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엘이(HiphopLE)의 매거진팀은 격주로 일요일마다 오프라인 회의를 한다. 회의에서는 개인 기사에 관해 피드백하며, 중·장기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체크하기도 한다. 열띤 논의 끝에 회의를 마무리할 시점이 오면 그때부터는 특별하다면 특별한 시간을 갖는다. 지난 2주간 에디터 개인이 인상 깊게 들었고, 다른 팀 멤버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노래를 소개하고, 하나씩 감상한다. 처음에는 그저 각자의 취향을 공유해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했던 이 작은 습관은 실제로 서로 극명하게 다른 음악적 성향을 알아가며 조금씩 외연을 확장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래서 우리들의 취향을 더 많은 이와 공유하기 위해 <2주의 선곡>이라는 이름의 연재 시리즈로 이를 소화하기로 했다. 가끔은 힙합/알앤비의 범주 그 바깥의 재즈, 훵크 등의 흑인음악이 선정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조차도 아닌 아예 다른 장르의 음악이 선정될 수도 있다. 어쨌든 선정의 변이라 할 만한 그 나름의 이유는 있으니 함께 즐겨주길 바란다. 네 명의 새로운 에디터가 합류한 3월의 첫 번째 매거진팀 회의에서 선정된 열 개의 노래를 소개한다.
Dougie F - Pills & Butterflies
한국에서는 조금 독특한 이유로 이름을 알린 더기 에프(Dougie F)가 새 앨범 [In Your Feelings]를 발표했다. 늘 그렇듯 더기 에프의 음악은 어딘가 몽환적이고 흐느적거리는 느낌을 주지만, 마냥 가볍고 이상하다고 여기기에는 자신만의 느낌이 있다. 사실 더기 에프보다는 이 곡을 만든 주니어쉐프(Juniorchef)에 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주니어쉐프는 세계적으로 히트한 “it g ma”의 프로듀서이며, 지금까지 박재범(Jay Park)과 도끼(Dok2)를 비롯한 여러 래퍼와 작업했다. 최근에는 마쉬멜로우(Marshmello)와 작업하였으며, 코오(KOHH)와 함께 만든 곡은 의류 브랜드이자 음악 큐레이션을 하는 키츠네(Kitsune)의 컴필레이션에 수록되기도 했다. 아직 더 알려지진 않았지만, 주니어쉐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해외에서 많은 러브콜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는 그를 원 히트 원더 프로듀서 정도로만 생각했겠지만, 주니어쉐프는 트랩 외에도 EDM 스타일의 곡을 만들기도 하며 아시아의 여러 래퍼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앞으로의 주니어쉐프를 크게 기대하는 중이다. - bluc
Janelle Monae - Make Me Feel
자넬 모네(Janelle Monae)가 돌아왔다.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던 새 음악이다. 그는 2집 [The Electric Lady] 이후, 자신의 레이블 원다랜드(Wondaland)를 차리고 지데나(Jidenna)와 같은 신진들을 배출함은 물론, 영화 <문라이트(Moonlight)>,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에 출연해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었다. 이러한 자넬 모네의 행보는 그가 단순히 뮤지션뿐만 아니라,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었다. 동시에 그는 작품 속에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을 활용해 성 정체성을 모호하게 표현하곤 해, 양성애자가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을 받기도 했었다. 그는 “Make Me Feel”의 뮤직비디오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 의혹에 답한다.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는 여배우 테사 톰슨(Tessa Thompson)은 양성애자이며, 자넬 모네의 애인이라는 설이 있다. 이처럼 자넬 모네는 음악뿐만이 아니라 비주얼을 통해, 세상의 시선에 명쾌하고도 통쾌하게 답변한다. 또한, 팔세토를 선보이며 관능미를 뿜어대 마치 프린스(Prince)의 그것을 연상케도 한다. 실제로 프린스가 곡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는데, 그 덕분에 기타 리프와 신디사이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곡 전반에 훵키함이 가득하다. 자신을 둘러싼 말, 말, 말들을 맞받아치는 자넬 모네만의 방식을 확인해보시길. – Geda
Post Malone (Feat. Ty Dolla $ign) - Psycho
