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정치적인 메세지를 다루고 있는 문학은 많습니다. 까뮈는 '전락'에서 전체주의로 변질되가는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았고, 최인훈의 '광장'은 해방 이후 남북의 상황을 진단하고 있어요. 이러한 작품들은 작품의 질과 별개로,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고평가 받기 쉽습니다. 어떤 미학적 성취를 득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가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리는거죠.
하지만 전문 평론가마저 위와 같은 기준으로 작품을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평가하고 싶은게 '정치'소설이 아니라 정치'소설'이라면 평가 기준은 다른 문학작품과 달라서는 안됩니다. 정치소설 또한 여타 문학작품과 마찬가지로 '정치'라는 메세지를 담는 그릇으로써 플롯의 밀도, 전개 방식, 사장등이 제대로 설계되었는지를 판단해야 제대로 된 비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사유의 수준을 가지고 문학을 평가한다면, 모든 문학은 사회과학의 열화카피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할겁니다.
컨셔스랩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적 메세지의 밀도가 중요한게 아니라, 메세지를 담는 그릇으로써 완성도가 중요한 겁니다. 작법은 메세지에 어울리는가, 내가 선택한 작법에 어울리는 비트를 선택했는가, 라이밍 및 펀치라인이 효과적인 메세지 전달의 위해 기능하고 있는지가 중요하죠.
그런 점에서 산이의 곡은 컨셔스 랩으로써 나쁘지 않아요. 산이는 박근혜를 비판하기 위해 제리케이처럼 은유와 직유, 직설적인 표현에 의존하는 대신 우화법의 형태를 취합니다. 박근혜와 국민의 관계를 남녀의 관계로 우화화 시킨거죠. 우화는 직설적 표현보다 소극적인 형태로 생각될 수 있지만, 그 효과는 결코 소극적이지 않아요. 표현 방식이 가벼운 만큼 확장성이 높아요.
기왕 우화법을 선택했다면, 랩 스타일이 지나치게 무거워서는 안되겠죠. 확장성을 위해 직설적인 표현을 포기했는데, 하드코어 힙합을 한다? 그러면 망하는거죠. 물론 산이는 영리하니까 그렇지 않았어요. 본인이 잘하는 멜로디랩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다 시국선언 곡에 사용했고, 그에 걸맞는 비트초이스를 했어요. 작법-비트-랩스타일의 일관성 있는 태도에다가, 효과적인 펀치라인까지.. 잘한거죠.
물론 산이의 작법-비트-랩스타일 자체가 힙합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산이는 힙합이 아니라고 깔 수야 있겠죠. 그런데 산이가 컨셔스랩을 빡시게, 하드하게 안했다고 까는건 틀린 것 같아요.
common까지 갈 필요도 없이 산이랑 피타입이 냈던 '불편한 관계' 작법이랑 똑같아서.
보코반님 논리에 맞추자면 산이 곡을 정치 소재 랩 정도론 넣을수 있겠지만 컨셔스 랩이라고 하기엔 좀 수준 떨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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