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속해
Break
mineral audio
Summer Time : D
Fall-Ever
LOST IN SEOUL
ㅠㅜㅜ
ADHD
26ss
Paris :
어딘가
내가 어렸어 :<
어차피
WISH YOU 행복 (interlude)
WISH YOU 행복
“너 내 손 닿아?” “우리는 안 닿네.” “선생님 내 손 닿지요?” 매일 아침 출근한 후 어린이집 교실 문을 열 때마다 내 귓가를 채우는 대화들이 있다. 아직 세상의 서투름을 온몸으로 안고 있는 아이들이 서로의 손끝을 맞잡으려 손을 뻗어보는 모습이다. 그 짧은 팔로는 서로에게 완전히 닿지 않지만, 그 서툰 몸짓 속에는 계산되지 않은 순수한 애정이 가득 차 있다. 이 무구하고도 아련한 광경을 바라볼 때 느끼는 기분 좋은 서글픔은, 비단 아이들의 세계에서만 유효한 감정이 아니다. 최근 발매된 시스템 서울의 세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 [SS-POP 3]를 플레이하는 순간, 내 귓가에는 바로 그 교실 속 아이들의 서툰 손끝을 닮은 음악들이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이들은 차가운 디지털 사운드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면서도, 그 이면에는 닿지 않는 과거와 시절을 향해 끊임없이 손을 뻗는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숨겨두었다.
[SS-POP 3]에서 그들은 시스템 서울이라는 브랜드가 지난 시간 동안 공고히 다져온 고유의 정서적 정체성을 한층 더 입체적인 소리로 증명하려 했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도입부 트랙들에서 이들이 설계한 기억의 타임머신에 자연스럽게 탑승하도록 유도한다. 오토튠이 짙게 깔린 보컬과 로파이한 신시사이저의 질감은 2000년대 초반 Y2K 감성의 황금기를 통과해 온 이들에게는 기분 좋은 기시감을,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는 신선한 판타지를 선사한다. 특히 인트로에서부터 느껴지는 특유의 먹먹하고도 몽환적인 공간감은 과거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세련된 감각으로 재해석된 아날로그적 낭만을 품고 있다. 첫 트랙의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전해지는 이 묵직한 공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이내 스피커 너머에 존재하는 [SS-POP 3]의 세계관 속으로 침투할 만반의 준비를 마치게 했다.
그러나 자동 준비 버튼을 눌렀어도 이들이 설계해 놓은 아련함의 세계관 내부로 깊숙이 진입하는 과정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장르의 문법에 충실한 시스템 서울의 음악은 오토튠 장막 뒤로 목소리를 잔뜩 흘려보내는 특유의 딜리버리를 취하고 있으며, 노랫말 속 영어의 비중도 상당히 높아 처음 감상할 때는 메시지가 직관적으로 귀에 꽂히지 않는다. 가사를 화면으로 직접 찾아보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지 않는다면 자칫 난해한 기계음의 연속으로 받아들이며 첫 장벽에서 발을 돌릴 여지가 다분하다. 문득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때의 기억이 스친다. 아직 언어 구사력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의 표현은 언뜻 불분명하고 뭉개진 소리로 다가오지만,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본 내게는 또박또박 말하지 않아도 그 속뜻이 선명하게 들려온다. 발음의 정확도에 갇히지 않는 온전한 이해는 상대를 향한 깊은 애정과 지속적인 관심이 있을 때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시스템 서울의 음악으로 향하는 장벽을 허무는 과정도 이와 닮아 있다. 웅얼거리는 사운드의 질감을 즐기는 단계를 지나 그들이 숨겨놓은 메시지까지 가닿기 위해서는 아티스트를 향한 능동적인 관심과 탐색의 시선이 요구된다.
이러한 관심의 렌즈를 들이대며 텍스트를 디깅하여 직접 두 눈으로 마주하는 순간, 불친절했던 장막은 극적인 반전으로 바뀐다. 은폐되어 있던 투박하고 서툰 속마음들이 마침내 나의 개인적인 기억과 맞닿을 때 발생하는 정서적 감흥은 무엇보다 강력하다. 화려한 전자음 속에 숨겨진 이들의 언어는 세련되게 다듬어진 팝스타의 문법을 비껴가며, 지독하리만치 나약하고 솔직한 후회로 가득 차 있다. 유명세를 쥐고도 연인의 연락 두절 앞에 무력하게 피로감을 호소하다가 기어이 '근데 넌 괜찮아?'라며 소심한 안부를 건네는 "약속해"의 구절이나, 관계의 파국 속에서 서로를 탓하는 대신 '그땐 내가 너무 어렸어'라며 자신의 미성숙함을 나약한 변명처럼 내어놓는 "내가 어렸어 :<"의 노랫말이 대표적이다. 이 장치들은 가사를 찾아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이들에게만 허락된 감정의 스파크다. 웅얼거리는 소리 너머에 숨겨진 찌질하고도 순수한 고백들을 목격하였을 때, 비로소 기계음의 장벽을 완전히 잊은 채 이들이 공유하는 결핍의 세계관 속으로 완벽히 침잠하게 된다.
