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열전] Nelly
음반 구매를 목적으로 레코드점에 가 보면 수많은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재림이나 그 후계자들의 향연을 마주하게 된다. ‘제2의 누구누구’, ‘누구누구의 환생’ 식의 홍보 문구들은 해당 뮤지션들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한 상술이며, 재즈 평론가 김현준 씨가 저서에서 주장한 “재즈 연주자에게 다른 연주자에게 ‘어느 누구의 연주 스타일과 유사하다’는 말을 건네는 것은 모욕”이라는 말까지 무색하게 한다. 물론 어떤 음악가도 ‘무’의 상태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지는 못한다. 기존의 것을 레퍼런스로 삼고 그것을 발전시켜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론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것도 어떠한 기준이 존재할 때에나 가능한 행동이다.
동부, 서부, 그리고 남부에서 힙합이 번영하고 있던 90년대에 중서부, 특히 넬리(Nelly)의 홈그라운드인 미주리 주에는 기준으로 삼을 만한 선배가 없었다. 스카페이스(Scarface)라는 거물급 랩퍼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텍사스에 위치한 랩어랏(Rap-A-Lot Records)과 계약하고 전설적인 남부 힙합 그룹 게토 보이즈(Geto Boys)의 활동으로 고향을 비운 상태여서 중서부 힙합의 발전에는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이끌어 주는 선배의 부재는 자연스럽게 지역적 색깔의 모호함으로 이어졌다. 이 문제는 중서부에 강력한 중심 도시가 없다는 배경에 근거했다. 서부는 L.A., 동부는 뉴욕, 남부는 텍사스와 애틀랜타와 같이 해당 지역 뮤지션들이 결속할 수 있는 지역이 있어서 힘을 모아 자신들의 특색을 만들어나갔는데, 중서부에는 그런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중서부의 힙합 아티스트들은 물리적으로 근접한 지역의 색을 차용하거나 자신들의 개성을 찾아나섰다. 넬리는 후자의 경우였다. 가볍고 쉽게 즐길 수 있는 파티 사운드는 비교적 근접한 남부 지역의 크럽튠과 얼핏 유사했으나 비음이 강하게 섞인 중서부 억양과 노래하듯 다분히 대중친화적인 랩핑을 갖췄다는 점에서 기존의 소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머피 리(Murphy Lee)와 함께 멤버들을 모아 세인트 루나틱스(St. Lunatics)라는 그룹을 꾸렸다. 그들이 근거지로 삼고 있던 세인트루이스에서만큼은 가장 '핫'한 힙합 스쿼드였음이 분명했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여기서 넬리는 그룹보다는 개인 활동을 통한 성공이 훨씬 수월할 것임을 직감했다. 그의 직감은 탁월했다. 유니버설 뮤직과 계약한 뒤 내놓은 데뷔 앨범 [Country Grammar]는 2000년 최고의 히트 앨범이었다. "Country Grammar (Hot Shit)", "Ride wit Me"가 모두 싱글 차트 탑텐이 진입했고, "E.I."도 16위에 올랐다. 가벼운 댄스를 유도해내는 파티튠("Country Grammar (Hot Shit)", "E.I.")과 알앤비, 라틴 팝을 접목한 “Ride Wit Me"가 모두 성공을 거두면서 넬리는 순식간에 슈퍼스타로 등극하게 된다.
2년 뒤에 내놓은 2집 앨범 [Nellyville]은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미신을 비웃듯 이전보다 더욱 큰 성공을 달성한다. 넵튠즈(The Neptunes)가 프로듀스한 "Hot In Herre"은 전작의 파티튠들보다 훨씬 더 중독적이고 강력해진 사운드를 보여주며 넵튠즈와 넬리 모두에게 성공시대를 열어준 대형 싱글이었다. 이 싱글은 무려 7주 동안이나 싱글 차트 1위를 지켰으나 결국 자신의 또 다른 싱글인 "Dilemma"가 1위에 오르며 정상을 내주게 된다. 이 곡은 켈리 롤랜드(Kelly Rowland)가 피처링한 곡으로 힙합의 소리보다는 알앤비적 요소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Dilemma"를 향한 대중들의 반응은 "Hot In Herre"보다도 훨씬 더 뜨거웠다. 싱글은 300만 장이 넘게 팔렸으며 싱글 차트 넘버원도 무려 10주를 기록했다. 이 두 싱글을 합치면 넬리는 한 해에 넘버원을 17주 동안이나 기록한 셈인데, 같은 해에 각각 10주와 8주간 정상을 지킨 아샨티(Ashanti)의 "Foolish"와 에미넴(Eminem)의 "Lose Yourself"(2003년까지 치면 12주 연속) 같은 대작의 기록을 웃도는 굉장한 기록이다. 이런 싱글들에 힘입어 첫 두 앨범의 판매량은 미국 내에서만 1,500만 장이 넘는 엄청난 레코드 세일즈를 달성했다.
