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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헤이즈의 진심

Melo2017.07.19 23:10추천수 5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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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헤이즈의 진심

딱 하루 전까지만 하더라도 멜론(Melon) 음원 차트 부동의 1위는 헤이즈(Heize)였다. 엑소(EXO)의 컴백으로 잠시 밀려나긴 했지만, 어쨌든 그는 지난 보름여 간 지코(Zico)와 레드 벨벳(Red Velvet) 같은 대어의 귀환에도 자리를 잠깐잠깐 내줄 뿐이었다. 바이브(Vibe)의 피를 이어받다 못해 홀로 우뚝 선 신용재와의 듀엣곡 “비도 오고 그래서”는 적어도 차트에서는 그들을 압도할 만큼 폭넓은 층위를 공략할 수 있는 감성적인 발라드 넘버였다. 이로써 헤이즈는 어쩌면 ‘여름 하면 헤이즈, 헤이즈 하면 여름’이라는 공식을 더욱 완벽하게 성립한 걸지도 모른다. 찌는 더위를 날려버리고 싶을 때는 정확히 지난해 이맘때쯤 발표한 미니 앨범 [And July]가, 추적추적 비 오는 날에 감성에 젖고 싶을 때는 [/// (너 먹구름 비)]가 담당(?)한다. 수많은 봄 노래처럼 단순히 일회성으로 계절감을 활용한 게 아니라 여름이라는 계절 전체를 두 가지 갈래로 나눠 장악했다고 하면 적절할까. 이젠 매년 여름마다 그의 노래가 좀비처럼 차트에 올라와도 어색할 게 없다. 단언컨대, <언프리티 랩스타 2>의 진정한 최대 수혜자는 우승자 트루디(Truedy)도, 지옥에서 살아 돌아와 판을 뒤엎은 예지(Yezi)조차도 아닌 헤이즈였다.




사실 애초에 <언프리티 랩스타 2>는 헤이즈를 위한 판이 아니었다. 이전부터 감성적인 음악을 해왔던 그에게 힙합을 센 것으로만 바라보는 미디어의 틀, 그 속에서 조장되는 캣파이트(Catfight)는 맞지 않았다. 많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실제로 헤이즈는 촬영을 진행하는 동안 “억지로 센 척해야 하고, 돈이 없는데도 많은 척을 해야 하고, 욕을 해야 해서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엠넷(M.Net)이 만든 프레임 안에 구겨 넣어져야 했지만, 기어코 적응하고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그다음, 본래의 모습으로 이뤄낸 상업적 성공들은 거진 본인의 몫이었다. 여기까지의 과정에는 자신이 평범하다고 인지하고, 스스로 잘 소화할 수 있을 만큼의 노래를 만드는 현실적인 태도가 외려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딱 듣기에 귀에 거슬리지 않을 만큼의 랩과 보컬을 겸하며 힙합에서나 팝에서나 최고의 결과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누군가는 불도저처럼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스타일을 그대로 밀어붙여 성과를 보인다면, 그는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의 타협점을 찾음으로써 세상과 악수하며 성과를 끌어냈다. 마치 1년 휴학을 허락받아 상경하기 위해 끝내 학기 올 A+를 받아내며 아버지와의 거래를 성사시킨 장다혜처럼.



♬ 헤이즈 (Feat. Dean, DJ Friz) - And July


처음의 기회는 우연적이었지만, 이후에 내세운 진심에 기반을 둔 헤이즈의 전략 아닌 전략은 필연적이었다. 앞서 언급한 두 작품 [And July]와 [/// (너 먹구름 비)]는 누가 봐도 시기를 노린 게 티가 난다. 다만, 그 내부를 채우는 내용물은 이 앨범들이 음악 외적인 마케팅만을 앞세우지 않음을 증명한다. 두 결과물의 쌍두마차 같은 트랙들인 “And July”, “Shut Up & Groove”와 “널 너무 모르고”, “비도 오고 그래서”가 대표적이다. “And July”와 “Shut Up & Groove”은 퍼지는 드럼톤과 밝은 톤의 악기 구성, 속도감 있는 전개로 승부를 본다. 이 두 곡에서 지난해 절정의 인기를 자랑했던 딘(Dean)의 기여도가 만만치 않은 반면, “널 너무 모르고”에서는 오로지 헤이즈 혼자 래퍼와 싱어 두 역할을 매끄럽게 소화한다. 흔히 말하는 싱랩이 아니다. 명확히 구분되는 노래 파트, 랩 파트 각각의 흐름을 따로 또 같이 모난 부분 없이 가져간다.

