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많은 의견들을 보고 공감하는 의견도 많았고
서로 대립되는거 보고 양측 다 의견 들으면서 공부가 많이 되었어요
제 경험담을 적을려거 하는데 그냥 가볍게 읽어주세요
전 군제대후 일본 유학와서 게임 일러스트를 배우러 왔어요
제가 90년대 2D격투게임 황금기를 보낸 사람이라
격투게임에 나오는 캐릭터들 만들고 하는게 꿈이였어요
어릴적부터 그림 그렸고 만화도 그렸고 입시미술도 3년간 했고요
그리고 막상 어학교 나오고 일본에서 제일 큰 게임이랑 그런거 전공하는
전문학교 알아보니 게임과 면접때 요즘은 3D아님 먹고 살기 힘들고
당장 취업도 힘들다고 해서 차라리 애니메이션으로 가라고 그쪽은
취업 100퍼센트라고 해서 애니메이션도 나름 보고 해서 과를 바꿔
진학했어요
그러고 1학년 마치고 선배들한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는데
애니메이션 업계는 크게
원화,동화,마무리,작업진행으로 나뉘는데
원화는 열개의 코마로 나뉜 그림중 축구슛이라 치면 공차기전과 찬후
즉 시작과 끝 이 두장만 그리고 나머지 움직임이 동화팀이
안에 이어지는 움직임들을 그리는데
이원화가 두목이고 동화가 쫄따구인데
원화는 대략 월급이 (지브리 이런데는 완전 삼성이런급이고 대개 하청등 )
15-20만엔 동화는 장당 150엔-180엔 (2007년 기준)입니다
일단 취업되어도 근 십년간 위로 올라가기 함들고
동화만 죽어라 그려도 많아야 10만엔 그리고 일정하게 일이 있는게
아니라 오늘은 일 없으니 가라 라고 하면서 퇴근하고
일 많은 날은 철야야근하며 진짜 크고 바쁜회사는 한달도 집에 못가고
회사에서 사는게 대다수입니다
저희 교수가 10년넘게 종사하다가 한달 못가서 고양이 죽고
알고 있었지만 진짜 결혼도 못할거 같아서 관두고 학교교수로 전직했어요
그런데도 흔히 말하는 열정페이로 연애 취미 결혼 다 포기하고
오로지 애니메이션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 일하는곳입니다
전 동화로 하청 회사에 취업해서 주로 티비판인
코난과 사쿠라 에도 뭐시기 등을 그렸는데
학교때랑 달라 힘들어서 시아게 라고 컴퓨터로 보정 수정하고
마무리 짓는 부서로 옮겼습니다 여긴 장당 150엔인데
그나마 동화보단 부담이 덜 되어서 편했어요
그러다 극장판 하청 들어왔는데 진짜 삼일 집에 못가고
칫솔셋트 사서 샤워만 우연히 우리과 친한형이 살아서 거기서
대충 씻고 작업했어요
그땐 그래도 재밌고 했는데 이거 옷도못사고 옷 사기는 커녕
있는 옷도 못갈아 입겠네 하다가 결국 우리회사 도산 하고
5-6개월 다니다 윌급 한푼도 못받고 교통비만 제가 내고
망했네요 사장이 한국사람인데 밀린 월급 입금 시켜준다고 하고
결국 무소식에 지금 와이프인데 당시 사귀고 같이 살았던
여자친구의 아버지 유산 나눠 가진 걸로 생활하면서 그동안버티고
집에다가도 취직했다고 해서 용돈 거절해서 진짜 난감했어요
그나마 취업비자는 유지되고 갱신때까지 재취업하면 되어서
재류자격은 되어서 취업활동은 되었습니다
그러다 부장도 튀고 인사과 아줌마가 소개시켜줘서 간곳은
더 심하고 텃세도 심해서 오래 못버티고 관두고 애니업계
정 떨어져서 게임쪽으로 찾았는데 대개 다 비자 갱신 안되고
3개월 인턴에 일주일만 보자고 하고 돈 한푼 못받고 잡일만 하다가
튕기고 저도 질려서 여기저기 알아보다 파칭코 기계게임화면 만드는
회사도 들어갔다 나오고 일러스트회사 웹매거진 등 다른분야도
알아봤는데 이 취업비자가 기술이란 장르만 가능한곳이라
오로지 그리고 만들고 하는곳만 가능하여 제한이 있어서 어렵더군요
여기저기 허송세월 보내다 비자갱신 안하고
한국가서 니고 당시 사쿤보고 스트릿 하갰다고
동대문 가서 한달 있었는데 여긴 맨날 샘플 뜬다고
넷에서 일본 옷들 사진 퍼다가 하루종일 저장하고
일본거 베껴서 찍어내는게 제 적성에 안맞아 더구나
스트릿도 아닌지라 관두고 여자친구와 결혼후 다시 일본와서
대학때 다닌 버거킹 경험 있어서 버거킹 알바 했는데
스케줄 잘 안 넣어줘서 월급 3-4만엔 받고 하다가
지금 과일 장례업체에 취직하게 됐습니다
지금 회사도 말이 주식회사지 그냥 가족들이 경영하는 화사라
복지도 엉망이고 국민연금도 안내주고 하는데 정사원 아니라
슈프림 캠핑하고 싶음 상사랑 날짜 조절 가능하고 빡세게 야근하고
하면 20만엔 넘게도 벌어서 전공과 꿈이 전혀 아닌데도 계속 하게되네요
이일도 통풍이랑 편두통때문에 몇번을 관뒀는데 다시 받아주고