“Congratulations”, “Rockstar” 등 연달아 히트 트랙을 발표하며 차트 장기 집권의 대표 주자가 된 래퍼, 포스트 말론(Post Malone). 재작년 발표한 [Stoney] 이후, 많은 이들이 다음 앨범을 기대했지만 들려온 말은 아쉽게도 앨범 연기였다. 보통 딜레이 소식은 해당 아티스트에게 비난 혹은 부담감으로 돌아오건만, 포스트 말론에게는 예외인가 보다. 최근 발표한 싱글 “Psycho”는 그의 장기가 잘 드러난 트랙으로, 새 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오히려 증폭시켰다. 그는 성공한 자신을 이야기한다. “Rockstar”에서처럼 퇴폐적인 무드 속에서 이전 세대의 스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을 언급한다. 또한, 자신의 부를 이야기하는 특정 가사들은 마치 “Broken Whiskey Glass” 때의 포스트 말론을 떠올리게 한다. 나른한 분위기를 뿜어내면서도 간간이 음을 확 올리는 보컬은 여전히 유효하며, 언뜻 “I Fall Apart”를 떠올리게끔 한다. 그렇기에 이번 싱글은 마치 완전히 다른 뮤지션의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이전 곡들에서 보여줬던 여러 장점을 잘 버무린 듯한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반복감에서 오는 지루함을 덜어주는 타이 달라 사인(Ty Dolla $ign)의 끈적한 보이스와 가사는 덤. 이제는 포스트 말론의 앨범을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 듯하다. - Loner
문 - Kiss Me
재즈 팝 그룹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사랑을 받아온 윈터플레이(Winterplay)의 보컬리스트 혜원. 2016년 그룹에서 독립한 후 그가 택한 새로운 이름은 문(Moon)이다. 이 이름으로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재즈 스탠다드 곡과 팝송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한 솔로 데뷔 앨범 [Kiss Me]를 발표할 예정이다. 선공개한 싱글이자 타이틀곡 “Kiss Me”는 팝 그룹 식스펜스 넌 더 리퍼(Sixpence None The Richer)의 곡이다. 문은 이 노래를 일본 재즈 연주자들과 함께 말랑말랑하고 그루비한 재즈 스타일로 편곡했다. 이번 앨범은 재즈 명가인 버브 레코드(Verve Records)에서 발매되어 국내에 수입되는 작품으로, 많은 재즈 마니아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팝적인 성향과 재즈 보컬리스트의 정체성을 동시에 담아낸 작품이다. – 류희성
Joyner Lucas & Chris Brown - Stranger Things
당신이 이 곡을 듣기 전에 이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스트레인저 띵스(Stranger Things, 한국명: 기묘한 이야기)>를 미리 봤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노래를 틀자마자 ‘어,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이 랩하네?’가 아닌 '어, 이거 넷플릭스의 <스트레인저 띵스>…’라고 할 것이다. 크리스 브라운과 조이너 루카스(Joyner Lucas)의 첫 콜라보 트랙인 이 곡은 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동명의 SF 호러 미스터리 드라마의 오프닝을 샘플링한 전주로 시작된다. 하지만 실제 드라마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가사는 그저 ‘나는 잘 나가는 래퍼고 너는 내 클래스 바깥의 루저’ 같은 이야기뿐이다. 이미 많은 래퍼들이 사골국처럼 우려먹은 이 소재를 뮤직비디오에서 손에 비싼 술을 들고 클럽 언니들을 낀 채로 보여주었으면 굳이 선곡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뮤직비디오에서 불량 청소년, 아니 불량 청소부다. '파티가 일어나고 있어요’라며 신고하는 주민이 가리키는 트럭은 그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가늠이 안 될 만큼 좌우로 신나게 흔들린다. 트럭 안에서 일어나는 이들의 기묘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더불어 간만에 함에도 촘촘한 랩으로 긴장감을 놓지 않은 크리스 브라운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당장 위의 자막 뮤직비디오 버전으로 체크해보자. - Limpossible
영화 <블랙 팬서>를 기대했던 흑인음악 리스너라면, 동명의 OST 앨범에 참여한 이들을 보고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를 선두로 참여한 TDE 엔터테인먼트(TDE Entertainment)의 아티스트들, 그 외 여럿 굵직한 이름들이 반갑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중 앨범 한가운데에 위치한 트랙 “Paramedic!”의 아티스트 칸엔 유독 낯선 이름이 적혀 있다. ’SOB x RBE’라니, 도무지 한 번만 봐서는 외우기 힘든 알파벳들의 조합이었지만, 곡은 한 번만 듣고도 확 꽂혀 버릴 정도로 인상이 꽤나 강렬했다. 몇 주가 지나,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타이밍 좋게 그들의 소포모어 앨범이 발표되었다. 앨범은 자신들이 알려질 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즐길 거리로 꽉 차 있다. 특히, 두 번째 트랙 "On Me"는 멤버 각자가 서로 다른 톤과 개성을 버무려가며 박자를 타는 듯 안 타는 듯, 신경 쓰는 듯 안 쓰는 듯 뱉는 랩으로 오랜만에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말랑말랑하고 통통 튀는 사운드가 주목받고 지지받는 요즘, 해장국 국물처럼 진한 힙합 신보가 그리웠다면, 이 곡을 시작으로 이들의 앨범 [Gangin]을 쭉 돌려 보는 건 어떨까? - snobbi
