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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힙합엘이가 선정한 1990년대 해외 힙합 앨범 100선 Part Ⅰ

title: [회원구입불가]LE_Magazine2017.12.14 03:09추천수 4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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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스(Bugs)와 힙합엘이(HiphopLE)가 선정하는 해외 앨범 시리즈. 올해는 350장의 앨범을 통해 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해외 알앤비를 다루었다. 이번 편에서는 그에 이어 1990년대의 해외 힙합 앨범 100장을 꼽아봤다. 힙합 음악은 90년대를 기점으로 미국 대중음악의 중심에 서 있게 된다. 이 시기에는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추앙을 받는 랩스타들이 등장해 걸작들을 발표했었다. 또한, 지역에 따라 독특한 음악색을 자랑하는 뮤지션들이 등장해 서로 대립 구도를 세우면서 많은 대중의 관심과 주목을 이끌었었다. 그중에는 고착화되던 힙합 음악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며 각광받은 이들 또한 있었다. 골든 에라(Golden Era)라 부르며, 90년대를 힙합의 황금기라고 표현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이번 리스트를 통해 골든 에라를 추억하는 이들이라면 다시 한번 그 시절의 감흥을 느끼길 바라고, 이 시대의 음악이 생소한 이들이라면 당시 얼마나 다양한 음악들과 아티스트들이 공존했는지를 알 수 있기를 바란다.

* 본 글은 벅스 뮤직 포커스 란에 <힙합엘이 선정, 1990년대 해외 힙합 명반 100선 #1 >(링크)라는 제목의 글로 게재되었습니다. 벅스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앨범은 부득이하게 선정하지 못하였으며, 순서는 발매 연월일 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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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Hammer - Please Hammer, Please Don’t Hurt ‘Em (1990.02.12)

MC 해머(MC Hammer)는 독보적이었다. 시간이 지나서 싸이(Psy) 덕분에 다시 얼굴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그 전부터 MC 해머는 굉장한 선풍이었고, 처음으로 랩을 하는 팝 스타였다. 비록 당시에는 대부분 랩이 하드코어에 가까웠고, 댄서블한 음악보다는 브레이크비트에 랩 하는 것이 더욱 멋있다고 여겨지는 시기였다. 하지만 MC 해머의 앨범 [Please Hammer, Please Don’t Hurt ‘Em]은 천만 장이 팔렸고, 그 유명한 ‘Hammertime’이라는 시그니처도 “U Can’t Touch This”라는 곡에서 나왔다. 물론, MC 해머는 이 앨범 외에도 크리스천 랩을 하기도 했고, 디스전도 있었고, “Too Legit to Quit”이라는 히트 싱글로 인기를 유지하기도 했다.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기도 했고, 서부 래퍼로서의 정체성도 조금 있었지만, “U Can’t Touch This”에서 선보인 댄스와 흥겨움은 결국 MC 해머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전설이 되었다. 힙합, 뉴잭스윙 등이 섞인, 팝 랩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앨범. - bl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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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N-Pepa - Blacks’ Magic (1990.03.19)

솔트 앤 페파(Salt-N-Pepa)는 역사상 최초의 여성 랩 그룹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뛰어난 작품성과 더불어 여성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만하다. 그들은 여성이 대상화되고 부정적으로 보이던 힙합 문화에서 하나의 주체로서 목소리를 냈고, 심지어 상업적인 측면과 평가의 측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며 동시에 멋지기까지 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오히려 솔트 앤 페파 이후로 크게 줄어들어 아쉬울 뿐이다. 이들은 198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며, [Blacks’ Magic]은 앞서 말한 대로 흥행과 평가 양쪽 모두를 잡는 데 성공한 그들의 세 번째 앨범이다. 싱글로 발표한 “Let’s Talk About Sex”뿐만 아니라 “Do You Want Me” 등 여러 곡에서 그들은 여성이 주체라는 점을 직관적이고 명쾌하게 풀어냈다. 솔트 앤 페파는 이후 네 번째 앨범 [Very Necessary]에서 “Shoop”이라는 어마어마한 히트곡을 발표하였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 잠시 해체하기도 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에 들어선 기점까지는 다시 여러 페스티벌에서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다. - bl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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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Underground - Sex Packets (1990.03.26)

디지탈 언더그라운드(Digital Underground)는 리더 샥 지(Shock G)를 중심으로 한 얼터너티브 힙합 그룹이다. 힙합 팬들에게는 투팍(2Pac)이 잠시 몸담았던 그룹으로도 유명하다. 이들의 데뷔작은 타이틀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섹스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다만, 가상현실이라는 컨셉을 잡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허구의 콘테스트를 소재로 한 “Gutfest ‘89 (Edit)”와 섹스 패키지 여행 거래에 관한 “Packet Man”이 대표적이다. 또한, 이들은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의 자산인 피훵크(P-Funk) 샘플을 가져와 앨범의 프로덕션을 구축하였다. 팔리아먼트(Parliament)의 곡을 토대로 만들어진 “Humpty Dance”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앨범에는 다소 저질스럽지만, 유쾌한 가사들이 댄서블한 사운드와 함께 어우러져 있어 단 한 순간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만든다. 한 번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하면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 G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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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 T - O.G. Original Gangster (1991.05.14)

아이스 티(Ice T)는 갱스터 랩의 기틀을 정립한 인물이다. 그는 소설가 아이스버그 슬림(Iceberg Slim)의 책에서 영감을 얻어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통찰하는 가사를 자신의 작품에 담아냈다. 그런 그의 대표작이자 갱스터 랩 명반인 [O.G. Original Gangster]는 거리의 삶과 당대의 현실을 가감 없이 풀어낸다. 아이스 티는 작품에서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토대로 흑인 빈민층의 삶과 그 원인을 분석하며 해결책까지 제시한다. 이런 아이스 티의 리리시스트적 측면은 이후 등장하는 투팍(2Pac),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등 많은 래퍼에게 영향을 끼친다. 또한, 진중한 이야기들이 록 사운드와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는 점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아이스 티는 이전부터 메탈 밴드를 자신의 앨범에 참여시키며, 메탈과 힙합 음악의 융화를 시도한 바 있다. 이런 그의 음악적 시도는 메탈 뮤지션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후대에 뉴 메탈 음악이 등장하는 발판이 된다. - G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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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 Cube - AmeriKKKa”s Most Wanted (1990.05.16)

1989년, 서부 힙합 그룹 N.W.A.의 중심축이었던 아이스 큐브(Ice Cube)가 그룹에서 탈퇴했다. 매니저 제리 헬러(Jerry Heller)가 제시한 계약조건이 불공정했는데, 급기야 그룹의 리더 이지-이(Eazy-E)마저도 매니저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룹에서 탈퇴한 직후 아이스 큐브는 바로 앨범 작업을 마음먹었다. N.W.A.의 멤버이자 프로듀서 닥터 드레(Dr. Dre)가 도움을 주고자 했지만, 제리 헬러가 훼방을 놓아 좌절됐다. 결국, 그는 동부의 뉴욕으로 갔다. 힙합 그룹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프로덕션 그룹 밤 스쿼드(The Bomb Squad)의 도움을 받았다. 인기 방송 <America’s Most Wanted>에 백인우월주의 집단인 KKK단의 이름을 합성해 앨범 제목을 만들었다. 뉴욕에서 작업했지만, 그의 음악적 뿌리인 갱스터 랩을 고수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흑인들이 마주하는 인종차별, 폭력, 약물, 경제적 문제들을 다루었다. 타이틀곡 “AmeriKKKa’s Most Wanted”으로 랩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알렸다. 자신이 N.W.A.를 이끌었던 주역이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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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 Cool J - Mama Said Knock You Out (1990.08.28)

엘엘 쿨 제이(LL Cool J)는 80년대부터 00년대까지 오랜 시간 래퍼로서 수명을 유지했다. 그는 브레이크비트에 하드코어한 랩을 하여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상업적인 노선을 겨냥한 이른바 팝 랩에 있어서 가장 선구자이기도 하다. 커리어 초기부터 후기까지 달달한 발라드 넘버에 로맨틱한 랩을 끼얹어서 성공을 거둔 곡이 꾸준히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에 발표한 [Mama Said Knock You Out]은 제목 자체가 힙합 문화 내에서 관용구로 쓰일 만큼 인지도와 명성을 지닌 작품이다. 특히 동명의 곡인 “Mama Said Knock You Out”과 같은 곡에서는 힘이 느껴지는 80년대의 올드 스쿨 스타일을 느낄 수 있기도 하다. 여성들이 사랑하는 쿨한 제이(Lady Loves Cool J)라는 다소 시시한 뜻의 이름이지만, 엘엘 쿨 제이는 힙합계의 대부 말리 말(Marley Marl)과 함께 전설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80년대에도 큰 사랑을 받았던 엘엘 쿨 제이지만 그의 전성기는 00년까지 진행된다. - bl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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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Quik – Quik Is the Name (1991.01.15)