저또한 그런일들로 좀 얽매여져서 큰소리 못내고 하고있어요
그나마 주로 차량업무라 대기 시간 많고 그시간에는 엘이도 할수있고
슈프림 캠핑도 가능하고 해서 그냥 이상태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저번엔 라라랜드보고 다시 돌아도 보고
오늘일들 보고 다시한번 느낀것도 많네요
그래도 한국에선 여유로운 삶을 살수있는데
전에 꿈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꿈도 없고
그냥 이 현실에 안주하며 울타리 쳐놓고 살고있네요
글쏨시도 없고 차음 의도는 애니업계 비판성 글로 하려고 했는데
1년채 하지도 못하고 해서 그럴 자격도 없어서 그냥 삼천포로 빠졌네요
메세지성 글은 아니고 그냥 언젠가는 한번 털어놓고 싶었어요
요즘은 슈프림만 사는 인생이 된거 같기도 하고
근데도 슈프림이나 여행들을 또 생각하면
열심히 돈 모으고 즐겁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이거 완전 발달장애잖아 라고 자괴감에 빠지다가도
또 좋아지기도 하고 그런날의 연속이네요
오늘 글들 보고 자극도 많이 받았고요
아무튼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로 대립되는거 보고 양측 다 의견 들으면서 공부가 많이 되었어요
제 경험담을 적을려거 하는데 그냥 가볍게 읽어주세요
전 군제대후 일본 유학와서 게임 일러스트를 배우러 왔어요
제가 90년대 2D격투게임 황금기를 보낸 사람이라
격투게임에 나오는 캐릭터들 만들고 하는게 꿈이였어요
어릴적부터 그림 그렸고 만화도 그렸고 입시미술도 3년간 했고요
그리고 막상 어학교 나오고 일본에서 제일 큰 게임이랑 그런거 전공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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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했어요
그러고 1학년 마치고 선배들한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는데
애니메이션 업계는 크게
원화,동화,마무리,작업진행으로 나뉘는데
원화는 열개의 코마로 나뉜 그림중 축구슛이라 치면 공차기전과 찬후
즉 시작과 끝 이 두장만 그리고 나머지 움직임이 동화팀이
안에 이어지는 움직임들을 그리는데
이원화가 두목이고 동화가 쫄따구인데
원화는 대략 월급이 (지브리 이런데는 완전 삼성이런급이고 대개 하청등 )
15-20만엔 동화는 장당 150엔-180엔 (2007년 기준)입니다
일단 취업되어도 근 십년간 위로 올라가기 함들고
동화만 죽어라 그려도 많아야 10만엔 그리고 일정하게 일이 있는게
아니라 오늘은 일 없으니 가라 라고 하면서 퇴근하고
일 많은 날은 철야야근하며 진짜 크고 바쁜회사는 한달도 집에 못가고
회사에서 사는게 대다수입니다
저희 교수가 10년넘게 종사하다가 한달 못가서 고양이 죽고
알고 있었지만 진짜 결혼도 못할거 같아서 관두고 학교교수로 전직했어요
그런데도 흔히 말하는 열정페이로 연애 취미 결혼 다 포기하고
오로지 애니메이션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 일하는곳입니다
전 동화로 하청 회사에 취업해서 주로 티비판인
코난과 사쿠라 에도 뭐시기 등을 그렸는데
학교때랑 달라 힘들어서 시아게 라고 컴퓨터로 보정 수정하고
마무리 짓는 부서로 옮겼습니다 여긴 장당 150엔인데
그나마 동화보단 부담이 덜 되어서 편했어요
그러다 극장판 하청 들어왔는데 진짜 삼일 집에 못가고
칫솔셋트 사서 샤워만 우연히 우리과 친한형이 살아서 거기서
대충 씻고 작업했어요
그땐 그래도 재밌고 했는데 이거 옷도못사고 옷 사기는 커녕
있는 옷도 못갈아 입겠네 하다가 결국 우리회사 도산 하고
5-6개월 다니다 윌급 한푼도 못받고 교통비만 제가 내고
망했네요 사장이 한국사람인데 밀린 월급 입금 시켜준다고 하고
결국 무소식에 지금 와이프인데 당시 사귀고 같이 살았던
여자친구의 아버지 유산 나눠 가진 걸로 생활하면서 그동안버티고
집에다가도 취직했다고 해서 용돈 거절해서 진짜 난감했어요
그나마 취업비자는 유지되고 갱신때까지 재취업하면 되어서
재류자격은 되어서 취업활동은 되었습니다
그러다 부장도 튀고 인사과 아줌마가 소개시켜줘서 간곳은
더 심하고 텃세도 심해서 오래 못버티고 관두고 애니업계
