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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x힙합 ⑭ Robert Glasper Experiment - Black Radio

title: [회원구입불가]LE_Magazine2018.03.08 18:23추천수 4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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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x힙합'은 재즈 매거진 <월간 재즈피플>과 <힙합엘이>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기획 연재입니다. 본 기사는 <월간 재즈피플> 2018년 3월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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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뮤지션이 되다

어머니의 존재감은 부정하기 어렵다. 재즈/블루스 가수였던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의 어머니는 어린 그를 클럽에 데리고 갔다. 그는 어머니가 노래를 마칠 때까지 곁에서 지켜봤다. 주말이면 침례 교회에서 역동적인 음악을 접했다. 재즈와 블루스, 가스펠이라는 흑인음악의 토대는 그렇게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축적됐다. 예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의 뉴스쿨에 진학해 재즈를 공부하는 등 로버트 글래스퍼는 음악가로는 지극히 정상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곳에서 그는 마음에 맞는 친구를 사귀었다. 이름은 빌랄 세이드 올리버(Bilal Sayeed Oliver), 훗날 네오소울 가수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는 빌랄(Bilal)이다.

흑인음악을 했던 빌랄과 어울렸던 로버트 글래스퍼는 자연스럽게 힙합/알앤비 음악가들을 많이 접할 기회를 얻었다. 훗날 여러 합작을 이끌어 낸 인맥은 이때부터 만들어졌다. 어린 시절부터 폭넓은 영역의 음악을 탐닉했지만, 로버트 글래스퍼가 하고자 했던 것은 재즈였다. 그가 뉴스쿨에 진학한 이유도, 뉴욕으로 옮겨온 이유도 모두 재즈에 있었다. 그는 잼세션에 줄곧 참가했으며, 기타리스트 러셀 말론(Russell Malone), 마크 휘트필드(Mark Whitfield), 색소포니스트 마커스 스트릭랜드(Marcus Strickland), 베이시스트 크리스찬 맥브라이드(Christian McBride) 등 젊은 스타 연주자들의 밴드에서 연주를 하며 경험과 경력을 쌓았다. 처음 자신을 드러낸 건 2004년 발표한 데뷔 앨범 [Mood]를 통해서였다. 피아노-베이스-드럼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피아노 트리오 작품이었다. 특별히 기술적이거나 기교적인 연주를 내세우기보다는 앨범의 제목처럼 분위기(Mood)를 형성하는 데 주력했다. 기존의 곡과 자신의 자작곡을 조합했는데, 앨범을 여는 건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의 명곡 "Maiden Voyage"다. 친구 빌랄이 음성을 더해 신비로운 느낌을 더했다. 이 시기에 등장한 치열한 재즈 앨범들에 비하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이겠지만, [Mood]는 로버트 글래스퍼가 지닌 우아한 사운드 메이킹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테크닉과 감수성을 모두 겸비한 신인에게 손을 내민 것은 블루노트 레코드(Blue Note Records)였다. 2005년 [Canvas], 2007년 [In My Element], 2009년 [Double-Booked]을 발표했다. 뉴욕의 재즈라 해도 무방할 포스트밥 사운드를 내세웠지만, 그만의 멜로디컬한 감수성은 늘 앨범 구석구석에 담겼다. 자신의 자작곡 위주로 앨범을 꾸리면서도 스탠다드 곡과 팝송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리고 앨범에는 늘 허비 행콕의 곡이 하나씩 자리했다. 전통과 혁신을 모두 겸비한 피아니스트인 허비 행콕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가 아닐까. 실제로 2015년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공연했던 로버트 글래스퍼는 허비 행콕의 무대가 시작되자 객석으로 나와 그의 공연을 뚫어질 듯 보고, 환호했다. 테크닉으로 보나, 전반적인 사운드로 보나 로버트 글래스퍼가 선보였던 무대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영웅에 큰 존경심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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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페리먼트를 이끌다

