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검색

리뷰

소박한 앨범에 대한 단상

title: 2Pac - Me Against the WorldMigh-D-98brucedemon2017.01.10 00:07조회 수 590추천수 7댓글 3

c559e19a1a885c72a4e3815bef9b7976 (1).jpg

1. 종이학개론 - 종이학개론
발매 : 2016.10.06.

- 백지는 비어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상상과 사유에 의해 빽빽하게 채워진다. 그러나 한번 백지 위에 쌓인 그 흔적들은 (경우에 따라)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을 그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첫 곡부터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고픈, 막심한 후회를 말하는 이 작품('Reset Syndrome').. [종이학개론]을 보면, 쉬이 납득이 안 된다. 그렇지만, 첫 곡이 단순한 상상의 일면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이해가 된다. 종이가 빈약한 것보다야 훨씬 나은 순간을 연출한 본작 [종이학개론]은 표현력이 뛰어난 랩퍼 아날로그 소년과 텁텁하지만 푸근한 보컬/프로듀서 김박첼라의 듀오 ‘종이학’의 첫 교본(?)이다. 듀오로서의 첫 번째 입론은 상술한 바 있듯 단순하지만, 담백한 상상으로 가득하다. 문자 그대로 종이학개론에 비춰본다면, 이미 흐트러져 버린 애정의 상태를 포맷하고픈 한 사람의 증후군도 상상이며('Reset Syndrome'), 취기 어린 밤의 망각('Some Night')도 상상이다. 다 말할 수 없는 이러저러한 상태로 종이 위를 부유하는 상상들은 기막힌 프로덕션과 겹쳐진다. 전반적으로는 상상과 풍경을 버무리는 트랩과 신디사이저를 필두로 한 폭넓은 멜로디가 주를 이루고 있다. 더불어서 본작은 김박첼라 특유의 일렉 (기타) 리프를 위시로 한 사운드 운용이 두드러지는 트랙을 갖추고 있다. 그 와중에도 착 붙은 비트의 질감이 대단히 탁월하다. 철저히 ‘종이학’이 주도한 프로듀싱 덕에, 본작은 공명점을 찾기 힘든 상상의 파편들이 품은 주제들을 더욱 간결히 전달할 수 있었다. 맴돌듯하는 소리는 비트라는 굴레 위에 떠돌지만, 아날로그 소년과 몽환적 감성의 보컬 민열(그녀는 본작에 단 두 트랙에 목소리를 얹었을 따름.)이 전하는 여럿 감성과 테마들은 어딘가로 자꾸 겉돌고만 있는 느낌이다. 찌그러진 사운드와 둔탁한 붐뱁의 향연 속에서 노래방을 이야기하는 ‘18번’은 슬프지만 일상적이다. 그런가 하면 애정의 관계를 행성에 빗대는 식상한 비유를 아날로그 소년 특유의 박자감으로 덧칠하는 ‘명왕성’은 찬연하고 숭고하다. 끝끝내 본작은 단번에 와닿을 것 같지만, 러닝타임이 끝나고 나면 여전히 멀게 느껴지는 단 하나의 이론으로 기록되고 만다. 종이를 어떤 테마들로 채우느냐에 따라 그 이론의 내용들은 끊임없이 달라질 것이다. 이미 ‘종이학’은 그들의 이름 그대로를 하나의 학문으로 명명한 뒤 갖가지 메타포 속에 타자와의 관계를 풀어냈을 뿐..


145342500081m0.jpg

2. 최희선 - Maniac
발매 : 2016.01.28.