정 떨어져서 게임쪽으로 찾았는데 대개 다 비자 갱신 안되고
3개월 인턴에 일주일만 보자고 하고 돈 한푼 못받고 잡일만 하다가
튕기고 저도 질려서 여기저기 알아보다 파칭코 기계게임화면 만드는
회사도 들어갔다 나오고 일러스트회사 웹매거진 등 다른분야도
알아봤는데 이 취업비자가 기술이란 장르만 가능한곳이라
오로지 그리고 만들고 하는곳만 가능하여 제한이 있어서 어렵더군요
여기저기 허송세월 보내다 비자갱신 안하고
한국가서 니고 당시 사쿤보고 스트릿 하갰다고
동대문 가서 한달 있었는데 여긴 맨날 샘플 뜬다고
넷에서 일본 옷들 사진 퍼다가 하루종일 저장하고
일본거 베껴서 찍어내는게 제 적성에 안맞아 더구나
스트릿도 아닌지라 관두고 여자친구와 결혼후 다시 일본와서
대학때 다닌 버거킹 경험 있어서 버거킹 알바 했는데
스케줄 잘 안 넣어줘서 월급 3-4만엔 받고 하다가
지금 과일 장례업체에 취직하게 됐습니다
지금 회사도 말이 주식회사지 그냥 가족들이 경영하는 화사라
복지도 엉망이고 국민연금도 안내주고 하는데 정사원 아니라
슈프림 캠핑하고 싶음 상사랑 날짜 조절 가능하고 빡세게 야근하고
하면 20만엔 넘게도 벌어서 전공과 꿈이 전혀 아닌데도 계속 하게되네요
이일도 통풍이랑 편두통때문에 몇번을 관뒀는데 다시 받아주고
저또한 그런일들로 좀 얽매여져서 큰소리 못내고 하고있어요
그나마 주로 차량업무라 대기 시간 많고 그시간에는 엘이도 할수있고
슈프림 캠핑도 가능하고 해서 그냥 이상태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저번엔 라라랜드보고 다시 돌아도 보고
오늘일들 보고 다시한번 느낀것도 많네요
그래도 한국에선 여유로운 삶을 살수있는데
전에 꿈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꿈도 없고
그냥 이 현실에 안주하며 울타리 쳐놓고 살고있네요
글쏨시도 없고 차음 의도는 애니업계 비판성 글로 하려고 했는데
1년채 하지도 못하고 해서 그럴 자격도 없어서 그냥 삼천포로 빠졌네요
메세지성 글은 아니고 그냥 언젠가는 한번 털어놓고 싶었어요
요즘은 슈프림만 사는 인생이 된거 같기도 하고
근데도 슈프림이나 여행들을 또 생각하면
열심히 돈 모으고 즐겁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이거 완전 발달장애잖아 라고 자괴감에 빠지다가도
또 좋아지기도 하고 그런날의 연속이네요
오늘 글들 보고 자극도 많이 받았고요
아무튼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이나믹한 삶을 사셨네요..
저도 미디어쪽 종사자지만 이 쪽이 그렇죠 적은 임금으로 꿈만 먹고 살죠.
07년도에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진건 없죠.
그래도 참고 자기계발하면서 능력을 키워라 그러면 달라질 것이다
이딴 소리하는 사람들은 다들 다이아수저는 되나봐요
듣보잡 게임 만드는 회사 조치 들어가기 힘들걸 알고 충격받었어요 ㅋㅋ
플투에서 플삼으로 바뀌면서 중소게임회사 다죽고
이젠 플포 나오면서 다들 블록버스터급 게임들만 나오다보니
다들 모바일로 빠지는데 만약 제가 2006-7년 취업활동
당시 모바일이 대세였다면 또 취업상황이 달랐을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한국은 그래도 자기 소리도 낼수 있는데
여긴 사회 전반적으로 완전 순응하는 쪽이라
진짜 개인으로 장사하는게 제일 편할거 같아요
일본인 국민성 자체가 본인의 속마음이 따로라서 표현하는 것을 곧이 곧대로 믿으면 된다 뭐 그런 것들이었는데..
그래서 그럴까 일본의 정치상황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타국에서 고생 많으신데 힘내세요!
어느새 저도 정식으로 산건 2004년4월5일부터인데
그래서인지 저도 잘 안털어놓게 되네요
일본 정치는 안볼려고해요
진짜 머리 아빠서
감사합니다
살거 다사고 먹을거 다 먹고 갈곳 다 가는 상황이라
고생이라고 하면 욕먹고
아무튼 글로는 못썼지만 결혼반대가 가장
심적으로 고생했어요
아빤 기러기인데 와이프가 연상에
일본여자라 반대가 심했죠
가족이나 친척이나 다들 국적이 바뀌는줄 알고
착각을 하더라구요
그러다 그냥 양국가에서 혼인신고 해버리고
살고있어요
저도 고집 엄청 쌔고 꼴통이라
지금도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힘내세요. 자랑스럽게 사세요.