로버트 글래스퍼는 새로운 밴드를 꾸렸다. 이름은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Robert Glasper Experiment). 보코더리스트이자 색소포니스트 케이시 벤자민(Casey Benjamin), 베이시스트 데릭 호지(Derrick Hodge), 드러머 크리스 데이브(Chris Dave)가 포함된 쿼텟 편성이었다. 앨범 [Double-Booked]를 함께한 멤버였던 이들은 익스페리먼트라는 이름을 달고 나서부터는 퓨전적인 색깔을 더 강하게 드러냈다. 그 결과물이 바로 2012년 발표한 [Black Radio]였다.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Letter To Hermione", 너바나(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 샤데이(Sade)의 "Cherish The Day", 민트 컨디션(Mint Condition)의 "Why Do We Try"가 수록됐다. 스탠다드 곡인 "Afro Blue"도 담겼다(아이튠즈 보너스 트랙에는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A Love Supreme"도 수록됐다). 나머지는 로버트 글래스퍼의 자작곡이었다. 중요한 건 수록곡이 아니었다. 래퍼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 야신 베이(Yasiin Bey), 알앤비/네오소울 가수 빌랄, 레디시(Ledisi), 뮤지끄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 크리셋 미셸(Chrisette Michele), 킹(KING) 등이 앨범에 객원 연주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과 함께 로버트 글래스퍼는 전체적인 사운드를 흑인음악 쪽으로 끌고 가려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연주 위에 보컬을 녹음한 게 아니라, 연주자와 래퍼/싱어 모두가 동시에 녹음에 참여하며 서로에게서 시너지 효과를 끌어냈다.



♬ Robert Glasper Experiment (Feat. Musiq Soulchild & Chrisette Michele) - Ah Yeah


DJ를 동원해 힙합적인 요소를 더하기도 했으나, 실질적으로 사운드를 만든 건 밴드 멤버였다. 데릭 호지와 크리스 데이브는 규칙적이고 묵직한 리듬 라인을 형성했고, 케이시 벤자민은 보코더를 활용해 마치 보컬 샘플을 사용한 듯한 느낌을 끌어냈다. 로버트 글래스퍼는 피아노와 펜더 로즈, 신디사이저 등 다양한 건반을 사용했지만, 익스페리먼트의 사운드를 끌어낸 건 그의 연주가 아닌 프로덕션이었다. 적절한 사운드와 객원 음악가 운용을 통해 자신이 구상했던 재즈와 흑인음악의 접목을 매끈하게 구현했다. 덕분에 로버트 글래스퍼의 [Black Radio]는 허비 행콕의 [Head Hunters]를 보는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혁신적이라는 점도 겹치지만, 무엇보다도 이전까지의 시대를 종결하고 자신의 새로운 시대를 개막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랬다. 이 앨범을 통해 로버트 글래스퍼가 재즈를 가뿐히 뛰어넘고 음악계 스타가 된 것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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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의 로버트 글래스퍼

이어서 로버트 글래스퍼는 리믹스 EP인 [Black Radio Recovered: The Remix EP]를 발표했다. [Black Radio]의 수록곡을 퀘스트러브(?uestlove), 피트 락(Pete Rock) 등의 프로듀서들에게 리믹스를 맡긴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알앤비의 색깔이 더 강했던 [Black Radio]에 비해 힙합적인 질감이 더해졌다. 이듬해에는 후속작인 [Black Radio 2]를 내놓았다. [Black Radio]에서 추구했던 전략을 그대로 고수했다. 이번에는 커버곡의 수를 줄이고, 자신의 곡을 늘렸다. 힙합/알앤비 음악가들과의 협업이 늘어났고, 재즈 마니아들 사이에서나 알려졌던 로버트 글래스퍼란 이름은 음악을 조금 듣는 사람에겐 익숙한 이름이 됐다.

