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n Vogue - Rocket
오래전 활동했던 그룹이 다시 복귀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수많은 사례가 이미 말해주듯, '폼은 일시적이나 클라스는 영원하다'는 말이 통하지 않을 때가 음악 업계에서는 생각보다 많다(물론, 시간이 지나도 멋진 사람들도 있다). 엔 보그(En Vogue)는 1992년 발표한 앨범 [Funky Divas]가 3백만 장이라는 판매 기록을 세우며 걸 그룹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남겼다. 여성 알앤비 그룹, 특히 최근 많이 회자되는 1990년대 알앤비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곧 발표할 앨범 [Electric Cafe] 발표 전 마지막 앨범이 2004년에 나왔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고 멤버 교체가 은근히 잦았던 걸 고려하면 과연 부활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엔 보그는 지난해 12월, 그리고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올해 1월에 이미 이러한 우려를 보기 좋게 깼다. 차트 상의 성적도 좋았지만 영상미나 곡의 완성도, 원숙한 보컬으로 해석하여 들려주는 그 특유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사실 앞서 언급한 '클라스'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에는 엔 보그뿐만 아니라 위의 곡을 같이 쓴 사람 중 한 명인 니요(Ne-Yo)도 해당한다. 지난 몇 년의 부진을 이 한 곡으로 완전히 씻어낼 수는 없겠지만, 올해는 자신의 새 앨범도 준비한다고 하니 한 번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bluc
Tobi Lou (Feat. Smino) – Troop
어릴 적, 애니메이션을 너무 좋아해서 VHS 비디오를 매일 빌려 밤늦게까지 혼자 돌려 보던 추억이 있다. 특히, <톰과 제리 : 더 무비>,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같이 애니메이션과 실사가 조합된 비디오를 무척 좋아해서, 지금도 가끔 생각나 관련 영상들을 유튜브로 찾아보곤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토비 루(Tobi Lou)의 “Troop” 뮤직비디오를 보았는데, 비주얼에 완전히 꽂혀 매일 듣고 있다. 뮤직비디오에는 토비 루와 피처링한 스미노(Smino)는 물론, 이들의 귀여운 2D 캐릭터까지 출연해 함께 해롱대는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담겨 있다. 토비 루의 보컬은 랩과 노래를 오가며 여유롭고 자연스럽게 곡과 어우러지는 편이다. 수많은 싱잉-랩 아티스트와는 다르게 달달한 멜로디 메이킹을 구사하는 건 물론, 완급조절도 훌륭한지라 몹시 중독적이다. 프로덕션 역시 미니멀하고도 이쁘장한 신스와 리듬이 반복되어 꽤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밖에도 뮤직비디오에는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곰돌이를 오마주한 3D 캐릭터가 깜짝 출연하니, [Graduation] 시절의 칸예 웨스트를 좋아했던 이라면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잠시 추억에 빠져보길 바란다. – Geda
히피는 집시였다 (Feat. 화지) - 기록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될 수 없다는 말. 그리고 남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말.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딱 거기까지인 말들이었다. 남과 나를 비교하고, 나를 깎아내리며 우울감에 빠져 지냈다. 그래서 “기록”이라는 노래가 더욱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노래 속 가사가 다 내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아니, 정확히는 가사들을 내 상황에 맞게 해석했다. 어쨌거나 가사처럼 빈 잔을 채운 생각이 진작 가득 차버린 지 오래된 것 같았고, 마음속에는 괄호 안 공백처럼 채워야 할 구멍이 나버린 것 같았다. 셉(Sep)의 보컬은 유난히 서글프게 들렸고, 화지(Hwaji)의 랩은 유난히 현실을 더 차갑게 이야기한 듯했다. 그래서 요 며칠 간은 정말 이 노래만 달고 살았던 것 같다. 너무 많이 들어서가 아니라, 이 곡을 처음 들었던 그 감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새벽에라도 듣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 Loner
김간지x하헌진 - 아무 생각 없어 좋겠다
갖은 고민을 안고 산다. 나라고 특별히 더 그런 것도, 덜 그런 것도 아닐 거다. 나는 하는 일의 특성상 오랫동안 어딜 갈 수가 없다. 수년 동안 고대했던 남미로의 휴가를 취소한 것은 그런 현실을 막바지에나마 직시했기 때문일 거다. 취소된 출국일이 다가오자 김간지x하헌진의 [세상에 바라는 게 없네]가 발매됐다. 수록곡 “아무 생각 없어 좋겠다”의 뮤직비디오를 봤다. 베트남에서 촬영했다는 영상이 마음에 들었고, 하헌진의 짧은 기타 솔로 연주도 좋았다. 그 누가 나보다 근심이 적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하루만 아무 일도 없이 겪지 않고 살 수 있다면’이라는 가사는 내게 꽤 가까이 와 닿았다. 이왕이면 하루보단 일주일이면 좋겠다. 그러면 예약해둔 항공권을 취소하는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 류희성
Jennifer Hudson - Just That Type of Girl