전 지금 어릴적부터 매일 진짜 훈련병과
군대때 조차 그리던 특기이자 업보로 삼으려했던
그림을 이젠 아에 그리지도 않고 봉인했어요
님은 꼭 성공하시고 잘 지키시길 바랍니다
제 얘긴 그냥 고생도 아니라
블랙기업이라고 악덕기업을 가르키는 말인데
여기 유니클로등과 같은 어패럴 회사와 유통업등이 있는데
진짜 블랙기업은 애니메이션 이죠
아니 여긴 블랙업계임
진짜 노예들
제 동기들 요즘 보면 86이 대부분인데
저보다 더 나이들어 보여요
칠삭둥이에 1.5킬로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지내다
산동네 달동네에서 외할머니랑 살다가
다시 가족 뭉쳐 살다가 100평 넘는 집에서 살고
흔히 말하는 금수저인데 일본에선 꿈 쫓다 여자쫓다
그냥 눈앞에 욕망에만 따라사는 삶이 드라마 같긴해요
뭔 장르 드라마인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지금 27먹는 나이까지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온 거 같네요
아무것도 모르고 아 세상 참 쉽구나 하고 살아오다 갑자기 취준생이 되니까 이제 세상이 좀 보이기 시작하는 거 같아요
어쨋든 참 멋지십니다 ㅎㅎ
제가 좋아서 선택한 삶이고 그냥 과정인거 같고
진짜 고생하시는분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라
그냥 본문에도 말했둣이 설푼거에 불과하죠
요즘은 독립해서 과일전문점이나
진짜 좋아하는 햄버거나 음식점이나 트럭으로
장사 할까 생각중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들어보니까 정말 무시무시하네요
못 버티기고 관두니깐 그래요
그래서 전 일본 애니메이션을 아에 안봐요
너의 이름을 도 안봤어요
그 성공에 취해서 다들 축제 분위기일때
제작회사는 수많은 돈을 벌지만
하청은 그냥 끝이고 어쩔땐 마지막에 이름조차 안나오는
경우가 많아서요
차리리 디즈니 픽사를 좋아하고 자주봐요
그리고 마지막 엔딩대 자기 이름 나오는걸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인데 시아게 같은
마무리 작업 사람들은 이름으로 나오는게 아니고
그냥 회사명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많아서
그런 행복조차 뺏어가죠
그래서 전 드라마나영화 크레딧 유심히 봐요
디즈니나 픽사는 열정페이로 작업 안하나요? 듣기로는 한국 애니메이션 업체에다 꽤나 하청 맡긴다던데 하청업체도 열정페이는 마찬가지겠죠?
한국사람들 이름 많이 나와요
그건 동화쪽이 많죠
일러스트 전공이시군요
저도 학교에서 과목이 있어
제가 제일 좋아하는 포토샵으로 일러스트
그리는걸 좋아했는데
여기 보면 거의다 프리랜서라서
기업과 계약 맺거나 잡지사에 얽매여 있어서
외국인이 하기엔 광장히 힘들어서
왜냐면 일러스트로 어디 회사에 취직하지않는이상
재류자격비자가 안나오거든요
디즈니 픽사는 정말 복지고 다르고
할맛 나는 꿈의 회사 입니다
물론 제작에 대한 고충도 심하지만
일본과는 전햐 달라요
자유롭고 페이도 물론 좋고
무엇보다도 즐기면서 하는곳이라
반면 일본은 공장같이 찍어내고
갈아끼고 하는곳이라 분위기가 완전 다르죠
군대 같기도 하고요
진짜 큰회사 가면 한낮인데
다들 좀비처럼 회사 맨바닥에 널부러 자고
잘때 없는사람은 화장실에 앉아서 자고
에피소드도 많아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전 고생한적 없고 고생이라고 생각도 안해요
저는 저보다 훨씬 열악한 생활에서 진짜 하고싶은것도
못하고 사시는분들 많으셔서
전 집에서 용돈도 타 썼고요
아무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소설 읽듯이 읽어주세요
그 50일 기록이 끊긴 것도 제가 일요일 출근하고선 도저히 못 해먹겠다고 친구에게 전화 걸어 하소연했더니 당장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해서 박차고 나간 거였고요. 그래도 그것 역시 출근은 한 거였지만요ㅎㅎ
아무튼 일본은 그나마 인구라도 많아서 내수라도 돌아가니(내수가 돌아가는 최소 기준이 인구 1억이라고 하니까요) 형편이 낫다 생각했는데 구조적인 문제는 진짜 도긴개긴이로군요.
사람마다 저마다의 생각과 가치관이 있듯 삶을 조율해가는 방식도 제각각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열악한 현실에 치여 꿈을 접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게 되면 씁쓸하죠.
저도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최소 5년은 꿈을 봉인한 채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만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니 과연 5년 후, 혹은 10년 후에라도 과연 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문득 두려워질 때가 있어요. 그리고 해를 거듭할 수록 제 꿈이 점차 작아지는 걸 인지할 때가 제일 마음 복잡하더라고요.
