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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모두에게, '학교'는 무슨 의미였을까? 누군가에게는 꿈으로 향하는 디딤돌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학우들이나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던 터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착취가 반복되는 지옥이었고, 출세를 위한 경쟁에 청춘이 짓눌리는 야생이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경험은 개인적일지라도 그 배경이 되는 공간은 거의 대다수에게 보편적이라는 사실이다.
그 보편적 공간에서, 올티는 튀어나온 몇몇 못 가운데 하나였다. 학창 시절부터 안양과 홍대 놀이터를 오가며 사이퍼와 프리스타일이 벌어지는 곳마다 모습을 비췄던 그는 이미 그 재치와 실력이 자자했다. 허클베리피와 JJK의 지지를 받으며 언더그라운드에 발을 디뎠던 그는 이내 장르 씬의 유망주 중 하나로 부상하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성공이 서서히 보이던 시점에서 올티는 도리어 솔직해지기를 택했다. 학생과 MC로서의 커리어를 병행하며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그에게는 '랩 스타'도, '언더그라운드 킹'도 아직은 요원해 보였다. 성찰의 끝에서 올티가 내린 결론은 자신은 '그냥 랩을 하는 학생,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정우성'이라는 것이었다. 특별함을 향해가던 시점에서 찾은 보편, 이 지점에서 앨범은 시작된다.
앨범의 인트로인 "굴레" 속 화자는 사실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다. 툭하면 늦잠을 자서 지각하고, 수업 시간마다 조는 인간적인 모습 덕에 그는 청자에게 더욱 정겹게 다가온다. 프로듀서 스코어(SCORE)는 그런 올티를 위해 경쾌한 건반 사운드로 '학생 정우성'의 나른한 데일리 루틴을 감각적으로 재구성해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 늦잠의 원인이 앨범의 끝자락인 아웃트로에서 제시된다는 것이다. 아티스트로서의 고뇌와 새로운 다짐이 그 이유였음이 드러나는 순간, 가상의 화자 위로 올티 본인의 모습이 겹쳐지며 캐릭터는 비로소 생명력을 띠게 된다. 학생이자 MC인 올티는 친구들에게 말한다. 입학한 모두에게, 서툴렀더라도 일단 첫걸음을 떼고 자기답게 달리라고. 어느 방향으로 뛰는 마라톤이건, 완주하기 위해서는 결국 출발을 해야 하니까. 기린과 프랙탈, DJ 플라스틱 키드는 앨범 [사랑과 행복]에서의 익숙한 조합 그대로 따스한 뉴 잭 스윙을 선보이며 새내기들의 시작을 응원한다. "첫걸음"에서 모두에게 용기를 건네던 올티는, "31035"에서 스스로의 생활로 기꺼이 모범을 보인다. ADV 크루의 절친한 동료인 갱자(gJ)가 선사하는 다채로운 변주, 그리고 동급생 학우들의 풋풋한 코러스 위로 올티는 자신의 학번을 외치며 자신이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방식에 대해 웅변한다. 나다운 삶을 살며 자신의 꿈으로 수렴해가는 나날들, 인생의 '푸른 봄'을 지나며 드러내는 그 순수한 열정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짙은 미소와 용기로 다가온다.
물론, 학교생활이 오직 꿈을 향한 질주로만 채워지는 것 또한 삭막한 일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앨범 [졸업]의 곳곳에는 학창 시절의 낭만을 자극하는 순간들이 여럿 존재한다. 10대이기에 가능한, 미숙하지만 풋풋한 첫사랑에 가슴 설레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즐거운 한순간, 혈기를 못 이겨 드러내는 뜨거운 반항기까지. 앨범 [졸업]의 허리는 청춘극을 대표하는 순수한 장면들로 채워진다.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당시 올티와 함께 10대 시절을 보내던 동년배 뮤지션들의 목소리다. 이들의 참여는 앨범이 추구하는 세계관의 밀도를 영리하게 채워낸다. "설레"의 연애담에서 백예린의 보컬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첫사랑의 풋풋한 설렘을 완벽하게 그려내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날카롭고 뜨거운 맛이 요구되는 부분도 공존한다. JAY-Z의 명곡을 오마주한 "96 Problems"는 차메인과 던말릭이 서로 다른 결의 랩 스킬을 뽐내며 앨범에서 가장 혈기 방장한 트랙으로 완성되었다. 학생과 MC의 삶을 살아가는 세 동갑내기가 자신의 생활을 전시하며 '누구도 우릴 가르칠 수 없다'라고 으스대는 모습은 사춘기 특유의 뾰족함이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설레"의 멜로우한 로맨틱함과 장난기마저 느껴지는 "96 Problems"의 로킹(Rocking)한 사운드, 이 상반된 두 트랙 모두에 당시 올티와 같은 레이블이었던 그루비룸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만 해도 스코어, 키마 등 선배들의 조력을 받는 위치였지만, 그루비룸이 지닌 대중적 감각과 넓은 스펙트럼은 커리어 초기부터 꽤나 탄탄했음을 알 수 있다. 올티 스스로도 "연결고리"로 일약 스타가 된 프리마 비스타의 흉포한 트랩 프로덕션이 더해진 "OLL' Skool"에서 성적, 진학 용어와 교과목들을 응용한 빼곡한 펀치라인, 난폭한 엇박 그리고 타이트한 라이밍을 통해 선배들마저 제쳐 버리겠다는 패기와 야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어쩌면 "OLL' Skool"에서 "96 Problems"로 이어지는 구간이야말로, 학교와 거리를 오가며 배틀 래퍼로서의 정체성을 다져온 올티의 공격적인 면모를 가장 잘 대변하는 대목일 것이다.
