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자는 말한다. 일리네어가 돈 자랑을 하는 것은 힙합의 가장 중요한 장르적 서사인 '자기증명'을 노래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말이다. 물론 정당하다. 그 결과 그들의 음악이 정당성을 얻자 하이라이트와 저스트뮤직의 음악에서도 그러한 영향력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파급효과를 끼쳤다. 인과관계는 아니더라도 일정부분 상관관계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이런 비판도 정당하다. 일리네어의 음악은 미국 힙합의 레퍼런스 범벅으로 가득 차있으며, 그들이 말하는 돈 얘기가 자기증명에서 동기부여된 것임은은 인지하고 있지만 그것이 동어반복이라는 말 자체는 피할 수가 없으리라고 말이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일리네어가 한국 힙합을 그것에 부여된, "예술가라면 배가 고파야지"라는 말로 대표되는 유교적 예술가상으로부터 해방시켰음을, 그로 인해 예술가가 돈에 관한 얘기를 한다는 일종의 터부가 무효화됐음을. 그러나 그 해방으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돌아보면 그 논쟁의 지점이 '돈 자랑을 하는 것이 힙합인가'에 대한 것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여러 랩퍼들의 작업물과 팬들의 논의가 쌓이며 패러다임이 변화할 필요를 느꼈다. 이제 새로 물어보고 싶다. "과연 이러한 방식의 힙합으로 성취할 수 있는 음악적 성취는 어떤 것인가?"
2015년도는 힙합팬들에게 2007년만큼 귀가 풍성했던, 특별한 해로 기억 될 것이다. 많은 앨범들이 발매되었고 지금 내가 다뤄보려는 3개의 앨범과 1곡의 싱글이 모두 발매된 해다. 더콰이엇 [1 Life 2 Live], 도끼 [Multimillionaire], 버벌진트 [Go Hard Part.1 : 양가치], 그리고 빈지노 [We Are Going To]가 바로 그것이다. 내가 이 결과물들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지점은 한국힙합을 대표하는 이 랩퍼들이 자신들이 얻게 된 '랩 머니'를 음악 안에서 다루고 있는 방식이다.
최초에 더콰이엇이 일리네어 이전의 자신과 단절을 선언하면서 보여준 모습은 외제차를 타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젊은 야망가의 이미지였다. 더콰이엇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변화를 드러낸 [AMBITIQN] 믹스테잎은 각 수록곡의 완성도 역시 훌륭했으나 그것 뿐만이 아닌, 검은색 벤츠를 타고 광명시의 밤거리를 벗어나는 랩스타의 모습을 그린 시각적인 서사가 앨범 전체에 이미지와 유기성을 부여하고 있었기에 호평을 받았었다. [AMBITIQN]에는 질감은 변했지만 청자를 가슴 뛰게 하는 더콰이엇만의 무언가가 여전히 담겨있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일리네어는 다소 부진했다. 도끼와 더콰이엇이 연달아 정규앨범을 냈지만 대체로 아쉽다는 평이었다. 나는 이 앨범들을 들으면서 몇몇 곡의 완성도는 여전했으나 앨범 단위를 듣는 재미가 현저히 떨어졌다고 느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를 꼽아볼 수 있겠으나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주요한 이유는 이제 그들의 앨범에서 이전과 같은 영민한 서사진행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전 작에서 그들이 리스너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었다면, 이번에는 단순히 그 이상향보다 양적으로 더 높아진 지점이 목표로 재설정됐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데 그쳤다. 서사의 힘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힙합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 그들의 음악이 이뤄내야할 성취에 대해서 조금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그 대안으로 빈지노와 버벌진트를 주목했다. 돈에 대한 찬양이 미국 힙합의 대세라며 다른 의견들을 짓누르는 사람들에게 굳이 켄드릭 라마의 [GKMC]와 [TPAB]를 들려줄 필요도 없이 이미 같은 서사를 다른 방향에서 풀어냈기 때문이다.
먼저 빈지노의 다음 정규앨범에 수록될 새 싱글 [We Are Going To]를 살펴보자. 이 곡은 다른 일리네어 멤버들과 동일하게 랩 머니를 통해 부자가 된 자신의 모습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각도가 살짝 다르다. 친구들과 자유롭게 세계 각국을 여행다닐 만큼의 금전적 여유가 생겼으나 그것을 일반적인 힙합의 문법으로 풀어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을 힙합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빈지노는 이 곡 안에서 이전에 비해서 전세계로 확대된 자신의 영향력과 예술가적인 면모를 Peejay의 비트 위에서 감각적으로 풀어낸다. 젊은 음악가의 야망과 영감이 폭발하는 멋진 곡이다.