암만 일본에서 오래 체류하시며 여러 가지로 익숙해 지셨다고 해도 타향살이 하시는 스트레스도 무시 못할텐데 건강 조심하시고 일상속 행복을 많이 얻으실 수 있길 바랄게요.
감사하네요
님이 진짜 고생하셨네요
전 여기가 너무 맞아서 타지생활 스트레스를
받아본적이 없어서 정말 괜찮거든요
철이 없는지
일본은 다들 순응하면서 사는거 같아요
한국은 파업하고 자기 목소리도 내고
박근혜때만 봐도 국민이 자기소리 내는데
여긴 시위도 잘 안하고 험한 시위나 하고 있고
근데 요즘 꿈이 있는게
햄버거나 하와이 요리 해보고 싶어요
뭐 꿈은 항상 가지고 있어서
자꾸 바뀌니깐 와이프 잔소리가 ㅋ
특히 자녀분들은 한국에 와서 일본에서 왔다며 따돌림을 받은 것도 있지만 공중도덕과 매너 문제로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겪었다나 보더라고요. 사실 저도 공중도덕에 엄한 편이다 보니 그것을 어기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곤 해서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아무튼 타향살이 스트레스 없이 잘 지내신다니 다행입니다.
이질감이 들때도 았어요
일본은 편의점만 해도 한시도 안놀고
쭉 서았고 계속 체크하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하는데
한국은 핸드폰 보고 플스 갖다놓고 게임하고
친구불러서 같이 놀고 먹고 하는거 보고 충격먹었는데
아참 나도 대학생때 버거킹땐 애들 불러다
감자튀김 몰래 주고 했던거 생각나더라구요
한 일본 오년차까진 솔직히 한국 까고 했는데
오래살고 미국도 가고 여기도 일본도 이젠
다인종이라서 한국의 문화라 인정하고 난후부턴
그런거 없어진거 같아요 그래도 사람이라
가끔 오지랖 부리지만 ㅋㅋ
그냥 재미로 읽어주시는게 가장 맘 편하네요
뭐랄까 수집욕도 많고 여기저기 관심많아서
그에 따라 꿈이 자꾸 바뀌는거 같아요
한국나이로 바스코랑 동갑인데
요즘은 또 다른꿈이 있네요
그런거 생각하면 힘들지도 않네요
행복하게 살았음 하네요
이상하게 자존감이 낮아서
아무한테도 표현못하고 그러다 병이되서
무기력하게 젊음을 낭비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꿈을 쫒는것만으론 답을 찾을 수가 없나보네요.
그래도 꿈을 쫒으셨던 얘기를 들으니까
왠지모르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란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다시 뭉쳐 살면서 여유롭게 살면서 순탄하게
꿈을 그리며 살았어요
초딩6때부터 스트리트 파이터 2에 빠져
만화가 혹은 게임캐릭터 디자이너로 어린나이에
꿈을 정하고 맨날 그림 그리고 연마하고
라이벌들 하고 질투 시기도 하면서
고딩때는 뎃생력 기르고 한다고 입시미술 하고
재대후도 확고한 꿈이 있어 그것만 믿고 살다가
좌절 한후 아에 지금은 그림 봉인하고 다른꿈을
꾸며 살고있어요
아버지가 맨날 허송세월 보낸다고 하고
말도 안듣고 맨날 지멋대로 하는 꼴통인데
그래도 저같은 놈도 꿈 갖고 살고 있어요
일단 어릴적 제꿈은
저의 특기인 그림으로 먹고 살기
일본에서 살기
이 두갠 이뤘어요
그리고 자꾸 변하는데
패션계도 한번 잠깐이지만 맛봤고요
제가 살아봤자 님보다 몇살 처이 안나고
조언 이런것도 어려운게 상황도 꿈도 달라서
아무튼 무기력이라고 보지만 마시고
하나의 과정으로 보시고 꿈을 쫓았음하네요
닭살 돋는 맨트인데 ㅋㅋ
아무튼 꿈이 있으시면 한번 힘 다 빠질때까지
해보시고 다시 도전하고 하시는것도 좋은거 같아요
저도 님글 보고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전 만화도 자연스레 끊고 애니도 안봐요
오늘 회원들이 한 비판들 다 애니쪽에선 당연하거고
윗회사만 다 가져가고 하청은 그냥 부품에 불과해서
어느 분야든 하청이 존재하지만
애니업계는 진짜 일반 사람 살곳이 아니라서
요즘 IT쪽 한국사람 많이 뽑아요
DMM같은 회사가 주로 뽑아요
모바일게임 온라인 게임쪽도
워낙 인터넷쪽이 한국이 강세라
솔직히 욕 먹겠지만
일본에 일자리가 많아요
안해서 그렇지
한국에선 욕먹을 이야기인데
뭐 정치색 전 좌우 이런거 없이
진짜 편의점 도쿄 도심 야간 1100이상 주는데도
일본애들 안해서 한국 중국 동남아 사람들이 다하고
규돈집도 야간 1400엔 주는데도 안해서 사장이
티비에 나와서 빡친적도 있고요
저야 그림쪽이라 한정되어있어서 다르지만
일반쪽이면 취업하시는 한국분들 많아요
단 확실히 어느분야로 하실지 정하시고
일본어도 1,2급 이상은 있어야하니깐
일본어 마스터는 필수죠
꼭 원하시는대로 되길 진짜 빕니다
그냥 하는소리가 아니고 저도 경험자라
진짜 맘속에서 우러나오네요
새겨두겠습니다
일하셨는데 진짜 빡세게 하시더라구요
근데 묵묵히ㅜ하시는거 보고 다들 이렇구나 했죠
진짜 일본은 무슨 로봇들 같아요
일을 위해서 태어난거 같고
랜디님 진짜 고생하셨네요
지금은 괜찮으신거 같은데 다행이네요
미국은 시스템이 디른데 가끔 생각해보면
일본에 진출하면 일본식으로 바뀌는 곳도 있는거 같아요
미국의 자연스럽게 즐기면서 일하는게
너무 좋은거 같아요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멋지십니다.
