어려운 욕설을 해대며 레이블에서 내쫓았다. 달리는 차에서 여자를 밀치고 술병으로 팬의 머리를 내리치는 등 기행도 일삼았다. 이에 비판 여론이 일자 그럴듯한 변명을 대며 슬쩍 넘어가려고 했지만, 술과 약에 중독됐다는 증거가 속출하자 결국 잘못을 시인하며 친구들과 팬들에게 사과를 구했다. 그사이 거의 매달 앨범이나 믹스테입을 발표하며 다작의 끝을 보여줬지만, 민망할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져 오히려 그의 추락을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했다. 그런 그에게 이제 남은 건 그간의 범죄 기록, 벌금 25만 달러(한화 약 2억 6천5백만 원), 39개월의 징역형이 전부다. 이 정도면 DTD의 교과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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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Juelz Santana


2000년대 초반, 딥셋(Dipset)은 엄청났다. 짐 존스(Jim Jones), 캠론(Cam’ron), 주엘즈 산타나(Juelz Santana)로 구성된 삼인조 딥셋은 짐 존스가 닦아 놓은 특유의 바이브 아래에서 각자 개성 넘치는 랩을 선보이며 단숨에 뉴욕 힙합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힙합의 유행이 사우스로 방향을 틀고, 딥셋 멤버들 특유의 게으름 병이 발동하자 이내 곧 그들의 행보도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그래도 요즘 들어 짐 존스와 캠론은 조금씩 결과물을 발표하고 각자의 관심 분야에 몰두하기도 하는 등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한 명은 여전히 잠잠하다. 잠잠하다 못해 아직 잠이 덜 깬 것 같다. 그건 바로 “Back To The Crib”을 열창하던 또 한 명의 DTD 형 인간, 주엘즈 산타나다. 


물론 딥셋 모두에게 게으른 면이 있다고는 했지만, 주엘즈 산타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조금 놀긴 했지만, 곡을 드문드문 발표하기라도 했고, 가끔 좋은 곡도 잘 뽑아냈다. 하지만 앨범에 대한 자신이 없는지, 앨범 제작 과정에서 트러블이 생겼는지 앨범 발매일을 차일피일 미뤘고, 그러다가 결국 앨범 자체를 발매하지 않았다. 믹스테입도 같은 과정을 반복하다 결국 발표하지 않았다. 본인 이름으로 된 결과물의 유무가 래퍼를 평가하는데 결정적인 기준이 되는 건 아니지만, 재능을 갉아먹는 게으름을 수반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외모에도 게으름이 묻었는지 유니클로 모델이었던 그를 보면 언제부턴가 유니클로보다는 이봉원이 떠오른다. 전방위적인 DTD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외모까지 바꾸는 게으름은 DTD의 미덕이자 가입 필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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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hingy


2000년대 초반, 칭이(Chingy)는 캐치한 분위기의 클럽 튠 “Right Thurr”로 단숨에 정상의 반열에 오른 뒤 첫 정규 앨범 [Jackpot]을 발표, 순식간에 플래티넘을 달성하며 랩 대세임을 입증했다. 앞서 말한 싱글 “Right Thurr”는 이러한 인기에도 빌보드 차트 2위에 그쳤는데, 이때는 사실 비욘세(Beyonce)가 “Crazy In Love”로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맹위를 떨칠 때였다. 다시 말하자면, 칭이는 당시 미국에서 비욘세 다음으로 인기 있는 사람이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칭이가 거둔 대중적인 성공은 현란한 플로우나 라임으로 무장하기보다 랩과 노래를 접목해 듣기 편한 음악을 추구했다는 점에 기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의 일인자였던 넬리(Nelly)가 시장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자리를 잃었듯이, 칭이 또한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자연스레 차트 순위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칭이의 귀신 같은 DTD는 시장의 변화에 따른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태생적인 기질에 가까웠다. 데뷔한 순간부터 그가 추구하는 음악이 주는 전체적인 분위기나 랩 스타일 자체가 넵튠즈(Neptunes)와 너무 닮았다는 비판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칭이가 누린 인기의 기반에 캐치하고 쉬운 가사를 바탕으로 한 클럽 튠이 있었다는 사실을 놓고 본다면, 그런 비판은 곧 그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칭이는 꾸준히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했다. 하지만 클럽과 여자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캐릭터를 버리지 못한 채 같은 스타일을 반복하고, 독창성이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기 일쑤였던 칭이가 결국 DTD를 시전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정된 순서였다. 여기에 칭이는 회사와 마찰까지 빚으며 더 깊은 DTD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이후 학교에 다니며 과학과 고대 이집트 등을 공부하며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닫게 됐고, 이에 따라 생활 습관과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 등 모든 걸 완전히 바꿔버렸다고 한다. 과거의 스타로도 돌아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 DTD도 이런 DTD가 없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전개는 DTD의 또 다른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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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Sean Paul


운동선수가 음악을 시작하면 결과는 딱 두 가지다. 성공하든가, 아니면 망하든가. 하지만 세상의 이치를 담고 있는 DTD는 둘 다 경험하기를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당연히 성공하다가 망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21세까지 수구 선수를 하다 음악인으로 전향한 션 폴(Sean Paul)은 이 방면의 선두 주자이다. 2003년 션 폴이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Dutty Rock]은 발표와 동시에 대중의 귀를 사로잡으며 레게의 하위 장르였던 댄스홀(Dancehall)을 순식간에 팝 시장 전면으로 끌어올렸다. 션 폴은 이 앨범으로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등 큰 성공을 일궈냈다. 이렇게 열린 션 폴의 시대는 2006년 9개 시상식 13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리며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성공을 일군 데에는 션 폴의 랩이 지닌 레게 리듬과 흥겨움이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 영향을 미친 건 그의 댄스홀이 당시 음악 시장을 주름잡던 클럽 튠과 긴밀히 맞닿아 있었다는 점이다.