2012년 BET 힙합 어워즈(BET Hip Hop Awards), 웨스트 코스트의 상징적인 아티스트들이 싸이퍼로 모였었다. 그중에는 5분 내내 펜과 손을 두들겨가며 비트를 따라가던 DJ 퀵(DJ Quik)도 있었다. 뭐 하는 건가 싶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이 싸이퍼에서 그랬듯 서부 힙합 안에서도 늘 자신만의 멋을 추구해왔다. 데뷔작 [Quik Is the Name] 때부터 일찌감치 그랬다. DJ 퀵은 이 앨범에서 7, 80년대 소울/훵크 샘플을 재료 삼아 비교적 가볍고 신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당시 같은 계열의 래퍼들이 그랬듯 갱스터리즘에 기반을 둔 짙고 무거운 사운드나 험악하고 공격적인 가사는 없다. 유달리 독보적인 랩 스타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파티 뮤직에 가깝게 가벼운 내용과 훵키한 프로덕션을 일정한 톤에 맞춰 조합해낸다. 이는 동부 스타일의 올드스쿨 힙합과도, 닥터 드레로 대변되는 지훵크와도, N.W.A. 식의 앞서 언급한 갱스터 랩과도 구분되는 DJ 퀵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더욱 놀라운 건 첫 개인 작품임에도 그가 전곡 셀프 프로듀싱하며 모든 샘플, 악기를 유려하게 조율해냈다는 점이다. 비록 이후 음반의 상업적 성과는 전부 이 앨범보다 떨어졌지만, 그의 방식은 후에 발표한 여덟 장의 앨범에서도 늘 유효했다. 가장 유명하진 않아도 충분히 멋진 웨스트 코스트의 ‘소리 장인’이 내디딘 첫 발걸음. – 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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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g Starr - Step in the Arena (1991.01.15)

흔히 동부식의 둔탁한 힙합을 ‘붐뱁’이라 부른다. 갱 스타(Gang Starr)는 그 시작은 아닐지라도 붐뱁의 전형적인 표본처럼 인식된다. 힙합의 골든에라로 불리는 90년대에 접어들어 이들은 소포모어 앨범 [Step in the Arena]로 이후 커리어 내내 이어지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정립한다. DJ 프리미어(DJ Premier)는 이때야 프로 뮤지션으로서 트랙을 쓰는 방법을 터득해 모든 비트를 온전히 만들어낸다(데뷔작 [No More Mr. Nice Guy]에는 다른 프로듀서의 트랙이 세 곡 있다). 모두가 존경을 마다치 않는, 소울, 훵크를 넘어 재즈까지 섭렵하여 샘플들을 유려하게 자르고 붙이며 재창조하는 DJ 프리미어 특유의 문법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는 팀의 원년 멤버인 구루(Guru)의 모노톤 랩과 찰떡궁합이었다. ‘신성한 종교적 교육자’라는 뜻의 이름만큼이나 진중하고, 점잖고, 우아한 그의 리리시즘도 더욱 탄력받았다. 이후 차기작들에서 폼이 더 좋아지긴 하지만, 갱 스타라는 전설의 시작점이기에 의미가 깊은 빈티지 힙합 클래식. - 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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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W.A. - Efil4ziggan (1991.05.28)

서부의 흑인들을 대표했고, 더 나아가선 미국의 흑인을 대표했던 힙합 그룹 N.W.A. 이들은 동부에 몰려 있던 80년대 힙합의 균형을 혼자 힘으로 서부로 끌고 와 양강체제를 재구성한 전설적인 그룹이다. 그런데 이 앨범에선 N.W.A.의 공격적인 랩과 작사를 상당 부분 책임지며 정체성을 유지했던 래퍼 아이스 큐브가 빠져있다. 계약상의 불합리한 조항을 문제로 다툰 뒤 탈퇴한 터였다. 이후 N.W.A.와 아이스 큐브의 관계가 악화하였고, 서로를 디스하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Message To B.A.”에선 동부에서 앨범을 작업한 아이스 큐브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Real Niggaz”에선 그가 실은 나약한 래퍼임을 주장한다. 아이스 큐브의 빈자리는 힙합 그룹 어보브 더 로(Above The Law) 등의 참여진으로 대신한다. 닥터 드레를 비롯한 멤버들의 랩 실력이 향상된 것은 물론, 둔탁하고 조악했던 전작의 프로덕션 품질도 대폭 상승했다. 탄탄한 랩과 프로덕션이 환상적인 합을 이루는 [Efil4ziggan]는 이지-이의 갑작스런 사망과 닥터 드레의 탈퇴로 N.W.A의 최후의 앨범이 되었다. -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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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y D & The Boys - Peaceful Journey (1991.07.02)

헤비 디 앤 더 보이즈(Heavy D & The Boys)는 다룰만한 요소가 많다. 우선 그들은 업타운 레코드(Uptwon Records)와 첫 번째로 계약한 음악가였다. 유난히 묵직하고 어두운 내용이 많았던 8, 90년대의 힙합이었지만, 이들의 음악은 긍정적이고 희망차다. 동시에 팝 지향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힙합 씬의 전설로 남을 수 있던 이유는 문화적 의미로서의 힙합과 인종 차별 등의 어려운 주제를 쉽게 풀어냈고, 실제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부나 봉사 등의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Peaceful Journey]의 제작 비화는 조금 어둡다. 헤비 디 앤 더 보이즈의 멤버인 트러블 티로이(Trouble T-Roy)가 사망한 것. 음반 아트워크에서 멤버들이 손을 모으고 있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물론, 음반은 절대 어둡지 않다. 애런 홀(Aaron Hall)이 참여한 뉴잭스윙 “Now That We Found Love”부터 이미 굉장히 신나고, 팝한 리듬을 유지한다. 이 곡을 포함하여 “Is It Good To You”, “Don’t Curse” 등이 성공하며 [Peaceful Journey]는 플래티넘을 달성했고, 헤비 디 앤 더 보이즈는 메인스트림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 GDB(심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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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press Hill - Cypress Hill (1991.08.13)

지금은 그 수가 적지만, 한때 히스패닉 계열 힙합 음악가가 큰 성공을 거두던 때가 있었다. 싸이프레스 힐(Cypress Hill)은 그 시초격이다. 하지만 싸이프레스 힐의 성공은 단순히 그들이 마리화나의 합법화를 주장하고, 히스패닉으로의 정체성을 가사에서 내세웠기 때문만은 아니다(물론, 히스패닉 계층에 어필한 요소가 성공 원인 중 하나긴 했다). 그보다는 이들의 음악이 가진 음악적 쾌감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우선, DJ 머그스(DJ Muggs)가 만든 음악은 늘어지는 베이스 라인과 특유의 드럼 롤, 훵크에 가까운 리듬감, 이상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특이하게 잘린 샘플링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에 비리얼(B-Real)의 쏘는 랩(비리얼 본인은 높고 짜증이 난다고 표현한다)과 센 독(Sen Dog)의 중심을 잡아주는 묵직한 목소리가 더해지며 싸이프레스 힐의 음악은 랩 그룹이 가질 수 있는 최적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Cypress Hill]은 히스패닉 힙합 그룹 최초의 더블 플래티넘 음반이 됐고, 다음 음반 [Black Sunday]도 이를 뛰어넘는 성적을 거뒀다. - GDB(심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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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ughty By Nature - Naughty By Nature (1991.09.03)

너티 바이 네이처(Naughty By Nature)는 래퍼 트리치(Treach), 빈 락(Vin Rock), 그리고 DJ 겸 프로듀서 케이 지(Kay Gee)로 이루어진 3인조 힙합 그룹이다. 이들은 90년대 초 파티 스타일의 비트에 멜로디컬한 훅을 덧입히며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데뷔 앨범 [Naughty By Nature]는 앞서 언급한 음악 스타일과 랩 게임을 비롯한 이들의 삶이 함께 담긴 앨범이다. 전자로는 잭슨 파이브(Jackson 5)의 “ABC”을 유쾌하게 재해석한 “O.P.P”, 카리브해 음악의 요소를 가져온 “Wickedest Man Alive”가 대표적이다. 후자의 경우, 래퍼들을 샤라웃하며 랩 게임에 존경을 표하는 “Everyday All Day”, 트리치의 삶을 솔직히 풀어낸 “Everything’s Gonna Be Alright”가 있다. 트리치가 화려하고 경이로운 라이밍으로 작품 전체를 이끌어 나가고, 이를 뒷받침하는 훵키하고 무드 있는 프로덕션이 돋보이는 앨범이다. 이들은 “O.P.P”의 히트에 힘입어 100만 장 넘게 앨범을 판매하였으며, 그해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에서 ‘최우수 랩 그룹’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 G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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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 Latifah - Nature of a Sista (1991.09.03)