반면 버벌진트는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시기에 오랫동안 끌어왔던 정규앨범 [Go Hard]를 내놨다. 모두가 기다려왔던 이 앨범에는 시간의 강을 건너는 그를 계속해서 괴롭혀온 여러가지 양가감정들에 대한 그의 소회가 담겨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부분은 '세입자flow'와 '건물주flow'의 대립쌍에서 엿보이는 그의 태도다. '세입자flow'에서는 자신이 얻게 된 부에 대해서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음악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키지는 않을 것임을 선언하며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 '건물주flow'에서는 건물을 매입한 뒤의 버벌진트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벤틀리를 자전거처럼 아무데나 주차시킨다는 가사를 통해 '세입자flow'에서 말했던 자신이 정말로 그러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더 나아가 [Go Easy]의 'My Audi'에서 보여줬던 외제차에 대한 태도를 생각해보면, 'My Bentley'에서는 아예 부에 대해서 감정없음 혹은 염증을 느끼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다.
음악가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할 자유가 있으며, 보장되어야 한다. 더콰이엇과 도끼를 위시한 랩퍼들이 어떤 랩을 하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에서 읽을 수 있는 음악적 서사에서 돈이 중요한 것이 될 수는 있어도,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힙합은 뿌리를 유지하면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는 커다란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을 조금 더 넓게 열어뒀으면 하는 개인적인 소망이다.




과거 골든에라 시절에 돈은 양가적이었습니다. Mo money = mo problem이라는 공식에서도 그렇고, 이번에 돌아온 쬬이 밷애쓰가 페이퍼트레일에서 돈 이전에는 '사랑'이 있었지만, 팍팍했다고 고백하는 지점이 그렇죠. 과거의 힙합 문법에서 돈은 필요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한스러운 감정이 서려 있으며 귀찮기도 하고, 또 좀 그런 야리꾸리한 것이 있었습니다. (죠이x타블로가 이미 잘 표현했죠.)
그런 의미에서 VJ가 돈에 대해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은 사실 별로 새롭지 않았습니다. 기존 힙합 문법의 오차범위 내에 있었던 것이죠. 이센스의 너무 달라붙지는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바라는 그 감정이랑 겹치는 대목이 나름 재밌을 것 같네요.
갓성빈은 쏘왓-깨-위아고잉투까지 쭉 문법을 무시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서 나름 기대가 되는 부분이 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깨버리고 싶다는 이야기로 끝나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 더 있을지. 아직까진 충분치 않은 것 같아요.
애초에 제가 글 안에서 전제하고 있었던 힙합의 바운더리 자체가 '한국힙합'이었기 때문에 버벌진트와 빈지노의 음악이 유효하다고 생각해봤어요. 일리네어가 한국힙합에 끼친 영향을 설명한 것도 그 맥락이었고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돈이 여러 양가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상징이라고 해도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과 '먼 길 돌아온 결과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다르게 느꼈다고 해야될까요. 확실히 한국힙합 내에서는 돈이라는 소재를 논할때 일리네어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봅니다. 물론 돈이라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갖는 여러 의미와 맥락들을 전부 포함한 글을 쓸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아직 제 능력이 그렇지 못해서 일단 가장자리부터 더듬어가고 있는중입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뭐 그 구분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었어요. 다만 빈지노와 버벌진트 이름 앞과 뒤에 타블로와 이센스의 이름을 넣어주시거나, 최근에 본토에서 보이는 다시 그 '양가적인' 돈을 연결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인데... 늘 그렇듯 지면은 너무 좁죠.
또 일리네어가 차용한 그 본토의 PMW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Pussy, Money, Weed라는 세 배경 가운데 우리는 사실 돈만을 제대로 가져오고 pussy는 좀 부드럽게 완화시켜 가져왔으며, weed는 가져오지 못했잖아요? 이 지점에서 기존 한국 지형에서 자생적으로 뻗던 PMW와 본토의 PMW가 어떻게 결합하고 무엇은 누락되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요. 나름...? 이 오묘한 혼종화/습합은 참 재밌을 것 같아요.
버벌진트는 고이지/오독을 제대로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 작품들이 힙합의 문법을 거부하는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고 말이에요. 이 부분은 사실 아직 누구도 제대로 지적해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포맷을 보면... 아마도 필진 지원을 위한 포폴에 들어갈 것 같은데(아닌가요?ㅋㅋ) 오독과 고이지를 다시 읽어보신다면 큰 경쟁력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응원!
매번 글 잘읽고 있습니다 팬이에요 ㅋㅋㅋ 그리고 딱히 제 글에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넓혀서 생각하도록 댓글달아주시는 분들이 없어서 이런 댓글 하나하나 전부 감사합니다
뭐 저도 나름... 쓰는 입장에서는 잘 읽었다는 말보다는 태클이 더 반가워서 열심히 태클을 걸어드리고 있습니다. 반가워해주시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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