몇 년간 한 번도 보지도 않았으면서 막상 버리려고 하니 아까웠던, 책들이야말로 이번에 이사하며 가장 손이 많이 갔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난 그 무수히 쌓인 책들 사이에서 안희정의 저서를 발견했다. '경험한 적 없는 나라'라는 카피, 나는 그동안 무엇을 경험했을까. '그런 여자'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라면 성적 희생도 마다치 않을 거라던 어떤 이의 말, '그런 여자'들이 인제 와서 성폭력을 신고하는 이유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누군가의 말, 그리고 마찬가지로 권력자인 그들의 말에 차마 대놓고 아니라고 하지 못한 채 '하하, 그런가 봐요.'라며 얼버무렸던 나의 말까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것들이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온 것들이었다. 최근 유난히 많이 들은 제니퍼 허드슨(Jennifer Hudson)의 "Just That Type of girl"은 포인트를 잘못 짚고 떠들어대던 그들에게 뒤늦게 외치는 나의 목소리 같았다. 이 노래에서 제니퍼 허드슨의 목소리는 엄숙하고 장엄하다거나, 슬프고 연민에 가득 찼다기보다는 그저 '응, 나 그런 여자야! 그래서 뭐?'라고 하는 듯한 당당한 목소리에 가깝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야말로 내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경험이다. 애초에 우리는 모두 어떤 매개로 성의 이용 여부를 결정 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고 싫음'을 결정할 수 있는 '그런 여자'였다. 변하지 않는 사회에서 겉으로만 죄송해하는 척하고, 겉으로만 피해자를 응원하는 일은 이제 지겹다. 나는 안희정의 책을 버렸다. 제니퍼 허드슨의 소울풀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는 평화로웠다. - Limpossible
Jessie Reyez (Feat. Daniel Caesar) - Figures, a Reprise
보편 대중에게 으레 통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부터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까지, 성대를 긁는 듯한 여성 보컬의 허스키한 보이스도 개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더 가까이는 아이유(IU)나 이하이도 은근히 혹은 대놓고 그런 축에 속한다고 본다. 이것을 하나의 계열로까지 분류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인류가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매력적인 여성에게 특정한 톤의 농염함과 매혹적임을 바라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알앤비 씬이 계속해서 대두되는 캐나다 안에서도 가장 빛나는 이 중 한 명인 제시 레예즈(Jessie Reyez)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목을 옥죄어 내는 소리가 약간의 차별점이긴 하나, 범주를 아주 크게 놓고 보면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포인트는 결국 앞서 언급한 허스키함이다. 이 노래는 지난해 발표된 그의 데뷔 EP [Kiddo]에 수록된 대표곡 "Figures"의 리믹스 버전이다. 제시 레예즈의 창법이 원곡보다 더 오버스럽다 싶은데, 또 다른 캐나다 알앤비 신성 다니엘 시저(Daniel Caesar)의 온순한(?) 목소리가 더해지니 그럭저럭 균형이 맞는다. 제시 레예즈든, 다니엘 시저든, 역시 난 소수보단 다수에게 잘 먹히는 무언가를 적당히 좋아하는 취향이다. - Melo
Diplo (Feat. Desiigner) - Suicidal
디자이너(Desiigner)가 데뷔 프로젝트 [The Life of Desiigner]를 발매하겠다고 호언장담한 지 반년째, 그 패기가 무색하게 이름 있는 아티스트들의 곡에 피처링으로만 잠깐 잠깐씩 얼굴을 비추고 있다. 잘 나가는 힙합 아티스트들과 함께 완성한 디플로(Diplo)의 새 프로젝트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참여한 곡에서는 디자이너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늘상 빠지지 않던 '긍정적 에너지'가 빠져 있다. 비관적인 제목처럼, 여태까지와는 달리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전달하고, 뮤직비디오에서도 미소 한 점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게 조금은 놀랍다. 곡 자체가 그다지 매력 있지도, 눈에 띄게 대중적이지도 않지만,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디자이너의 또 다른 면모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할까. 또, 그 기막힌 추임새를 사용하지 않고도 한 곡을 버젓이 완성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무슨 일을 벌인대도 미워할 수 없는 디자이너의 근황을 궁금해했을 나 같은 팬들을 위해 지면을 빌려 그의 행방을 공유해본다. - snobbi
Blended Babies (Feat. Anderson .Paak, Asher Roth & Donnie Trumpet) - Make It Work
2월에 올라갔던 <Heroes of the State: Ohio>를 위해 유튜브를 디깅하다가 블렌디드 베이비즈(Blended Babies)라는 팀을 알게 됐다. 자신들이 쓴 설명에 의하면 JP와 리치 게인즈(Rich Gains) 두 명으로 활동 중인 팀이라고 한다. JP는 프로듀서 포지션을, 리치 게인즈는 사업가 및 정신적(?) 포지션을 맡고 있다고 한다. ‘무슨 이런 얼렁뚱땅 듀오가 있나’ 싶다가도 그 독특함이 음악에 그대로 묻어나오는 걸 보면 참 흥미롭다. 감성적인 인스트루멘탈 뒤에 갑자기 하드한 힙합 트랙을 배치하는가 하면, 컨트리나 브릿 팝, 소울 할 것 없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섞어 놓는다. 앨범 타이틀도 그만큼 독특하다. 숫자를 나열한 1부터 7까지의 시리즈에 이어, 이번에 선곡한 “Make It Work”가 수록된 EP 이름은 앤더슨 팩(Anderson .Paak)이 참여해서인지 그냥 [The Anderson .Paak]이다. 어린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사탕부터 초콜릿까지 한 바구니에 막 던져 놓은 느낌이다. 정제되어 있지는 않지만 하나씩 까먹는 재미가 있다. 블렌디드 베이비즈라는 팀 이름이 이렇게나 잘 어울린다. – Urban hip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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