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검색

리뷰

[리뷰] 꽃다운 계절, 당신의 봄에 관하여, jerd- <BOMM>

title: 저드Writersglock2026.07.11 09:28조회 수 735추천수 9댓글 6

IMG_8562.jpeg


어렸을 때 읽었던,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에세이집에 이런 문장이 쓰여 있던 것을 기억한다.

“봄은 탄생이자 고통의 계절이다.”

어린 나는 봄이 탄생의 계절이라는 것은 이해했으나 고통의 계절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탄생이란 그저 축복받아 마땅한 일이었고, 행복과 기쁨으로 가득한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생일마다 축하 편지와 선물을 받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 신나게 놀았으니까.

그 이후로 계절의 순환을 열 몇 번은 겪고 어른이 된 나는 그 에세이집의 글쓴이가 어째서 봄을 고통의 계절이라고 말했는지 안다. 아기가 태어나기 위해 어미는 그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는 것을, 새 움을 틔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피를 찢는 아픔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탄생에는 반드시 고통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jerd가 하이라이트 레코즈 해체 이후 내놓은 첫 번째 앨범, 디스코그래피로서는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BOMM>은 우울이라는 껍질을 찢고 나오는 jerd의 고통스러운 계절과 필사적인 발버둥을 담고 있다. 전작인 <A.M.P>에서 jerd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그로 인한 무력감과 두려움, 그리고 차츰 극복해가는 자신을 다루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BOMM>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있는 부정적 감정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울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이면서도 그 사람마다 정도와 심도가 다른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다. 그래서 <BOMM>은 누가 감히 들여다볼 수 없는 jerd의 깊은 심연 속 이야기를 담을 수 있으면서도 그 이야기에 청자가 푹 빠져들 수 있는 앨범이다.


 앨범은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에서 선율을 따온 “Aria”가 열어준다. 1번 트랙이면서 개인적으로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인데, 스트링의 환상적인 선율과 편곡, 몽환적인 jerd의 목소리와 아름다운 가사까지 어느 한 구석도 빼놓을 것이 없다. 인트로 격의 곡인지라 길이가 좀 짧은 것이 아쉬울 뿐이다. jerd는 이 곡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과 그 과정의 의미를 다시 곱씹어본다. 마치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가파른 오르막을 숨가쁘게 올랐지만, 정작 도착한 뒤 돌아보니 이뤄낸 것 하나 없이 사람과 사랑만 잃어버린 상태이다. 어디였는지 모를 꼭대기에서 ‘보물이라도 찾아’왔으면 좋으련만(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사다), 주변에 남은 것은 껍데기들 뿐이었고 jerd는 점점 작아진다. 그렇게 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안 그래도 짧아 서운할 계절은 어떤 축하도, 꽃다발도 받지 못한 채로 빠르게 스쳐간다(“Bridal shower”). jerd는 자신을 돌아보며 발견한 자신의 가면과 텅 비어버린 마음에 염증을 느끼며 이제 ‘척하기’를 그만둘 것을 선언한다. 누군가를 위하는 척, 괜찮은 척, 웃는 척, 사랑한 척 따윈 그만 두고 새로 태어날 거라고(“X됐어”).


 jerd의 우울은 ‘나답지 못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모두 페르소나를 사용한다.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서 또는 다른 이들과 원만히 지내기 위해서 다양한 가면을 쓰고 벗는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 페르소나를 활용하는 것과 그렇지 못하면서 페르소나에 씌어 살아가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 페르소나를 필요한 때 적절하게 도구로서 사용할 수 있는 반면 후자의 경우 페르소나에 끌려다니며 주변 상황에 맞춰가기 급급해진다. 결국 진짜 자신은 매몰되고 텅 빈 가면으로 썩은 미소만 짓게 된다. jerd는 어느새부턴가 페르소나에 파묻혀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 자신이 아닌 외부의 무엇인가에 열중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자아를 잊기 십상이며, 자아를 잊은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진창에 빠져버리기 십상이다. 그 순간 ‘내가 지금 왜 이렇게 됐지?’라는 질문으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결국 몸과 마음에 병을 얻게 된다. 다행히도 jerd는 그 질문을 떠올렸고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잡는다.


 4번 트랙 “Blondie”를 기점으로 jerd는 자신을 한꺼풀씩 다시 들춰본다. 모든 색을 빼내고 하얘진 상태로 ‘너’에게 다시 돌아가려 한다. jerd는 앨범 중간중간에 ‘너(당신)’라는 존재에게 말을 거는데, 이는 사랑했던 과거의 연인을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고, 페르소나에 잠식되기 이전의 순수했던 자신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후자로 보는 것이 앨범 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했을 때 더 설득력이 있지만, 전자로 보아도 문제는 없다. 어쨌든 ‘너’는 현재 내 곁에 없고, jerd는 ‘너’를 포함해 내가 지나온 길을 반추한다. 너와 내가 나눴던 사랑(“비처럼 음악처럼”- 김현식의 그 명곡을 리믹스하였다), 내가 했던 말과 하는 말(각설), 오래 두고 보아야 하는 ‘나’라는 사람의 성질(홍시), 내 마음 한 켠에 자리하는 생각들(BOMM). 이렇게 ‘나’를 이루는 것들을 한 조각 한 조각씩 다시 닦아보며 이 모든 것이 마치 봄처럼 왔다가 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봄은 내가 도달하고 붙잡을 것이 아닌, 그저 조용히 지나가고 흘러가는 것이 당연함을 알게 된다. 그래야 계절이 한 바퀴 돌아 새로운 봄이 찾아올 수 있을테니.