팝 시장에서의 댄스홀은 아쉽게도 한계가 명확한 장르이다. 깊은 감상이나 메세지 보다는 장르 자체가 가진 흥겨움이나 즉각적인 감상을 주는 게 전부다. 댄스홀이 유독 클럽에서 자주 들리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션 폴이 전성기를 맞이한 2000년대 초중반의 팝 시장은 앞서 리스트에 오른 칭이나 허리케인 크리스의 음악처럼 쉬운 리듬에 단순한 가사로 중무장한 곡이 점령하던 시기이다. 션 폴의 댄스홀은 그 시기의 패러다임에 정확히 부합하는 스타일이었다. 이렇게 성공을 맛보다 보니 션 폴은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거나 내공을 쌓기보다는 성공했던 코드를 이용한 자기 복제를 되풀이하며 그간 쌓아올린 이미지를 소모하기 급급했다. 꾸준히 앨범을 발표했지만, 내용이 지루하고, 차트에서 금방 사라지고, 비평가들의 박한 평가가 이어졌던 건 다 이유가 있다. 자연스레 팝 시장에서 밀린 션 폴은 눈을 돌려 유럽에 진출해 활동하고 있다. 물론 스타일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혹여 션 폴이 레게 댄스홀을 바탕으로 시대의 변화에 맞춰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가정은 불필요하지만, 지금처럼 도망치듯 유럽으로 자리를 옮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가정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기에 도리어 우리의 DTD 이론이 의미있다. 션 폴은 DTD의 과학성과 현실성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이다.




지금까지 DTD 형 가수 일곱 명의 이야기를 통해 이론의 실효성을 살펴보았다. DTD 이론이 과학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었음에도 한낱 도시 괴담이나 유행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세간의 비판이 불필요하며 비합리적인 정력 낭비였음을 명백히 입증하는 사례들이다. 물론 일곱 명이라는 숫자는 전체 DTD 보균자의 규모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가깝다. 내 마음 같아서는 DTD DNA가 흐르는 이들을 하나 하나 분석해 완벽한 이론을 성립, 배포하고 싶지만 나는 바쁜 몸이고 여러분은 스압을 싫어하니 이쯤에서 끝내는 게 우리 모두에게 개이득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DTD는 피보다 진하다. 요즘 일진이 너무 사납다 싶으면 가까운 병원에서 혈액형 검사를 받아보길 권한다. A형, B형, O형, AB형 다 좋지만, 그중 제일은 역시 DTD형이다. 다시는 DTD를 무시하지 마라.



글 | Pepno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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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8
  • title: Kanye WestidoBest베스트
    8 1.29 11:44
    글이 너무 난잡해요.
  • title: Kanye Westido
    8 1.29 11:44
    글이 너무 난잡해요.
  • 2.2 10:41
    @ido
    정보도 많지만 필요이상으로 불필요한 말이 많아서 어렵네요 글이ㅠ 그치만 참 유용한 정보네요 들어본 적 있는 가수도 있고ㅋㅋ
  • 1.29 12:24
    잘봤습니다.
  • 1.29 12:27
    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재맛네요 잘읽었습니다
  • 1.29 14:50
    mims
  • title: [회원구입불가]GDB
    1.29 14:51
    Meme
  • title: [회원구입불가]GDB
    1.29 14:51
    DTD를 잊지마
  • 1.29 14:57

    오 개잼꿀잼 허리케인이 어렸었구나. 큐피트가 안쓰러워 보이는건 나뿐인감.

  • 1.29 14:59
    원힛이라고 하기엔 구찌.션폴 은 어느정도 몇번 성공은 했는데..ㅎ
  • 1.29 17:05
    DTD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한참웃엇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1.29 17:48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dtd를 여기서 보다니
  • 1.29 19:22

    Chingy는 정말 데뷔 당시에 남부의 희망이라고 불렸다던데ㅋㅋㅋ

    그리고 This Is Why I'm Hot이라는 역대급 싱글 내놓고 사리진 Mims도 생각나네요.

    그 뒤에 앨범 한 장을 더 발매했던 것 같은데 그것 마저 묻혔죠. (...)

  • 1.29 23:47
    DTD 잼
  • 1.30 00:30
    DTD ....ㅠ
  • 1.30 00:41
    아스날?헤헤
  • 1.30 01:39
    잘 봤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당시는 힙합이 클럽튠으로
    그냥 달리던 때가 아니었나 싶네요

    그래도 2000년대 후반부터 힙스터 문화가 저변을 가지더니,
    인디랑 실력파들이 다시 제패를 한 판국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듯
  • 1.30 03:36
    크리스 크로스중에 한명이 죽었다니 ㅠ
  • 1 1.31 00:52
    사랑해요 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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