넬리는 이 두 장의 솔로 앨범 중간에 자신이 속한 세인트 루나틱스의 앨범도 작업했는데,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음에도 플래티넘을 달성했다는 것은 '넬리 효과'의 영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세인트 루나틱스에서 넬리 다음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개성을 갖췄던 머피 리는 [Nellyville] 발매 바로 이듬해에 자신의 솔로 데뷔 앨범 [Murphy's Law]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넬리를 포한한 세인트 루나틱스의 멤버들을 포함해, 지역 선배 토야(Toya)와,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 릴 존(Lil Jon), 릴 웨인(Lil Wayne) 같은 남부의 스타들을 대거 동원해 큰 관심을 모았다. 특히, 넬리와 디디(Diddy)가 함께 한 "Shake Ya Tailfeather"는 영화 <나쁜 녀석들 2>의 사운드트랙이었을 뿐만 아니라 넬리가 대세로 구축해놓은 '세인트루이스' 형 힙합 파티튠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곡으로, 대단한 인기를 거머쥐며 싱글 차트 넘버원에 등극했다. 화려한 피처링진, 히트 싱글, 그리고 넬리 효과에 힘입어 머피 리의 앨범 또한 플래티넘을 달성하게 된다. 이처럼 2000년대 초, 넬리의 파급력과 힘은 지대한 것이었다. MTV를 비롯한 전 세계 음악 방송들은 "Dilemma", "Hot in Herre", "Shake Ya Tailfeather"로 채워졌다.
♪ Nelly (Feat. Kelly Rowland) - Dilemma
3집 앨범을 위해 녹음을 하던 넬리는 새로운 발상을 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두 장의 앨범을 동시에 발매하는 것이었다. 작업하던 녹음물이 많기도 했고, 그가 지향하던 두 가지 사운드(알앤비 지향적 소리와 강한 갱스터 사운드)가 모두 각자의 개성을 갖고 있으니, 두 장의 앨범으로 따로 담아 발매하기로 한 것이다. 알앤비 친화적 트랙들은 [Suit]에, 조금은 둔탁하고 강한 소리의 곡들은 [Sweat]에 담겨졌다. (발매 첫 주, [Suit]과 [Sweat]이 나란히 앨범 차트 1, 2위를 기록한 것을 보면 넬리 효과의 힘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강하고 공격적인 소리보다는 알앤비 친화적인 소리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수밖에 없어서 [Suit]이 [Sweat]보다 더 큰 성공을 거뒀다. [Suit]의 "My Place"와 "Over And Over"는 과거 "Dilemma"의 연장선에 있는 트랙들로 각각 싱글 차트 4위와 3위에 오른 반면, 넬리의 강한 갱스터의 모습을 드러낸 [Sweat]의 트랙들은 50위권 밖에 랭크되었다. 앨범 세일즈에서도 이런 차이는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Suit]은 트리플 플래티넘을, [Sweat]은 싱글 플래티넘을 달성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하게 팬들이 그의 부드러운 면만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 두 장의 앨범을 합한 편집 앨범 [Sweatsuit]에 새롭게 수록된 갱스터 랩 트랙 "Grillz"가 넘버원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2004년을 마지막으로 정규 앨범 활동을 쉬었던 넬리는 4년 만에 [Brass Knuckle]로 컴백하게 된다. 그는 대중친화적인 "Wadsyaname", "Body On Me"와 파티 트랙 "Party People"를 공개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긴 했지만,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가 가졌던 휴식기 동안 대세가 남부의 클럽 사운드로 방향을 틀어버린 탓이었다. 2006년부터 시작된 남부 힙합로 채워져 가던 힙합 시장에 넬리가 들어갈 틈은 없었다. 휴식기 사이에 힙합은, 넬리가 힙합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시절에는 그저 가능성 있는 남부의 스타들에 지나지 않았던 T.I.와 릴 웨인(Lil Wayne)이 이끌어가는 구도로 완전히 변해버렸다.