퀸 라티파(Queen Latifah)가 첫 여성 MC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세 번째 음반 [Black Reign]으로 여성 MC 사상 최초로 골드 음반을 달성한 사람이다.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랩과 힘 있는 내용으로 동시대 어떤 래퍼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음악을 선보였다. 그러면서도 당시 남성 래퍼에게는 금기시되었던 노래와 가스펠까지 자유롭게 부르며 음반을 다채롭게 꾸미기도 했다. [Nature of a Sista]는 그러한 퀸 라티파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는 음반이다. 음반은 재즈에 기반을 둔 비트로 가득하다. 그 위에서 랩과 노래, 가스펠을 오가는 퀸 라티파를 보고 있노라면, 재즈 랩의 여왕이라는 그의 별명이 이해가 간다. 이후에 그는 배우와 싱어로 전향하고 여러 권위 있는 상에 지명되며 재능을 마음껏 뽐냈다. - GDB(심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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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ribe Called Quest - The Low End Theory (1991.09.24)

네이티브 텅스(Native Tongues)는 뉴욕 힙합 씬에서 가장 독특한 존재였다. 유행이나 사조에 갇히지 않았으며, 재즈를 샘플링하여 그룹만의 소리를 창조할 줄 아는 집단이었다. 정글 브라더스(Jungle Brothers), 데 라 소울(De La Soul), 블랙 쉽(Black Sheep),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이하 ATCQ)가 포함됐다. 그중에서 재즈를 가장 잘 사용했던 건 ATCQ였다. 이들의 데뷔 앨범에 다양한 음악이 종합됐다면, 2집 앨범 [The Low End Theory]에선 재즈를 중점으로 다룬다. 앨범은 샘플링한 재즈 베이스 연주가 담긴 “Excursions”로 시작한다. 이 곡에는 ‘힙합에선 추상적인 걸 찾을 수 있지 / 그걸 본 아버지는 비밥(재즈)이 연상된다고 하셨지’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Jazz (We’ve Got)”에선 재즈의 스캣(보컬 즉흥연주)과 힙합의 프리스타일 랩을 연관시키며 두 장르의 유사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탁월한 재즈 샘플링 프로덕션과 큐팁(Q-Tip)이 주도하는 짜임새 있는 랩이 탁월한 합을 이룬다. 소리와 내용 모두에서 재즈에 대한 애정이 강하게 드러내는 재즈 랩의 모범사례다. -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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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Enemy - Apocalypse 91… The Enemy Strikes Back (1991.10.01)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하면 바로 척 디(Chuck D)의 사회적 문제를 다룬 가사가 떠오르지만, 사실 이는 어느 정도 회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퍼블릭 에너미는 초창기에 파티 음악을 만들었으나 흥행에 실패했다. 데프 잼(Def Jam)은 이들과 계약하며 대신 모든 곡에 정치적 뉘앙스를 넣기를 요구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퍼블릭 에너미는 N.W.A.와 함께 랩으로 흑인 인권을 부르짖는 양대 산맥이 됐다. [Apocalypse 91... The Enemy Strikes Black]은 퍼블릭 에너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국 차트 5위 안에 든 음반이다. 전작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소울풀해졌고, 리듬도 훵키해졌다. 하지만 “Fight The Power”로 대표되는 연대와 싸움도 여전하다. 여전히 그들은 “I Don’t Wanna be Called Yo Nigga”에서 노예 시절을 떠올리고, “Can’t Truss It”으로 사회의 부조리함을 지적한다.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면서도 꾸준히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던 점이야말로 퍼블릭 에너미가 힙합 역사상 네 번째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 GDB(심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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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 Cube - Death Certificate (1991.10.29)

아이스 큐브는 자신이 몸담았던 N.W.A.에 큰 악의는 없었다. 그러나 N.W.A. 멤버들이 자신을 배신자라 부르고 비난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갱스터 랩을 지향했던 N.W.A.에서 가장 갱스터에 가까웠던 건 사실 아이스 큐브였고, 그가 분노하자 음악은 폭발했다. N.W.A.를 비롯해 모두에게 총을 난사하는 수준이었다. 알앤비/힙합 라디오, 흑인 밀집 주거지에서 사업을 하며 흑인을 차별하는 한인들(“Black Korea”) 등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자는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가 미쳐 날뛰자 대중들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호전성은 그의 음악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앨범은 팝 앨범 차트 2위, 흑인음악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고, 싱글 “Steady Mobbin”은 랩 차트 3위를 기록했다. 분노만 담긴 건 아니었다. 빈민가에서 걸리기 쉬운 성병에 대한 주의를 시키고(“Look Who’s Burnin”“), 갱단 간의 평화를 종용하기도 한다(“Color Blind”). 그는 음악을 통해 자기 생각을 뚜렷하게 전달할 줄 알았던 인물이었으며, 문제작이기도 했던 [Death Certificate]는 그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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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Mix-a-Lot - Mack Daddy (1992.02.04)

서-믹스-어-랏(Sir-Mix-a-Lot)은 최근에는 니키 미나즈(Nicki Minaj)의 히트곡 “Anaconda”에 사용되며 유명해진 “Baby Got Back”으로 익숙할 듯하다. 그는 1987년에 발표한 싱글 “Posse on Broadway”로 첫 성공을 거뒀다. 이후 두 장의 정규 음반을 발표한 후, 1991년에 데프 아메리칸(Def American)과 계약한다. [Mack Daddy]의 총괄 프로듀서에 릭 루빈(Rick Rubin)이 이름을 올린 까닭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뉴욕과 LA 바깥의 래퍼는 소수였고, 그 외 지역의 래퍼들은 과소평가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서-믹스-어-랏은 이 음반에 수록된 “Baby Got Back”으로 차트 1위와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1993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랩 솔로 퍼포먼스’ 부문을 차지하는 등, 복수 아닌 복수에 성공한다. “Baby Got Back”의 큰 성공 때문에 [Mack Daddy]가 조금 우스꽝스럽지만, 음반에는 제법 진지한 부분이 있다. “One Time’s Got No Case”는 시애틀의 인종 차별을 경찰이 비싼 차에 탄 젊은 흑인 남성을 대하는 방식을 통해 은유적으로 비꼬고, “Baby Got Back”조차도 여성의 아름다움과 섹시함을 대조하며 사회적 인식을 지적한다. 경쾌한 리듬에서 오는 색안경을 벗고 음반을 듣는다면, 서-믹스-어-랏이 의외로 깊은 내용을 담고 있음을 눈치챌 것이다. - GDB(심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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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rested Development - 3 Years, 5 Months & 2 Days In The Life Of (1992.03.24)

힙합 음악의 주요 흐름 중 하나인 얼터너티브 힙합은 90년대 초 미국의 각 지역에서 등장했다. 이중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Arrested Development)는 남부 지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다. 앨범의 타이틀은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음반을 발표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뜻한다고 하는데, 들어보면 왜 회사가 이들의 앨범을 발매하기를 꺼렸는지 이해가 될 법도 하다. 당대의 유행과는 정말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선, 다양한 장르의 요소들을 빌려와 자신들의 작품에 담아내었다. 이 때문에 이들의 음악은 때때로 힙합에서 벗어나 컨트리나 훵크 혹은 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앨범은 가사도 당시 유행하던 갱스터 랩과 다소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거리의 삶을 다루되, 사랑과 범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노예제에 관한 이야기를 아름답게 풀어낸 “Tennesse”, 노숙자 문제를 다룬 “Mr. Wendal”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는 얼터너티브 힙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당시 힙합 씬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였다. 더 나아가 이들이 제시한 음악 스타일은 후에 구디 맙(Goodie Mob), 아웃캐스트(Outkast) 등에게 영감을 줘 서던 힙합의 흐름을 만들어 내게 된다. 여러 면에서 대중 음악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얼터너티브 힙합의 대표 명반. - G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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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 EFX – Dead Serious (1992.04.07)