- 화끈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일렉 기타. 그 현란한 리듬 패턴을 함께 주시해 본다. 가왕 조용필의 밴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유일무이한 실력파 세션맨 최희선의 2번째 앨범 [Maniac]은 뜨겁다. 기시감이 들 정도로 따끈하게 예열된 이 작품은 한 번 열고, 두 번째에 이르렀을 때 그 쾌감이 더하다. 필자의 개인적 느낌을 보태자면, 작년 같은 날(1월 28일)에 발매된 엠씨 더 맥스(MC The Max)의 8집 [pathos]와는 양 극단에 서서 귀 기울여도 될 법한 그런 감성을 지니고 있다. 차분할 틈을 내놓지 않는 전반부는 하드 록의 진수로 작정하고 길을 터놓겠다는 최희선의 의지가 다분하다. 특히 거칠고 꽉 차 있는 속도감으로 본작에서도 일품의 트랙인 'Highway Sprint'는 전반부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운드에 고심하고, 사운드에 공을 많이 들인 'Maniac'은 실력의 표출보다는 열정의 흔적에 더 깊은 의미를 담은 느낌의 곡이다. 기승전결이 드럼-베이스-기타로 채워져 있음은 밴드 사운드의 정열성과 보편성에 맞게 편곡되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부분. 용광로처럼 데워진 본작의 온도를 조금만 차분히 식히는 곡들의 완성도 역시 주목할 만하다('Sweetest Love',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는 절로 흥얼거려지는 원곡의 가사를 떠올릴 정도의, 기타가 품은 포근한 서정미가 두드러진다. 한결 두터워진 감성으로 기타가 전하는 이야기를 마무리할 무렵에 본작은 청자에게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여운을 기타로 기록한다. 기타의 소리는 사람의 말과 침묵을 벗어난 소리가 전할 수 있는 언저리에서 가장 지근거리에 속한 소리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본작의 마지막 트랙 '기억해요(Praying For Korea)'는 오늘로써 천일이 된 2014년 4월 16일의 대형 참사를 영원히 기억하자고 처연한 기타가 울면서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본작이 예술가의 고집으로 일궈진 장르 음악의 탁월성을 갖추고 있음은 물론, 기타라는 소리가 언제 어떤 소리를 청자에게 전할 수 있는지를 고스란히 반영한 정말로 열정적인 작품이 아닐련지 생각해 본다. 상황이 아무리 척박해져도, 소리의 영역이 정서적인 기질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함께 덧붙여본다.


2693057_500.jpg

3. Ash-Tag - POETree
발매 : 2016.06.23.

- ‘힙합은 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랩은 시다’. 랩이 시(Poet)라는 일반론이기도 하겠지만, 붐뱁을 주로 프로듀싱하는 프로듀서 재지 문(Jazzy Moon)과 퍽퍽히 뭉개지고 차진 랩을 선보이는 록스 펑크맨(Loxx Punkman)의 듀오 애쉬 태그(Ash Tag)의 본작 [POETree]가 매우 시큼하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상큼함에서 훨씬 비껴나 있는 시큼한 플로우와 육덕진 붐뱁의 향연.. 그 맛이 합쳐져 본작을 탄생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쯤되면 본작에 참여한 피쳐링진들은 본작의 조미료로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쫄깃한 식용유(Simba Zawadi), 적당히 짠 소금(넉살), 콧잔등까지 간질이는 후추(Deepflow, 차붐)까지.. 신 맛에 그칠 수도 있던 본작은 그야말로 여러 맛깔들이 합쳐져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붐뱁 EP가 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비트 프로덕션은 훌륭하지만, 사실 재지 문이 덧입힌 샘플 사운드의 멜로디들은 그리 신선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창작자의 고집이 느껴진다. 록스 펑크맨의 가사들 역시 다양한 동선을 타고 논다. 배틀 랩퍼로서의 호전적인 톤, 그리고 일상의 향취, 또 가족의 정으로부터 비롯되는 이러저러한 감정들까지.. 10곡 모두에서 그는 정서를 조달하는 랩퍼로서의 과업(?)에 충실하였다. 본작이 가족이라는 존재의 중요성을 테마로 삼은 두 곡(‘방법’, 'Mother's Honor’)을 타이틀로 한 근거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언어적인 기가 센 트랙들 사이에 머물고 있는 걸로 봐선, 본작의 제목이 말하고 있는 ‘시목(詩木)’의 표상이 가족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랩의 맥락도, 프로덕션의 일관성도 확실히 느껴지는 신념있는 작품이다.