이는 마치 그가 처음 랩에 관심을 갖게 해준, 친구의 미니홈피 속 BGM으로 접했던 프리스타일(Free Style)의 “그리고 그후” 혹은 시대를 풍미한 노래 “Y (Please Tell Me Why)”에서 남자 래퍼, 여자 보컬로 분절된 구성을 합치해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또한, 이런 과거의 랩발라드 넘버 특유의 딱딱한 랩 플로우, 신파적인 후렴구를 덜어내고, 좀 더 자연스러운 퍼포먼스로 그 자리를 채운다. 그리고는 이별한 상대에게 지금 남자친구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내 남자친구가 고맙대”), 클럽이라도 좀 가라고 하던(“클럽이라도 좀 가”) 예전처럼 상투적이지 않은 가사를 그 위에 올린다. “옷을 고를 시간에 30분 더 안아줄” 걸 그랬다며 후회하고, “옷 사이즈는 알았어도 마음의 크기는 몰랐”다며 한탄한다. 이 노랫말들은 다른 평범한 사랑 노래와는 차별화되면서도 충분히 보편성을 획득하며 헤이즈가 내보이는 이별의 정서를 부각한다. 이렇듯 헤이즈는 대중을 매료시키는 명쾌하고도 다양한 포인트를 분명하게 갖고 있다.


♬ 헤이즈 - 널 너무 모르고


그래서 헤이즈가 지금까지 얻어낸 인기는 결코 운에 의한 거품이 아니다. 그 출발점이었던 “돌아오지마”의 역주행 현상만 봐도 전 애인으로 알려진 크루셜 스타(Crucial Star)와의 관계가 큰 맥락으로 작용했다고 하기에는 비약이 너무 크다. 용준형이 참여하며 현 하이라이트(Highlight) 구 비스트(BEAST)의 팬덤이 힘을 보태준 결과라고 하기에도 힘들다. 대신 태도가 이율배반적이라 더욱 현실적인 가사와 적정한 파트너를 찾는 등 기존의 랩발라드보다 좀 더 유려하게 꾸린 구성이라는 내재적인 이유가 보다 크게 작동한다. 그리고 이것은 특이하고 생활 밀착적인 가사로 인기를 누리는 몇몇 인디 아티스트도, 화려하고 다양한 사운드와 구성을 갖춘 아이돌 그룹들도, 탄탄한 랩스킬로 중무장한 래퍼들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이지 리스닝 계열의 발라드, 알앤비로 수많은 매장을 늘 점령하고 있는 어반 자카파(Urban Zakapa)의 것에 위의 세 집단의 특징을 조금씩 더한 새로운 무언가에 가깝다. 따지고 보면, 시스템에 의한 강제성을 어느 정도 참은 끝에 비로소 자기 것을 할 수 있게 된 과정도, 음악을 BGM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큰 현재의 일반 대중들에게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결과도 모두 지극히 한국적이었던 셈이다. 순위보다는 그저 노래에 담긴 진심이 듣는 이에게 전해지길 바란다는 헤이즈는 그렇게 케이팝의 새로운 단면이 되었다.


글 | Melo
이미지 | ATO


신고
댓글 9
  • 7.20 00:22
    좀 놀랐습니다 헤이즈가...? 했네요 언프리티 이후에
  • 7.20 01:58

    그냥 언프리티에 홍보하러 나온 래퍼인줄 알았는데 사실 노래를 훨씬 잘해서 EP로 빵 떠버렸고, 근데 이거보다 더 히트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싱글 저 별부터 심상치 않더니 작년을 넘는 히트를 보여주네요. 딘 크러쉬랑 묶여도 될만큼 뛰어난듯

  • 7.20 03:02
    좋은 글입니다!!
    단순히 쌘척하고 랩잘하는척 하는 많은 여자랩퍼들보다 자기한테 어울리는 음악 하는게 좋아서 응원했었던 아티스트였어요.
    순위안에 있어도 차트 신경안쓰는 저는 크게 생각안해본 부분이였는데 글 읽어보고 좀더 깨닫게 되네요!
  • 7.20 03:15
    매력있지 헤이즈
  • 7.20 04:05
    편견때매 안들었는데 자기 영역이 있는 아티스트였네여 좋은 곡 듣고 갑니다
  • 7.20 07:42
    적성에 맞는 진로 상담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 7.20 16:46
    디스전 영상에서 헤이즈 왤케 괴로워보임 ㅋㅋ 지금이야 뭐 잘나가지만..
    헤이즈는 진짜 요새는 단순히 랩잘하는거보단 전체적으로 음악을 잘해야 뜬다는걸 잘보여주는듯
  • 7.20 23:13
    언프리티..ㅋㅋ
  • 7.21 08:04
    제일 놀라운건 헤이즈의 성공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는거죠. 언론플레이나 기획사에서 만든 천재기믹으로 대중에게 인정해달라 억지를 부린것도 아니고 정말 음악으로 인정받고 대중까지 사로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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