랩에는 ‘텅 트위스팅(Tougue Twisting)’이라는 방식이 있다. ‘Flipping the Tongue’, 말 그대로 혀를 튕기듯 랩 하는 스타일을 가리킨다. 다스 이펙스(Das EFX)는 이 독특한 기법을 탄생시키고, 대중화한 장본인들이다. 크레이지 드레이지(Krazy Drayz)와 스쿱(Skoob), 두 멤버는 데뷔 앨범 [Dead Serious] 내내 순간적으로 발음을 빨리하며 리듬감을 형성한다. 이는 별다른 뜻은 없지만, 수많은 단어에 ‘-iggity’를 붙여 쓴 가사, 프로듀싱 팀 솔리드 스킴(Solid Scheme)의 단출한 비트와 연동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급기야 싱글컷된 “They Want EFX”와 “Mic Checka”가 빌보드 랩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자신들을 TV 쇼를 통해 발굴한 훵키함을 강조한 팀 EPMD도 기록하지 못한 플래티넘을 달성하기에 이른다(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EPMD는 커리어 내내 꾸준히 골드를 기록했다). 단순히 성적뿐이 아니다. 속사포 랩과 멜로디컬함을 섞은 그룹 본 떡스 앤 하모니(Bone Thugs-N- Harmony)가 다스 이펙스로부터 영향받아 독자적인 스타일을 갖춘 것처럼 음악적,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후 두 장의 앨범도 각각 준수하지만, 후대까지 큰 영향을 준 하나의 랩 스타일이 시작한 지점이기에 큰 의미가 있는 앨범이다. – 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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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stie Boys - Check Your Head (1992.04.21)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의 세 번째 정규 앨범 [Check Your Head]는 그 해 수많은 매체가 베스트 앨범으로 꼽았다. 하드코어 펑크 밴드로 시작하여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3인조 랩 그룹이 되기까지 비스티 보이즈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80년대 초 음악을 시작한 이들은 멤버 교체를 겪으며 랩 그룹의 포맷으로 바뀌었고, 첫 시작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 랩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여기에 당시 뉴욕대 학생이었던-지금은 음악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프로듀서 중 한 사람인- 릭 루빈과 러셀 시몬스(Russel Simmons)가 데프 잼이라는 어마어마한 레이블을 설립하려 할 때쯤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이들의 전설적인 행보는 시작되었다. [Check Your Head]에는 “Pass the Mic”, “So What’cha Want”와 같은 명곡이 실려 있으며, 당시만 해도 비스티 보이즈의 음악은 랩 차트 뿐만 아니라 모던 록 차트, 핫 댄스 차트 등 여러 장르 차트에 동시에 올랐다. 장르 구분을 못 하는 관계자들을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비스티 보이즈가 가진 다양한 색채를 증명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 bl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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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 Rock & C.L. Smooth - Mecca and the Soul Brother (1992.06.09)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가 “Around My Way”를 발표했을 때, 피트 락(Pete Rock)은 불쾌감을 표한 바 있다. 그 곡의 비트가 트로이 딕슨(Troy Dixon)을 추모하는 곡 “They Reminisce Over You”의 문법을 거의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 앞서 언급한 곡이 수록된 음반이 바로 [Mecca and the Soul Brothers]다. 이 음반은 피트 락과 씨엘 스무스(C.L. Smooth)의 데뷔 음반이지만, 둘의 음악은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 피트 락이 여러 장르의 LP에서 긁어내고 조합한 음악 위에서 씨엘 스무스가 이름 그대로 부드럽게 랩을 하는 것이 둘의 음악이었다. 피트 락은 루프를 만들고 그 위에 특정 샘플을 통해 포인트를 주는 데에 능통했고, 씨엘 스무스는 피트 락이 제공한 곡의 빈틈을 거리의 삶에 기반을 두어 가득 채워냈다. 이런 균형은 형식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갱 스타와 비교되기도 했다. 둘의 찰떡궁합은 다음 음반인 [The Main Ingredient]에서 정점을 찍으니, 이 음반이 마음에 든다면 꼭 함께 들어보길 바란다. - GDB(심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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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biz & A.G. - Runaway Slave (1992.09.22)

쇼비즈 앤 에이지(Showbiz & A.G.)는 브롱스 출신 힙합 뮤지션들이 모인 D.I.T.C. 크루의 일원이다. 갱 스타와 에릭 비. 앤 라킴(Eric B. & Lakim)처럼 1MC 1PD로 구성되어 있다. 듀오는 정규 1집 [Runaway Slave]에서 환상적인 케미를 자랑하며 당대 랩 음악의 매력을 한껏 보여준다. 쇼비즈(Showbiz)는 당시 동부 힙합 음악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단단한 드럼 소리를 구축한다. 재즈 샘플을 사용해 앨범의 일관된 무드를 이어나가거나(“Still Diggin”, “Fat Pocket”), 중간중간 관악기와 피아노 샘플을 섞어 텐션을 주는 식이다(“More Than One Way Out Of The Ghetto”). 물론, 거리와 클럽에서 즐길 수 있는 파티튠도 빠트리지 않는다(“Soul Clap”, “Party Groove(Bass Mix)”). 에이지는 파티와 힙합은 물론, “Runaway Slave”, “He Say, She Say”에서처럼 도시의 삶과 범죄와 같은 사회 문제를 바탕으로 한 가사를 써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처럼 앨범은 당대 음악의 사운드 흐름이 잘 반영함은 물론, 사회상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동부 힙합의 명반이다. D.I.T.C.멤버들이 발표한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 G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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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harcyde - Bizarre Ride II The Pharcyde (1992.11.24)

ATCQ가 발단이 된 재즈 샘플링은 90년대 초 힙합계를 강타했다. 동부 힙합 씬만이 아니었다. 서부 힙합 씬에서도 재즈 랩을 선보인 음악가들이 등장한 걸 보면, 미국 완전히 반대편의 서부 힙합 씬에도 그들이 영향을 끼쳤던 모양이다. 파사이드(The Pharcyde)는 재즈 샘플링을 정말 잘했다. 청량한 피아노 연주 샘플이 반복되는 [Bizarre Ride II The Pharcyde]의 오프닝곡 “4 Better 4 Worse (Interlude)”는 그들의 음악적 지향을 엿보게 한다. 하지만 곧 등장하는 곡들은 그들의 재즈 샘플링의 정확한 방향을 일깨운다. 리드미컬하고 장난스러운 방식이다. 여러 샘플 조각들을 끼워 맞춰 하나의 유기적인 인스트루멘탈을 만들어낸다. 파사이드 멤버들이 쏟아내는 장난과 의도된 허풍이 뒤섞인 가사에 완벽한 합을 이룬다. 재즈를 기반으로 한 흥겹고 직관적인 사운드는 당시 유행했던 애시드 재즈와도 지향점이 겹쳤다. 이 앨범을 발표하고 난 직후, 이들이 대표적인 애시드 재즈 그룹 브랜드 뉴 헤비스(Brand New Heavies)의 앨범에 참여한 건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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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Dre - The Chronic (1992.12.15)

N.W.A.에서 닥터 드레의 역할은 지대했다. N.W.A.의 와해에는 이지-이의 사망도 있었지만, 닥터 드레의 탈퇴 영향이 훨씬 컸다. N.W.A.의 전 멤버 아이스 큐브가 탈퇴하며 이지-이와 불화를 일으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닥터 드레도 이지-이와 적대적 관계가 됐다. 닥터 드레는 그룹 탈퇴 후 솔로 데뷔 앨범 [The Chronic]를 발표했다. 기존의 갱스터 랩에 팔러먼트-펑카델릭(Parliament-Funkadelic)으로 대변되는 훵크 사운드를 접목한 새로운 스타일인 지훵크였다. 이 앨범에서 그는 N.W.A.를 향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싱글 “Fuck Wit Dre Day (And Everybody’s Celebratin’)”에는 전 동료였으나 적이 된 아이스 큐브와 이지-이를 디스한다. 닥터 드레의 디스와 성공에 이지-이는 분개한다. 그는 [It’s On (Dr. Dre) 187um Killa]라는 앨범을 발표하며 맞대응했으나, 결국에는 닥터 드레의 지훵크 스타일을 베낀 아류작에 불과했다. 가장 강력한 맞수마저도 자신을 따라 하게 할 정도로 지훵크의 열풍은 강렬했다. 지훵크 열풍을 타고 닥터 드레는 N.W.A.의 프로듀서가 아닌, 90년대 힙합의 대표 프로듀서로 성장했다. -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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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able Planets – Reachin’ (A New Refutation of Time and Space) (1993.02.09)

혜성처럼 등장한 힙합 트리오 디거블 플래니츠(Digable Planets)는 누가 봐도 ATCQ를 모델로 한 그룹이었다. 재즈 샘플링을 기반으로 한 프로덕션, 통통 튀는 비트, 무겁지 않은 랩까지. 물론 단순히 모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멤버들은 어려서부터 재즈를 듣고 자랐고, 레이블과 계약해 앨범을 제작하려고 했을 때 곁에 있던 건 부모님이 듣던 재즈 음반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Reachin’ (A New Refutation of Time and Space)]는 찬사를 받았다. 특히, 재즈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Art Blakey)의 “Stretching”에서 베이스 연주를 사용해 그루비하게 완성한 리드 싱글 “Rebirth of Slick (Cool Like Dat)”은 팝 차트 15위, 랩 차트 1위에 오르는 대형 히트를 기록했다. 재즈와 훵크 샘플을 세련되게 조합한 프로덕션도 한몫했지만, 혼성 힙합 그룹이 희귀했던 90년대 초에 여성 멤버 레이디버그(Ladybug)의 존재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재즈 샘플링, 혼성 랩을 조화시킨 디거블 플래니츠는 풋풋한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조금 더 확장된 얼터너티브 힙합의 세계를 제시했다. -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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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yx - Bacdafucup (1993.03.30)