스물 여섯 먹고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서 회사만 얌전히 다니는 제가
이 글 보니 너무 인생을 안 겪어 봐서 이리 밍숭맹숭 한가 싶기도 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더 다듬어지셨을거라 생가합니다 어느 면에서든지요
다사다난 하시긴 했지만 훗날 자식분들에게 조언 해줄게 많은 아버지이신 것 같아요. 글 잘 읽었습니다
외국에사 혼자 사는것도 사실 전혀 고충이 아니였거든요
군대때도 그날 바로 적응했고요 ㅋㅋ
아니죠 굴곡 많은 인생이 꼭 좋은 인생은 아니죠
각자 다 다른 삶이 있고 전 그냥 성격이 이래서 ㅋㅋ
감사합니다
랩퍼라면 스토리텔링 한번 해보고 싶네요
하고 있는데 나중에 다시 특기를 살려서 하고 싶네요
정작 미술 입시를 시작하면서 일단 대학부터 가야하는 생각에 꿈 생각 안하고 살고 결국은 지금은 디자인쪽입니다
어찌됐건 주변에 거의 그림쟁이들인데 만화, 게임계의 현실이 시궁창인건 익히 알고 있었죠
심지어 제가 알기론 신인 점프 만화작가가 힘든 공모전을 뚫고 주당 19장 그려야하는데 장당 9000엔~10000엔대 초중반 받는걸로 압니다 그걸로 심지어 재료비, 어시비, 월세 이런거 다 내면 남는게 하나도 없더군요
그리고 심지어 독자 투표에서 성적이 몇 회이상 안좋으면 (학사 경고 받는것 마냥) 짤리고..
ㅋㅋㅋㅋ 저도 두서없이 글 나열하고 있네요 저 역시 아직 학생이고 사회생활 경험이라곤 없지만 같이 힘내봐요
전 입시미술 당시 뎃생하고 구성을 했는데
저희때가 딱 평면구성에서 입체구성으로 넘어갈때여서
엄청 혼란이 왔어요
만화가 내지는 애니 게임쪽 생각하면서
당시 저희땐 공주랑 부천밖에 만화영화가 없어서
공주는 지방이라 여자친구랑 떨어지는거 싫어서
생각조차 안했고 결국 여자친구랑같은 학교 간다고
하다가 미술아닌 쪽 대학가서 아버지랑 트러블 심했어요
애니 만화쪽 다 안좋은데
외국인은 애니는 비자가 잘 나오는데
만호가는 프리랜스라 비자가 안나와서 되지 않고
게임쪽은 당시엔 3D만 알아줘서 정말 힘들었죠
요즘이야 모바일이나 넷겜이 강세라
한국인 많이 뽑아요
저는 그냥 음식점 하면서 지가 디자인한 옷이나 굿즈
같이 내면서 미국으로 해외진출 하고 싶네요
꿈 꼭 이뤄요
그러다 제대후 24살때 강남의 일본어학원 다니면서
기초반부터 처음부터 해서 몇개월 하다가 일본와서
어학교 1년 다녔습니다 그리고 주말마다 도서관가서
공부하고 회화도 일본 오기전부터 일본여자 사귀고
와서도 사귀면서 많이 늘었어요 편지,일기 매일 쓰고
저는 좀 편식하는 편이라 학창시절때도
좋아하는 과목만 파는 성격이라 윤리 사회는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윤리는 항상 만점정도였어요
그정도로 일본어도 공부한다기 보단 그냥
일부였죠 제2국어가 아닌 모국어라 생각하고 살아서
그리고 회화는 티비 매일 보고 자막이 항상 나오니깐
자막보고요 그리고 여자친구 사귀는거 정말 추천합니다
그만큼 정말 늘어요
외국어는 매일 쓰고 해야 정말 팍팍 늘거든요
혹시 마스터 급으로 하시고 싶으시면
방을요 완전 일본으로 바꿔보세요
일본어가 가득하게 게임도 음악도 다
그리고 포스트잎으로 물건을 다 일어로 적어서
붙여서 매일 생활에서 익숙하게 하시고요
안그럼 잊으니깐요
너무 거창한 말씀이신데 감사합니다
꼭 꿈을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미술적인 재능을 살려서 간단하게 티셔츠 같은거 디자인 하시거나 페인트 칠로 만들고 하시나요? 전 그런 재주가 없어서 자기 웃 자기가 만들어 입는 사람들 보면 참 부럽습니다.
