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 이하 패밀리 스톤)은 가장 핫한 밴드가 되어 있었다. 팝적인 색깔이 다분히 느껴지는 사이키델릭 소울곡 "Everyday People"로 팝 차트와 알앤비 차트에서 동시에 넘버원을 기록했다. "Everyday People"이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패밀리 스톤의 혼합적인 정체성도 한몫했다. 백인과 흑인,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는 패밀리 스톤은 당시까지만 해도 주류 음악계 최초의 혼성·다인종 밴드였다. 음악도 훵크와 록을 적절히 안배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이들이 역사적인 록 페스티벌인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에 올라 록 마니아들을 열광시킨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 Sly & The Family Stone - Thank You (Falettinme Be Mice Agin)
밴드의 성공과는 별개로 리더 슬라이 스톤(Sly Stone)과 내부 사정은 하락세에 놓여 있었다. 슬라이 스톤은 극심한 약물 중독에 빠졌고, 이로 인해 예정된 공연 1/3가량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승세를 타고 차기작을 준비해야 함에도 그는 녹음실에도 잘 나타나지 않았다. 소속사 에픽 레코드(Epic Records)의 대표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는 그를 독촉했다. 성화를 못 이긴 슬라이 스톤은 훵크곡 "Thank You (Falettinme Be Mice Elf Agin)"을 녹음했다. 정규 앨범을 발표할 정도의 녹음 분량이 나오지 않자, 에픽 레코드는 "Thank You (Falettinme Be Mice Elf Agin)"와 기존 녹음물들을 엮어 베스트 앨범을 발표했다. 그렇게 허술하게 제작한 [Greatest Hits]는 신곡이 하나 들어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팝 앨범 차트 2위에 올랐다. 차기작에 대한 음악 마니아들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다.
에픽 레코드의 임직원들은 애가 탔지만, 이는 슬라이 스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흑표당은 백인 멤버들을 내보내고 흑인 민권운동가를 만들라고 압박했었다. 급기야 밴드는 슬라이 스톤의 형제들과 나머지 멤버들로 분열되고 있었다. 일부는 탈퇴했고, 빈자리는 새로운 멤버로 채웠다. 일련의 과정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던 슬라이 스톤은 모든 것을 내려놨다. 밴드에서 사용되는 악기 대부분을 다룰 줄 알았기에 낙담하지 않았다. 연주자가 없는 악기는 직접 연주했다. 함께할 수 없는 연주자는 따로 녹음하게 했다. 이런 식으로 녹음한 테이프 위에 다시 녹음하는 오버더빙 방식으로 곡을 완성해갔다. 그런데 한 테이프에 여러 차례 녹음을 한 탓에 음질이 심각할 정도로 저하됐다. 패밀리 스톤의 앨범 [There's A Riot Goin' On]이 녹음 기술이 발전한 70년대의 앨범임에도 음질이 탁하고 거친 이유다. 변한 것은 음질만이 아니었다. 전체적인 색깔과 음악관도 변했다. 전작 [Stand!]가 낙관주의라는 60년대의 사조를 담아냈다면 [There's A Riot Goin' On]의 음악은 탁하고 암울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물음에 슬라이 스톤은 "기쁘지도 즐겁지도 않은 현실 속에서 마치 그런 척 행세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슬라이 스톤의 남다른 철학관은 커버 아트워크에서도 드러난다. 확대된 성조가 담겼는데, 자세히 보면 조금 다르다. 별이 있어야 할 자리에 태양이 있다. 이에 슬라이 스톤은 이렇게 설명했다.
커버의 검은색은 색의 부재를, 흰색은 모든 색의 조합을, 붉은색은 모든 사람이 가진 것(피)을 의미한다. 성조기의 별 대신 태양을 넣은 건, 별은 사람들이 달성해야하는 그 무엇으로 여기지만, 이 세상에는 이미 무수히 많은 별이 존재한다. 하지만 태양은 하나다. 그리고 태양은 절대 사라지지 않으며 항상 당신과 함께한다."
[There's A Riot Goin' On]에서 싱글로 발표된 "Family Affair"은 팝 차트와 알앤비 차트에서 동시에 넘버원을 기록했다. 앞서 발표한 "Everyday People"과 "Thank You (Falettinme Be Mice Elf Agin)"에 이은 넘버원 싱글이었다. 그런데 앞선 곡들이 맑고 긍정적인 소리를 발산했던 것과는 달리 "Family Affair"는 어두웠다. 슬라이 스톤의 음성은 건조하다. 그의 여동생이자 패밀리 스톤의 멤버인 로즈 스톤(Rose Stone)이 함께하긴 하지만, 전작들에서 선보였던 멤버들이 함께한 음성은 등장하지 않는다. 로즈(Rhodes) 건반을 연주하는 빌리 프레스턴(Billy Preston)과 리듬 기타를 연주한 바비 워맥(Bobby Womack)이 다였다. [There's A Riot Goin' On]을 대표하는 이 싱글은 화려한 성공,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무너지는 밴드의 현주소를 동시에 보여준다.
[There's A Riot Goin' On]은 전반적으로 훵크임에도 신나는 사운드와는 거리가 있다. "Brave And Strong"과 "(You Caught Me) Smilin'"은 기존 춤곡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음울한 분위기가 쓰인 탓에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소비되기 어려웠다. 이렇듯 밴드의 정체성과 성격이 전혀 달라졌음에도 [There's A Riot Goin' On]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팝 앨범 차트와 알앤비 앨범 차트에서 모두 넘버원에 올랐다. 밴드가 불안정하고, 음질이 조악함에도 부정할 수 없는 탁월한 음악성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았던 음질 저하, 신선한 질감과 분위기는 기존의 훵크와 사이키델릭 뮤직과는 전혀 다른 쾌감을 느끼게 했다.
이전까지 패밀리 스톤이 보여준 음악세계는 음악 마니아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주었다. 그러니 이 모든 변화에 다 이유가 있을 거란 신뢰가 있었던 셈이다. 그 정도로 당시 '슬라이 스톤 앤 패밀리 스톤'이란 브랜드의 가치는 그 어떤 것보다도 확실했다.
글 |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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