오닉스(Onyx)와 [Bacdafucup]을 요약할 수 있는 곡과 단어라면 단연 “Slam”이지 않을까. 그들의 음악이 ‘슬램’(공연장에서 관객들끼리 서로 몸을 부딪치며 노는 행위)을 연상케 할 만큼 박력 넘칠뿐더러, 오닉스의 목소리와 랩 또한 슬램핏을 주도하는 무대 위의 에너지를 그대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는 이들의 기원이 존재한다. 바버샵에서 처음 만났다는 네 멤버는 이후 로컬 클럽에서의 공연을 통해 랩을 선보였다고 한다. 이들이 음악 산업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잼 마스터 제이(Jam Master Jay)의 눈에 띄었기 때문. 잼 마스터 제이의 레이블과 계약한 오닉스는 노골적으로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주제들을 샤우팅에 가까운 랩으로 레코드에 옮겨 담았다. 여기에 잼 마스터 제이와 샤이스킬즈(Shyskillz)의 비트가 뒷받침하며, [Bacdafucup]은 플래티넘을 달성했다. 하드코어 힙합이라는 장르에 있어 오닉스가 기념비적인 존재인 이유에는 단연 이 음반이 큰 지분을 차지한다. - GDB(심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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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 DMC - Down With the King (1993.05.03)

런 디엠씨(RUN DMC)가 힙합 음악은 물론, 힙합 문화 전체에 미친 영향은 정말로 크다. 아디다스 사랑에 벙거지, 큰 안경, 여기에 금으로 된 커다란 체인 목걸이까지. 런 디엠씨는 힙합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패션을 한 차례 완성했다. 1981년 결성된 힙합 3인조는 당시 브레이크비트 일색의 올드 스쿨 힙합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고, 특히 DJ와 MC의 호흡이 정말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걸 몸소 증명하기도 했다. 이들은 80년대에 멋진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이후 1990년에 발표한 [Back from Hell]이 처참하게 망했지만, 1993년 [Down With the King]을 발표하며 사실상 마지막 불꽃을 선보인다. 물론, 2001년 마지막 정규 앨범이자 유일하게 ‘Parental Advisory’ 딱지가 붙은 [Crown Royal]을 발표하지만, 90년대에 나온 이 앨범은 지난 커리어의 연장선으로 보아도, 스타일이나 완성도로만 보아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특히나 실패와 좌절을 딛고 부활한 작품이자, 동시에 지난 시간 동안 얻은 노하우와 정성이 여러모로 느껴지는 앨범이다. - bl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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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ru - Jazzmatazz, Vol.1 (1993.05.18)

1MC 1DJ의 상징이었던 갱 스타의 연대는 공감대의 형성에서 시작됐다. 기본적으로는 힙합을 추구했지만, 고전 소울/훵크, 재즈에 대한 관심사는 갱 스타의 공통점이었다. 80년대의 명반이자 갱 스타의 데뷔 앨범 [No More Mr. Nice Guy]는 재즈 샘플이 가득한 앨범이었으며, 1990년에는 재즈 영화 <모 베터 블루스(Mo Better Blues)>에 참여하기도 한다. DJ 프리미어는 재즈 샘플을 훌륭하게 재해석해냈지만, 구루는 더 많은 것을 원했다. 재즈 연주 위에 랩을 하는 게 아니라, 재즈 연주자들처럼 소통하는 음악을 원했다. 그 결과가 바로 [Jazzmatazz, Vol.1]다. 새로운 음악에 열려있던 재즈 뮤지션과 신진 재즈 뮤지션들을 기용했다. 단순히 연주해놓고 그 위에 랩을 한 게 아니었다. 과거의 명곡을 샘플링한 힙합 인스트루멘탈 위에 구루는 랩을 했고, 연주자들은 연주했다. 악기 연주는 랩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게 아니라, 랩도 악기의 하나가 되어 어우러졌다. 재즈 랩이라는 장르가 재즈를 샘플링한 인스트루멘탈과 랩의 조합이라는 굳어져 있던 편견을 깨준 충격적인 앨범이었다. -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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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ball & MJG – Comin’ Out Hard (1993.08.17)

에잇볼 앤 MJG(8ball & MJG)는 1991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남부 힙합 듀오다. 도메스틱으로 발매한 앨범을 제외하면 [Comin” Out Hard]는 이들의 첫 앨범이며, 시퀀싱 위주의 서던 힙합이 1990년대 초에도 존재했음을 알리는 명실상부 제대로 된 남부 힙합 앨범이다. 지금의 트랩 BPM, TR-808 사운드 중심의 전개 등 남부 힙합이 지니는 미덕이나 공식은 이미 90년대에도 완전한 형태로 정립이 되어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다른 식으로 생각하면 이 앨범은 그만큼 지금 등장하는 음악과 섞어 틀어도 이질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세련됨을 유지한다. 물론, 그것이 이들의 공이라거나 앨범 자체의 퀄리티가 뛰어나서라고는 할 수 없다. 남부 힙합이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 주류의 자리를 차지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아마 에잇볼과 MJG, 두 사람도 몰랐을 것이다. 둘은 2000년대 중반, 남부 힙합이 메인스트림 시장에서 부상하기 시작할 쯤 배드 보이 레코드(Bad Boy Records), 그랜드 허슬 레코드(Grand Hustle Records)와 같은 상대적으로 큰 레이블로 소속을 옮기기도 했다. 두 사람은 각각 솔로 앨범 커리어도 지니고 있다. - bl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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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s Of Mischief - 93 Til Infinity (1993.09.28)

흔히 90년대 서부 힙합이라고 하면 갱스터 랩을 떠올린다. 하지만 서부 힙합 씬에도 다양한 음악이 존재했고, ATCQ재즈 샘플링을 기반으로 한 힙합을 선보이는 팀도 여럿 있었다. 대표적인 팀 중 하나가 바로, 소울즈 오브 미스치프(Souls Of Mischief)다. ATCQ에서 큐팁이 진두지휘했던 것처럼 소울즈 오브 미스치프에선 에이플러스(A-Plus)가 전체적인 프로덕션을 이끌었다. 앨범의 첫 곡은 묵직한 더블베이스 연주로 시작된다. 재즈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곡 “Shadow Dancers”에서 샘플링한 소리다. 앨범 전반에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와 램지 루이스(Ramsey Lewis) 같은 재즈 뮤지션들의 곡이 샘플링되어 있다. 재즈를 샘플링했다고 해서 듣기 편한 소리를 지향했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묵직한 붐뱁 힙합을 추구했다. 음악적 자원은 같았지만, 통통 튀는 느낌을 자아냈던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와는 전혀 다른 귀결이다. “Anything Can Happen”은 우탱 클랜(Wu-Tang Clan)을 연상시킬 정도로 둔탁한 동부의 붐뱁 힙합을 떠올리게 한다. 동부의 사운드를 완벽하게 재현해낸 서부 힙합 앨범이다. -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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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ribe Called Quest - Midnight Marauders (1993.11.09)

ATCQ의 행보는 늘 인상적이었다. “Can I Kick It?”이란 상징적인 곡이 수록됐던 데뷔 앨범과 재즈 랩의 전형을 제시했던 2집 앨범으로 시작한 커리어. ATCQ는 늘 찬사 속에서 자랐다. 고전 명곡을 샘플링한 클래식한 프로덕션부터 재즈 랩이라는 뚜렷한 지향성, 짜임새 있고 재치 있는 랩 가사까지, ATCQ는 자신의 색깔이 가장 분명한 팀이었다. 이는 이들의 3집 앨범 [Midnight Marauders]에서도 이어진다. 재즈 샘플링을 기반으로 한 프로덕션에 큐팁 특유의 통통 튀는 리듬이 더해졌다. [Midnight Marauders]는 프로덕션적으로 큰 진보를 이룬 작품이다. 이전까지 ATCQ의 앨범이 리듬에 적당한 샘플이 포인트로 들어간 수준이었다면, 이 앨범에선 샘플이 메인 멜로디를 이루고, 조각조각 들어간 여러 샘플들이 조화를 이룬다. 사운드는 매끈하게 다듬어졌지만, 곡을 지탱하는 질감은 여전히 고전적이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사운드를 앞세워 팝 앨범 차트에서도 8위를 기록했다. ATCQ가 발표한 여섯 장의 앨범 중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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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u-Tang Clan - Enter The Wu Tang (36 Chambers) (1993.11.09)

우탱 클랜이라는 이름은 영화 <소림여무당>에 등장하는 무당파에서 따왔다. 힙합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우탱 클랜이라는 존재나 [Enter The Wu Tang (36 Chambers)]라는 앨범이 그 어떤 클래식보다도 위대하게 느껴지겠지만, 힙합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무술이라는 주제가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 우탱 클랜은 무협 컨셉에 취해 있었고, 실제로 메쏘드 맨(Method Man), 고스트페이스 킬라(Ghostface Killah)와 같은 이름도 아시아의 영화에서 따왔다. 앨범에서도 역시 칼 소리나 대사 등 무협 영화를 연상케 하는 요소들이 등장한다. 앨범은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전곡이 잘 알려져 있으며, 프로듀서 르자(RZA)를 비롯해 우탱 클랜 내에서도 간판 래퍼였던 래퀀(Raekwon), 고스트페이스 킬라, 메쏘드 맨이 뛰어난 존재감을 드러낸다. 여기에 올 더리 바스터드(Ol” Dirty Bastard)까지, 멤버 개인의 역량도 뛰어났으며, 이렇게 놀라운 조합이 하나의 팀을 이뤄 열악한 환경에서 독창성 강한 작품을 만들어냈으니 과연 클래식이라 불릴 만하다. – bl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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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Moon - Enta Da Stage (1993.11.15)

