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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느 장르가 안 그렇겠냐마는, 힙합 또한 수용과 변용, 확장을 거듭해 왔다. 샘플러에서 포르타멘토를 연주하는 무그 신스로, 다시 808 베이스와 오토튠, 스플라이스로. 새로운 도구가 늘며 선택지도 넓어졌고, 진입장벽은 낮아졌으며, 장르는 젊은 생명력을 얻었다. 여기서 잠시 시선을 전환해 보자. 정(正) 없는 반(反)이 존재할 수 있을까? 정이 있어야 반이 서고, 이로 말미암아 새로운 합(合)이 도출되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의 냉소와는 달리, 정을 책임져온 20세기 출신들은 퇴장하기에는 아직 겪어온 일들도, 해야 할 말도 너무 많았다. 누군가에게는 꼰대의 일침처럼 들릴지라도, 팔로알토의 새로운 [BARS]는 그 묵직한 증언의 조각이다.
그도 어느새 불혹을 훌쩍 넘겼고, 커리어도 20년을 헤아린다. 주류와 비주류 양쪽에 발을 걸쳐봤고, 레이블의 수장이었던 시절과 소속 아티스트로 몸담았던 시간을 두루 거쳤다. [BARS]의 가사들은 그 20여 년의 궤적을 고스란히 투영한다. 거침없는 언행으로 빚어진 흑역사와 조롱도, 잘난 체하며 후배를 계도(啓導)하려 했던 과오마저 이제는 허허롭게 털어낸다. 한때 화려한 성공도 맛보았지만, 오히려 많은 것을 내려놓고 나니 마음은 더없이 가볍고 자유롭다. 마음 가는 대로 내뱉어도 여전히 멋스러운 까닭은, 오랜 시간 다져온 퍼포먼스의 척추가 견고하기 때문이리라. 팔로알토 특유의 명징한 저음은 SM58의 거친 질감을 뚫고 나오고, 플로우와 라임은 자신이 가장 사랑해온 리듬 위에서 어느 때보다 유려하게 흐른다. 거리와 클럽을 향한 변함없는 애정으로 디제잉을 이어가며 전국 팔도를 누비던 발걸음은, 이내 회한과 해탈, 관조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끊임없이 허슬을 반복해도 거대 자본이 투입된 케이팝 산업에 비하면 이 판은 여전히 영세하기만 하고, 음악을 둘러싼 피로는 짙어졌다. 그럼에도 이곳을 결코 떠날 수 없는 건, 아직 이 문화에 갚아야 할 빚과 업보가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돌아보니, 어느덧 나이 드신 부모님을 비롯해 잃지 말아야 할 것들이 눈에 밟힌다.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언어로 성채를 쌓았다. 하지만 그 요새 속에서 스스로를 지탱하는 법을 터득하는 일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과제다. 결국 답은 하나다. 거친 생활에 끊임없이 부딪치면서도 끝내 실천하고 행동하는 삶. 그에게 힙합이란 음악 이전에 확고한 삶의 태도이자 방식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득 시작점의 향수를 떠올려 본다. '신의의지'라는 이름 아래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마이크를 쥐었던 그때, 멋진 선배들을 동경하며 힙합과 재즈를 섞어 듣던 순수한 시절이다. 이제 그 시절을 함께했던 동료들 가운데 몇몇은 이미 영영 떠났지만, 남은 열정과 초심만은 심장 깊이 영원히 박혀 있다. 지하에서 저 거대한 주류를 올려다볼 때면 여전히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지지만, 그럼에도 트렌드에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꼭두각시가 되기보다는 '언더래퍼'라는 제자리를 담담히 지킨다. 그 시절의 순수한 열정으로 선택한 이 결단이야말로, 그의 지난 20년을 증명하는 가장 떳떳한 훈장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발걸음은 그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곳, 보랏빛 5호선 끝자락의 511번, 개화산역으로 향한다.
지금에서 지난 날로 나아가며 오가는 솔직한 이야기들을 위해, 팔로알토에게는 자신이 지난 날 동경했던 아날로그한 소리샘들의 재해석이 필요했다. 가장 중요한 원군이 있다면 오랫동안 재지한 소스를 능숙하게 매만지며 앨범 프로덕션의 1/3을 책임진 뷰티풀 디스코일 것이다. 이 기틀 위에서 UGP의 섬세한 연주 세션도, 트랩을 지향하던 주피터 킴과 라우디의 전자적이고 칠한 재해석도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아직은 낮선 이름인 DOLO가 재즈 피아노로 앨범의 중심에서 무겁게 지탱하는 순간, 앨범은 '붐뱁'이라는 해묵은 카테고리에서 서사를 증폭시키며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 음악적 척추를 끼고 주피터 킴과의 의리 오이글리의 자유분방함, Gu Is 9와 ALT만의 책임감, 여전한 마이노스의 형제애가 움직이는 모습은 삶과 그 이야기가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수많은 인연과 소통하며 쌓아올려진 것임을 실감하게 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그저 작은 일탈에 즐거워하며 함께 꿈을 나누던 소년들. 지하철역의 이름을 따 크루까지 결성했던 그때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주류 음악계와 닿으며 꿈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던 순간도 잠시, 나이가 들수록, 철이 들수록 마주한 세상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음악을 포기하려던 형에게 꿈을 좇지 말라며 냉정한 현실을 들이밀었던 그때, 만약 다른 말을 건넸더라면 그 형은 세상을 등지지 않았을까. 수많은 '만약'과 회한의 물음표가 끝없이 꼬리를 문다. 상처를 딛고 자신의 삶을 가감 없이 음악에 투영했기에, 삶 자체가 품고 있는 모순과 자조 또한 작품에 고스란히 담길 수밖에 없다. 결국 앨범의 마지막이 정답 대신 미련으로 맺어지는 까닭은, 나이가 들수록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회한이 깊어질지라도,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않고, 그 후회와 추억을 안고 지킬 것은 지키며 나아가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서글픈 선고일지도 모른다.
Best Track: BE ON (feat. JUPITER KIM), Nostalgia (feat. Minos), 511





올해 지금까지 제일 좋게들은 앨범!!
본 리뷰는 HOM#41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hausofmatters.com/magazine/hom/#41
이런 붐뱁 앨범 요새는 선호하지 않는데, 가사나 사운드 다 만족스러웠네요.
아 워너 락롸잇나우
비트가 진짜..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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