다운로드.jpg

4. SchoolBoy Q - Blank Face LP
발매 : 2016.07.08.

- 가시나무인지, 혈관의 내부인지 알 수 없을 다홍빛의 줄들이 이리저리 엉켜있는 커버 아트를 응시해본다. 그러나 거리의 부랑아 스쿨보이 큐(Schoolboy Q)가 본작인 [Blank Face LP]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그것은 가시나무도 혈관의 내부도 아니다. 진한 다홍빛 사이로 구름이 보이고, 그 핏줄같은 선들은 거리로 솟은 나무이다. 그 옆에 한 남자가 선글라스를 낀 채 밑을 응시하고 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일기이다. 부랑자로서의 쾌락과 욕망, 그리고 거친 흑인 남자로서의 정체성이 여과없이 기록된.. 멜로디를 읊듯 랩을 외치는 갱스터 스쿨보이 큐는 전작인 [Oxymoron]에서도 역시 갱스터로서의 삶의 전반에 놓인 여러 감정들을 담아낸 바 있다. 탈각할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 그것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그것을 랩퍼가 이야기로 전하는 순간, 청자는 피할 수 없는 환각에 유도된다. 일찍 큰 게토의 소년이 품은 열망과 비극이 곡의 전반에 깔리는 'TorcH', 빈민가에서의 갱스터(크립스(Crips)들이 누리는 쾌락의 모든 것을 의식의 흐름대로 적은 'Ride Out'(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와의 합이 완벽했던), 마약상을 묘사하는 'Dope Dealer' 등..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게토의 실상이 약 75분 간의 긴 러닝타임을 통해 여지 없이 드러난다. 그 중 단연 누아르적 색채가 짙은 곡은 DJ 다히(DJ Dahi)가 프로듀싱하고, SZA의 가성이 인상적인 'Neva CHange'이다. 변하지 않는 (흑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스쿨보이 큐의 역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가운데, 결국에는 비극은 순환한다는 식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앨범의 후반부에 위치한 만큼, 이 곡이 본작의 누아르 무드를 집약적으로 담았다고 느낀다. 이어지는 시카고 일리노이 출신의 프로듀싱 팀 네즈 앤 리오(Nez & Rio)의 단출살벌한 비트와 사운드가 스쿨보이 큐의 외침을 감싸고 도는 'Str8 Ballin'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투팍(2Pac)의 'Picture Me Rollin'에서 모티프를 삼은 훅(Hook)은 흥미롭다.) 흑인의 생존과 삶의 역점을 흑인의 사유로 풀어내고 있는 'Black THougHts'도 (곡이 풍기는 정서가) 참담하기는 매한가지다. 영국의 뮤지션 마이클 래틀리지(Michael Ratledge)의 곡(소프트 머신(Soft Machine)의 'Drop')과 피 펑크(P-Funk)의 큰아버지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의 곡(펑카델릭(Funkadelic)의 'Good Old Music')을 샘플링한 오묘하고 습기 찬 전자음이 흑인 삶에 대한 배경을 깔고 있음에, 이 곡은 흑인 공동체의 무미건조함을 대수롭지 않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그것이 앤더슨 팩(Anderson .Paak)의 보컬이 심장부를 핥는 'Blank Face'로 고스란히 이어지는 구간을 형성한다) 전반적으로는 과하지 않은 프로덕션에 중점을 둔 본작은 제목 그대로 ‘무표정’의 실상에 대한 거울 역할을 한 셈이다. 본작의 발표 전에도 후에도 여전히 공동체는 위태로웠고, 그 안의 개인은 쾌락에 탐닉할 것이다. 그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스쿨보이 큐로서는 현실이 변하지 않는다고 외친 것이 더 솔직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전달력은 쌉쌀한 어두움을 그렸고, 본작의 사운드는 달콤살벌한 황홀감을 낳았다.