아직도 하청도 많고 또 비교적 다른 장르보다 비자 받기
쉬워서 애니메이션 쪽이 많은거 같아요
그만큼 쉽게 관두고 항상 손이 부족하죠
그냥 저의 실패담 ? ㅋ 낙오된 이야기인데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
다른 분들은 진짜 적은 페이에도
애니에 대한 사랑으로 버티는거 같아요
예전에 유니클로에서 티 만들어서 입고 했고
청바지에다 막 더게임 가사 앞과 뒤에 페인팅으로 적어서
입고 다녔는데 어휴 일년지나서 보니 쪽팔려서 못입겠더라구요 ㅋㅋ
꿈이라면 하와이요리나 버거집을 하면서
티랑 후드 캡 토드백등 제가 디자인해서
같이 파는게 요즘 꿈입니다
그리고 하와이와 엘에이에ㅡ진출 하고 싶네요
우리땐 그래도 3D는 좀 전망이 밝았는데
타지에서 열심히 꾸준히 일하고 버티셨다니 대단하세요!!
세상 살기 어렵다는건 어른들 말로만 들어오다 요즘 조금씩 느끼고 있습니다. 앞서서 열심히 살고 계시는 자세 SWAG! 드리고 갑니다!!
항상 좋은글 많이 보고 있습니다. 꼭 성공하십쇼!!
전문으로 배우질 않아서 일은 못하죠 ㅋ
저는 그냥 외국에서 사는거고
잔나비님이야말로 진짜 개인 녹음부스로
없는 장를를 개척하신 분이라 저는 비할데가 못되죠
꼭 번창하길 바랍니다
많이하시더라구요..
물론 이쪽도 최악의 불경기를 맞고 있지만요....
그래도 3D같은경우는 반대로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않아요.
전망이 밝다 애니나 만화는 그거 기술공이다 라고 막 막대해서
오기로도 더 주장 했는데 지금보면 맞는말 같아요
특히 한국에선 더
하청일이 주 업무니
3D는 진짜 너무 빡세요
3D수업 하는동안 답답해 죽은줄 알았어요
맘대로 안될땐 그냥 막 포토샵 켜서 그리고 싶어져서 ㅋㅋ
3D는 배우는데 시간도 돈도 많이 들어가고
진짜 전문인력이다 보니 늘 부족한거 같아요
목업이나 입체형태를 합성할때는
포토샵이나 일러로 그라데이션이나 질감을 교묘하게 넣어서 3d처럼
보이는 얍삽한 수법을 쓴답니다 ㅋㅋㅋㅋ 엄청난 한계가 있지만요...
변명이지만... 모델링도 모델링이지만 포토샵으로 리터칭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은해요 ㅋㅋㅋㅋ
3d 디자인을 하고싶어하는 사람은 많은데
전문적으로 배우려면 님말씀대로 소모해야할 것이 많아요.
그 무엇보다도 거의 야근이기때문에
버티기가 정말 힘들죠..
3d툴을 고단히 만지고있는 사람이라면
꼭 애니메이션이 아니더라도
모션그래픽이라던지 3d프린팅이라던지 요즘 각광을 받기때문에
언젠간 빛을 발할거라 생각해요 ㅋㅋ
더 열심히 잘 살아야겠어요 ^^
그냥 제가 겪은일인데 도움이 된다면 기쁘네요
이글보니 많은 생각이 드네요
세상은 나만어려운게 아니구나라는 생각부터
난 내꿈을 위해 어떤 치열한 삶을 살았는가하는 생각도 들고...
정말 치열하고 열심히 사신거같아여
저두 막연하게 뮤직비디오 감독이랑
힙합음악 만드는 사람이 꿈이였는데
제가 어렸을때는 인프라도 작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길도 안보였고
무엇보다 꿈을 향해 나갈수 있는 집안사정도 아니였어요..
가족모두가 빚 갚던 시절이라
꿈을 생각한다는게 사치라고 생각했고
해보지도 않고 포기했네요..
아버지가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시다가
퇴직하시고 과일/야채 장사를 시작하셧는데
아버지는 장사소질 없는분이셔서
식구들만 고생했어요
우리아버지 장사 방식이 남들이 팔다 재고남은것들
왕창사서 엄청싸게 파는 주먹구구식 방법이였거든요
항상 썩은 야채,과일을 손질해야햇고
(길거리에서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냄새에 표정을 찡그리고 지나갈땐 고개를 못들겟더라구요 ㅠㅠ)
사람들 드나드는 황단보도 같은곳가서
자판 벌여놓고 팔아야했어요
설상가상으로
장사도중에 사고가나서 합의금이필요해서
전세금을 빼서 합의해주는 일까지 생겻고
안그래도 어려운 가정형편인데..더상황이안좋아졌어요
결국 식구들은 거의 움막같은 천막으로 둘러쌓인
월세 50짜리 가계집으로 쫏겨나서
치매걸리신 할머니 모시고 살았네요
아버지의 장사방식으로 인해
적자만 커지고 결국 '달라 일수'라는 사채까지 썻는데
이 걸 막을려고 또 사채를 끌어오는등 악순환이 계속되었어요
사채쓰면 인생 조짐니다..