급기야 2013년 개최된 제55회 그래미 어워드(The 55th Annual Grammy Awards)에선 최우수 알앤비 앨범과 최우수 알앤비 퍼포먼스 부문에 후보에 올라 최우수 알앤비 앨범 부문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해 그래미 어워드에서 알앤비 앨범 부문이 어반 컨템포러리와 알앤비 두 부문으로 분리가 되었던 점이 유효했다.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 미겔(Miguel), 프랭크 오션(Frank Ocean) 같은 대세 음악가들은 최우수 어반 컨템포러리 앨범 부문에 이름을 올렸고, 최우수 알앤비 앨범 부문에는 시쳇말로 한물간 알앤비 가수들이 포함돼 경쟁이 루즈하긴 했다. 2015년 개최된 제57회 그래미 어워드((The 57th Annual Grammy Awards)에서도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는 두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시상식 전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사회자는 로버트 글래스퍼에게 수상을 확신하냐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보통은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하는데요.'라고 재차 묻자 로버트 글래스퍼는 답했다. '사실, 그렇게 말하는 게 맞기는 하죠. 그런데 능력으로 보면 저희가 받아야 해요.' 그리고 그의 자신감은 현실이 됐다. 그해 최우수 트래디셔널 알앤비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했다. 이번에도 경쟁작이 빈약하긴 했지만, 로버트 글래스퍼가 수상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음악적 완성도와 독보적인 색깔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쿠스틱 트리오 편성으로 [Covered]라는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으니 마냥 힙합/알앤비의 영역에서만 머문 건 아니었다. 물론, 지향점은 이미 재즈에 머물지 않고 있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샘플링을 통해 만든 [Everything’s Beautiful]을 발표했다. 이어서 발표한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의 2016년 앨범 [ArtScience]는 전반적인 스타일에서 [Black Radio]와 유사하나, 객원 음악가의 이름값이나 음성을 빌리지 않고 자신들의 힘만으로 완성했다.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가 주는 신선함과 콜라보레이션의 묘미가 자극하는 호기심이 적어져 자연스럽게 관심도는 낮아졌으나,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이 어떤 것인지는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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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나아가는 음악가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의 멤버들은 끝없이 나아갔다. 밴드에서 탈퇴한 드러머 크리스 데이브는 디안젤로(D’Angelo), 앤더슨 팍(Anderson Paak),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 등 스타들의 작품에 참여하고, 자신의 밴드 크리스 데이브 앤 더 드럼헤즈(Chris Dave And The Drumhedz)라는 밴드를 꾸려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그가 발표한 셀프타이틀 앨범 [Chris Dave And The Drumhedz]은 월간 <재즈피플> 3월호에 리뷰로도 소개됐으니 읽어볼 것을 권한다.

로버트 글래스퍼도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데릭 호지, 테라스 마틴(Terrace Martin), 테일러 맥퍼린(Taylor McFerrin), 저스틴 타이슨(Justin Tyson), 크리스찬 스콧(Christian Scott) 등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R+R=NOW라는 프로젝트 팀을 꾸렸다. 힙합과 재즈, 알앤비, 레게, 전자음악를 비롯한 여러 음악을 통해 자신들이 바라보는 다양한 것들을 보여줄 거라 밝혔었다. 뿐만아니라 래퍼 커먼(Common), 드러머 카림 리긴스(Karriem Riggins)와도 어거스트 그린(August Greene)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알다시피 커먼은 재즈를 활용한 다양한 음악을 구현한 래퍼이고, 카림 리긴스는 재즈로 시작했지만, 다양한 샘플을 활용해 힙합 사운드를 구현해내는 드러머다. 사용하는 악기와 시작점은 다르지만 공통된 관심사로 하나가 된 것이다.



♬ OPTIMISTIC (Feat. Brandy) - August Greene


이런 다양한 시도가 단순한 실험(Experiment)에서 끝나지 않고 만족감을 주는 건 빼어난 실력과 확고한 음악관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로버트 글래스퍼가 보는 음악 세계는 오늘도 확장되고 있다.


글 |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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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3.8 22:01
    사랑해요~
  • 3.9 20:28
    좋은글이네요.
    제가 존경하는 뮤지션ㅇ의 내용이군요.ㅋ 신진 블루노트를 이끄는 뮤지션중에 하나이고 힙합, 알앤비를 이어주는 멋진 뮤지션이라 생각합니다.^^
  • 3.11 00:34
    최고
  • 3.13 15:25
    로버트 글래스퍼 존나 쩌는데 그거랑 별개로 아... 초장부터 어릴때부터 블루스 가스펠 접했다는 내용 나오는데 존나 부럽다. 코드가 뭔지 스케일이 뭔지 그런 개념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 시절부터 저런 음악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자라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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