"결석"을 기점으로 앨범의 톤은 급격히 어둡고 무거워진다. 왕따와 학교폭력이라는, 학교생활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 올티는 Odd Future의 향이 물씬 풍기는 갱자의 호러코어 비트 위에서 예리한 필치로 묘사해 낸다. "결석"에서의 올티의 관점은 방관자에 가깝다.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입장이 아니었기에, 우리 대부분이 결국엔 방관자가 되기 쉬운 현실을 그는 차갑게 짚어낸다. 결국, 모두의 외면 속에서 어느 왕따의 책상은 빈자리가 되고 만다. 모두의 무관심과 무심함이 낳은 비극이다.
올티는 자신이 겪어 보지 못한 사연들을 다루기 위해 SNS를 통해 실제 학생들의 사연들을 수집하였고, 이는 전술한 "결석"은 물론 "Fallin'"의 주제의식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직전의 스킷에서 입시를 앞둔 누군가들의 이야기가 하나둘 나오고, 이것이 그대로 그루비룸이 주조한 서글픈 건반과 앰비언트한 드럼이 울려 퍼지는 "Fallin'"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중의적 표현과 펀치라인에 능한 올티의 강점이 여기에서만큼은 어느 때보다도 비극적으로 적용된다. '떨어지다'라는 표현은 시험에 낙방했다는 뜻으로도, 성적을 비관해 투신했다는 뜻으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아티스트인 만큼 입시 미술에서 겪는 개성과 꿈에 대한 위축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조금 더 보편적인 입시생들의 이야기로 확장되고, 결국 압박을 못 이겨 삶을 버리려는 상황에서 '뛰어놀아, 뛰어내리지 말고'라며 절규하는 올티의 모습은 위로 이상의 공감으로, 고통에 대한 진솔한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크루셜스타의 차분한 보컬은 선배로서, 후배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의 층위를 한층 더 두텁게 쌓아 올린다. 앨범 [졸업]에서 가장 빛나는 음악적 순간이 역설적이게도 '추락'의 고통을 노래하는 순간이라는 사실은, 한국의 청춘들이 마주치는 상황이 때때로 극한의 경쟁 속에서 비극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씁쓸한 방증이기도 하다.
지루했던 나날도, 설레던 나날도, 뜨겁던 나날들도, 여러 문제로 괴로웠던 나날들도, 결국 졸업과 함께 '학창 시절'이라는 말 한마디로 건조하게 정리된다. 이런 차가운 이별이 자못 아쉬워서였을까, 올티는 "졸업 (이젠 안녕)"에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졸업식 레퍼토리를 꺼내 들었다. 공일오비(015B)에게서 비롯된 익숙한 후렴구, 그 사이로 올티는 학교에서의 추억을 돌아본다. 등교하고, 수업 듣고, 친구들과 놀고. 그 일상 속에서 빠르게 지나가길 바랐던 하루하루는 이별의 순간 앞에서 이제 도리어 아쉬워진다. 그저 언젠가 지워질 추억을 책상 위에 새기고, 학교 종소리가 들리지 않을 낯선 곳을 향해 새로운 첫걸음을 떼러 나아갈 뿐이다. 어떠한 시간의 끝은 새로운 시간의 시작일 테니까. 앨범 초반에 등장했던 트랙인 "첫걸음"의 초기 스케치로 앨범이 마무리되는 것은 그렇기에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졸업]은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수많은 10대들의 희로애락이 가장 뚜렷하게 담긴 앨범이다. 올티는 분명 평범한 삶에서 튀어나온 못이었으나, 되려 이 보편적인 감정들을 탁월한 언어와 잘 단련된 랩으로 청자의 마음에 깊이 새겨 넣었다. 아마도, 앨범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리라. 입시 경쟁에서 졸업, 새 출발로 이어지는 앨범의 최후반 전개에서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졸업은 유년기의 끝이자, 새로운 삶의 시작 지점이기도 하다. 올해도 수많은 이들이 새롭게 출발하고, 이 과정에서 열정을 불태우며, 설렘을 찾아내고, 때로는 경쟁 앞에 번민할 것이다. 이 모든 청춘에게 말하고 싶다. 부디, 자신다움을 지켜가기를. 삶이 짓누르더라도, 쉽사리 모든 것을 저버리지 말기를. 그리고, 언제나 뜨겁게 나아가 바라던 스스로에 한없이 수렴해가기를. 2015년의 어느 소년이 뱉은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가벼이 들리지 않는 이유다.
Best Track: 31035, 96 Problems (Feat. 차메인, Don Malik, DJ KENDRICKX), Fallin' (Feat. Crucial Star)




본 리뷰는 HOM#31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hausofmatters.com/magazine/hom/#31
P.S. 이제 곧 스물을 향해 나아갈 모든 고3들을 응원합니다.
진짜 좋은 앨범이죠 이거.. 올티도 좋은 앨범을 3개나 뽑았는데 하입되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움
내 학번은 삼일공삼오
수업 시간엔 오히려
몸 사리고 살어
올티 JJK 둘은 그냥 프리스타일 래퍼로 소비되기에는 앨범도 좋음
그 시절 연결고리 플로우만 빼면 지금도 들을만한 앨범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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