힙합 중에는 팬들에게 이른바 ‘먹통 힙합’이라 불리는 음악이 있다. 대체로 강한 드럼과 뭉개지는 듯한 무거운 베이스를 토대로 멜로디 없이 무미건조하고 먹먹한 사운드가 특징으로 한다. 블랙 문(Black Moon)의 데뷔작은 그런 먹통 힙합의 정수 격인 앨범이다. 래퍼 벅샷(Buckshot), 파이브에프티(5ft), 그리고 DJ 겸 프로듀서인 이블 디(Evil Dee)로 구성된 이 팀은 “Powful Impak!”, “Son Get Wrec”에서처럼 둔탁한 드럼과 육중한 베이스를 전면으로 내세우며 앨범의 프로덕션을 채워낸다. “Niguz Talk Shit”, Shit Iz Real”로 알 수 있듯, 중간중간 관악기와 피아노 샘플은 들어가긴 해도 양념 역할에 불과하며, 전체 사운드는 일률적으로 드럼과 베이스가 이끈다. 벅샷은 그 위에서 유려하고도 담백한 플로우를 선보이는데, 대표곡 “How Many Mc’s…”는 수많은 래퍼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이밖에도 훅 파트에서 멤버들을 포함 래퍼들이 모여 떼창을 지르는 방식 역시 주목할 만하다. 오닉스와 같은 팀도 이 같은 방식을 시도했었지만, 블랙 문만큼 역동적인 느낌을 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동부 먹통 힙합 사운드에 관해 이야기할 때 지나쳐선 안 되는 앨범. - G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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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3 - Hand On The Torch (1993.11.16)

80년대부터 간헐적으로 시도되었던 힙합과 재즈의 결합은 90년대 초에 들어서 하나의 흐름으로 완성됐다. 재즈 뮤지션과 힙합 뮤지션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대의 음악적 요소를 빌렸다. 그러던 중 등장한 어스쓰리(Us3)는 힙합의 방식을 채택했지만, 재즈의 정체성을 가장 공고히 지켜내며 접점에 섰던 그룹이다. 영국의 프로듀서 제프 윌킨슨(Geoff Wilkinson)은 무단으로 전설적인 재즈 레이블 블루노트 레코드(Blue Note Records)의 곡을 샘플링했는데, 블루노트 레코드 측에게 적발되고 만다. 레이블은 처벌이 아닌 더 많은 곡을 만들기를 요청했으며, 저작권 문제까지 모두 해결해주었다. 그러한 첫 결과물이 재즈 피아니스트의 명곡 “Cantaloup Island”를 샘플링한 “Cantaloop (Flip Fantasia)”으로, 팝 차트 9위에 오르는 대형 히트를 기록한다. 이들은 50, 60년대의 블루노트 명곡들의 질감을 보존하면서도 신선하게 해석하여 힙합곡으로 재탄생시켰다. 블루노트 레코드에서 낸 앨범 [Hand On The Torch]는 팝 앨범 차트 31위에 오르며 레이블의 새로운 역사를 써냈다. 재즈 랩이라는 장르를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할 역사적 명반이다. -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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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 the Funky Homosapien - No Need for Alarm (1993.11.23)

델 더 훵키 호모사피엔(Del the Funky Homosapien, 이하 델)은 아이스 큐브의 사촌이었고, 그래서 커리어 초기에는 아이스 큐브의 그룹이었던 렌치 맙(Lench Mob)의 가사를 썼었다. 그러다 아이스 큐브의 도움으로 10대 때 첫 앨범을 발표하였고,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델은 이내 자신만의 길로 들어서 두 번째 앨범이자, 어떤 의미로는 진정한 첫 앨범인 [No Need for Alarm]을 발표한다. 첫 앨범은 조지 클린턴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훵크에 가까운 작품이었지만, 두 번째 작품에서 그는 지훵크와 멀어지는 선택을 했다. 대신 히에로글리픽스(Hieroglypics)라는, 언더그라운드 힙합 콜렉티브의 주축으로서 새로운 분위기의 힙합을 선보였고, 재즈 음악을 샘플로 쓰는 등 다양한 음악을 선보인다. 안정적인 서부 래퍼로서의 노선 대신 택한 건 다소 힘든 길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델은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드는 데 있어 재능을 보였던 만큼, 후대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영향을 줬다. - bl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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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op Dogg – Doggystyle (1993.11.23)

스눕 독(Snoop Dogg)은 90년대에 특히 웨스트 코스트 갱스터 래퍼로 이미지가 확고했다. 데뷔작 [Doggystyle]은 이에 혁혁한 공을 세운 커리어 최고의 앨범이다. 그 시절 나왔던 그의 앨범 중 상업적으로, 음악적으로 더 나은 앨범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는 다른 앨범이 별 볼 일 없다기보다는 [Doggystyle]이 얼마나 대단한 앨범인지를 뒷받침하는 근거에 가깝다. 스눕 독이 절반을 참여한 닥터 드레의 [The Chronic]은 지훵크의 시초에 가깝다. 그에 이어 사실상 1MC 1 프로듀서 형식에 가깝게 함께 만든 이 앨범은 그 지훵크를 좀 더 다듬은 최초의 대중적인 앨범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약물, 섹스, 폭력으로 얼룩진 불온한 갱스터로서의 삶을 적나라하게 다룬 스눕 독의 가사는 워낙 수위가 세고 인상이 강해 당시 기준으로도 큰 문제였다. 다만, 전곡에 걸쳐 어김없이 등장하는 귀를 찌르는 듯한 특유의 신스, 레이드 백된 훵키한 드럼 라인, 그 위에서 스눕 독이 멜로디컬하게 소화하는 나긋한 랩, 같은 롱 비치 출신의 다즈 딜린저(Daz Dillinger), 커럽트(Kurupt)를 비롯해 전후좌우에서 타이트한 랩으로 보조하는 참여진까지, 모든 요소가 힙합을 좋아한다면 도저히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정도다. 많은 걸 고려해도 힙합 역사상 가장 중독성 높은 명작이라 단언할 수 있다. - 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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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 - Illmatic (1994.04.19)

음반이 나온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힙합 커뮤니티의 [Illmatic] 사랑은 여전하다. 2014년에 10주년을 맞아 [Illmatic XX]가 나오고, 다큐멘터리 [Nas: Time Is Illmatic]이 나온 것도 모두 [Illmatic]을 향한 애정과 존경이 있기 때문이었다. [Illmatic]이 나올 당시는 힙합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던 때이지만, 유감스럽게도 [Illmatic]은 그런 음반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Illmatic]이 ‘완벽에 가까운 음반’으로 칭송을 받는 이유는 완성도 때문이다. 나스는 당시 유행하던 배틀 랩이나 컨셔스 랩, 갱스터 랩과 달리, 개인의 시점으로 바라본 거리(게토)의 삶을 묘사했고, 이러한 개인의 감상은 솔직함, 진정성 등의 이름으로 가사 표현 방식의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이를 풀어내는 나스의 랩 또한 흠잡을 바가 없다. 여기에 피트 락, DJ 프리미어, 라지 프로페서(Large Professor)의 거칠고 단순하지만, 단단한 프로덕션은 나스의 목소리를 톡톡히 뒷받침한다. 비록 나스는 [Illmatic]과 자신의 나머지 음반을 비교당하며 평생에 거쳐 고통받지만, 그 역시 [Illmatic]이 워낙 대단한 음반이기 때문일 것이다. - GDB(심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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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u the Damaja - The Sun Rises in the East (1994.05.24)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 제루 더 다마자(Damaja)는 이 속담을 첫 앨범 이름으로 지으며 동부 힙합의 부활을 천명했다. 갱스타 파운데이션(Gangsta Foundation)의 일원이었던 그는 당시 동부 스타일의 로우한 힙합을 정립하던 프로듀서 DJ 프리미어와 함께 이 앨범의 모든 부분을 주조한다. 자신을 썩어빠진 악당이라 지칭하며 만들어낸 캐릭터도 흥미롭지만, 특히나 인상적인 건 제루 더 다마자의 지적인 리리시즘이다. 배틀랩적인 면모도 있지만, 그는 주로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을 향한 백인들의 억압(“Ain’t The Devil Happy”), 그 속에서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빈민가의 실상(“You Can’t Stop the Prophet”) 등의 사회적 주제를 역사, 신화, 문화적 요소가 섞인 가사로 논한다. 자신의 뿌리를 이집트 문명에서 찾고, 특정한 상황을 비유하기 위해 그리스 신화나 구약성서의 내용이나 DC 코믹스(DC Comics)의 캐릭터를 꺼내기도 한다. 1993년에 나온 우탱 클랜의 데뷔작 [Enter the Wu-Tang (36 Chambers)]에 영향받아 중국 무협 영화 등의 아시아 문화를 끌어오는 데서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측면 또한 엿보인다. 여기에 9.11 테러를 예언한 아트워크와 히트 싱글 “Come Clean”까지, 90년대 동부 힙합의 가장 신비로운 명작이다. – 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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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ren G - Regulate… G Funk Era (1994.06.07)