웅얼거리는 딜리버리의 한계를 기어이 상쇄하고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단연 직관적인 멜로디와 이를 극대화하는 영리한 트랙 배치에 있다. 이번 앨범은 자극적인 사운드 중심의 트랙과 서정적인 보컬 중심의 넘버를 징검다리처럼 교차 배치하여 청자가 느낄 청각적 피로도를 덜어내고 감정의 고저를 능숙하게 조율한다. 이 롤러코스터 같은 밀당의 한가운데에서 청량하면서도 서글픈 계절감을 뿜어내는 "Summer Time : D"는 앨범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첫 번째 백미다. 인디고의 원곡 속 상징적인 아기 목소리인 '여름아! 부탁해'를 전면에 샘플링하여 단 3초 만에 Y2K 특유의 무해한 향수를 소환한 뒤, 초중반부에는 가슴을 적시는 감성적인 탑라인으로 아련함을 빌드업한다. 흥미로운 점은 곡의 후반부에 이르러 사운드 중심의 하이퍼팝 질감으로 매끄럽게 태세를 전환한다는 것이다. 감성의 절정에서 장르적 정체성으로 키를 꺾는 이 입체적인 구성은 귀에 감기는 멜로디의 힘이 있었기에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다. 이어서 흘러나오는 sn7의 솔로곡 "ㅠㅜㅜ" 역시 마찬가지다. 'Then she text me “ㅠㅜㅜ”'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찌질한 연인의 대화를 소재 삼아, 들으면 들을수록 귀에 감기는 독보적인 싱잉 탑라인을 얹어내며 멜로디컬한 슬픔을 극대화한다. 자극적인 전자음의 홍수 속에서도 이들의 음악을 계속 흥얼거리게 만드는 것은 이처럼 정교하게 조율된 멜로디의 직관적인 힘이다.
이처럼 정교하게 맞물린 멜로디의 연쇄는 최근 글로벌 하이퍼팝/디지코어 씬의 가장 뜨거운 트렌드인 곡 간의 유기적인 트랜지션 기법을 만나며 청각적 쾌감을 극대화한다. 속도감과 공간감이 자연스럽게 녹아내리며 다음 인트로로 매끄럽게 안착하는 "26ss"에서 "Paris :"로의 전환이 주는 만족감이 좋은 예시다. 특히 이번 앨범의 전체 프로덕션에서 중심축이 되어 흐름을 전면에서 이끌어낸 ycs와 sn7의 탄탄한 설계 위에, 새로운 피로 수혈된 객원 멤버 kira와 기존 멤버들의 개성이 유기적인 시너지를 발휘한다. 그중에서도 이번 앨범에서 감초 정도의 분량으로 참여했음에도 독보적인 흔적을 남긴 MUNZi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인다. 귀를 찌르는 강렬한 신시사이저 질감이 귓가를 때리는 "내가 어렸어 :<"의 후반부, 그의 서글픈 미성이 흘러나오며 피치다운과 함께 템포가 뚝 떨어지고 리듬이 리와인드되듯 뒤바뀌며 "어차피"로 이어지는 트랜지션은 단연 프로덕션의 극치다. "어딘가"부터 "어차피"까지 이어지는 MUNZi 참여 곡들의 후반부 3연타 배치는 자칫 사운드의 과잉으로 치달을 수 있는 앨범의 텐션을 가장 시스템 서울다운 아련함의 정서로 붙들어 매는 장치다. 이 또한 시스템 서울의 영리한 트랙 배치가 빛을 발한 순간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이 모든 방황과 미련의 여정은 14번과 15번 트랙의 연쇄를 통해 가장 뻔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정공법으로 치닫는다.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속 애절한 편지 대사 위로 쓸쓸한 로파이 패드를 얹어낸 "WISH YOU 행복 (interlude)"은 앨범 전체에 흩뿌려져 있던 청춘의 서툰 파편들을 하나의 거대한 정서로 압축한다. 이 고조된 감정의 끝에서 자연스럽게 맞물려 터져 나오는 본편 "WISH YOU 행복"은 특유의 신파 감성을 세차게 자극하는 탑라인으로 청자의 마음을 뒤흔든다. 'Time is gone, yeah, and I found the key too late'라는 뒤늦은 후회의 독백 위로 흐르는 멜로디는, 지극히 직관적이고 군더더기 없기에 오히려 가장 효과적이고 파괴적인 힘을 발휘하며 깊은 소름과 여운을 남긴다. 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피날레를 가만히 듣고 있자면, 매일 아침 어린이집 교실에서 서툴게 손을 맞잡고 서로를 향해 무해한 미소를 지어 보이던 아이들의 얼굴이 다시금 겹쳐 흐른다. 한 치 앞의 미래도 계산하지 않은 채 오직 서로만이 전부였던 그 시절의 서투르고 순수했던 순간들. 비록 그때의 시간은 지나갔고 잡으려 해도 닿지 않는 과거가 되었지만, 그 무구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내 입가에 아련한 미소가 번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비록 사랑을 가장하고 길을 잃었을지언정 기어이 연인의 행복을 빌어주는 이들의 서툰 노래 역시 마찬가지다. 째깍이는 초침 너머로 사라진 계절을 그리워하는 이 찌질하고도 찬란한 소음들은, 지나온 날들의 아련한 손끝을 기억하는 내 귓가에 아주 오랫동안 서성거리며 머물 것만 같다.




이야 리뷰 좋네여
이번앨범이 전 앨범들보다 뭔가 계속 생각나서 듣게됨
앨범 전체의 배치적 측면에서 본토 디지코어신에서 호평받았던 요소를 정말 잘 차용한 것 같았고
정서적 / 메세지적 측면에서도 전작들보다 호소력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디지코어 장르 전체에서도 경쟁력 있는 사운드라고 생각해요.
국힙을 많이 듣진 않지만 제가 올해 들었던 작품 중에서는 제일 빼어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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