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래퍼 혹은 랩 그룹 사이에는 몇몇 단어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은 독특한 이름들이 많았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인 엘엘 쿨 제이(LL Cool J; Ladies Love Cool James)나 런 디엠씨(Run DMC; Rev ‘Run’ and ‘D’arryl ‘M’c’D’aniels), N.W.A(Niggaz With Attitude)부터 시작해 DMX(Dark Man X)나 EPMD(Erick and Parrish Making Dollars), UGK(Underground Kingz), 그리고 우탱클랜(Wu-Tang Clan)의 르자(RZA; Ruler Zig Zag Allah), 즈자(GZA; Genius Zig Zag Allah)도 모두 약자를 활용해 긴 단어를 짧은 글자수에 담아낸 이름들이다. 좀 더 최근으로 오면 에이셉 맙(A$AP Mob; Always Strive And Prosper)이나 빅 크릿(Big K.R.I.T.; King Remembered In Time) 같은 케이스가 있겠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유난히 세 글자의 두문자에 이름을 덧붙이는 형태의 랩 네임을 가진 래퍼들이 속속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세 글자의 두문자는 대체 무슨 의미인지, 그들의 커리어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NBA, NLE, YBN, YNW, 순서는 알파벳 순이다.
NBA YoungBoy
Never Broke Again
NBA 영보이(NBA YoungBoy)의 이름에 쓰인 NBA가 무엇의 약자인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현재는 풀 네임인 영보이 네버 브로크 어게인(YoungBoy Never Broke Again)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다시는 가난하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는 이름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름이 너무 길지 않은가 싶을 텐데, 혹시 모를 미국 프로 농구 리그 NBA(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와의 상표권 분쟁을 피하고자 공식 표기는 약자가 아닌 풀 네임으로 바꿨다고 한다. 실제로 본인도 NBA라는 이름이 농구 리그명과 겹치는 것은 의식하고 있는데, 뮤직비디오 등을 보면 그의 배에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의 덩크 자세로 총을 쏘고 있는 로고와 함께 NBA라는 글자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온갖 범죄에 연루되었지만 월마트에서 산 마이크 하나로 시작해 플래티넘 앨범까지 만들어낸 NBA 영보이. 최근에도 징역을 받는 등 여전히 범죄에서 자유롭지 않은 삶을 보내고 있지만, 부디 이름처럼 다시 가난과 범죄의 시절로 돌아가지는 않기 바란다.
NLE Choppa
No Love Entertainment
날것의 에너지를 담아낸 “Shotta Flow”로 단숨에 이름을 알린 16살의 래퍼 NLE 차퍼(NLE Choppa). 그는 올해 1월 발표한 “Shotta Flow”의 바이럴 이후 블루페이스(Blueface)와의 리믹스 버전, 그리고 “Shotta Flow” 시리즈 2탄, 3탄까지 들어오는 물에 쉼 없이 노를 젓고 있다. 이러한 노질과 함께 비즈니스적으로 대담한 결단들을 보여주는 것도 눈에 띈다. 신인 래퍼가 바이럴을 타자 레이블들이 계약을 제안하더라는 이야기는 특별할 것이 없지만, NLE 차퍼는 여기서 메이저 레이블이 제안한 거액의 계약을 거절한다. 그는 눈앞의 큰돈보다 마스터 음원에 대한 권리를 선택했고, 이런 선택은 그의 커다란 야망 때문이었다. 여기서 드디어 NLE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NLE는 바로 노 러브 엔터테인먼트(No Love Entertainment)의 약자로, 그가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레이블의 이름이다. 그는 레이블의 미래를 위해 자신이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달, 그 야망은 현실이 되었다. 워너 뮤직 그룹(Warner Music Group)과의 파트너십으로 노 러브 엔터테인먼트를 실제 런칭하게 된 것. 야망이 담긴 이름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YBN
Young Boss N*ggaz
최근 몇 년간 크게 주목받고 있는 크루 YBN의 이름은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YBN은 최근 데뷔 앨범 [The Lost Boy]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YBN 콜대(YBN Cordae)와 작년 XXL 프레쉬맨 클래스(XXL Freshman Class)에도 발탁되었던 YBN 나미르(YBN Nahmir), 그리고 YBN 올마이티 제이(YBN Almighty Jay)를 주축으로 한 크루다. YBN의 뜻은 ‘Young Boss N*ggaz’인데, 실제로 가장 형인 YBN 콜대가 1997년생이니 이들이 어리고 잘나간다는 이야기가 거짓말은 아니다. 하지만 YBN의 시작을 생각하면 이 이름이 조금 귀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YBN 나미르를 중심으로 엑스박스 라이브(Xbox Live)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만나게 된 친구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크루를 이루게 됐고, 시작은 당연히 힙합이 아닌 게이밍 크루였다. 이들은 트위치(Twitch)에서 게임 스트리밍을 하거나 유튜브(YouTube)에 게임 영상을 올리는 활동을 했다. 음악 커리어의 시작도 엑스박스 라이브의 그룹 채팅에서 하던 프리스타일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YBN은 정말 누가 봐도 잘나가는 어린 보스들이 되었다.
YNW
Young N***a World
YNW 멜리(YNW Melly)의 활동으로 잘 알려진 YNW 크루의 이름은 ‘Young N***a World’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크루의 대표 멤버인 YNW 멜리는 여러 종류의 범죄로 감옥을 오가는 와중에 그 경험들을 표현한 음악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특히 감성적인 멜로디에 범죄 현장이나 감옥 생활을 눈에 보이듯 담아내는 능력은 칸예 웨스트(Kanye West) 같은 거물까지 그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올해 1월 새 앨범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려는 때, 또다시 범죄 이슈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YNW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더욱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가 같은 크루의 멤버이자 친구였던 YNW 색체이서(YNW Sakchaser)와 YNW 주비(YNW Juvy)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심지어 다른 YNW 멤버들도 사건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물론 그는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을 주장하고 있고, 진상은 현장에 있었던 사람밖에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으로 외치던 '그들의 세상'이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게 됐다. 이번에도 감옥 안에서 릴리즈를 예고한 새 앨범에서는 YNW라는 슬로건이 전과 같이 다가오지는 않을 듯하다.
CREDIT
Editor
soulitude
Y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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