워렌 지(Warren G)는 지훵크의 대표 아티스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그는 이른바 ‘워렌 지 표 지훵크’를 만들어 냈다. "워렌 지 표 지훵크"는 샘플 운용을 바탕으로 늘어지는 듯한 그루브와 팝에 가깝게 느껴지는 부드러운 멜로디를 특징으로 한다. 데뷔 앨범 [Regulate… G Funk Era]는 워렌 지 사운드의 정수에 해당하는 앨범이다. 마이클 맥도날드(Michael McDonald)의 히트곡 “I Keep Forgettin”을 샘플링하여 자신만의 사운드로 재창조해낸 히트 싱글 “Regulate”이 대표곡이다. 또한, 부드러운 메인 신스 멜로디와 워렌 지의 읊조리는 랩이 조화를 이루는 “This D.J.”도 놓쳐선 안 되는 트랙이다. 이 밖에도 이른바 워렌 지 사단이라 불리는 트윈즈(Twinz), 도브 쉑(Dove Shack) 등이 참여한 “Recognize”, “This Is The Shack” 역시 워렌 지 특유의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는 트랙이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본 작의 부드럽고 중독적인 사운드에 매료되어 이를 자신의 작품에 구현하려 노력하였다. 팝의 영역에 지훵크 사운드를 정착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작품. - G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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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Brat – Funkdafied (1994.06.28)

90년대 힙합은 아주 크게 동부와 서부로 갈렸다. 남부도 남부만의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중부는 특별히 정체성이 없었다. 일리노이 주 태생의 다 브랫(Da Brat)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서부의 색채를 입혀 첫 앨범 [Funkdafied]를 만든 건 스타 프로듀서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다. 당시 닥터 드레와 스눕 독를 위시하여 인기를 끈 지훵크를 가져왔고, [Funkdafied]는 큰 히트를 기록한다. 싱글컷된 “Funkdafied”, “Fa All Y”all”만 들어도 이를 알 수 있다. 특히, “Funkdafied”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의 “Big Poppa”에도 샘플로 쓰인 아이슬리 브라더스(The Isley Brothers)의 “Between the Sheets”를 가져와 다른 방식으로 소화한 최고 히트 싱글이다. 더불어 저메인 듀프리는 다 브랫의 불우했던 과거를 바탕으로 ‘여자 스눕 독’이라는 타이틀로 대중에게 영업(?)을 시도하며 대외적인 이미지를 생성한다. 실제로 다 브랫은 시그니처와도 같은 ‘Da Brat-tat-tat-tat’과 함께 서부답지 않은 연속적이고 복잡한 라이밍으로 갱스터스러운 거친 이미지에 확실하게 부합한다. 지금은 잊혔지만, 괜히 솔로 여성 래퍼로서 최초로 플래티넘을 달성한 게 아니다. – 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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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vediggaz – 6 Feet Deep (1994.08.09)

판타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몰입력이 중요하다. 청자가 판타지에 동의하려면 현실과 괴리된다는 의문을 지워낼 만큼 작품 그 자체에 흠뻑 빠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그래이브디거즈(Gravediggaz)의 데뷔작 [6 Feet Deep]은 호러코어라는 컨셉에 맞게 가사, 프로덕션, 랩이 완벽하게 일치해 높은 몰입감을 준다. 심지어 멤버 각각이 이 팀에서만큼은 다른 예명을 썼을 정도다. 사람이 땅에 묻힐 때의 깊이를 뜻하는 제목을 비롯해 앨범의 모든 요소는 극도의 잔악함을 가리킨다. 일단 80년대부터 활동한 올드스쿨 프로듀서 프린스 폴(Prince Paul)이 대부분 트랙을 프로듀싱했지만, 르자의 서브 프로젝트였던 만큼 투박한 샘플 톤, 단순 중독적인 룹의 우탱 클랜 스타일에 온갖 방식으로 그로테스크함을 더 한다. 그 위에서 르자, 프러콴(Frukwan), 그림 리퍼(Grym Reaper)는 극렬히 공격적인 목소리와 플로우, 가끔은 연기에 가까울 정도로 굴곡이 심한 인토네이션, 연쇄살인범이 따로 없는 고어(?)한 가사를 한데 섞어 랩을 뱉는다. 법정을 배경으로 삼은 히트곡 “Diary of a Madman”처럼 언급할 만한 트랙이 있지만, 그래서 [6 Feet Deep]은 작품 전체로 접근해야만 그 분위기에 온전히 녹아들 수 있다. 힙합의 마초성에 특이점이 오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다. - 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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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orious B.I.G. – Ready to Die (1994.09.13)

‘죽을 준비를 한다’, ‘죽음 이후의 삶’,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삶은 마치 그의 앨범 제목들처럼 누군가가 죽어야 끝나는 한 편의 느와르 영화 같았다. 그는 자신이 소년 마약상부터 랩스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썼다. 힙합 씬에서 가장 압도적인 데뷔 앨범 중 하나로 꼽히는 [Ready to Die]에서는 이를 어느 부분이 현실인지 가상인지 모를 만큼 잘 짜인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다. 마지막 트랙 “Suicidal Thoughts”에서는 모든 걸 저버리고 산화하는 듯한 인상까지 주며 완벽하게 마무리한다. 하지만 더욱 돋보이는 건 단연 스토리를 파악할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폭발적인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랩이다. 섹시함과 터프함을 두루 갖춘 야성적인 발성, 예상을 곧잘 깨는 복잡다단하고 연속적인 라이밍, 끊임없이 요동치는 굴곡진 플로우, 한 번의 호흡과 추임새조차도 놓치지 않게 할 정도로 하나의 완벽한 악기에 가까웠다. 여기에 우탱 클랜의 멤버들과도 협업했던 이지 모 비(Easy Mo Bee), DJ 프리미어, 로드 피네스(Lord Finesse)의 거칠고 빈티지한 비트 몇 방울, “Juicy”, “Big Poppa”에서 엿보이는 퍼프 대디(Puff Daddy)가 주입한 대중적 코드 한 방울, 그렇게 90년대 동부 힙합 최강의 앨범이 탄생했다. - 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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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ig Mack - Project: Funk Da World (1994.09.20)

힙합 음악사에서 1994년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해다. 나스와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데뷔 앨범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그렇다. 그중 “Flava In Ya Ear”로 배드 보이 레코드의 시작을 알린 크레이그 맥(Craig Mack)의 데뷔 앨범도 잊어선 안 된다. 앨범에는 90년대 힙합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프로듀서인 이지 모 비가 프로듀서로 참여하였다. 그 덕분에 당시 동부 힙합 음악을 대표하는 묵직하고도 쫄깃한 사운드를 자랑한다. 크레이그 맥은 화려하지 않지만, 저음의 목소리로 앨범에 박자감을 부여한다. “Get Down”, “Judgement Day”와 같은 트랙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운드 덕분에 앨범은 90년대 배드 보이 레코드의 음악과 80년대 동부 힙합 음악 간의 연결 고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하지만 준수한 앨범 완성도에 불구하고 그는 같은 레이블의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에 밀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였고, 결국 레이블을 나가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최근, 크레이그 맥은 독실한 신자가 되어 신을 찬양하는 랩을 발표하기도 했다. - G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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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rface - The Diary (1994.10.18)

스카페이스(Scarface)는 게토 보이즈(Geto Boys) 시절부터 스토리텔링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세 번째 앨범 [The Diary]은 그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최적의 앨범이다. 가사에서는 주로 폭력과 거리의 삶을 소재로 다룬다. 얼핏 보면 갱스터 랩과 다른 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특정 상황을 가정하고 상세하게 묘사해 실제 사건처럼 느껴지게 한다. 여타의 갱스터 래퍼들이 놓치고 있는 섬세함을 잘 살린 셈이다. “I Seen A Man Die”, “The Diary”가 대표적인데, 특히 전자에서는 살해 사건의 순간을 묘사함은 물론, 가해자의 삶과 피해자의 입장을 한 데 담아내는 탄탄한 플롯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게토 보이즈의 곡이자 정신 착란이 테마인 “Mind Playin Tricks On Me ‘94”, 시체를 덮는 천을 소재로 삼아 다른 MC들을 위협하는 “The White Street” 역시 생동감 넘치는 가사를 확인할 수 있는 트랙이다. 스카페이스는 앞서 말한 이야기들을 자신의 탄탄하고 육중한 랩으로 청자들을 확실하게 몰입시킨다. 마치 앨범 타이틀처럼 다이어리를 적듯이 어둡고 우울한 거리의 삶을 필터링하지 않고 풀어내는 느낌이라고 할까. 탁월한 스토리텔링이 담긴 이 앨범은 90년대에 최대의 권위를 자랑하던 소스(The Source) 매거진에서 마이크 5개를 받아 90년대 힙합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 G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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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hod Man - Tical (1994.11.15)