 껍질을 깨고 나오는데 자기부정은 필수이다. 지금까지 습관처럼 말하고 행해왔던 모든 것을 갈아엎어야만 알을 깰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이 과정은 굉장히 고통스러우며 껍질 속 말라비틀어진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 무기력과 좌절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반지르르했던 겉모습에서 얻었던 자기위안이 자기혐오로 바뀌는 순간이다. 결국 9번 트랙 “영업 안 합니다(feat. 짱유)”에서 jerd의 자기혐오가 폭발한다. 앨범 안에서 굉장히 튀게 프로듀싱된 곡이기도 한데, 공격적인 가사와 공격적인 사운드가 혼란스러운 jerd의 마음을 굉장히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심지어 짱유가 나오는 부분은 Phonk까지 차용하는데, 이 부분에서 사람들에게 큰 호불호를 준다. 개인적으로는 신선하게 들었으나, 굉장히 깬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수록곡 중 유난히 거친 가사와 jerd의 자기혐오적 태도를 담아내는데는 꽤나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감정까지 모두 털어낸 jerd는 마지막 트랙인 “VANS”에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눈을 뜬다. 지금까지의 자신을 받아들이자 더 이상 페르소나들은 필요 없어졌고, 내가 왜 그렇게 아둥바둥 인정받고 싶어했는지 알게 되었으며, 꼭대기인줄 알고 기어올라왔던 여기는 아직도 길 한가운데라는 것을 알게 된다. jerd는 반스의 신발끈을 다시 묶은 뒤 처음 출발했을 때의 마음을 가슴 한 켠에 깊이 심고 걸어가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봄이 아닌 ‘나’의 봄바람이 불어 심어둔 마음이 언젠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것을 기다리며, 누군가에 의한 누군가를 위한 누군가의 것이 아닌 온전한 나로서.


 jerd는 이번 앨범을 통해 자신을 속박하던 봄을 탈피하면서 아직 찾아오지 않은 자신만의 봄을 찾아 떠난다. 서론에서 말했다시피 봄은 고통의 계절이자 탄생의 계절이다.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 찾아온 봄은 시련의 계절이 된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의 봄을 찾아낸 이에게는 내면에 품은 것을 맘껏 펼쳐낼 수 있는 따뜻한 계절이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자신만의 꽃을 피워낼 수 있는 봄을 찾아가길 바란다. 그래도 봄은 돌아오니까.


——————————————————-


저드 이제 돌아와 제발…


신고
댓글 6
  • 7.11 10:00

    다음 앨범이 너무나도 기대가 되는 아티스트..

  • 7.11 10:15

    👍🏻

  • 7.11 12:25

    국내 알앤비앨범중 최애

  • 7.11 13:55

    다음 앨범 언제나와

  • 7.11 18:25

    짱유 파트만 아니었으면 국내 알앤비 앨범 중 최고라고 할만한데 아쉽다 그래도 top3안에는 무조건 들어감

  • 7.11 20:01

    이사람 도대체 어디감?

댓글 달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일반 [안내] 힙합엘이 국내힙합·국외힙합·피처 에디터 모집9 title: [회원구입불가]HiphopLE 2026.06.22
일반 [공지] 힙합엘이 향후 로드맵 공유27 title: [회원구입불가]HiphopLE 2026.06.10
일반 [공지] 회원 징계 (2026.5.28) & 이용규칙19 title: [회원구입불가]힙합엘이 2026.05.28
화제의 글 음악 도모 걍 대놓고 개쩌는데5 title: Revengeseekerz혼란속어둠의그림자 2026.07.20
화제의 글 음악 아 도모 진지하게 좋은 거 같은데 ㅋㅋㅋ 재평가 가능성 있을까요12 기적이야 2026.07.20
화제의 글 음악 조광일이 랩으로 까이는건 억까같음3 동글이 8시간 전
312538 일반 타짜 스윙스 역할예상9 title: Frank Ocean - Blonde흔한칸붕이 2026.07.11
312537 인증/후기 Nest Blurim - Across the Ceiling... A1-9 CD 인증4 title: Long SeasonFishmans 2026.07.11
312536 일반 구스범스 신보?4 title: 털ㄴ업 (2)프리비프리 2026.07.11
312535 일반 저도 뭔가 앨범 리뷰를 맛깔나게 써보고싶은데7 지갑에백원 2026.07.11
리뷰 [리뷰] 꽃다운 계절, 당신의 봄에 관하여, jerd- <BOMM>6 title: 저드Writersglock 2026.07.11
312533 음악 국힙에서 간지로 1등이었던 레이블은?21 title: Frank Oceanwishnyougodspeed 2026.07.11
312532 음악 님들 아름8 한번만 들어줘요1 title: Dropout Bear (2004)Andreitarkovsky 2026.07.11
312531 음악 플리키뱅:다음 앨범은 올해의 앨범 될 것..13 Khiphop100 2026.07.11
312530 음악 HIPHOPPLAYA SHOW (힙플쇼) Vol.61 - The Quiett (더콰이엇) title: Travis ScottRoken 2026.07.11
312529 일반 팝이크 후반 트랙이 진짜 맛있네 어디 2026.07.11
312528 음악 후드스타 ㄹㅇ 좋네3 title: Jane Remover비니빈지노 2026.07.11
312527 음악 이거본사람3 참치참치고추참치 2026.07.10
312526 일반 파급효과2 음원으로는 손이 잘 안가는데 뮤비가 진짜 좋음3 Asdfreqq 2026.07.10
312525 음악 키스에이프 스맥다운 올해의 트랙 후보5 skaiwater 2026.07.10
312524 음악 식서울 들으면 들을수록2 kendricklamart 2026.07.10
312523 음악 파급2 첨엔 그저 그랬는데7 Ellos 202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