결국, 넬리는 타협을 결정한다. 바로, T.I.의 "Whatever You Like"과 릴 웨인의 "Lollipop"을 통해 2008년에만 두 개의 넘버원을 제작한 짐 존신(Jim Jonsin)과의 합작을 결심한 것이다. 그 결과 완성된 곡이 남부 힙합과 그가 기존에 갖고 있던 알앤비적 색채를 더한 "Just a Dream"이었다. 반응은 굉장했다. 싱글은 "Dilemma"만큼의 판매량을 기록했고, 싱글 차트 3위에 오르며 정규 앨범 수록 싱글로는 2004년 이후 첫 탑텐을 이뤄냈다. "Just a Dream"이 수록된 6집 앨범 [5.0]에서 넬리는 남부 힙합과 전자 소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이런 선택은 "Just a Dream"이 싱글 차트에서 높은 랭크를 차지하면서 가시적으로는 성공으로 비춰졌지만, 결과적으로는 독이 되었다. 켈리 롤랜드와 함께한 "Gone"은 '제2의 딜레마'가 될 것이라며 기대를 모았지만, 전자 소리의 활용은 이 둘이 들려줬던 순수하고 설레던 사랑의 분위기를 반감시켜버리고 말았다. 곡이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Dilemma" 코러스에서만큼의 장악력을 지니지 못했고, ‘제2의 딜레마’라는 홍보는 기존 명곡의 빛에 신곡이 바래버리는 역효과를 낳았다. 변화를 위한 시도와 함께 화려한 피쳐링진을 동원한 앨범이었지만 [5.0]은 대중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한 채로 스쳐지나가 버렸다.
♪ Nelly (Feat. Nicki Minaj & Pharrell Williams) - Get Like Me
이제 넬리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역량을 펼쳐내 보이려고 하고 있다.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Hey Porsche"는 근 몇 년간 팝 음악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팝록 밴드의 소리를 차용한 넬리식 대중친화적 힙합 트랙이며, "Get Like Me"는 2000년대 초의 힙합과 최근의 사운드 경향을 조합하려는 시도가 드러나는 곡이다. "Get Like Me"는 "Hot in Herre"로 큰 재미를 봤던 퍼렐(Pharrell)과의 조우지만, 곡의 사운드와 뮤직비디오의 컨셉은 "Hot in Herre"보다는 넵튠즈의 또 다른 메가히트 트랙 "Drop It Like It's Hot"에 가깝다. 이는 유행에 뒤떨어진 과거 영웅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과한 소리보다는 절제된 사운드를 지향하는 현대적 경향과 넬리가 주도했던 시대의 소리의 교집합을 짚어낸 해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넬리는 지난 앨범부터 현재까지의 공백기 동안 첫 공식 믹스테입 [O.E.MO]을 발표했고, 여기서 'MO'를 따서 이름을 붙인 새로운 앨범 [M.O.]의 발표를 앞두고 있다. 최근 몇 장의 앨범과 힙합 시장의 추세를 보았을 때, 넬리가 이번 앨범을 통해 빠르게 과거의 페이스를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트렌드를 차용하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개인적으로 넬리의 오랜 팬으로서, 그가 새로운 앨범 [M.O.]에서 과거와 현재의 힙합 사운드를 멋지게 결합해내며 자신이 현대 힙합 씬에서 살아남기에 급급한 과거의 뮤지션이 아닌 현재진행형 슈퍼스타라는 것을 증명해주기 바란다.
글│greenplaty
편집│soulitude
그나마 딜레마 가사 다 아는 여성분 없냐니까 아무도 손 안들고ㅜ
S E L L - O U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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