그러다가
지하철 내장제 생산하는 공장에서
관리부장으로 일하는 친척이 저보고오라고 하더라구요
집안경제문제도 있고 용접기술도 배울수 있다길래 갔는데
처음말과는 다르게 알곤용접기술은 안가르쳐주고
잡일만 시켯는데
너무 괘씸하고 어이없었지만
제가 일을 그만두면 우리집 일수를 못갚았어요
어쩔수없이 이악물고 계속 참았네요
3d업종이라 젋은 사람들은 없고
대부분 나이먹은 사람들이엿는데
기숙사 생활을 하려니... 많이 힘들더라구요
사람들도 너무 이기적이고 좋은기억이 없는곳인데
여기서 일하며 모은돈 결국 사채갚는데 쓰고...
20대를 허비햇네요 그후 빚갚고 퇴직해서
간판제작 시공, 큐비클 (화장실 칸막이)
금형 래핑(금형 표면을 반짝반짝 광이 나게 연마하는 작업)
배울려고 햇지만
결국 오래배우고 견뎌야 살아남는 기능직업인데
(모든일이 그렇지만 이런 기능직,기술직들은
견습공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가서 배울려면 진짜 힘들어요..
열정페이 이상으로 월급은 최저임금 겨우받거나
그것도 못받는 경우도 있고..
초과임금,특근,연차 이런건 당연히없구요 ㅋㅋ
환경도 너무 열악하고 일도 힘들고..
그래도 간판은 돈은 제일 적게 받았지만
제일대우는 인간적이였고
밖에서 일하는경우가 많아 좋긴했는데..
고소작업이 많아 위험하긴햇지만 기사형들 따라다니며
간판견습공으로 배웟을때가 제일 재밌었고 좋앗던거 같네요..
어렸을때라 겨울에 밖에 나가서일하는등 춥고 힘든걸 못참고나왓는데
지금 그만둔게 제일 후회되는...
금형래핑은 첨에는 보수가 약하지만
배우고나면 나이먹어서도 할수있는 업종이라해서 배울려고 했는데
가족기업이였거든요
여기는 직원들이 좋았지만 사장이라는놈이
최저임금 이런개념은 밥말아먹은 전근대적인 인물에다가
근데 거기 사장동생(부장)이라는 놈이 40대 후반이였는데
제가여동생이 있다는걸 알고소개시켜달라고 하는데
첨에는 농담인줄 알았는데
진짜진지하게 부탁해오더라고요...
그사람이 약간 성격파탄자기질이있어서
점심먹을때까지 사람들이 말을 안붙여요
갑자기 사이코로 변해서 욕을하거든요
나이도그렇고 이런인간이 동생 소개시켜달라고
시도 때도 없이 압력을 넣고
이미 집도 다 있고 차도있으니 몸안오면 된다고 하길래
홧김에 내가 아무리 병신이지만 내가 만만하니까 내동생도 만만해보이냐
내동생 뭘로보고 내앞에서 그렇게 말하냐?라면서
한바탕 엎어버리고 나와버렸네요)
저는 학창시절때 왕따당하고 폭행당하며
무단 결석을 밥먹듯하던 적응못하는 성격이라
(담임 선생님들의 필사적인 쉴드로 고등학교 졸업은 할수 있었어요..
이때 생성된 사회부적응 성격은 평생가더군요...)
여러 공장,회사들도 오래못다녔엇는데
이렇게 계속 실패한 낙오자로 머물면서
전단지 부착/대리운전사무실 명함돌리는 알바로 겨우겨우 연명하며
결혼도 포기하고 그냥하루하루 죽지못해사는 인생이 되었다가
(다결국제탓이였져..)
지금 저는 건설현장에서 숙식하며
덕트(건물천장에 있는 환풍시스템) 조공으로 일하는데
입에 풀칠은 할수있게 됬어요..
저도 남들처럼 가정꾸리면서 아이들의 아버지로살고 싶었는데
굉장히 평범한사람들의 모습 일상들이 제게는 꿈이 되어버렸네요..
나중에 은퇴할즈음되서 인생에 여유가 생기면
노후에 천천히 작곡하는거 독학하면서
취미라도 음악만들면서 살고싶어요..
그때를 위해서 돈버는게 목적이 되었구요..
오닉스님은 결과가 어떻든 꿈을 항해 도전한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원하시는 목표 잘 이루셧으면 좋겟네요
요즘 워낙에 경제 상황이 상황인지라... 앞으로 살아갈게 걱정입니다.
모두들 기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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