2016120710065542178-540x540.jpg

5. 한희정 - NOTATE
발매 : 2016.12.07.
- 노타테(Notate)는 기록과 기보를 뜻한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일상에서 마주한 것들을 비교적 따스하게 적고 노래하는 한희정이란 뮤지션에게 깊고 서글픈 느낌을 받는다. 작년 12월 초에 발매한 본작 [NOTATE]는 말 그대로 음표가 기록된 악보집이다. 그리고 그 안에 수록된 10곡은 그간 그녀의 앨범들에 엮여있던 곡들이 가공의 탈을 벗은 상태이다. 그녀의 목소리로 다시금 푹 익혀진 곡들은 오로지 어쿠스틱한(비가공적인) 상태에 기댄다. 사실 그녀가 전한 말 한마디 정도라면 더 이상의 수식은 필요 없는 것 같다. ‘날것의 자화상’ 같은 작품. 그렇지만 그 날것의 자화상의 의미를 어떻게든 파헤치게 된다. 꾸려진 음반의 패키지는 소박한 시집을 닮아있고, 그 안의 음들은 서늘한 온도로 하여금 점차 따스한 기운을 잃어가는 듯 보인다. 끝간데 없이 흐느끼는 이의 뒷모습을 어루만지듯 노래하는 한희정의 감성은 타자의 존재, 관계의 여부를 상정하고 있다. 기억의 나날을 추억하면서 그것은 행복했노라고 전하고 있는가 하면, 감정과 계절이 같은 흐름으로 흐르는 풍경을 그리기도 한다. 한편 이미 알아버린 타자의 떠남에 대한 비애를 가을이라는 추억의 매개물에 담아두고자 하는 시심(詩心)도 보이며, 그러면서도 이미 여기에 부재한 타자를 통해 슬픈 마음을 전하지는 않겠다는 마음을 전한다. 의미론적 해석이 어떤 느낌을 전달할지는 알 수 없는 ‘어항’이라는 곡에서조차 한희정의 시심과 숨소리는 뚜렷하게 느껴지고 들린다. 2015년 9월 발매된 [Slow Dance]에 수록되어 있는 ‘Slow Dance’.. 그 느릿한 감정의 곡선은 어쿠스틱 코드에 더 유연하게 그려져 있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기억만큼은 놓치지 않겠다고 구슬프게 노래하는 ‘그녀와 나’에는 슬픈 바람이 역력하게 묻어 있다. 어떤 이에게 이전의 사람이었던 화자가 어떤 이의 옆에 현재 있는 이에게 느끼는 데자뷰와 비애를 이렇게 압축적으로, 안정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게 여전히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더 이상의 코드 진행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록에는 끝이 있다. 본작은 한희정의 목소리가 그친 다음에도.. 계속 먹먹하다. 처음 음에 귀 기울였던 순간은 먹먹하고, 앞으로 어떻게 감정을 추스를지에 대해서는 막막하다. 하지만 그런 음악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신고
댓글 3

댓글 달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일반 [공지] 회원 징계 (2025.01.21) & 이용규칙3 title: [회원구입불가]힙합엘이 20시간 전
인디펜던트 뮤지션 프로모션 패키지 5.0 안내 title: [회원구입불가]힙합엘이 2023.01.20
화제의 글 일반 내가 봤을때 스윙스가 작업실 월세받는 이유는8 title: Quasidolph2927301 20시간 전
화제의 글 음악 이벤트) 외게에서 입문서 올리는 트렌드가 생겼던데3 title: Kanye West (Korea LP)Alonso2000 22시간 전
화제의 글 음악 입문서) 국힙에서 음악을 제일 잘하는 최성에게 빠져보자7 Gyeeah 4시간 전
50193 일반 해쉬스완x더콰이엇 신곡 soon11 title: [로고] Run-D.M.C.n5psycho 2017.01.10
50192 음악 노창 앨범 낸거 있나요2 Alpharettan 2017.01.10
50191 일반 산이 이제 아웃사이더보다 랩 못하는듯11 니니닉네네네네임 2017.01.10
50190 음악 버벌에게 고난은4 title: Post Malone쁘뤠끼 2017.01.10
50189 일반 vj 멜론 평점과 리뷰 폭격당하는중.13 kidkad 2017.01.10
50188 음악 진태형님 귀르가즘 개쩌네요4 title: JAY Zssick2 2017.01.10
50187 음악 김태균의 녹색이념과 돈 (스압 주의)10 블랭키뭔 2017.01.10
50186 음악 KZN 쥰내 고생해서 추출다함 (어쩌다 공유 -끝-)180 title: 2Pac - All Eyez on Me돌고래고래 2017.01.10
50185 음악 올드 사우스 힙합 곡들 모음7 앤소니존슨 2017.01.10
50184 음악 졸피 아세요?7 kiks90 2017.01.10
50183 음악 저스디스 또 뭐나오나봄10 dejavuu 2017.01.10
50182 음악 OG in my dream 살살 녹는다~12 Farface 2017.01.10
리뷰 소박한 앨범에 대한 단상3 title: 2Pac - Me Against the WorldMigh-D-98brucedemon 2017.01.10
50180 음악 버벌진트 신곡 산이 언급14 title: Kendrick Lamar (MMTBS)theBlaZe 2017.01.10
50179 인증/후기 새로운 앨범은 언제나 환영이야!2 김심야 2017.01.09
50178 일반 서로다른바이브가 잘 섞이는조합3 title: [로고] Run-D.M.C.n5psycho 2017.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