6ix9ine (Feat. Fetty Wap, A Boogie wit da Hoodie) - KEKE
앨범 [DAY69]이 나오기까지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다. 샤우팅 랩으로 처음 사운드클라우드 씬에 등장한 이후, 무지개 색깔 머리 탓에 각종 밈으로 소비된 식스나인(6ix9ine). 중독적인 음악으로 팬덤을 넓혀가는가 싶더니 곧바로 미성년자 추행 사건이 들춰지고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에 굴하지 않고 싱글 “KEKE”를 공개하며 다시 인기를 얻나 싶었지만, 서부의 OG 래퍼들과 때아닌 ‘갱스터 논쟁’을 벌이며 여러 사건에 연루됐다. 외모, 음악 스타일에 어울리는 행보를 보여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식스나인 입장에서는 그리 좋을 것 없는 행보였다. 겉으론 티를 안 냈어도 혼자서는 나름대로 마음고생 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식스나인의 팬인 입장에서, 큰 사건에 휘둘리지 않고 무사히 앨범을 발매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이번 앨범이 맘에 든다는 건 아니다. – Urban Hippie
예서 – 춤
아주 사적이지만 그래서 더 친밀함이 느껴지는 음악. 예서(YESEO)는 본인의 음악을 이렇게 소개한 적이 있다. “춤”은 살결에 닿는 연인의 숨결이 좋지만, 장난 같은 것들로 마음을 숨기는 소녀스러움을 담은 노래다. 동시에 솔직한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음악에 담아내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자신의 말을 그대로 지키고 보여준 또 하나의 결과물이다. <KHA 2018>과 <제15회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던 예서는 그렇게 수상 결과와 무관하게 여전히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처음부터 혼자 힘으로 씬에서 입지를 다져온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두 어워드에 노미네이트되었을 때는 이제야 인정을 받고 빛을 보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성대 결절과 복합적인 건강상의 문제로 휴식기를 예고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네이버 뮤지션리그와 사운드클라우드에 업로드했던 곡들을 챙겨 들으며 관심을 가져온 이들은 모두 그랬을 것이다. 이 곡을 들으며 그녀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고, 예서만의 새로운 감성과 표현을 차분히 기다려보자. - 7HEJANE
Rae Sremmurd (Feat. Juicy J) - Powerglide
동네마다 오락실이 있었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그곳에는 항상 오락실 사장 아저씨가 있었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 사장님은 지긋하신 연세로 화려한 기술은 없지만 분명히 고수였다. 철권 꽤나 한다는 형들이라도 사장님이 동전이라도 하나 넣는 날에는 조이스틱을 쥔 손에 힘을 주곤 했다. 트랩 씬을 훑다 보면 심심찮게 나오는 이름인 쥬시 제이(Juicy J)를 보면 그 시절 오락실 사장님이 떠오른다. 화려한 랩스킬은 없지만, 정박마다 박히는 찰진 라임은 그를 트랩 오락실 속 무시할 수 없는 강자로 만든다. 에이셉 라키(A$AP Rocky), 스모크펄프(Smokepurpp) 등 트랩 씬에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면 쥬시 제이는 슬며시 나타나 동전을 넣고는 소위 오락실 용어로 '연결'을 한다. 피처링 벌스에서 그만의 단조로운 라임으로 정박을 깎기 시작하면 상대는 어떤 신선한 느낌으로 자신을 보여줄지 고민하며 진땀을 빼게 된다. 새롭게 발매된 레 스레머드(Rae Sremmurd)의 곡 "Powerglide"에서는 레 스레머드 형제가 쥬시 제이와 한판 대결을 펼친다. 날고 기는 형제와 여전히 담담한 톤의 쥬시 제이의 대조가 인상적이다. 마이크 윌 메이드 잇(Mike WiLL Made-It)의 안정적인 프로듀싱을 무대로 하는 "Powerglide"에서 조만간 공개될 레 스레머드의 새 앨범 [SR3MM]의 모습을 슬쩍 읽어보자. – Kimioman
글 | 힙합엘이 매거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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