메쏘드 맨은 우탱 클랜 내에서도 소위 말해 미는 존재였다. 우탱 클랜의 첫 앨범에 그의 이름을 건 트랙이 있을 정도다. 우탱 클랜의 앨범 발표 이후 그다음 해에 메쏘드 맨이 발표한 솔로 앨범 [Tical]은 우탱 클랜 최초의 솔로 앨범이기도 하다. “Method Man”의 많은 구간이 힙합 관용구로 쓰일 정도로 그는 센스라는 센스는 다 가진 사람처럼 보였는데, 이 앨범 역시 상업적으로 성공한 동시에 평론가들로부터 힙합 클래식이라는 극찬을 듣는다. 첫 싱글 “Bring The Pain”에서 선보이는 진한 힙합부터 “I’ll Be There for You/You’re All I Need to Get By”와 같은 힙합 소울의 모습까지 메쏘드 맨은 단순히 캐릭터나 강한 면모뿐만 아니라 상업적 성공을 거둘 가능성까지 선보였다. 그는 2012년 소스 매거진에서 선정한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리리시스트 50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으며, 이 음반으로 성공한 후 같은 이름의 앨범을 몇 장 더 발표하기도 한다. - bl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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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ZA/Genius - Liquid Swords (1995.01.01)

혹자는 우탱 클랜에서 가장 똑똑한 이로 즈자/지니어스(GZA/Genius, 이하 즈자)를 꼽곤 한다. 그가 과학에 관심이 많고, 그 관심을 가사에 자주 녹여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찬가지로 즈자의 [Liquid Swords]도 우탱 클랜의 음반 중 가장 독특한 음반으로 손꼽힌다. 우선 르자의 공이 크다. 르자는 영화 <Shogun Assassin>의 대화를 삽입하고, 그 뒤에 이어 음악과 랩이 나오는 형식을 음반 내내 유지하며 차별화를 꾀한다. 물론, 즈자나 음반에 참여한 여타 우탱 클랜 멤버의 가사 내용이 영화의 내용을 따르진 않는다. 영화는 그저 소스일 뿐이며, 음반의 중심은 꾸준히 즈자가 잡고 있다. 즈자 특유의 복잡한 워드플레잉은 음반 전역에서 무게추를 잡으며, 이를 인스펙타 덱(Inspectah Deck), 올더리 바스타드(Ol'Dirty Bastard), 메쏘드 맨 등이 받친다. 여타 우탱 클랜 멤버의 개인 음반과 비교했을 때, 가장 우탱 클랜 같은 음반을 꼽으라면 이 음반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만큼 르자의 전성기 시절과 즈자의 똑똑함이 잘 담겨있는 음반이다. - GDB(심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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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f N Wessun - Dah Shinin’ (1995.01.10)

스미프 앤 웨선(Smif N Wessun)은 동부 언더그라운드의 래퍼 듀오다. 스미스 앤 웨슨(Smith & Wesson)이라는 총기 회사의 이름에서 착안한 팀명답게, 두 사람의 랩은 단단한 동시에 꽉 찬 느낌을 주는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이 묵직한 랩 듀오는 출신에 맞게 동부 힙합, 하드코어 힙합의 정수를 선보인다. [Dah Shinin’]은 흔히들 이야기하는 붐뱁 혹은 먹통 힙합에 정확히 해당하는 앨범이다. 타이트한 라임 배치, 스크래치의 등장, 둔탁하게 울리며 중심을 차지하는 킥과 스네어까지, 붐뱁이라는 것이 어떤 음악을 의미하는지 궁금하다면 이 앨범을 들어볼 것을 권한다. 다만,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동부 힙합이 지닌 음악적 색채 중 어느 정도의 범위까지는 수용하며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2000년대에는 2000년대에만 들을 수 있는 동부 힙합의 느낌을 잘 선보였다. 묵직한 직구 스타일이다 보니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지만, 여전히 붐뱁이 뭔지 모르겠다고 하는 이들에게는 이 앨범을 추천한다. - bl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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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Pac - Me Against the World (1995.03.14)

누구나 전환점을 가진다. 힙합을 넘어 하나의 아이콘이 된 투팍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그는 총격으로 인해 죽음 직전까지 가는 동시에 성폭행의 가해자로 지목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총격으로 인한 충격을 회복한 후 그는 감옥에 들어가야 했다. [Me Against the World]는 그가 감옥에 있을 때 발매되었다. 이 때문에 음반에는 ‘나와 세상과의 싸움’이라는 제목부터 전반적인 가사의 내용까지 자연스레 그의 분노가 담겼다. 자신의 경험에서 시작하는 불만과 총격을 향한 공포, 주변인들을 향한 애정 등이 그러하다. 여기에 투팍 본인은 노래하지 않았지만, 여러 음악가와 샘플의 노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음반 전체에 부드러움과 나른함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렇게 [Me Against the World]는 불공정한 세상에 분노하고, 거친 거리의 삶과 순수를 잃은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하면서도 무조건 거칠거나 우울하지 않은 음반이 될 수 있었다. [All Eyes On Me]라는 전설적인 음반의 직전에는 투팍의 자아 성찰적 면모가 있었다. - GDB(심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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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L – Lifestylez ov da Poor & Dangerous (1995.03.28)

‘리빙 레전드’라는 말도 있지만, 레전드라는 칭호는 왠지 모르게 단명한 이에게 더 잘 붙는 경향이 있다. 1999년, 24살이란 젊은 나이에 총격으로 사망한 빅 엘(Big L)도 그렇다. 2017년에도 그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가 나올 정도인데, 그만큼 생전에 발표했던 유일한 앨범 [Lifestylez ov da Poor & Dangerous]는 90년대 동부 힙합 최고의 클래식 중 하나다. 빅 엘은 앨범에서 자신이 길거리 프리스타일 래퍼 출신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우선, 숨 막히는 빡빡한 라이밍, 연달아 잽을 얻어맞는 것만 같은 기발한 펀치라인, 격렬한 하이톤을 엮어 가짜 래퍼들에게 확실하게 경고한다. 그러면서도 “Street Struck”, “Lifestylez ov da Poor & Dangerous”, “Fed Up with the Bullshit” 같은 곡에서는 할렘에서 나고 자란 자신이 겪는 불우한 환경을 직설적이고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빅 엘이 속한 크루 D.I.T.C.의 프로듀서 로드 피네스, 벅와일드(Buckwild), 쇼비즈는 이를 둔탁한 드럼 라인과 무게감 있는 베이스를 강조한 비트로 뒷받침한다. 제목처럼 삶을 일찍이 불행하게 마감했지만, 빅 엘은 이 단 한 장의 앨범으로 극한의 텐션을 유지하는 후대의 하이톤 래퍼들에게 롤모델이 되었다. – 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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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irty Bastard - Return To The 36 Chambers (1995.03.28)

우탱 클랜의 성공 이후에 가족들과 생활 보호 신청을 했다는 괴인, 올더리 바스타드의 첫 음반이다. 실제로 이 음반의 아트워크는 그의 무료 배식 카드를 그대로 따왔다. 롤링 스톤(Rolling Stone)이 ‘힙합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보컬’이라고 그를 부른 만큼, 음반은 올더리 바스타드의 기괴한 목소리로 가득하다. 리듬 규칙을 최소한으로 지키는 그의 랩은 당대에도, 지금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편에 속한다. 목소리 외에도 유머러스하고, 주술적 내용이 담긴 가사를 올더리 바스타드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올더리 바스타드의 어지럽고 정신없는 랩을 주워 담고, 음반을 정리하는 건 르자의 몫이다. 당시 우탱 클랜 멤버의 곡 대부분을 만들었던 르자는 이 음반에서도 많은 곡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각 곡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난잡한 올더리 바스타드의 랩과 만나며 하나의 구성을 만들어낸다. 이 음반의 흔적은 최근에도 찾을 수 있는데, 힙합에서 한 번은 들어봤을 ‘Shimmy Shimmy Ya’라는 구절이 이 음반에서 탄생했다. - GDB(심은보)


글│bluc, 심은보(GDB), Geda, 류희성, Melo
이미지│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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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12.14 17:24
    좋은글 감사합니다~
  • 12.14 19:26
    이런좋은글에 일메틱 레디투다이 앵무새댓글밖에없는 똥페북수준..ㅜ 좋은글 감사합니다. 대충 속독하려다가 다읽어버렸네요
  • 12.14 19:49
    벅스에 없는 곡들도 따로 추천해주세요ㅠㅠㅠ제발
  • 12.15 16:08
    명반들로 꽉 채우셨네요!
    SWAG
  • 근데 솔트 앤 페파 설명란에 역사상 최초의 여성 랩그룹이라 설명되어있는데 최초의 여성 랩그룹은 시퀀스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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