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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의 알앤비: Funkadelic - One Nation Under A Groove(1978)

title: [회원구입불가]LE_Magazine2018.10.01 02:42추천수 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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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해의 알앤비(그.알)>는 류희성 현 재즈피플 기자, 전 힙합엘이 에디터가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장기 연재입니다. 1960년부터 2015년까지, 해당연도에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아티스트와 앨범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알앤비/소울의 역사를 모두 꿰뚫을 수는 없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중반까지, 미국은 이탈의 시대였다. 좋게 말하면 자유로웠고, 현실적으로 말하면 환각 상태에 빠져 주변과 상황을 무책임하게 방관했다. 그게 즐거웠던 건지, 자포자기식으로 현실을 망각하기 위해 더 격렬해졌던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더욱 크게 날뛰며 기성의 것들을 거부했다. 흥미로운 건 젊은이의 자유롭고 일탈적인 음악을 했던 음악가들은 그들의 소비층과 다른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다. 음악에 담긴 정신이나 메시지는 일치했을지 몰라도, 막대한 부를 끌어안고 살았던 스타들의 삶은 관습을 포기하고 살았던 이들의 삶 반대편에 위치했다.

그런 와중에 삶과 정신이 히피적인 사상에 지배당하는 듯한 음악가가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 훵크를 4차원으로 도약시킨 그는 1970년대에도 도드라질 정도로 최상급 '또라이'였다. 외모부터 범상치 않았다. 멤버들도 모두 그랬다. 급기야 개리 시더(Garry Shider)는 기저귀만을 착용하고 기타를 쳤다. 마치 미래 우주의 서아프리카 원주민 같아 보였다. 그들이 지향한 건 흑인적인 것과 기존의 인습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예술적 사조를 제시하는 미래파를 합친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이었다.

자신들의 역사가 미국 남부의 목화밭에서 시작했던 미국의 흑인들에게 조지 클린턴은 판타지와 신화를 선사했다. 그와 밴드는 모든 의미에서 진정한 미래파였다. 무대에는 마더십(Mothership)이라 불리는 우주선이 착륙했다. 이 밴드는 팔러먼트 펑카델릭(Parliament-Funkadelic)이라 통칭됐다. 유사하지만 다른 두 종류의 음악을 다룬 팔러먼트와 펑카델릭은 두 개의 이름을 가진 하나의 밴드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맥박과 우주의 리듬이 같이 뛰어 더욱 강해진다는 ‘온 더 원 철학’(On The One Philosophy)을 신봉했다. 얼마나 제정신이 아니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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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카델릭의 [One Nation Under A Groove]는 제목(하나의 그루브 아래 하나의 국가)부터 온 더 원 철학을 그대로 이행한다. 음반 내지(LP의 경우에는 게이트폴드 안쪽)에는 <스타워즈>를 패러디한 서기전 1984년의 ‘훵크 워즈’에 관한 글이 있다. 이야기는 훵크가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포스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스타워즈>의 세계관에 훵크와 디스코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작명 센스를 더해 당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았다. 또, 내지에는 전라의 여성 일러스트와 주제를 가늠할 수 없는 만화가 함께 담기기도 했다. 음악을 듣지도 않았는데, 펑카델릭과 이 앨범에 관한 정보만으로도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압도당할 지경이다. 이 음악 주변에 자리한 팔러먼트 펑카델릭의 정신과 이야기들이 하나의 일관된 결을 이루지는 않지만, 우주적으로 나아가려는 (제정신이 아닌) 이야기는 어느 정도 통한다.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을 장르로 설명하자면, 사이키델릭 소울과 훵크의 조합이다. 단, 피훵크(P-Funk)라 명명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이는 스타일적으로나 정신적으론 앞서 소개한 것들이 담긴 4차원 훵크를, 정체성적으론 팔러먼트 펑카델릭과 그 멤버들이 선보인 음악을 말한다.


♬ Funkadelic - Who Says a Funk Band Can't Play Rock?!


타이틀곡 “One Nation Under A Groove”가 앨범을 연다. 이어지는 “Groovallegiance”에선 장난스럽게 노래하고 연주하는데, 중후반부에는 이와 상반되는 인상적인 기타와 베이스 연주가 등장한다. 바로 이어서 ‘훵크 밴드는 록을 연주할 수 없다고 누가 그랬어?’라는 제목의 “Who Says A Funk Band Can't Play Rock?!”이 등장함을 암시하는 것만 같다. 사실 펑카델릭은 훵크를 기반으로 했지만, 사이키델릭 록적인 성향도 많이 가진 밴드였다. 이 곡에서 펑카델릭은 자신들이 록과 훵크를 모두 연주할 수 있고, 관객들을 춤추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1971년에 발표했던 [Maggot Brain]의 타이틀곡 “Maggot Brain”은 롤링 스톤(Rolling Stone) 지가 꼽은 ‘100대 기타 명곡’에서 60위를 차지했다. 이 차트가 록 중심의 차트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록적인 성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당시 기타리스트가 개리 시더의 전임자였던 에디 헤이즐(Eddie Hazel)이기는 했다).

전통적인 훵크 사운드를 지향하는 “Cholly (Funk Getting Ready To Roll)”이나 부분적으로 발라드풍 사운드를 도입한 “Into You” 등 다른 스타일인 곡이 있기는 하지만, 앨범 전반에 흐르는 건 사이키델릭한 피훵크 사운드다. 어쩌면 공감하기 어려운 음악일지도 모르겠다. 당시 단순하고 반복적인 구조의 디스코가 유행했던 걸 생각하면 이들의 성공이 더더욱 의아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앨범은 팔러먼트와 펑카델릭을 통틀어 대중적으로 가장 히트한 앨범이었다. 시대의 흐름이나 유행에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의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음악의 승리였다.

훵크는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리듬 혁명을 통해 탄생했고,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에 의해 새로운 결을 지니게 됐다. 펑카델릭 팔러먼트의 정신 상태를 거치며 완전히 새로운 음악으로 탈바꿈했다. 펑카델릭이 흑인음악계에 끼친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의 밴드에서 활동한 연주자들은 음악계의 거물이 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훵크를 퍼뜨렸다. 이 앨범에 참여한 베이시스트 부치 콜린스(William ‘Bootsy’ Collins), 과거 펑카델릭 앨범에 참여했던 색소포니스트 마세오 파커(Maceo Parker)가 대표적이다. 조지 클린턴 본인도 현역 음악가로 활동하며 피훵크 사운드를 전 세계에 쏟아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그의 음악을 듣고 자란 이들은 피훵크를 자신들의 새로운 음악에 담았다. 조지 클린턴의 음악은 힙합 트랙에 수없이 샘플링되며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쉴 새 없이 달려온 조지 클린턴은 2019년에 투어 활동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음악을 좋아한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특이한 개성에 매력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다만, 정지 버튼이 눌렸더라도 그가 만들어 낸 음악은 계속해서 흐를 것이다. 조지 클린턴의 음악으로, 그리고 그 음악을 샘플링한 다른 이의 곡을 통해서 영속될 것이다.


*관련링크
그해의 알앤비 이전 시리즈 보기 1 (1960 ~ 1974) / 보기 2 (1975 ~)



CREDIT

Editor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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